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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5 (일) 19:23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626      
[건축] 로마네스크미술 (두산)
로마네스크미술 Romanesque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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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950~1200년경에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지방과 프랑스에서 일어나 유럽 여러 곳으로 퍼져나가서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로마네스크 건축이 로마 건축에서 파생한 것이라는 뜻에서 프랑스어로 '로망'이라는 어휘를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로마네스크 미술에 대한 인식이 깊어져서 하나의 독자적이고 뛰어난 원리를 지닌 미술양식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 로마네스크 미술이 탄생하기까지는 적어도 7∼8세기의 준비기간이 소요되었는데, 이것을 프레 로마네스크라고 한다. 서유럽은 옛날 켈트 문명의 발상지로서 BC 1세기에 로마 문명이 들어왔고 얼마 후에는 그리스도교의 분교(分敎)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게르만족 등이 동방에서 침입해왔는데, 이들도 그리스도교로 동화되었으며, 5세기 말부터 프랑크족의 메로빙거왕조를 중심으로 서유럽의 기초가 잡혀갔다.

미술면에서는 켈트·게르만계의 추상적 미술이 그리스도교에 수용되는 한편 고대 로마의 전통과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아 구상적·인간주의적 미술도 차차 들어와 카롤링거왕조 때에는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위와 같은 여러 유산(遺産)을 종합하여 매우 대담한 창작에 의한 종교적 감정의 표현을 의도한 것이다.

1. 건축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절묘한 조화로 유명한 이탈리아 시에나 대성당. 두산 엔사이버 사진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색은 11세기 초엽까지 목조였던 바실리카식 설계로 된 네이브(nave:本堂)의 천장을 석조궁륭(石造穹窿:vault)으로 바꾼 점에 있다. 목조천장도 라인란트 등지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석조궁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신(神)의 집으로서 불연성(不燃性)의 항구적인 건물이 바람직하였을 뿐 아니라 석재공간으로서의 통일성이 생기고 또 음향적인 효과를 높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석조궁륭은 절단면이 원칙적으로 반원 아치이며,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창문이나 입구기둥 사이의 들보 사이나 처마 밑부분에도 이 반원 아치를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로마네스크 건축을 반원 아치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아치의 만곡부(彎曲部)는 똑같은 석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채꼴의 절석(切石)으로 조립되어 있기 때문에, 각 절석의 압력관계는 상하가 아니고 경사의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반원궁륭의 기부(基部)에서는 바깥쪽으로 비스듬히 횡압력(橫壓力)이 작용한다. 궁륭이나 아치는 로마시대에 이미 나타났으나, 이 시대에는 강력한 시멘트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로마네스크 건축에서 보는 긴밀한 역학적 배려가 요구되지는 않았다.

로마네스크 건축가들의 가장 큰 과제는 아치의 집합체인 궁륭과 그 중량을 비스듬히 하거나 수직으로 받는 측벽(側壁)과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측벽을 두껍게 만들어서 양 압력을 버티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벽이 견고하려면 채광을 희생시키고 창문을 작게 만들어야만 가능했다.

그래서 경사진 횡압력의 방향을 되도록이면 낮춤으로써 또는 궁륭의 중량을 측벽의 일정한 부분에 집중하게 하고 그 부분을 또 하나의 부벽(副壁)으로 외부에서 보강함으로써 건축의 안전도를 높여 창문도 크게 마련하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즉, 횡압력의 방향 낮추기는 첨두궁륭(尖頭穹챘)의 설계로, 또 중량의 한 지점 집중은 교차궁륭(交差穹)의구축으로 실현되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은 10세기 말 이후 유럽의 여러 곳으로 급속하게 퍼져 1100년을 전후하여 그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 건축양식 외에 다른 두드러진 경향은 찾아볼 수 없다.

각 지방의 건축가들은 한정된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환경의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온갖 창의(創意)를 한데 모았다. ‘황제의 돔’이라고 일컫는 슈파이어 ·보름스 ·밤베르크 등의 독일 성당은 3랑식(三廊式)으로 이중내진형식(二重內陣形式)을 즐겨 채택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평활(平滑)한 정면을 갖춘 3랑식 ·5랑식의 바실리카 형식 등이 많다.

곧 로마네스크 건축은 지역에 따라 거의 한결같이 일정한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결국 종합해 보면 벽면은 크고 창문이 작으며 중량감이 있다. 외관은 토스카나파(派)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단순 ·소박하고, 내부는 열주(列柱)나 아케이드 등의 건축적 효과가 어두컴컴한 공간에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곳곳에 수도원의 건축이 활발하여, 정사각형의 회랑(回廊)을 중심으로 성당과 기타 여러 부속건축물을 갖춘 훌륭한 수도원이 프랑스 남부, 에스파냐 북부, 독일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 많이 남아 있다.

2. 조각

로마네스크 조각의 특색은 건축조각으로 발달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건축의 일부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건축과 일체를 이루며, 그 형태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건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 일정한 평면 공간에 표현된 형태는 건축의 기하학적형태에 맞추어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주두(柱頭)에는 동물 따위의 모티프를 1쌍씩대칭적으로 조합하여 균형을 잡았으며, 직사각형이나 띠 모양의 공간에서는 동일한 모티프가 반복하는 식으로 하여, 조각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건축장식으로서 건축의선 ·면 ·양감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둘째, 건축조각은 또 인간이나 동물 등각 모티프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인체를 표현할 경우, 몸의 형태가 건축의 기하학적 형태에 따르기 위하여 이상하게 길쭉해지거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하거나광대와 같이 몸을 비꼬기도 한다. 이것은 ‘틀의 법칙(포션)’이라고 일컫는 로마네스크 특유의 데포르마시옹(dformation)으로 격렬하고 역동적인 생명감을 불어넣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프랑스의 오탕 ·베즐레 ·무아사크 등지의 조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건축조각의 저변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장식과 포교(布敎)로 요약할 수 있고, 사실 이 두 가지 이유가 서로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효과를 높이고 있다. 비록 건축물에 종속된 조각이기는 하지만, 주두(柱頭)를 보면 두 개의 아치로 집약된벽면을 기둥으로 유도하는 이 부분이 시각적으로 약점이 되기 때문에 이 곳에 조각으로 장식하여 형태적으로 균형을 잡고, 동시에 네이브 좌우에 죽 늘어선 주두에 여러 종교적 도상(圖像)을 표현하여 신도들에게 포교의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틀의 법칙’에 따라서 표현된 인간이나 동식물의 변화된 형태는 모두가 추상적 원리에 따라 구성되어있다. 이것은 켈트 ·게르만 이래의 추상예술에 새로운 휴머니즘을 융합한 것이라고할 수 있다. 건축조각 이외의 것에는 금속공예와 상아공예 및 성당건물을 장식한 기념물적인 조각 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금동제 책형상(刑像) ·성모상 등의 입체조각과 금동제출입문 ·세례반(洗禮盤) ·상아공예 등의 부조(浮彫) 따위가 있는데 모두 도금과 착색되어 있다.

3. 회화

로마네스크 교회당은 카롤링거왕조 이래의 전통에 따라 내부 벽면을 벽화로 장식하였다. 시토파(派)와 같이 벽화 장식을 거부한 유파도 있었으나 클뤼니파 등의 수도원에서는 오히려 벽화를 성상(聖像)으로 장식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이 로마네스크 벽화는 유럽 여러 곳에 남아 있으나, 특히 이탈리아에 많으며 이 밖에 프랑스 남서부·에스파냐 북서부에 집중해 있다.

로마네스크 회화의 특징은 벽화뿐만 아니라 뒤에 말하는 사본(寫本)의 장식문자(miniature)도 마찬가지로 여러 자태를 평면적으로 그려내어 선묘(線描) 중심의 데생이 되어,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하여 색채 효과를 강조하고 있으나 명암 등은 인습적인 방법으로 처리되었고, 여러 형상은 일정한 유형으로 도식화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도식화된 인간상은 카롤링거왕조의 인간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종의 솔직하고 강력한 정신표현을 구현하였다. 간결하지만 단적인 의지의 표현을 보여주었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표현을 나타내었으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 비슷한 몸짓도 사실은 이상의 경향에 호응한 것이었다.

로마네스크 화가는 당시의 조각가처럼 이러한 형상을 조합하여 줄거리의 내용을 간결하게 이야기해주는 데 아주 뛰어났다. 그리하여 도구의 기본적 소지(素地)나 자연환경 등은 고려하지 않고 벽면이거나, 양피지(羊皮紙)의 면이거나, 시가(詩歌)에서 문자와 단어를 쓰듯이 회화의 운율에 따라서, 혹은 기하학적 구도의 원칙에 따라 인물이나 그 외 여러 형상을 꾸며 맞추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회화에는 구약·신약의 이야기, 사도(使徒)와 여러 성인의 전기적 희화, 이밖에도 특히 《마태오의 복음서》의 최후의 심판, 《요한의 묵시록》의 계시를 즐겨 다루었다. 사본(寫本)의 장식문자는 대개 수도원의 사본 아틀리에인 스크립트룸에서 제작되었고, 활자본이 나오기 전의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에 통용되어 벽화의 양식과도 관련을 맺으면서 많은 양식을 만들어내었다. 성직자용의 성서·전례서(典禮書)·기도서의 삽화로 발달하였고, 그 대부분의 제작자는 수도사였다.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착색유리)는 후에 고딕 성당의 가장 중요한 장식예술이 되는데, 이미 이 시대 후기에 뛰어난 작품을 북(北)프랑스의 샤르트르와 생드니에 남겨놓았다. 또한 칠보는 프랑스의 리모주와 벨기에의 모잔지방에서 특히 발달하여 성유물용기(聖遺物容器)·십자가·제단 등 성당의 중요한 공예품으로 사용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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