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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20 (목) 14:19
분 류 사전1
ㆍ조회: 1244      
[조선] 조선왕조실록 (한메)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간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술한 책. 25왕의 실록명칭 등 그 세부적인 내역은 〔표〕와 같다. 〔표〕에서 보듯이 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것이 아니라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며, 노산군·연산군·광해군시대의 기록을 실록이라 하지 않고 일기라 한 것은 세 임금 모두 폐위되어 왕자의 칭호인 군으로 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다만 노산군은 숙종 때 복위되어 숙종 이후는 《노산군일기》를 《단종실록》으로 개칭하였다. 일기라 해도 그 내용과 사료적 가치는 실록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선조실록》 《현종실록》 《경종실록》이 2종류씩 있는 것은 당파싸움으로 인하여 수정·개수(改修)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고종·순종의 실록은 주권을 빼앗긴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이왕직(李王職)에서 편찬한 것으로 왜곡된 내용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라 하면 철종까지의 실록을 의미한다.

실록은 대체로 왕이 죽으면 다음왕 때에 편찬하는 것이 통례로서, 춘추관(春秋館)에 실록청(實錄廳) 또는 찬수청(纂修廳)을 설치하고 춘추관 영의정이나 좌·우의정을 총재관(摠裁官)으로, 대제학 및 기타 문장에 뛰어난 사람을 수찬관(修撰官)으로 임명하고, 도청(都廳)과 1·2·3 내지 6방(房)으로 나누어 편찬하였다.

편찬 자료는 춘추관시정기(春秋館時政記)와 전왕 재위 때의 사관(史官)들이 작성해둔 사초(史草)를 기본으로 삼고, 그 밖에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과 후세에는 《비변사등록》 《일성록》 등을 자료로 삼있다. 이상의 기록들이 실록청에 모여지고, 1·2·3 각 방에서 편년체로 초초(初草)를 만들어 도청으로 넘기면, 여기서는 초초 가운데 빠진 사실을 덧붙이고 불필요한 내용을 없애며 잘못된 것은 수정하여 중초(中草)를 만들었다. 이를 총재관과 도청당상이 교열하고 체재와 문장을 통일하여 정초(正草)를 만들고, 실록으로 확정·간행하여 사고(史庫)에 보관하였다.

실록의 기본 자료로 특기할 만한 자료는 사관들의 사초이다. 춘추관 관직을 겸임한 관원이 모두 사관에 해당되지만 그 중에서도 예문관의 봉교(奉敎) 2명, 대교(待敎) 2명, 검열(檢閱) 4명이 전임사관이었다. 이들 전임사관은 직위는 비록 낮았지만 청화(淸華)한 벼슬로 국가의 각종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왕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의·처리하는 것을 사실대로 기록하며 그 잘잘못 및 인물에 대한 비평, 기밀사무 등을 직필하였다.

따라서 사관들의 사초는 비밀을 요하는 기록이었기 때문에 각자 간직하고 있다가 실록을 편찬할 때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고, 제출된 사초는 그 극비성 때문에 사관 이외에는 전제 왕권을 가진 왕도 보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필화 사건 즉 사화(史禍)가 일어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실록은 1413년(태종 13) 《태조실록》을 편찬한 것이 처음이며, 26년(세종 8)에 《정종실록》, 31년(세종 13) 《태종실록》을 편찬한 후, 이 3대 실록을 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 나머지 1부는 충주(忠州) 사고에 보관하였으나, 보존이 염려되어 전주(全州)·성주(星州)에 사고를 증설하고 다시 2부씩을 더 등사하여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

이후 《세종실록》부터는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정초본(正草本) 외에 활자로 3부를 더 인쇄·간행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각 사고에 1부씩을 보관하였다. 다만 태조·정종·태종 3대의 실록은 활자화하지 못하고 처음의 등사본을 그대로 보관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춘추관·충주·성주 3사고의 실록은 모두 소실되고, 진주사고의 실록만이 선비인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에 의해 내장산(內藏山)으로 옮겨져 병화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93년 내장산에서 실록을 넘겨받은 조정은 이를 해주(海州)로 옮기고 다시 강화도(江華島)·묘향산(妙香山)으로 옮겨 보관하다가 왜란이 평정된 뒤 실록 간행사업을 일으켜 1603년 7월부터 3년 동안에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13대의 실록 804권 3부를 다시 출판하였다.

그 뒤 실록은 전주사고에 있던 원본과 재출판시의 교정본(校正本) 1부를 합쳐 5부가 갖추어져 있는 서울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 4부는 병화를 피할 수 있는 깊은 산중과 섬을 택하여 강파도 마니산(摩尼山)·경상도 봉화(奉化)의 태백산(太白山)·평안도 영변(寧邊)의 묘향산·강원도 평창(平昌)의 오대산(五臺山)에 사고를 신설하여 각각 1부씩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 뒤 실록이 편찬될 때마다 위의 5사고에 보관하여 오다가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으로 문추관 소장본은 소실되어 복구되지 않았으며, 묘향산 소장본은 33년 후금(後金)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가자 전라도 무주(茂朱)의 적상산(赤裳山)으로 옮기고, 마니산 소장본은 병자호란 때 크게 훼손되었으나 현종 때 이를 완전히 보수하여 78년(숙종4) 강화도 정족산(鼎足山)에 새로 사고를 지어 옮겼다. 따라서 인조 이후 실록은 정족산사고·적상산사고·태백산사고·오대산사고의 실록만 남게되었고, 그 뒤 철종까지의 실록은 출판할 때마다 이 4사고에 각각 1부씩 보관되어 조선 왕조 마지막까지 온전히 전하여 내려왔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가 한국의 주권을 강탈한 뒤 정족산사고·태백산사고의 실록은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1930년에 다시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졌다가 45년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도서관에 그대로 소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대산사고의 실록은 일본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으로 반출되어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때 소실되었고, 적상산사고의 실록은 구황궁(舊皇宮) 장서각에 그대로 소장되어 있었으나 실록도난사건으로 낙질(落帙)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6·25 때 이것을 북한측에서 가져가 현재 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법률·외교·군사 및 그 밖의 모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것이므로,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동안 경성제국대학에서 태백산본을 원본으로 하여 실록 전체를 사진판으로 30부를 영인하였는데 대부분은 일본으로 가져가고 한국에는 8부 밖에 남지 않았다. 광복 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55년부터 58년까지 태백산본을 1/8로 축쇄·영인하여 국배판·양장본 48책으로 간행, 이를 국내 도서관은 물론 세계 주요대학 도서관에 배부하였고, 또 실록의 총색인 1책을 편찬, 출판하여 실록을 이용하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이 방대한 실록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되며, 비록 지배층 위주의 관찬기록이라는 한계성이 있기는 하나 여러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어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기록물이다.

이같이 역사적 가치를 지닌 실록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문 이해의 어려움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으나 1968년부터 고전 국역사업의 일환으로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기관이 분담, 국역 간행사업을 시작하여 93년에 413권의 국역본을 완간하였다. 이는 국학연구에 가장 큰 숙제를 풀어낸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를 돕고, 일반인들의 역사의식을 되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는 실질적인 의미가 있다.

한편 북한에서는 70년대초 국가 주도로 국역사업을 시작, 81년에 번역을 완료하고 90년에 전체 401권을 완간하였다. 지난 91년에 국내에 수입된 북한의 《리조실록》은 사회과학원민족고전연구소에서 발행한 것으로, <인민대중의 향유물이 되게 한다>는 정책에 따라 모든 전문용어를 한글로 풀어쓰고 있어 동명이인의 혼란과 특수어나 역사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색인을 만들기 어렵다는 점도 있으나 일반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국역본은 관련분야 연구자에게 자료를 제공한다는 목적에서 역사적 용어를 그대로 쓰고 색인을 붙였으나, 뜻을 풀어쓰기보다는 한자에 토를 달고 한글로 바꿔 놓고 있어 일반인이 읽기에는 어려운 전문 연구자용이다. 1893권 888책. 필사본 및 인본. 국보 제151호.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 <박영석>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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