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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17 (토) 17:50
분 류 사전1
ㆍ조회: 918      
[조선] 무오사화 (한메)
무오사화 戊午士禍

1498년(연산군 4)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新進士類)가 유자광(柳子光)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화를 입은 사건.

사림파(士林派)가 중앙에 등용되어 관계(官界)에 나오기는 성종 때부터로, 그 중심 인물은 김종직(金宗直)이었다. 그는 임금의 신임을 얻어 자기 제자들을 많이 등용하고 주로 3사(三司;司諫院·司憲府·弘文館)에서 은밀하게 세력을 갖게 되었다. 날이 감에 따라 이들은 종래의 벌족(閥族)인 훈구파와 주의·사상 등을 달리하게 되어 두 파간에는 배격과 반목이 그치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특히 신진의 김종직과 훈구의 유자광은 일찍이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고, 또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으로서 훈구파 이극돈(李克墩)의 비행을 낱낱이 사초(史草)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도 틈이 생겨 있었으며, 이런 점에서 유자광과 이극돈은 이들에게 보복할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때마침 1498년(연산군 4) 전례에 따라 실록청(實錄廳)이 개설되어 《성종실록》의 편찬이 시작되자, 그 당상관(堂上官)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기초한 사초(史草)에 삽입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世祖)가 단종(端宗)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았다고 비방한 것이라 하여, 이것을 문제삼아 유자광과 함께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이로 인해 김일손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으며,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은 부관참시되었다. 또한 이극돈도 수사관(修史官)으로서 문제의 사초를 보고도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로 파면되었다. 이리하여 유자광만이 그 위세를 더하여 감히 그 뜻을 어기는 자가 없게 되었다. 특히 신진 사류는 많은 수가 직접 희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기도 크게 위축되었다. 이 사건은 조선시대 4대 사화의 첫번째 사화로, 사초 문제로 발단되었다고 하여 <史禍>라고도 쓴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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