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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10 (월) 21:12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768      
[현대] 현대건축=20세기건축 (한메)
20세기의 건축

<근대에서 현대로>

19세기 초기에는 전유럽적으로 고대예찬과 프랑스 나폴레옹의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을 반영하여 고대 그리스의 양식을 채택하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로마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건축이 많이 세워졌다. 이러한 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의 개선문과 마들렌성당을 들 수 있다.

그리스의 간결성을 담은 건축은 특히 독일에서 고전주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F.싱켈의 작품인 베를린의 왕립극장이 유명하다. 나폴레옹 실각 후에는 전유럽에 공통적인 경향으로 낭만주의가 출현하여 중세 고딕양식의 근대화된 채용이 이루어졌다. 또한 동시에 중세의 교회와 건조물의 수리가 성행하였다. 독일에서는 싱켈이 이 방면에서도 활약하였고, 영국에서는 고딕 양식을 채택한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유명하다.

19세기 후반에는 단지 한 가지의 역사적 양식을 채택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여러 양식을 결합시켜 새로운 건축비를 창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9세기 후반에는 모든 것이 현대를 향해 급변하는 시대로 궁전과 교회의 건축을 떠나 공중적(公衆的)인 건축이 크게 등장하였다.

재료의 변화도 현저하여 철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유리의 성능도 새로워지고 철근·콘크리트의 등장 등 건축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놓았다.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에펠탑은 과학적인 구조기술과 새로운 공간조형을 이룩한 철재 건조물이다. 한편 영국에서는 공예분야에서 W. 모리스의 운동으로, 과거의 양식을 물리치고 새로운 디자인에 의한 간결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개혁은 건축에도 크게 작용하여 과거와 같은 번잡한 양식을 버리고 참신한 건축을 지향하는 운동이 각국에서 일어나 현대를 향해 진전되어 갔다. 20세기에 이르러 철골조는, 특히 미국의 상업건축에 의하여 고층 건축을 대담하게 발전시켰다. W.L.B.제니에 의하여 건설된 시카고의 흄 인슈런스 빌딩(1884∼85)은 기둥이 주철인데, 10층 건물 중 하부의 6층의 대들보는 연철, 상층부의 대들보는 강철로 지어, 고층건축의 선구를 이룬, 시카고에서도 가장 빠르게 강철을 채용한 건물이다.

강철의 사용은 드디어 건축의 조형을 일변시키게 된다. 시카고의 선진적인 건축가 L.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고 하는 생물학적 원리를 바탕에 놓고 표면장식을 배제까지는 하지 않았어도 건축의 주된 위치로부터 끌어내렸다.

또 이미 유럽 체류(滯留)시대부터, 돌과 벽돌에 의한 조적조(組積造)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조형을 철과 유리를 가지고 추구하여 순수하고 추상적인 공간(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 1929)을 실현시키고 있던 M.로에는 미국 고층건축의 전통과 결연(結緣)하여, 철과 유리에 의한 조형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었다(뉴욕의 시그램 빌딩, 1958).

한편 영국의 기술자 J.스미튼은 고대 로마 이래 오래 잊혀졌던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1759년에 에디스톤 등대의 난공사를 완성하였는데, 1824년 포틀랜드시멘트의 발명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발전을 유도하여 건축의 역사를 일변시켰다.

아나톨 드 보드에 의한 파리의 장 드 몽마르트르 성당(1894)의 선구적인 시도 다음에 드디어 O. 페레의 여러 작품에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건축을 역사양식에서 해방시켜 구조와 조형의 통합을 편성하였다. 조적조의 양괴성(量塊性)은 부정되고 수평재와 수직재에 의한 경쾌한 골조구조가 조형의 원리가 되있다.

콘크리트의 호리호리한 원주 사이를 콘크리트블록과 색유리로 메꾸는 르 랑시의 노트르담 성당(1922∼24)은 고전의 단려(端麗)함과 고딕의 빛의 공간을 프랑스적 기지(機智)로 통합한 뛰어난 작품이다. 이미 19세기 말에는 역사 양식주의에 대한 반역운동이 새로운 조형을 구하기 시작하였다.

아르누보를 거쳐 양식주의의 거점인 O.바그너가 근대건축운동을 불타오르게 하였다. <예술의 유일한 주인은 필요성이다>라고 주장한 바그너는 새로운 재료, 새로운 구조법, 새로운 인간생활의 요구가 새로운 양식을 낳게 한다고 단언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고 과거양식으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는 빈(Wien) 공방(工房) 등이 힘차게 활동하였으며 이와 같은 합리주의적인 움직임은 W.그로피우스가 주도하는 바우하우스운동으로 정점에 도달하였다.

건축의 본질은 그것이 충족시킬 기능에 있고, 건축의 형태는 기능에서 나온다고 하는 그 견해는 국제적인 평가를 언어 건축에서의 합리주의는 기능주의로서 인식되게 되었으며 따라서 근대 건측은 국제양식이라고 불리는 건축조형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능주의는 건축형태가 기능에 따라 일의적(一義的)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아니다. 기능주의는 본질적으로 휴머니즘의 사상이었다. 인간과 건축에 대한 강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기능주의는 껍질만 남은 양식주의에서 인간을 되찾는 일을 목표로 하였다.

근대건축의 또 한 사람 선도자로서 후대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 르 코르뷔지에도 또한 건축을 예술의 수준으로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새로운 건축의 5가지 요점(1926)》에서 공간의 연속성과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필로티(pilotis) , 건물 밑에서 잃어버린 대지를 되찾는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파사드, 그리고 골조와 벽면의 분리에 따른 연속창(連橋窓)을 근대건축의 특질로서 강조하였다.

1927년 제네바의 국제연맹본부의 경쟁설계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안이 무시되고 전통양식이 채택된 이듬해, 근대건축가들은 지크프리트 기디온과 르 코르뷔지에를 지도자로 하여 반(反)전통주의를 표방하는 근대건축국제회의(CIAM)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33년에는 기능적인 도시계획에 관한 <아테네 헌장>을 발표하여 이후의 건축운동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근대 건축 운동은 건축의 사회적 측면을 중시하고 주택과 생활환경의 개량 운동에 눈을 돌렸다. 예술·공업·공예의 협력하에 조형의 단순성과 합리적 즉물성(卽物性)을 추구하여, P.베렌스 등에 의해 1907년에 설립되었던 독일공작연맹이 27년에 M.로에를 정점으로 당대의 우수한 건축가들을 모아서 슈투트가르트에서 개최한 주택박람회나, 바이센호프지들룽은 이와 같은 지향성(指向性)의 결정(結晶)이었다.

미국에서는 F.L. 라이트가 미국의 풍토 속에서 유기적 건축을 장시하고, 대지에 뿌리박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내어 유럽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같은 화려한 근대건축운동과 나란히 건축구조학도 착실하게 발전하고, 철근콘크리트조의 영역에서는 셸 구조와 곡선상의 골조구조가 새로운 조형을 가능케 하였다.

이탈리아의 구조기술자 P.L.네르비는, 피펜체의 경기장(1932)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운 리브상 그물코구조에 의한 팔라초 델로 스포르토(스포츠 전당, 1958∼60)에 이르기까지 구조학과 조형과의 멋진 일치를 실현시켰다.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기술의 발달은 곡선을 사용하지 않고서 대(大)스팬의 가구(架構)를 가능하게 하고, 프리 캐스트 코크리트는 부재(部材)의 공장 생산을 진전시켜, 양자가 서로 작용해서 건축 산업의 근대화를 추진시켰다.

근년작으로는, 리브구조이면서 바람에 부푼 돛을 연상케 하는 셸 모양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자랑하고 있다. 강철구조의 분야에서는 스페이스프레임(입체 골조구조)에 의한 대스팬가구의 추구를 들 수 있으며 또 강(鋼)과 경금속을 골조로 하는 돔 구조의 연구도 왕성해졌다. 최근에는 현수지붕구조와 막(膜)구조 즉 플라이 오토 등의 새로운 형식도 시도되고 있다.

건축부재의 규격화와 공장생산에 의한 고품질·저가격·대량생산이 매우 진전되어 있는데, 조형과의 결합에는 아직도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구조에서 뿐만 아니라 기능과 조형에서도 다양화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가장 시급한 건축적 과제는 생활환경의 재구성과 쾌적성의 회복이다.

일찍이 1956년에는 스미슨 부부·바케메·캔딜리스 등 청년건축가들이 <팀텐>을 결성하여 근대건축 국제회의(Cl AM)를 제10회 회의에서 붕괴시키고 유동하는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생활공간과 건축을 지향함으로써 근대건축국제회의는 최종적으로 59년의 회의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탄생시킨 사무실 건축을 정점으로 하는 실용주의적 건조물이 발전하는 한편, 기능주의가 가지는 국제성에 대립해서, 일찍부터 지방성과 민족성이 다시 증시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의 건축조형은 다양하고 통일적 이념이 결여된 다원론적 시대라고 하겠다.

<김동한>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건축'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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