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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7-14 (일) 18:3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043      
[백제/고려] 2421. 익산 왕궁리 5층석탑 (민족)
2421. 익산왕궁리오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

    익산왕궁리오층석탑.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 보물44호(운영자주-1997년 국보 제289호로 재지정. 높이 8.5m. 기단부에 탱주가 2개 있는 사각형 석탑이며 옥신과 옥개석은 모두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었다. 기단의 구성 양식이나 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의 양식으로 미루어, 백제계 석탑 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첨가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높이 약 8.5m. 국보 제289호(원래 보물 제44호)로 재지정. 마한 시대(馬韓時代)의 도읍지로 알려진 왕궁면에서 남으로 2㎞ 지맥이 뻗은 낮은 언덕 끝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시대 말기에 출판된 익산읍지인 ≪금마지 金馬誌≫에 “왕궁탑은 폐허가 된 궁터 앞에 높이 10장(十丈)이 되는 완전한 것이 있다. 속전에 의하면 마한 시대에 만든 것이다(王宮塔在宮墟前 高十丈累石宛然 俗傳馬韓時所造).”라는 간단한 문헌자료가 전하고 있다.

1965년 해체 보수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토단(土壇)을 갖춘 희귀한 석탑으로 알려진 것이었으나, 해체 발굴에 의하여 이 탑은 원래 돌로 만든 기단(基壇)을 구비하였던 것임을 밝히게 되어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기단의 구조는 적심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목조탑과 같이 네 귀에는 부등변(不等邊) 팔각의 높은 기둥을 주춧돌 위에 세우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장대석(長臺石)을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식으로 올려놓았다. 이 평방 위에 초층탑신이 놓이게 되고 아울러 기단갑석(基壇甲石)을 받도록 짜여져 있다.

네 기둥이 세워져 있는 중심에 해당되는 중앙에는 큼직한 심초석(心礎石)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 목조탑에서 볼 수 있는 심주(心柱)에 해당되는 여러 단의 방형석재를 쌓아올렸다. 8각기둥과 방형석재는 모두 목조건축에 사용되었던 주초석과 돌기둥을 사용하였으며, 공간에는 잡석과 흙을 다져 메웠는데 흙 속에서 백제시대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기단에 해당되는 곳에서는 갑석과 면석의 부서진 부재가 발견되었는데, 각 면에는 2개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새겨져 있었다. 보수 중 탑의 제1층 옥개석(屋蓋石) 중앙과 심초석에서 각각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다. 옥개석에 사리장엄구를 장치한 석재는 백제시대 초석으로 사용하였던 것을 이용하였으며, 좌우 두 곳에 네모난 홈(凹)을 만들고 유개금동함(有蓋金銅函)을 각각 장치하였다.

동쪽 금동함 속에는 금제유개방합(金製有蓋方盒)이 들어 있었으며, 그 속에 다시 금제연화대좌(金製蓮華臺座)와 연화형 뚜껑을 갖춘 녹색 유리로 만든 사리병인 장경원저병(長徑圓底甁)을 보관하고 있었다. 서쪽 금동함 안에는 금제유개장방합(金製有蓋長方盒)이 있고, 이 안에는 절첩식금구(折帖式金具)로 연결된 금제 금강경(金剛經)을 두 줄의 금띠로 묶은 것이 발견되었다.

기단부인 심초석에 설치된 사리공(舍利孔)은 品자형으로 되었는데, 동쪽 구멍에는 주형광배(舟形光背)를 갖춘 청동여래입상(靑銅如來立像)과 청동방울[靑銅鈴]이 들어 있었으며, 북쪽 구멍에서는 향류(香類)가 발견되었으나 서쪽 구멍은 일찍이 도굴당하였다.

기단면석은 2탱주를 갖추었으며, 1층 탑신은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를 새긴 주형의 4우석(四隅石)과 탱주가 조각된 중간면석으로 된 8장의 편풍돌로 짜여졌고, 2층은 사면 1석씩, 3층 이상은 2매씩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 우주석을 조각하였다.

추녀는 얇고 밑은 수평이나 모퉁이에서 가벼운 반전(反轉)을 보여 주는 곳에 밑으로 풍령공(風鈴孔)이 뚫려 있다. 옥상(屋上)의 경사는 완만하고 전각(轉角)의 반전도 적은데, 옥신을 받치기 위하여 다른 돌을 끼워 놓았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 그리고 부서진 보륜(寶輪) 1개가 남아 있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에 대한 의견이 구구하였는데, 보수 전까지도 옥개 양식에서 백제탑계(百濟塔系)를 따르고 탑신부의 돌 결구(結構) 수법과 층급받침 수법에서는 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으므로 통일 신라 초기의 작품으로 보아 왔다.

그러나 보수 때에 알게 된 기단의 구성양식이나 사리장엄구의 양식을 종합하여 보면, 백제 영역 안에서 후대에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형식에 신라탑 형식이 첨가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짐작되고 있다.

≪참고문헌≫

益山王宮里五層石塔內의 發見遺物(黃壽永, 考古美術 66, 1966. 1), 文化財大觀-寶物 2-(韓國文化財保護協會, 大學堂, 1986).

<정명호(鄭明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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