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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1-17 (토) 18:17
분 류 사전1
ㆍ조회: 843      
[조선] 홍국영 (한국의 역대인물)
홍국영 洪國榮 1748(영조 24)∼1781(정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덕로(德老).

관찰사 창한(昌漢)의 손자이며, 판돈녕부사 낙춘(樂春)의 아들이다. 큰아버지는 낙순(樂純)이며, 정조의 외조부인 우의정 홍봉한(洪鳳漢)과 이조판서 홍인한(洪麟漢)은 가까운 집안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1771년(영조 4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설서가 되었다. 이때 마침 영조는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고 그 소생인 손자(뒤의 정조)를 후계로 정하였다. 영조 말년 벽파의 횡포 속에서 세손을 보호한 공로로 세손의 두터운 총애와 신임을 얻게 되었다.

이어 사서에 승진하였고, 이때 세손의 승명대리(承命代理)를 반대하던 벽파 정후겸(鄭厚謙)·홍인한·김구주(金龜柱) 등을 탄핵하여 실각시키고, 1776년 홍상간(洪相簡)·홍인한·윤양로(尹養老) 등이 세손을 반대, 모해하려는 모역을 적발하여 처형시켰다.

그해 정조가 즉위하자 곧 동부승지로 특진 임명되었고, 날랜 군사를 뽑아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하여 숙위대장을 겸직하여 왕궁호위를 전담하고 도승지에 올랐다. 실권을 잡게 되자 삼사(三司)의 소계(疏啓), 팔로(八路)의 장첩(狀牒), 묘염(廟剡), 전랑(銓郎)의 차제(差除) 등을 모두 총람(總覽)하였고, 또 당시의 삼공육경(三公六卿)까지도 그에게 맹종하게 되었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에 힘입어 자연히 조정의 백관은 물론 8도감사나 수령들도 그의 말이라면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였다. 모든 관리들은 그의 명령을 얻어야 행동하게 되므로 '세도(勢道)'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1778년(정조 2)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바쳐 원빈(元嬪)으로 삼았으나 20세도 못 되어 1년 만에 병들어 죽자, 정조의 동생인 은언군 인(恩彦君)의 아들 담(湛)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완풍군(完豊君)에 봉하고, 다시 상계군(常溪君)으로 개봉하여 왕의 후계자로 삼도록 함으로써 세도정권 유지에 급급하였다.

왕비 순정왕후(純貞王后)가 원빈을 살해한 것으로 믿고 왕비를 독살하기 위하여 1780년에 독약을 탄 음식을 왕비전에 넣었다가 발각되어, 집권 4년 만에 가산을 몰수당하고 전리(田里)로 방축되었다.

고향에 내려와 울화를 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중 병을 얻어 죽었다. 실각할 때까지 도승지로 이조참의·대제학·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일설에는 자진해서 물러가라는 정조의 권고로 일시 은퇴하였다가 삼사의 탄핵으로 형벌을 받았다고도 한다.

출전 : 성씨, 가문 그리고 인물들--<한국의 역대인물>에서
http://www.koreandb.net/Bon/HTML/psn_spc_b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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