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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5 (금) 21:5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5991      
[미술] 백자 (두산)
백자 白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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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상감인화국화무늬항아리. 조선시대.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백자접시. 조선시대. 15세기 제작.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백자대호.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대형 백자 항아리. 국보 제262호. 조선 후기. 높이 49 cm, 입지름 20.1 cm, 밑지름 15.7 cm. 우학문화재단 소장.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백자투조모란문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제240호. 조선시대. 원통형의 내호(內壺)와 모란꽃을 투각(透刻)한 장식외호(裝飾外壺)로 구성된 2중 장치의 항아리이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백자상감연당초문대접의 내면. 국보 제175호.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7.6cm, 입지름 17.5cm, 밑지름 6.2cm.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백자상감연당초문대접 측면. 국보 제175호. 15세기에 제작된 연꽃과 당초(唐草) 무늬가 상감된 백자 대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7.6cm, 입지름 17.5cm, 밑지름 6.2cm.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사진

순백색의 바탕흙[胎土] 위에 투명한 유약(釉藥)을 씌워서 번조(燔造)한 자기.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으며, 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백자는 무늬를 표현하는 수법, 물감(안료)의 종류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 순백자(純白瓷)

그릇 표면을 싸고 있는 유약과 색조 및 그릇을 형성하는 선이 순백자의 생명이다. 순백자에는 두 가지 유형(類型)이 있다. 하나는 고려시대 백자의 계통을 이은 것으로 부드러운 곡선의 기형(器型)을 이루고, 유약은 투명하여 바탕흙과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 유약이 떨어지는 수가 있다. 또 하나는 원(元)나라 때부터 고려자기에 영향을 끼쳤던 유형으로 유약이 대체로 얇게 입혀져 백색으로 발색되며, 때로는 약간 청색을 띠고 있는 것도 있다. 그릇 모양은 풍만하여 양감이 있고, 유약은 은은하게 광택을 낸다.

순백자는 다른 빛깔로 장식하지 않으나, 형태 자체에 변화를 주며 부분적으로 장식물을 첨가하거나 혹은 투각(透刻)수법으로 무늬를 표현하는 수가 있으며, 표현한 종류에 따라 ① 소문백자(素文白瓷), ② 양각백자(陽刻白瓷), ③ 음각백자(陰刻白瓷), ④ 투각백자(透刻白瓷), ⑤ 상형백자(象形白瓷)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① 소문백자 : 그릇 표면에 전혀 장식 무늬가 없고 백색의 단일색으로 된 것이다. 이러한 그릇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만들어졌으며, 대체로 포용력(包容力)이 있고 청초(淸楚)해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백자 항아리는 달걀색과 비슷한 순백색의 항아리이다. 얕은 입과 우묵한 받침, 부드럽게 벌어진 몸에서 무한한 품위를 느낄 수 있다. 그릇 일부에 가는 빙렬(氷裂)이 있으나, 조선시대 항아리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② 양각백자 : 순백자 위에 양각수법으로 무늬를 나타낸 것을 말한다. 무늬는 매(梅) ·난(蘭) ·국(菊) ·죽(竹)의 사군자(四君子)가 가장 많고, 그 밖에도 약간의 무늬를 첨가하거나, 그림에 곁들여 문자를 양각하는 수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백자양각 매화무늬 장방형연적(長方形硯滴)은 네 귀를 안으로 접은 뒤 한쪽의 좁은 면에는 파도 무늬를 양각하고 그 위에 해태 모양의 물구멍이 있으며, 그 반대쪽과 뒷면에는 매화를 양각하였다.

③ 음각백자 : 순백자 위에 음각으로 무늬를 장식한 그릇이다. 부분적으로 음각 수법을 한 것은 있으나, 음각 수법만으로 표면을 장식한 예는 매우 드물다.

④ 투각백자 : 여러 무늬를 투각 수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무늬를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부분적으로 청화(靑華)를 칠하는 경우도 있다.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투각백자 연환문필통(連環文筆筒)은 푸른색이 감도는 유약을 칠하였으며, 밑으로 크게 처져서 가로대를 돌려 상하로 구분하고 위쪽에는 옆으로 고리 세 개씩을 연결하면서 고리는 물론이고, 고리와 고리를 연결한 십자형(十字形) 줄기의 공간도 투각하였다. 아래쪽은 사십자형(斜十字形) 무늬를 새겼으며, 그 때문에 생기는 사각형 공간도 투각하였다.

⑤ 상형백자 : 고려청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어떠한 형태를 본떠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고려청자만큼 다양하지 못하며, 조선시대의 도자기에서는 순백자에서보다 청화백자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것은 청화를 이용하면 어떤 부분적인 형태를 더욱 효과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색을 좋아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때로 효과를 무시하고 백색만으로도 만들었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된 백자복숭아연적은 굵은 가지로 받침을 만들고 복숭아에 긴 잎이 붙어 있어 끝이 뾰죽하고 안으로 홈이 패어 있는 사실적인 표현을 볼 수 있다.

2. 청화백자

백토로 기형(器型)을 만들고 그 위에 회청(回靑) 또는 토청(土靑)이라 불리는 코발트 안료로 무늬를 그린 다음 그 위에 순백의 유약을 씌워서 맑고 고운 푸른색의 무늬가 생기게 만든 자기이다. 코발트는 당시 한국에서는 채취하지 못하였으므로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하여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코발트 안료는 회청 또는 회회청(回回靑)이라 불렀으며, 이것으로 만든 자기를 중국에서는 유리청(釉裏靑) 또는 청화백자(靑華白瓷)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화사기(畵沙器) 또는 청화사기(靑畵沙器)라고도 불렀다. 중국의 청화백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1428년(세종 10) 명나라에서 보내온 것이다.

한국에서 청화백자를 번조(燔造)하기 시작한 것은 1457년(세조 3) 중국에서 회청(回靑)이 수입된 뒤부터이며, 《세조실록》에 의하면 1465년(세조 11)에 최초의 제품이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469년(예종 1)에는 전남 강진산(康津産) 토청(土靑:나라 안에서 생산된 청화안료)으로 청화백자가 생산되었고, 그 후 중국에서 수입한 회청이 함께 사용되었다. 청화백자는 경기 광주군(廣州郡)을 중심으로 번조되었으며 이 일대에는 수많은 관요(官窯)가 있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듭 변천하였다.

대체로, 15 ·16세기경의 청화백자는 청화의 안료를 얻기가 어려운 때이므로 안료를 아껴 쓴 흔적과 사용하는 데 서툰 점을 볼 수 있으며, 그릇의 형태는 항아리[壺]의 경우 어깨의 선이 부드러워지고, 병(甁)은 수직으로 올라가는 긴 목으로 아래 부분과 조화를 이루었으며, 굽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위로 퍼져나간 대접 등은 조선시대 도자기의 새로운 형태를 나타낸다. 17 ·18세기의 청화백자는 넓은 어깨가 아래로 내려와 전체의 모양이 구형(球形)에 가까워져 양감(量感)이 있으며, 목이 길어지고 표면에 모를 낸 각병(角甁)의 형식이 나타난다.

무늬에 있어서도 표면에 공간을 많이 남기던 초기에 비하여 굵은 필선(筆線)으로 표면 전체를 충분히 활용하였으며 화재(畵材)도 추초(秋草)무늬와 같은 15 ·16세기의 가냘픈 무늬에서 용(龍) ·소상팔경(蕭湘八景) ·십장생(十長生) 등을 그렸다. 19세기의 청화백자는 조선시대 백자의 최후를 상징하듯이 표면이 거칠고, 유조(釉調)는 회색이 많았으며, 목이 높고 몸이 길어 불안정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청화의 안료는 서양에서 양청(洋靑)이라는 안료가 수입되어 그릇 표면을 메우다시피 그림을 그렸으며, 무늬도 저속하고 안일하여 격을 잃고 있다.

청화백자의 기형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용구에서 문인 계급에게 공급되었던 문방구류에 이르기까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항아리 ·접시 ·사발 ·떡살 등의 생활용품과, 병 ·주전자 ·잔 등의 주기(酒器), 필통 ·연적 ·필세(筆洗) ·필가(筆架) 등의 문방구, 묘지(墓誌) ·인형 등의 명기(明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청화백자에 그리는 무늬는 시대 또는 그릇의 종류에 따라 각양 각색의 그림이 그려졌으며 중기 이후부터는 매우 복잡해져 여러 식물 ·동물 ·산수(山水) ·십장생 ·문자 등을 복합적으로 그려넣었다. 대체로 초기의 문양이 간결하고 청초한 데 비해 시간이 흐를수록 둔하고 번잡하하였다.

3. 철회백자(鐵繪白瓷)

백토로 그릇을 만들어 낮은 온도에서 초벌구이를 해내고 그릇 표면에 산화철안료(酸化鐵顔料)로 무늬를 그리고 그 위에 백색 유약을 입혀 번조한 것으로 백자에 다갈색, 흑갈색 계통의 무늬가 나타난 자기이다. 한국에서 백자에 철분안료로 무늬를 입힌 것은 고려시대부터였으며, 조선 전기에는 주로 묘지(墓誌)에 쓰였으나 일반화되고 세련미(洗鍊美)를 띠게 된 것은 17세기 이후로 보인다.

철회백자는 대개 광주관요(廣州官窯)와 지방민요(地方民窯)에서 생산된 두 가지로 구분된다. 광주관요의 것은 잘 수비(水飛)된 백토와 양질의 백자유(白瓷釉)에 사실적인 무늬가 주로 시문(施文)되어 포도덩굴 ·대나무 ·운룡(雲龍) ·매화 등이 세련된 필치로 나타나고, 지방민요의 것은 바탕흙과 유약이 각기 특색을 지니고, 반추상화된 초(草) ·죽(竹) ·용(龍) 무늬 등이 자유분방하게 묘사되어 있다. 철 ·철화(鐵畵) ·철사(鐵砂)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서서 붙여진 명칭이고, 원래 한국에서는 석간주(石間褓)라고 하였다. 가마터[窯址)로는 경기 광주군 일대의 조선 중기 요지 및 북한산록, 용인 ·천안 ·괴산 ·철원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4. 진사백자(辰砂白瓷)

도자기 바탕에 산화동(酸化銅:辰砂) 채료(彩料)로 그림을 그리거나 칠한 뒤 백자유약을 입혀서 구워내면, 산화동 채료(진사)가 붉은색으로 발색되는 자기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사기그릇을 주점사기(朱點沙器), 진홍사기(眞紅沙器)라고도 불렀으며 진사백자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진사백자는 고려시대 중엽(12세기)부터 사용되었으며 가장 흔하게 쓰여진 것은 조선 후기인 18∼19세기 무렵이다. 진사백자의 가마터로는 광주군 분원리요(分院里窯)와 함남의 영흥(永興)일대가 알려져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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