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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5 (금) 12:4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906      
[미술] 우리 나라의 토기 (민족)
우리 나라의 토기

토기 개설에서 계속

우리 나라의 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발생하며, 청동기 시대를 거쳐 철기 시대에 이르면 고화도의 토기로 발달한다. 삼국시대의 토기는 자연유(自然釉)가 토기 외벽에 나타나는 석기질단계에 이르고, 자기(磁器)가 등장하는 고려시대 이후에도 토기는 계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토기]

신석기 시대의 토기에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를 비롯해 덧띠무늬토기[隆起文土器](운영자 주-요즘은 '덧무늬 토기'라 부른다), 채문토기(彩文土器),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등이 있다. 토기의 형태는 바닥면이 뾰족한 첨저형이 기본을 이루나 화분모양의 평저형도 있다. 빗살무늬토기는 손으로 빗거나 적륜법 또는 권상법으로 기형을 만들고, 노천요(露天窯)에서 구운 토기이다. 토기의 색상은 대부분 갈색이나 흑갈색 계통이고, 소성온도는 600∼700℃ 정도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토기 표면에 빗같은 다치구(多齒具)의 무늬새기개[施文具]로 새기거나 그어 만든 각종 문양이 있는 토기이다.

토기의 겉면을 평행으로 삼등분해 위로부터 구연부ㆍ몸체부ㆍ바닥부로 나누어 각기 다르게 무늬를 장식하였다. 주요 문양은 구연부에는 평행밀집사단선문(平行密集斜短線文)ㆍ점렬문(點列文)ㆍ사격자문(斜格子文) 등이 있고, 몸체부에는 어골문이 중심을 이루며, 구연부와 몸체부 사이에 파상점선문(波狀點線文)과 같이 곡선문을 시문한 경우도 있다. 바닥부에는 대부분 평행사단선문(平行斜短線文)을 시문한다. 문양 구성이 기하학적인 선을 배합해 만들었다고 하여 '기하문토기(幾何文土器)'라고도 하고,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에 상대되는 말로 '유문토기(有文土器)'로 부르기도 한다.

빗살무늬토기는 서기전 6,000∼5,000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중국 동북 지방, 시베리아 등과 멀리 북부 유럽에도 분포하고 있어 북방 문화권(北方文化圈)을 이룬다. 또 한반도 내에서는 주로 압록강ㆍ대동강ㆍ한강ㆍ낙동강 등 주요한 강의 주변, 해안가 및 도서지방 등에서 발견되어 각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덧띠무늬토기(운영자 주-덧무늬 토기)는 토기 표면에 가는 점토띠를 손으로 붙여 만든 토기로 부산 동삼동 유적을 비롯한 남부지역에서 발견된다. 빗살무늬토기보다도 더 아래층에서 발견되고 있어 빗살무늬토기보다 더 이른 시기의 토기임을 알 수 있다.

채문토기는 나진 초도 유적과 평북 용천 신암리 등 북부 지방 일부에서 발견된다. 이는 토기를 구운 뒤에 적색ㆍ황적색 등으로 표면에 문양을 그렸으며, 태토와 채색수법이 중국 요령 지방의 토기와 유사하다. 단도마연토기는 토기 표면에 붉은 칠을 하고 마연한 토기로 남부 지역의 신석기시대 후기에 나타난다.

[청동기 시대의 토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이며, 그 외에 붉은간토기[紅陶], 검은간토기[黑陶] 등이 있다. 민무늬토기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갈색 또는 황갈색의 색상, 납작한 바닥[平底]의 기형, 장석ㆍ석영립 등 화강암계의 굵은 사립이 섞인 태토의 사용, 문양이 없는 것 등이다. 민무늬토기는 빗살무늬토기와 마찬가지로 손으로 빚거나 적륜법 또는 권상법으로 성형해 노천요(露天窯)에서 구워졌다.

민무늬토기는 대체로 서기전 1,000년경에 종래의 빗살무늬토기에서 변화ㆍ발전되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지역마다 형태가 다르고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인 예는 압록강 중상류에 분포하는 공귀리식토기, 청천강 이북과 중국 동북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미송리식토기, 대동강과 재령강을 중심으로 발달된 팽이형토기(角形土器), 충청도와 전라도에 분포하는 송국리식토기, 우리 나라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는 공렬토기(孔列土器), 골아가리토기[구순각목토기(口脣刻目土器)], 한강 이남에서 청동기 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아가리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운영자 주-국사 교과서의 '덧띠새김무늬 토기') 등이 있다.

붉은간토기는 고운 흙을 사용하고 표면을 반들거리게 만들고 산화철을 바른 것으로, 기형은 둥근 바닥의 긴 목을 가진 단지이다. 함경지방으로부터 중부지역을 거쳐 남부지역까지 분포하고 있으며, 고인돌과 집자리에서 출토되고 있다. 검은간토기는 흑색마연토기로 불리기도 한다. 장경호(長頸壺)를 기본으로 청동기들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아 청동기시대 후기에 속한다.

[철기 시대의 토기]

철기 시대에는 민무늬계 토기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가 사용되었다. 민무늬계 토기는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가 발전되어 경도가 높아지고, 기형이 다양하다. 이는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로 불린다. 중부 지역에서는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라 불리는 외반구연호(外反口緣壺)가 특징인 반면에, 남부 지역에서는 단면삼각형점토대토기가 특징이다. 기형은 심발형, 옹형, 호형, 파수부토기, 대부토기, 발형토기와 잔, 시루, 고배, 토기뚜껑 등 다양하며 납작한 평저도 있으나 둥근 바닥이 더 많다.

타날문토기는 종래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로 불리던 것으로 민무늬토기에 비해, 태토가 정선되고, 돌림판이나 물레를 사용해 기벽이 일정하고, 표면에는 격자문(格子文), 승석문(繩蓆文), 의사승문(擬似繩文) 등 타날문이 시문되고 있다. 가마도 종래의 개방노천요(開放露天窯)가 아니라 지붕을 씌운 터널형의 등요(登窯)에서 900∼1,000℃ 이상의 높은 화력을 내어 매우 단단한 토기를 구웠다.

타날문토기는 경도에 따라 연질과 경질로 나뉘고, 색상에 의해 적갈색, 회색, 흑색, 회백색, 회청색 등으로 나뉜다. 낙동강유역의 토광묘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회백색의 연질토기는 와질토기(瓦質土器)로도 불리며, 기형에는 장경호, 단경호, 주머니호, 화로형토기 등이 있다.

[삼국 시대의 토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각각 특징적인 토기들이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고구려는 중국(中國)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한식(漢式)계통의 회색 또는 흑회색의 평저토기, 파수부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표면을 마연해 광택이 나는 마연흑도도 있고, 광구평저사이호(廣口平底四耳壺)와 뚜껑이 있는 원통형 삼족기(三足器)도 있다. 표면은 대체로 무문이지만 직선, 파상문(波狀文), 연화문(蓮花文) 등이 어깨부분에 시문되어 있다.

백제 토기는 승석문이 보편적으로 시문되고, 삼족기가 존재하며 평저토기가 많고, 형태가 특이한 기대(器臺)가 출토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백제토기는 태토와 색상을 기준으로 3종류로 나뉜다. 태토가 민무늬토기처럼 거칠고 화분형이 많은 적갈색연질토기, 표면이 잘 마연된 흑색토기, 경질과 연질의 회청색토기가 있다. 기형에는 원저호, 평저호, 고배, 삼족기, 기대, 벼루 등이 있다. 또한 골호도 많이 제작되었다.

신라 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고 등요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물레를 사용해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인 기형은 고배와 장경호이며, 동물형 토기와 토우(土偶)가 특징이다. 신라 토기는 넓은 의미에서 경상도지역 출토 토기 전체를 말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그 동쪽에서 출토된 것만 말하며, 그 서쪽에서 출토된 것을 가야 토기라 부른다. 따라서 이를 신라 양식과 가야 양식으로 나눈다.

[통일 신라 시대 이후의 토기]

통일 신라 시대의 토기는 태토나 소성이 신라 토기와 같으나 기형이나 문양에서 변화가 많다. 기대나 이형토기(異形土器)가 없어지고, 고배, 장경호의 받침이 짧아지며, 뚜껑 꼭지가 보주형(寶珠形)으로 변한다. 또 광구장경호, 평저장경병 등이 나타난다. 문양에서도 종래의 기하학적 요소에서 화려한 인화문(印花文)으로 변화된다. 이 시기는 불교의 성행으로 화장용 골호(骨壺)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녹유(綠釉)를 시유한 토기가 출현한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는 완전한 자기를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고려 시대의 토기는 통일 신라 시대 토기를 계승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청자가 출현하므로 인해 청자를 모방한 매병(梅甁), 주전자 등과 항아리, 시루, 장군, 소병(小甁) 등과 같이 일상적인 용기로서 사용하는 토기가 만들어졌다.

≪참고문헌≫

新羅土器의 硏究(金元龍, 國立博物館, 1960), 韓國幾何文土器의 硏究(金廷鶴, 白山學報 4, 1968), 토기와 청동기(韓炳三, 世宗大王紀念事業會, 1974), 無文土器 型式分類 試攷(尹武柄, 震檀學報 29, 1975), 韓國古美術의 理解(金元龍, 서울大出版部, 1981), 韓國의 美-土器-(中央日報社, 1981), 韓國考古學美術史要解(國立博物館, 1982), 韓國考古學槪說(金元龍, 一志社, 1986), 鐵器時代-土器-(金暘玉, 韓國史論 17, 國史編纂委員會, 1987). 世界陶磁全集 17(韓國古代, 小學館, 1979).

<윤용진>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토기'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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