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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7-08 (화) 15:20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701      
[석탑] 고려시대의 석탑 (민족)
고려시대의 석탑

[고려 시대의 석탑]

불교의 교세는 고려시대에 와서 절정에 달하였다. 따라서 불교적인 조영(造營) 작업도 거의 고려 일대를 통하여 국가적 혹은 개인적으로 되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많은 석탑과 유례가 남아 있다. 고려 시대의 특징은 우선 석탑건립 이전 시대에 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 분포된 점이다. 다만 수적으로는 왕도(王都)인 개경 부근이 우세한 면이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분포상의 변화는 시대상의 변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즉, 왕실 불교적 위치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불교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대중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고려 시대적인 조영은 역시 전국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데, 특히 태조 왕건(王建)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도 반영되어 있듯이 도참 사상(圖讖思想)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즉 개경의 7층석탑의 건립과 연관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옛 도읍인 서경(西京) 구층탑의 건립,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의 황룡사 구층목탑(皇龍寺九層木塔)의 중수, 백제 옛도읍 부근의 거대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益山王宮里五層石塔)의 예, 그리고 후백제군을 격파한 곳에 개태사(開泰寺)를 건립한 것 등은 모두 그러한 면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더구나 주목되는 점은 고려 시대의 조탑 활동에 순수한 지방세력 내지는 민중이 대거 참여하였다는 사실이다. 개심사지 오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 보물 제53호)의 명문(銘文), 정도사지 오층석탑(淨兜寺址五層石塔, 보물 제357호) 안에서 발견된 조성형지기(造成形止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 시대에는 대부분 그 지방민의 발원에 의하여 석탑이 건립된 것으로 믿어진다. 이것은 고려 시대 석탑을 전국적으로 분포시키는 데 보다 더 영향력을 끼쳤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고려 석탑의 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전대의 왕도 중심의 일률적인 탑파 건립에서 벗어나 각 지방의 토착 세력이 건탑(建塔)에 관여하였을 때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각기 제 나름대로의 특징이 반영되어, 곧 다양성 있는 건탑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대의 석탑은 그 조형 양식상에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신라의 고도인 경주를 중심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신라 석탑계를 충실하게 계승하면서 세부에 있어 변형을 보이고 있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연화문이 조식(彫飾)된 판석 1매를 끼워 탑신굄대를 삼고 있으며, 정도사지 오층석탑은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 3구씩의 안상이 있고 그 내면에 지선(地線)으로부터 귀꽃무늬가 조식되어 있어 주목을 끈다.

또 개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남계원 칠층석탑(南溪院七層石塔, 국보 제100호)·현화사 칠층석탑(玄化寺七層石塔)·흥국사 석탑(興國寺石塔) 등과 같이 일반형 방형중층탑이 고려 석탑으로서의 특징을 지니면서 유행하였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도 광주 춘궁리 삼층석탑(廣州春宮里三層石塔, 보물 제13호)·안성 죽산리 오층석탑(安城竹山里五層石塔, 보물 제435호)·천흥사지 오층석탑(天興寺址五層石塔, 보물 제354호)·금산사 오층석탑(金山寺五層石塔, 보물 제25호)·정산 서정리 구층석탑(定山西亭里九層石塔, 보물 제18호) 등 상당수의 일반형 석탑이 건립되었는데, 모두 신라식을 계승하고는 있으나 옥개석의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추녀가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하였다든가 단층 기단이 많아지고 상층 기단 갑석의 부연이 형식화되거나 생략되는 등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 석탑 특유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고려 사회의 새로운 성격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양식상 전대에 비하여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한 고려석탑의 새로운 양상으로서 첫째, 지방적인 특색이 현저해진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신라 시대에는 석탑에서 지방적 특색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설령 신라의 중심이었던 경주를 벗어난 지방에 석탑이 건립되었다 하더라도 중앙인 경주 지역의 양식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각 지방에 따라 각기 특색 있는 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신라의 고토인 경상도 지방에서는 신라 시대 석탑의 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 데 비하여 백제의 고토인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백제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 예가 많다. 무량사 오층석탑(無量寺五層石塔, 보물 제185호)·부여 장하리 삼층석탑(扶餘長蝦里三層石塔, 보물 제184호)·비인 오층석탑(庇仁五層石塔, 보물 제224호)·계룡산 청량사지 쌍탑(鷄龍山淸凉寺址雙塔, 일명 男妹塔,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호) 등과 전라북도의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정읍 은선리 삼층석탑(井邑隱仙里三層石塔, 보물 제167호)·귀신사 삼층석탑(歸信寺三層石塔)·죽산리 삼층석탑(竹山里三層石塔) 등 백제계의 석탑은 특히 옥개석의 구성에서 백제 양식을 본받고 있다.

즉 옥개석 양식이 모두 판석형의 낙수면석이고, 대개의 경우 그 밑의 받침부가 별석으로 조성된 목조가구의 일면을 보이고 있는 점 등이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각 부를 모방하고 있어 ‘백제계의 고려 석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백제 고토에서만 볼 수 있는 백제계 고려 시대 석탑의 건립 현상은 고려의 불교가 전대인 신라 시대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좀더 지방에까지 파급되고 한층 토착화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고려 시대의 석탑에서는 신라 시대에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의 새로운 특수형식의 탑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수한 양식이란 방형 중층의 일반형 석탑의 형식에서 벗어나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특수한 형식이 가미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러한 예는 신라시대부터 나타나던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도 사사자 석탑(四獅子石塔)의 양식을 계승한 사자빈신사지 석탑(獅子頻迅寺址石塔, 보물 제94호)이나 홍천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 보물 제540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전대의 이형 석탑의 양식을 계승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라적인 이형 석탑의 예는 사실상 극히 한정되고 개별적인 것에 그쳤으며, 그에 비하여 고려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양식은 새로운 유형을 이루는 데까지 진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방형에서 다각형으로, 그리고 다층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석탑 중에서 8각형의 석탑은 나름대로 하나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원광사지 육각칠층석탑(元廣寺址六角七層石塔)이나 금산사 육각다층석탑(金山寺六角多層石塔, 보물 제27호) 등 6각형의 석탑은 좀더 특이한 형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국보 제48호)·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普賢寺八角十三層石塔) 등은 일반형 석탑처럼 기단부 위에 탑신과 상륜부를 건조한 형식이지만 8각형의 평면을 이룬 점이 특이하다.

<정영호>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석탑'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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