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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2 (화) 13:34
분 류 사전1
ㆍ조회: 913      
[고려/조선] 홍문관 (한메)
홍문관 弘文館

고려·조선 시대 관청.

고려시대에는 학사(學士)·직학사(直學士)란 관원을 두어 문신 가운데 재학(才學)이 있는 자가 겸하게 하고 시종(侍從)·시강(侍講)의 직무를 담당하게 한 관부였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경서(經書)·사적(史籍)의 관리와 문한(文翰)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은 관부로서 옥당(玉堂)·옥서(玉署)·영각(瀛閣)·서서원(瑞書院)·청연각이라고도 하였다.

연원은 중국 당(唐)나라가 626년 수문관(修文館)을 개칭하여 홍문관이라 하고 도적(圖籍)의 수장(收藏)·정리·교정, 생도교육 및 조정의 제도·의례에 관한 논의의 직무를 맡긴 데서 비롯되었다.

고려는 995년(성종 14) 숭문관(崇文館)을 개칭하여 홍문관이라 하였다.

조선은 1463년(세조 9) 양성지(梁誠之)의 건의에 따라 장서각(藏書閣)을 홍문관이라 개칭하였는데 이때는 장서기관이었을 뿐이었다. 유명무실하던 홍문관이 학술·언론기관이 된 것은 1478년(성종 9) 집현전 직제가 홍문관에 이양되면서부터이다. 그 뒤 1504년(연산군 10) 진독청(進讀廳)이라 개칭하였다가 1506년(중종 1) 다시 복구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예문관(藝文館)과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라 하였고 이듬해 경연원(經筵院)이 되었다가 1896년 다시 홍문관으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홍문관은 학문적·문화적 사업에 주도적 구실을 한 기관이었으며,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과 더불어 언론 삼사(三司)라 불리며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출세가 기약되는 청요직(淸要職)의 상징이었고, 정승·판서는 대부분 홍문관을 거쳤다.

직제는 집현전 직제를 거의 계승하여 제학(提學) 이상은 겸관이고 부제학 이하는 전임관이었다. 관원이 되려면 문장·학문·인격을 인정받는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어야 하였으며, 관원은 모두 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고 부제학에서 부수찬까지는 지제교(知製敎)를 겸하였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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