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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17 (토) 17:59
분 류 사전1
ㆍ조회: 895      
[조선] 기묘사화 (한메)
기묘사화 己卯士禍

1519년(중종 14) 11월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 재상(勳舊宰相)에 의해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김식(金湜) 등 신진 사류가 화를 입은 사건.

중종 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함과 동시에 쫓겨난 신진 사류를 등용하여 유교적 정치 질서의 회복과 성리학의 장려에 힘썼다. 점차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신진 사류 중 조광조는 김굉필(金宏弼)의 제자로, 유숭조(柳崇祖)의 도학정치론에 감화된 신예학자였다. 중종의 신임을 받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고대 중국의 왕도 정치를 이상으로 하는, 이른바 지치주의(至治主義) 정치를 실현하려 하였다.

과거제의 폐단을 혁신하기 위해 현량과(賢良科)를 설치하고,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하여 미신타파에 힘쓰며, 향약(鄕約)을 실시하는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성과를 거두었으나, 그의 이상주의적인 왕도 정치는 그 구현 과정에서 급진적인 면이 적지 않아 훈구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성리학을 지나치게 숭상한 나머지 사장(詞章)을 배척하여 남곤·이행(李荇) 등의 사장파와 반목하였고, 청렴 결백과 원리 원칙에 입각한 도학적인 그들의 태도는 기성 세력을 소인시함으로써 훈구 재상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조광조 일파에 대한 훈구 세력의 불만은 1519년에 있었던 반정공신 위훈삭제사건(反正功臣僞勳削除事件)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중종 반정 공신 가운데 4분의 3에 해당하는 76명의 공신호를 삭탈하고 토지와 노비를 환수한 사건이었다. 이때 소인배로 지목된 남곤과 훈적에서 삭제당한 심정 등은 조광조의 탄핵을 받은 바 있는 희빈 홍씨(熙嬪洪氏)의 아버지 홍경주와 손잡고 조광조일파를 몰아낼 계략을 꾸며 왕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1519년 11월 조광조일파가 임금을 속이고 국정을 어지럽혔으니 그 죄를 밝혀주도록 상계를 올렸다.

그 결과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가서 곧 사사되었고 김정·기준(奇遵)·한충(韓忠)·김식 등은 귀양가서 사형 또는 자결하였다. 그 밖에 김구(金)·박세희(朴世熹)·박훈(朴薰) 등 수십명이 귀양가게 되고 이들을 두둔한 안당과 김안국(金安國)·김정국(金正國) 형제 등은 파직되었다. 이 사화에 희생된 조신들을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고 한다.

기묘사화는 무오사화와 같이 훈구과와 신진 사류간의 반목·배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정치적 음모가 유효하였던 정쟁이었다는 점과 갑자사화와 같이 정치적 투쟁 목적과 이념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 특이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기동>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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