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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01-21 (화) 12:33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982      
[남북국] 통일 신라 시대의 건축 (민족)
건축(통일신라시대의 건축)

세부항목

건축
건축(우리 나라 건축의 특징)
건축(선사시대의 건축)
건축(삼국시대의 건축)
건축(통일신라시대의 건축)
건축(발해의 건축)
건축(고려시대의 건축)
건축(조선시대의 건축)
건축(근대 및 현대의 건축)
건축(건축기술의 발달)
건축(참고문헌)

경주 임해전지.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 사적 제18호.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경주감은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있는 통일신라의 절터. 사적 제31호. 쌍탑식 가람으로서, 남북의 길이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더 길게 구성되었으며 금당을 중심으로 동서 회랑을 잇는 중회랑을 둔 점이 주목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불국사 연화교칠보교. 경북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다리. 국보 제22호. 극락전 앞 안양문으로 오르는 다리이다. 아래쪽 연화교에는 돌계단 위에 연꽃잎을 새기고 중앙에 바둑판 모양의 무늬를 이어놓았으며, 위쪽의 칠보교에는 연꽃을 조각하지 않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통일신라시대의 목조건축은 ≪삼국사기≫ 옥사조(屋舍條)의 내용과 당시의 기와나 전돌의 문양, 석조건조물에 표현된 목조건축의 요소 등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자료들에 의하여 당시의 가장 호화로웠던 건축을 추측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기단은 잘 다듬어진 석재로 이중 또는 삼중으로 만들었고, 지붕에는 치미(悉尾)나 귀면와(鬼面瓦) 및 막새기와로 장식했으며, 처마는 겹처마였다. 기둥 위에는 이출목(二出目) 이상의 출목을 가지는 두공을 올리고, 건물을 오색단청과 각종 장식금구(裝飾金具)로 장식했다. 건축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였으며 초석에는 원형 주좌(柱座)를 조각했다.

이러한 건축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고려시대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의 가구구조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중국 당나라의 건축을 신라적으로 조화, 정착시킨 것이었을 것이다.

석조건축으로는 석굴사원과 석탑 및 부도 등이 있다. 석굴사원으로는 인공적으로 축조된 것이기는 하나 경주 석굴암이 있어 그 가구기법이나 불상조각들의 우수함은 당대 제일이다.

또,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은 암벽에 굴을 파고 그 속에 석조삼존불을 안치한 것으로 석굴암에 앞서서 건립된 것이다. 석탑은 감은사(感恩寺) 동·서 삼층석탑에서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형태가 확립되어 그 뒤 세부적인 변화를 나타내면서 전시대를 통해 성행하였다.

전형양식의 석탑 이외에 이형탑(異形塔)이라고 할 수 있는 석탑도 있다. 즉 목조건축의 세부양식을 일부에 나타낸 의성 탑리의 오층석탑, 조각과 전체의 균형이 절묘한 불국사 다보탑 및 정혜사지(淨惠寺址)십삼층석탑이 있다.

또,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과 같이 기단을 네 개의 사자상으로 만들어 그 위에 전형양식의 삼층석탑을 올린 것과 실상사백장암(實相寺百丈庵)의 삼층석탑과 같이 탑신에 목조건축의 난간을 조각한 탑 등도 이에 속한다.

석조부도는 어느 시기부터 신라에서 시작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로는 844년경에 건립된 염거화상탑(廉居和尙塔)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부도는 상·중·하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대석 위에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탑신을 올린 것으로, 탑신 세부가 목조건축의 세부양식을 비교적 자세히 모각하였고 우리 나라 석조부도의 기본형태 중의 하나로 되었다. 그러나 석조부도는 통일신라시대에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고려시대에 들면서 크게 성행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에 창건한 사찰은 사천왕사(四天王寺)이며, 이어 감은사·망덕사·고선사 등이 건립되었다. 경주 이외에도 각처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그 가운데는 오늘날까지 그 법등(法燈)을 이어 오는 사찰도 적지 않으며, 이미 폐허가 되어 그 유적만 남은 것도 적지 않다. 그러한 유적 가운데 발굴조사되어 가람배치가 밝혀진 것은 감은사지·망덕사지·고선사지·천군리사지(千軍里寺址) 및 불국사 등이다.

고선사지 이외의 절터는 금당 앞 좌우에 탑을 세우고 금당 좌우에서 동·서 회랑 사이에도 회랑, 즉 익랑(翼廊)이 설치된 이른바 쌍탑식(雙塔式) 가람배치로 된 사찰이었다.

그리고 망덕사는 목탑, 그밖의 것은 석탑으로 된 쌍탑식 가람이었다. 이 밖에도 발굴조사되지는 않았지만 탑 기단이 남아 있거나 석탑이 남아 있어 그 가람이 쌍탑식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절터도 많다.

즉, 사천왕사지·원원사지(遠願寺址) 및 실상사 등도 이에 속하므로, 쌍탑식 가람배치가 신라의 전형적인 가람배치임을 알 수 있다. 고선사의 가람배치는 금당원(金堂院)과 탑원(塔院)이 동서로 나란히 놓인 배치였는데, 이와 같은 가람배치는 고선사 이외에는 아직 그 존재가 밝혀진 바 없는 새로운 가람배치 형식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궁궐건축에 관해서는 최근에 발굴조사된 안압지(雁鴨池) 주변에서 나타난 건물유구가 유일한 구체적인 자료이다. 안압지 서쪽에는 아마도 그중의 하나가 임해전(臨海殿)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큰 규모의 건물 세 채가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되고, 이들 건물은 회랑으로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세 건물의 동쪽 회랑은 안압지 서쪽 기슭에 면하여 몇몇 건물이 못가에 세워져 이들과도 연결되고 있었다. 안압지 남쪽은 못에서 좀 떨어져 규모가 작은 건물들과 회랑 및 보도(步道)·담장 등으로 구획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아 안압지 서쪽은 임해전을 비롯한 궁궐의 중심부이고, 남쪽은 궁궐의 부속시설이 있었던 것 같다.

<김정기>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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