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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6-15 (일) 20:39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925      
[건축] 고딕예술 (브리)
고딕 예술 ─ 藝術 Gothic art

중세 후기 서유럽에서 회화·조각·건축·음악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번성했던 예술양식.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발전하기 시작해 12세기 중반부터 일부 지역에서는 16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 '고딕'이라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양식을 따르는 이탈리아 작가들이 지어낸 것으로 5세기에 로마 제국과 그 아름다운 고전문화를 파괴한 야만적인 고트족이 지은 중세 건축(그들은 이것을 비고전적이고 추악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다.

이 말은 그후로도 경멸의 뜻을 담고 있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고딕 건축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오늘날 학자들은 고딕 예술이 실제로는 고트족과 관계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딕이라는 용어는 예술사 분야에서 여전히 관례적으로 쓰이고 있다.

건축은 고딕 예술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인 형식이다. 고딕 건축구조의 중요한 특징들은 무거운 돌로 만든 사이가 넓은 볼트(vault)를 지탱할 방법을 꾸준히 연구한 중세 석공들의 노력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문제는 무거운 돌로 만든 전통적인 원통형 볼트(barrel vault)나 교차 볼트(groin vault)가 아래쪽과 바깥쪽으로 엄청난 힘을 주게 되며, 이 힘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벽들을 바깥쪽으로 밀어내어 결국 벽이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건물을 수직으로 받쳐주는 벽들은 원통형 볼트가 바깥 방향으로 미는 힘[推力]에 견딜 수 있도록 아주 두껍고 무거워야 했다.

중세 석공들은 1120년경 여러 가지 뛰어난 기술혁신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은 리브(rib:肋材)를 붙인 리브 볼트를 개발해냈다. 이것은 아치형으로 깎은 길쭉한 돌을 가로 세로로 엮어서 얇은 돌판으로 된 볼트를 지탱하게 한 것이었다.

이 기술은 천장의 무게와 바깥방향으로 미는 힘을 크게 줄여주었고, 무게의 작용점을 볼트의 무게가 잇닿아 있는 벽 가장자리가 아니라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점(리브)으로 옮겼기 때문에 두꺼운 벽 대신 띄엄띄엄 있는 수직 기둥(pier)만으로 리브를 지탱해도 무게를 이길 수 있었다.

또한 원통형 볼트의 둥근 아치 대신 뾰족한 첨두 아치를 써서 아치 꼭대기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오는 힘을 여러 방향으로 분산시켰다. 리브와 기둥을 결합한 덕분에 기둥 사이에 있는 수직 벽들은 볼트를 떠받쳐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 전보다 훨씬 얇아질 수 있었고 벽을 터서 커다란 창문을 내거나 아름다운 유리를 끼울 수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리브를 댄 볼트 천장의 추력이 네이브(nave:身廊)의 외벽을 타고 내려와 외벽에 붙어 있는 버팀벽을 통한 뒤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라고 부르는 반원형 버팀벽을 지나 바깥쪽에 서 있는 기둥으로 전달된다는 점이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네이브 외벽 상부에 기대어 있으면서 천장의 바깥 방향 추력에 대항하도록 되어 있고, 네이브 옆 양 아일(aisle 側廊) 위로 낮게 뻗어내려온 뒤 외부의 기둥까지 이어져 결과적으로 이 기둥이 볼트의 추력을 완전히 흡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고딕 시대의 석공들은 로마네스크 시대의 석공들보다 훨씬 크고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었고 건물구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를 솜씨있게 이용한 결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으면서도 벽이 얇은 건물들을 지을 수 있었으며 둥근 기둥과 리브로 이루어진 내부구조는 상승하는 수직감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다.

고딕 건축은 크게 초기 고딕 양식, 성기(盛期) 고딕 양식, 후기 고딕 양식의 3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고딕 양식

이 첫 단계는 1120~50년 고딕 양식이 처음 나타난 때부터 12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구조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양식으로서 고딕 건축이 처음 나타난 곳은 파리 근처의 일드프랑스였다. 그 도시에 사는 부자들은 많은 재산을 갖고 있어서 고딕 양식을 집약시킨 커다란 성당들을 지을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딕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140년경에 짓기 시작한 파리의 생드니 수도원이다. 볼트와 벽을 따라 정확하게 줄지어 창문을 내는 구조법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1163 착공)과 랑 대성당(1165 착공)에서 시작되었다. 이 무렵에는 건물의 내부기둥과 리브들을 여러 개의 다발로 묶은 것처럼 만드는 방법이 유행했다. 성당 안은 4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1층 아케이드 위에 한 층이나 두 층의 복도(트리뷴·트리포리움)가 있고, 그위에 나란히 창을 낸 클리어스토리[高窓]라고 부르는 층이 있었다.

이 서로 다른 여러 층을 떠받치는 둥근 기둥과 아치는 엄격하고 힘차게 되풀이되는 기하학적 모양을 이루었다. 창문의 트레이서리(tracery:창을 여러 갈래로 나누는 장식창살)도 스테인드글래스가 사용되면서 차츰 발전했다. 초기 프랑스 고딕 양식의 전형적인 성당은 동쪽 끝이 반원형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 이를 앱스(apse:後陣)라 부른다.

서쪽 끝은 훨씬 더 인상적이서 넓은 정면에 수많은 창문과 첨두 아치들이 이어져 있으며 매우 큰 입구, 우뚝 솟은 2개의 거대한 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바깥쪽의 기다란 옆 벽은 기둥과 플라잉 버트레스가 복잡하게 얽혀 늘어서 있다. 이러한 고딕 건축의 기본형태는 차츰 독일과 이탈리아·영국·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스페인·포르투갈까지 퍼져나갔다.

영국의 초기 고딕 양식(1200~1300경)은 독자적인 특징(이것은 솔즈베리 대성당에 잘 나타나 있음)을 갖고 있으며, 특히 '초기 영국 고딕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 양식은 링컨 대성당(1192 착공)의 네이브와 성가대석에서 처음으로 원숙한 모습을 보였다.

이 양식으로 지은 교회들은 프랑스 고딕 양식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별 차이가 없는 두껍고 무거운 벽, 내부의 아치 가장자리를 연속무늬로 강조한 것, 폭이 좁고 긴 예첨두창(銳尖頭窓)을 많이 사용한 것, 밝은 색 돌기둥들을 한가운데에 세우고 그 주위에 검은 퍼벡 대리석으로 만든 가느다란 기둥을 둘러친 것 등이 그 당시 영국 교회의 특징이었다.

초기의 영국 교회들은 일반적인 영국 고딕 양식 중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높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길이를 길게 한 것, 내부 벽면의 수직선과 수평돌림띠의 수평선을 거의 똑같이 강조한 것, 건물의 동쪽 끝을 반원형으로 만들지 않고 네모반듯하게 마무리한 것, 플라잉 버트레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 평면을 단편적이고 비대칭으로 처리한 것 등이다. 영국의 초기 고딕 양식을 뚜렷이 보여주는 건물은 웰스 대성당(1180~1245경)의 네이브와 서쪽 정면, 로체스터 대성당의 성가대석과 트랜셉트(transept:翼廊) 부분이다.

성기 고딕 양식

고딕 건축의 2번째 단계는 고딕 양식이 대륙의 레요낭(Rayonnant) 양식(1200~80)과 영국의 장식 고딕(Decorated Gothic) 양식(1300~75)으로 나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양식의 특징은 지나간 시대에 확립된 건축형태에 정교한 기하학적 장식을 덧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장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정교해졌다.

레요낭 양식이 유행하던 시기에 고딕 건축은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1250년경까지 고딕 건축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돌덩어리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이었고, 특히 프랑스에서는 건물을 높이 올리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뒤로는 아름다운 장식으로 시각적인 효과를 창조하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장식에는 피너클(기둥과 버트레스 위에 곧추세우는 뾰족탑으로 뾰족지붕을 얹는 경우가 많음), 몰딩, 특히 트레이서리가 있었다.

레요낭 양식의 특징을 가장 뚜렷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은 프랑스 대성당들의 서쪽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커다란 원형 장미창(薔薇窓)이다. 창문 한가운데에서 방사상으로 퍼져나가는 독특한 무늬 때문에 이 새로운 건축양식은 레요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레요낭 양식의 또다른 특징은, 기둥이 가늘어지고 창문이 커지면서 트리포리움 회랑과 클리어스토리가 하나로 결합한 결과 벽은 중간 문설주(창문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수직창살)와 유리가 뒤섞인 트레이서리와 다름없는 칸막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진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깔도 점차 밝아져 트레이서리의 무늬가 더욱 돋보였고 더 많은 햇빛을 실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레요낭 양식으로 지은 가장 유명한 건물은 랭스 대성당, 아미앵 대성당, 부르주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보베 대성당이다.

한편 영국의 장식 고딕 양식은 돌로 만든 정교한 트레이서리가 널리 사용되면서 나타났다. 초기 영국 고딕 양식에서 사용된 예첨두창 대신 가로 세로가 큰 창문이 만들어졌고 밝게 색칠한 이 창문의 유리는 수직창살로 2~8개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각 부분은 트레이서리로 더 작게 분할되었다. 트레이서리는 처음에는 3~4개의 꽃잎무늬가 아치와 원과 한데 결합하여 그물 같은 무늬를 이룬 것이 기본이었으나 나중에는 S자 모양 곡선을 바탕으로 한 물결무늬나 불꽃무늬가 생겨났다.

아름다운 장식 고딕 양식은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안뜰 회랑(cloister:1245~69경)과 링컨 대성당(1256 착공)의 동쪽 끝에 있는 에인젤 성가대석, 요크민스터(1260~1320)의 네이브와 서쪽 정면에서 잘 드러난다.

후기 고딕 양식

1280년경 레요낭 양식은 프랑스에서 한층 더 장식적인 플랑부아양(Flamboyant:火炎式) 양식으로 발전했는데, 이 건축양식은 1500년경까지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수직양식(Perpendicular style)이라고 부르는 건축양식이 1375년경부터 1500년까지 사용되었다.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S자 모양 곡선으로 불꽃무늬를 이루고 있는 돌로 만든 트레이서리이다.

플랑부아양 양식에서는 벽 공간이 최소한으로 줄어들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수직기둥 형태로 변했고, 그결과 유리와 트레이서리가 거의 연속적으로 확장되었다. 창문만이 아니라 돌벽에도 트레이서리를 새겨 건물 외부를 감싸게 됨에 따라 구조적 논리가 모호해졌다. 피너클과 박공, 별무늬를 만들기 위한 볼트의 보조 리브 등 여러 세부요소를 많이 이용하게 되어 건물 전체가 주는 느낌은 더욱 복잡해졌다.

후기 고딕 시기에는 일반 건물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따라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은 시청과 길드 회관, 심지어는 주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샬롱쉬르마른 근처에 있는 노트르담 데핀과 루앙의 생마클루 대성당을 빼고는 전체가 플랑부아양 양식인 성당이 거의 없다.

그밖에 이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은 루앙 대성당의 뵈르 탑과 샤르트르 대성당의 북쪽 첨탑이다. 프랑스에서는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이 지나치게 장식적이고 정교하고 복잡해져서, 결국 16세기에 등장한 르네상스 양식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에 견주어볼 때 영국의 수직양식은 창문의 트레이서리에 수직선을 많이 사용하고 창문 크기를 최대한 확대했으며 내부의 여러 층을 합해 하나의 통일된 수직면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고딕 건축의 특징인 첨두형 볼트는 부채꼴 볼트(fan vault:가느다란 기둥이나 천장 중앙에 늘어져 있는 마디로부터 트레이서리 같은 리브들이 돌출해 부채꼴 모양으로 결합한 것)로 바뀌었다. 수직 고딕 양식을 이용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은 글로스터 대성당(14~15세기),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 교회(1446~1515) 등이 있다.

조각

고딕 조각은 주로 성당을 비롯한 종교적인 건물 장식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건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초기의 고딕 조각은 돌로 만든 성자들과 성가족의 성상이었는데, 프랑스와 그밖의 지역에서 성당의 출입로와 현관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샤르트르 대성당(1145~55경) '왕의 문'에 새겨진 조각들은 뻣뻣하고 똑바르고 단순하며 길쭉하고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12세기말과 13세기초에는 좀더 편안한 자세의 자연스러운 조각들이 나타났고 이러한 경향은 랭스 대성당(1240경) 조각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조각들은 로마네스크 시대 조각들의 위엄과 당당함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개성있는 얼굴과 모습을 갖고 있었으며, 발치까지 흘러내린 옷주름을 비롯하여 자연스러운 자세와 몸짓을 보이고 있다.

그들의 고전적인 자세는 이 작품을 조각한 석공들이 고대 로마의 조각을 잘 알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나뭇잎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 고딕 시대의 석공들은 식물 등 자연물도 자세히 관찰했음이 분명하다.

성기와 후기 고딕 시대에는 기념비적인 조각들이 더욱 중요하게 떠올랐다. 이런 조각들은 성당 정면과 벽감(벽을 파내어 조각이나 장식품을 놓도록 만든 곳)을 장식했다. 14세기 고딕 조각은 더한층 세련되고 우아해졌으며 옷주름은 지나칠 만큼 정교해져 일정한 양식의 틀에 박힌 섬세함을 갖게 되었다.

우아하고 조금은 인공적인 이런 양식은 14세기 유럽 전역으로 퍼져서 조각·그림·필사본의 장식그림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국제 고딕 양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당시 이와 반대되는 흐름은 극단적인 사실주의였는데 프랑스의 묘지 조각이나 고딕 시대 말기의 조각가인 클라우스 슐뤼터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딕 조각은 14세기와 15세기초 이탈리아에서 뛰어난 기술의 고전적인 르네상스 양식으로 발전했지만, 북유럽에서는 좀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회화

고딕 회화도 조각과 마찬가지로 뻣뻣하고 단순하고 성스러운 모습에서 좀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림의 규모는 14세기초에 제단 뒤의 장식 칸막이를 꾸미는 데 쓰이면서 커졌다. 그런 그림들은 대개 신약성서에 나오는 장면이나 인물들,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모 마리아를 주로 묘사했고, 굽이치며 흐르는 선과 세밀한 부분, 세련된 장식을 강조했으며 배경색으로 황금빛을 자주 썼다.

구성은 날이 갈수록 더욱 복잡해졌고, 화가들은 화폭에 공간적인 깊이를 주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에 화가들이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후기 고딕 시대인 14세기와 15세기에는 사냥이나 기사를 주제로 한 세속적인 그림들이 나타났으며 역사적인 사건도 묘사되었다.

필사본을 장식하는 그림에도 종교적인 주제와 세속적인 주제가 모두 다루어졌다. 필사본의 장식그림은 고딕 시대의 중요한 예술형태였고, 프랑스에서는 14세기 들어 절정에 이르렀다 (→ 색인 : 사본장식). 림뷔르흐 형제가 베리 공작 장 드 프랑스의 궁정에서 일할 때 쓴 〈베리 공작의 귀중한 성무일과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1416)에 그려진 달력 그림들은 필사본 장식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국제 고딕 양식을 가장 뚜렷이 나타내는 그림으로 꼽힌다.

15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필사본 장식그림은 인쇄본 삽화에 밀려났다. 벽을 장식하는 그림은 14세기와 15세기초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차츰 발전했지만, 독일과 플랑드르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15세기 말과 16세기초까지도 고딕 양식의 특징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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