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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1-21 (화) 20:3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5643      
[건축] 주심포 (민족)
주심포(柱心包)

봉정사 극락전의 귀공포. 고려 시대 대표적인 주심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송광사 국사전의 주심포.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불전. 국보 제56호. 건물내부 전체에 걸쳐 井자 천장이 가설된 주심포 양식이 특징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여러 가지 공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목조건축양식인 공포(栱包)의 일종. 공포가 기둥머리 바로 위에 받쳐진 형식을 말한다.

[고대 삼국시대]

목조건축양식인 다포계(多包系)·익공계(翼工系)보다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주심포양식은 고구려 벽화고분에 보이는 그림을 통하여 삼국시대부터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삼실총(三室塚)·산연화총(散蓮花塚)·환문총(環文塚) 등은 벽체와 천장이 연결되듯이 2단 혹은 3단을 점차로 내밀면서 상부를 펼쳐 받쳤으며, 특히 환문총은 곡선을 이루며 단(段)을 이루고 있다.

다음 대성리제2호분(臺城里第二號墳)과 약수리벽화고분(藥水里壁怜古墳)은 완전한 기둥과 상부의 보를 연결하는 주두(柱枓)를 표현하였고, 또 무용총(舞踊塚)·각저총(角抵塚)·구갑총(龜甲塚)은 엔타시스(entasis : 배흘림) 있는 기둥 위에서 굽받침 있는 주두를 올렸고 이 위에 첨차(檐遮)와 소로를 한 단씩 얹어 주심포를 형성하고 있다.

용강대총(龍岡大塚)·쌍영총(雙楹塚)·안악제1호분 (安岳第一號墳)은 소첨차 위에 대첨차를 놓고 2중첨차의 공포형식을 이루어 적어도 출목(出目) 하나 이상을 두고 있는 발전된 주심포양식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타나는 특징은 주두나 소로굽이 곡을 이루고 있고 굽받침이 있는 경우가 있으며, 첨차가 교두형(翹頭形 : 활모양 또는 圓弧형으로 깎아낸 모양)으로 되어 있으면서 첨차단이 수직으로 곧게 잘리다가 밑에서는 안으로 비스듬히 잘려 있다. 또 첨차 윗부분에는 공안(栱眼 : 첨차의 상부 소로와 소로 사이 윗면을 활형으로 깎아내거나 어깨의 옆면을 조금 파낸 것, 또는 그 부분)이 있다.

[백제시대]

백제시대의 것은 현재 흡족한 자료가 없고 다만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백제청동소탑(百濟靑銅小塔)의 예와 백제인이 도일(渡日)하여 세웠다는 일본의 호류사(法隆寺)의 건물들을 보아 대강 추측이 되는데, 앞서 말한 소탑에서는 명확한 공포구조를 나타내고 있지 않아 그 특징을 말할 수 없겠으나, 다만 기둥 위에 주심포양식의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호류사 금당에서 보는 것과 같은 하앙(下昻)과 살미받침 두공이 빠져나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호류사 금당에서는 창방 위에 짜여진 첨차의 소로와 살미두공이 구름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과 주두에 굽받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신라시대]

신라의 주심포 포작은 삼국 중 제일 발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건물의 실례는 없지만 고증이 될 만한 자료는 몇 개를 들 수 있어 비교적 정확한 주심포양식을 알 수가 있다.

즉, 불국사 다보탑에서 보는 주두와 소로의 형태를 비롯하여 안압지에서 출토된 목편의 공포부재와 신라사경(新羅寫經)에 나타나는 그림의 자료, 또 간송미술관 소장의 금동불감(金銅佛龕)에 나타나는 자료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금동불감은 특히 세밀한 모형(模型)이 되어 있어 공포의 짜임을 잘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다만 엔타시스 있는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1출목을 가진 주심포계의 형식이라 단정짓기 어려운데,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짠 것이 아니고 기둥과 기둥 사이 창방 위의 중앙에도 공간포를 두고 있어 평방 없이 다포계양식을 가지는 과도적인 주심포양식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중국 당대(唐代)의 변상도에도 나타난다. 여기에서 보면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 없이 짜여지고 첨차는 고구려벽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교두형인데 그 끝이 상부에서는 수직으로 곧게 잘려 그 밑에서 비스듬히 잘려 있다.

또, 신라사경에 나타나는 그림을 보면 불전(佛殿)이 그려져 있는데 엔타시스 있는 기둥 위에 창방을 걸고 기둥 위에는 주심포를 짜고 있고, 주두와 소로에는 굽받침이 없이 그 굽에 안으로 휜 곡(曲)을 나타내고 있으며 첨차는 앞에서 말한 대로 교두형이며 출목이 있고 공간포가 있는 과도적인 주심포계양식이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주심포의 예는 현존하는 실례가 많이 있어 그 특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주심포계양식의 예로는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 국보 제15호)·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국보 제18호)·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 국보 제49호)·강릉객사문 (江陵客舍門, 국보 제51호) 등이 있다.

봉정사극락전은 1971년 해체조사시에 나온 묵서(墨書)에 의하여 그 중수연대가 1363년(至正 23)으로 밝혀져,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건물로서 가장 오래된 유작품(遺作品)이라 할 수 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맞배지붕이며, ② 엔타시스가 있는 기둥 위에 창방을 걸어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짰다. ③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이 없고 굽이 약간의 곡을 나타내고 있다. ④ 첨차는 교두형이 아니고 그 끝이 수직으로 곧게 잘려 밑은 쌍S자형조각을 하고 있다.

⑤ 살미에 쇠서〔牛舌〕 등이 없다. ⑥ 행공첨차 없이 단장여로 출목도리를 받들고 있다. ⑦ 타봉형(駝峰形 : 낙타등모양)의 조각을 주심포와 주심포 사이에 두고 있다. ⑧ 종마루도리를 받들고 있는 대공 등에는 ‘人’자형 대공을 받들고 있는데 이것을 종도리 밑에서는 직선으로, 그 밑에서부터 처마도리까지는 약간의 곡을 두면서 내려오고 있다. ⑨ 종도리대공은 이미 포대공의 구조를 나타내어 타봉형과 첨차의 부재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⑩ 내부반자가 없다.

이상의 구조특징은 중국 당대(唐代)의 유구로 알려진 남선사대전(南禪寺大殿)의 예와 비슷한데, 단 첨차의 쌍S자형조각이 교두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이 다르다.

이상의 예를 기초로 다른 주심포양식의 건물과 비교하여 보면, 부석사무량수전에서는 지붕이 팔작으로 되어 있고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을 두고 있다. 또 행공첨차를 가지고 있으며 살미에 쇠서가 조각되기 시작하고 첨차 양단이 비스듬히 잘려 쌍S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타봉형대공이 간소화된 형을 하고 목구조가 봉정사극락전보다 복잡하게 되었다.

다음, 수덕사대웅전은 역시 맞배지붕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주두와 소로에서는 굽받침을 두고 있어 부석사무량수전과 같으나 주두 위의 두공(頭工)이 봉정사극락전과 부석사무량수전에서는 十자형으로 짜여지는 대신, 여기서는 살미가 내부에서 초가지〔草花枝〕모양을 하여 양봉(樑奉 : 기둥머리나 주두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을 이루고 있음과 밑단에서는 이른바 헛첨차를 이루고 있음이 특징이고, 또 그 상단부터는 쇠서를 이루고 있다.

이 건물의 구조는 측면으로 보아 우미량(牛眉樑 : 도리와 도리 사이에 놓이는 휘어진 들보)을 중첩하여 가설하고 있는데, 이 우미량 끝을 받치고 있는 조립부재가 아름답게 조각되어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가구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강릉객사문도 맞배집에 헛첨차가 있고 주두와 소로에 굽받침을 두고 있는 점은 수덕사대웅전과 같다고 볼 수 있으나, 두공살미 내부의 대량 밑에는 양봉의 형식이 초가지로 되어 있지 않고 첨차형식을 취하고 있어 소로를 올려놓고 그 위의 보를 받치고 있다.

또, 보의 끝은 중심에서부터 수장폭(修裝幅)으로 좁아져서 보통 포의 살미와 같이 삐죽이 나와 그 끝에서 쇠서가 조각되고 있다. 여기서는 ‘人’자 대공을 쓰지 않고 포대공과 판대공을 쓰고 있음이 특이하나 이는 문의 구조이기 때문에 생략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의 고려시대 주심포의 주요 실례를 들어 비교 검토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을 종합할 수 있다. ① 기둥에 엔타시스를 뚜렷이 가지고 있다. ② 기둥 윗부분에, 기둥과 기둥 사이에 창방만을 걸고 있으며 평방이 없다. ③ 공포는 기둥 위에서만 짜이고 공간포를 짜고 있지 않다. ④ 주두나 소로는 굽에 곡이 있고 굽받침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없는 경우도 있다. ⑤ 첨차는 교두형이 아니고 쌍S자형을 취하고 있다.

⑥ 살미에 쇠서모양의 조각이 없는 것도 있지만 있더라도 원초적인 형태로 소박한 특징이 있다. ⑦ 주두(柱枓 : 대접받침) 밑에는 헛첨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헛첨차가 있는 경우는 주두 위에 놓인 두공이 첨차의 모양과 규격이 같은 十자형으로 짜여지지 않고 첨차와 내외로 뻗은 살미의 부재규격이 서로 다른 두공을 짜고 있다.

⑧ 보의 단면이 항아리의 입면도와 같이 곡을 이루고 보의 뺄목이 주심(柱心)에서부터 수장폭으로 좁아져서 끝에서는 살미의 쇠서 모양으로 변하여 간다. ⑨ 대공은 포대공과 ‘人’자대공을 겸하여 사용함이 보통이다. 내부반자를 꾸미지 않고 연등천장을 하고 있어 내부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그대로 볼 수 있게 노출시키고 있다. ⑩ 가구가 소박하고 복잡하지 않으며 비교적 소규모의 건물을 꾸미고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양식을 계승하여 주심포계양식을 계속 사용해 오면서 한편으로 고려 때 발전되어 온 다포계양식을 더 많이 써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심포계의 건물은 그 규모가 더욱 작아지고, 주가 되는 건물은 대부분 다포계양식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주심포계양식의 주요건물의 실례로는 부석사조사당(浮石寺祖師堂)·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도갑사해탈문(道岬寺解脫門)·관룡사약사전(觀龍寺藥師殿)·송광사국사전(松廣寺國師殿)·송광사하사당(松廣寺下舍堂)·개목사원통전(開目寺圓通殿)·봉정사화엄강당(鳳停寺華嚴講堂)·고산사대웅전(高山寺大雄殿)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부석사조사당은 ① 맞배집이며 기둥에 엔타시스가 약화되었고, ② 헛첨차가 있고, ③ 주두와 소로의 굽에 곡이 없이 곧게 잘려 있고, ④ 첨차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고 행공첨차가 없이 꾸며졌으며, ⑤ 대공은 포대공이며 ‘人’자대공도 있고, ⑥ 보의 단면도 사각형에서 밑의 모서리를 굴려 곡을 두고 있을 뿐이고, ⑦ 내부는 반자가 없는 연등천장이다.

또, 무위사극락전에서는 역시 맞배집에 엔타시스가 줄어든 구조로 주두와 소로의 굽에도 곡을 이루지 않고 있으며 살미에 초방머리가 뾰족한 쇠서로 변하고 양봉과 대공도 파련대공(波蓮臺工)으로 변하고 있다. 도갑사해탈문은 맞배집에 엔타시스가 약간 있고 헛첨차를 두고 있으며, 양봉이 안초공형태의 초가지로 되어 있고 우미량을 걸친 것이 특징이며 포대공과 ‘人’자대공도 두고 있다.

관룡사약사전도 맞배집으로 엔타시스가 있는 기둥에 헛첨차를 두고 우미량과 같이 곡을 가진 보를 걸쳐 얹고 있으며 정면과 측면 모두 단칸인 작은 규모의 건물이다.

송광사 국사전과 하사당, 개목사원통전·봉정사화엄강당 등은 모두 맞배집에 엔타시스가 약화된 기둥과 이른바 익공계의 익공과 같이 뾰족하게 뻗은 쇠서를 보이고 있어 익공계양식으로 변화되어 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으며, 보의 단면 등은 다포계건물에서 볼 수 있는 곡이 없이 사각형에 모만 죽인 단면을 보이고 있다.

또, 고산사대웅전의 경우에는 지붕이 팔작으로 되었고 엔타시스가 거의 없는 기둥 위에 창방과 평방을 올려놓고 그 위에 주두와 공포를 짰는데, 첨차는 교두형이 아닌 쌍S자형의 첨차를 하고 주두와 소로는 굽에 곡을 두고 있지 않으면서 일부 굽받침을 두고 있음이 특기할 사항이며, 특히 건물 내부에 충량 등이 있어 다포계양식의 중요한 특징을 많이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 주심포계양식은 고대 삼국시대부터 발전해 오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그 틀을 잡게 되고 조선시대에까지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기둥에 엔타시스가 강하게 나타나 있고 지붕은 맞배집이 많으며 평방 없이 창방을 짜고 공포를 기둥 위에서만 짜서 공간포가 없이 가구되나 경우에 따라 공간의 장식으로서 ‘人’자나 동자주를 두는 예가 있다.

대량은 그 단면이 항아리의 입면과 같이 아름답게 꾸며지고 첨차는 교두형으로 이루어지고 주두나 소로의 굽에는 안으로 휘는 곡을 두고 있고 굽받침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또 대공에는 포대공을 ‘人’자대공과 같이 사용하고 있고 내부가구와 부재의 조각이 아름다워 내부에 반자도 없이 연등천장을 하여 가구를 노출시키고 있다.

성숙기에 들어서서는 첨차의 끝에 쌍S자형의 조각이 생기기 시작하여 대공과 양봉 등에 초가지의 파련화(波蓮花)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살미에 쇠서문양을 이루기 시작하며, 또 지붕도 일부 팔작지붕이 생기게 되어 건물의 내외가 점점 장식화되기 시작한다. 또한 건물의 규모도 자유롭게 형성된다.

퇴화기에 들어서서는 다포계양식의 건물에 압도되어 주심포계양식의 건물도 일부 다포계양식 및 익공계양식의 특징과 공통점이 많아진다. 그리하여 기둥에 엔타시스가 약화되고 보의 단면과 포작에 주두와 소로의 굽에는 곡을 두지 않고 쇠서가 날카롭게 뻗어나와 있어 내부 목조가구도 다포계에서 보는 충량 등을 사용하는가 하면 창방 위에 평방을 올려놓아 그 위에 주두를 얹고 포작을 짜기도 한다.

한편 익공계와도 구별할 수 없는 주심포작의 건물도 많이 생기게 되며, 특히 이 쇠퇴기의 주심포계양식의 건물은 규모도 작아지게 된다.

≪참고문헌≫

韓國建築樣式論(鄭仁國, 一志社, 1974), 韓國木造建築(金正基, 一志社, 1980).

<장경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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