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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08 (화) 15:0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338      
[석탑] 백제의 석탑 (민족)
백제의 석탑

[석탑의 발생과 시원 양식]

우리 나라에서 석탑이 발생한 시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600년경으로 추정된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말엽까지 약 200년간은 목탑(木塔)의 건립 시기로, 오랜 목탑의 건조에서 쌓인 기술과 전통의 연마가 드디어는 석탑을 발생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목탑은 삼국이 모두 중국의 고루형(高樓形) 목탑 양식의 조형을 모방하여 누각형식(樓閣形式)의 다층으로 건립하였을 것이며, 방형 혹은 다각의 평면을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남아 있는 평양시의 청암리사지(淸巖里寺址)에서 8각전(八角殿)의 8각탑파(八角塔婆)와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 상오리사지(上五里寺址)에서 8각당의 기단부가 조사되어 목탑지로 추정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백제의 유구로는 부여의 군수리사지(軍守里寺址)와 익산시 왕궁면의 제석사지(帝釋寺址)에서 방형의 목탑 기단부가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유지로는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에 거대한 방형 9층목탑지(九層木塔址)가 남아 있다.

이러한 목탑의 유행에 이어 삼국시대 말기에 이르러 백제에서 석탑이 건조되었는데, 그 양식은 당시에 유행하던 목탑을 본뜬 것이었다. 석탑이 백제에서 비롯된 데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백제는 삼국 중에서 가장 건축이 발달하였던 나라로 이미 '사탑심다(寺塔甚多)'의 나라로서 널리 알려졌으며, 또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을 건립할 때 백제의 아비지(阿非知)가 초빙되어 공사를 담당하였으며, 일본의 초기사원 창립에 백제의 사공(寺工)이나 와박사(瓦博士) 등이 건너가 공사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발전하에서 백제에서는 7세기 초반에 이르러 석재로 목탑을 모방하여 탑을 건립함으로써 석탑의 시원을 이루게 되었다. 백제 시대의 석탑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미륵사지 석탑(彌勒寺址石塔, 국보 제11호)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국보 제9호)뿐이지만 이 2기의 초기석탑에서 석탑의 발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까지 원위치에 남아 있는데, 이 탑을 한국 석탑의 시원으로 보는 이유는 그 양식이 목탑과 가장 흡사하다는 점에 있다. 이 탑은 당시 유행되던 목탑의 각 부 양식을 목재 대신 석재로 바꾸어 충실하게 구현한 것으로, 특히 기단부는 목탑에서와 같이 낮고 작다. 또 탑신부의 중심에 거대한 방형석주 (方形石柱)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석탑의 찰주(擦柱 : 탑의 중심기둥)로서 이러한 방주(方柱)가 지탱하고 있는 것도 목탑의 형식과 같은 점이다.

각 면에는 엔타시스(entasis : 배흘림)를 표시한 장방형 석주를 세우고 그 위에 평방(平枋)과 창방(昌枋)을 가설하였으며, 다시 두공(枓栱)양식을 모방한 3단의 받침이 있어 옥개석(屋蓋石)을 받고 있다. 이것 또한 목조 건물의 가구(架構)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즉, 목조 가구의 세부까지도 석재로 충실히 모방한 한국 최초의 석탑으로서, 백제에서 석탑이 발생하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도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 석탑이 목탑의 모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좁고 낮은 단층 기단과 각 층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에 보이는 엔타시스의 수법, 얇고 넓은 각 층 옥개석의 형태, 옥개석 각 전각(轉角)에 나타난 반전(反轉), 옥개석 하면의 목조 건물의 두공을 변형시킨 받침수법, 특히 낙수면 네 귀퉁이의 두두룩한 우동(隅棟 : 탑 옥개석의 귀마루) 마루형 등에서 목탑적인 면을 볼 수 있다. 현재 상륜부를 결실한 노반석(露盤石)까지의 석재가 149개나 되는 점도 이 탑이 목조가구의 모방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부 수법에서는 맹목적인 목조양식의 모방에서 탈피하여 정돈된 형태의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이고 있으며, 전체의 형태가 장중하고 명쾌하여 격조 높은 기풍을 풍기고 있다. 즉, 미륵사지 석탑을 본받기는 하였으나 그 시원에서 다소 벗어나 발전된 수법을 보이고 있어 석탑 발달과정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유구로 주목되고 있다.

<정영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석탑'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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