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9-01 (토) 22:27
분 류 사전1
ㆍ조회: 998      
[조선] 무오사화 (두산)
무오사화 戊午士禍

1498년(연산군 4)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에게 화를 입은 사건.

사림파의 중앙 진출을 보면, 세조 때 중앙집권 ·부국강병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훈구 대신들이 권력ㆍ재산을 모으자, 성종 때 김종직(金宗直)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 정계로 진출하였다. 3사(三司 : 司諫院ㆍ司憲府ㆍ弘文館)의 언론직(言論職) 및 사관직(史官職)을 차지하면서 훈구 대신의 비행을 폭로 ·규탄하고, 연산군의 향락을 비판하면서 왕권의 전제화를 반대하였다.

한편 훈구파는 사림파를 야생귀족(野生貴族)으로 보고, 사림이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어지럽힌다고 비난하여 연산군 이후 그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종직과 유자광은 일찍이 개인 감정이 있었고,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성종 때 춘추관(春秋館)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훈구파 이극돈(李克墩)의 비행과 세조의 찬탈을 사초(史草)에 기록한 일로 김일손과 이극돈 사이에도 반목이 생기게 되었다. 유자광ㆍ이극돈은 김종직 일파를 증오하여 보복에 착수하였다.

1498년 《성종실록》을 편찬하자, 실록청(實錄廳) 당상관(堂上官)이 된 이극돈은,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비방한 것이라 하고, 이를 문제삼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연산군은 김일손 등을 심문하고 이와 같은 죄악은 김종직이 선동한 것이라 하여, 이미 죽은 김종직의 관을 파헤쳐 그 시체의 목을 베었다.

사림파 김일손ㆍ권오복(權五福)ㆍ이목(李穆)ㆍ허반(許盤)ㆍ권경유(權景裕) 등은 선왕(先王)을 무록(誣錄)한 죄를 씌워 죽이고, 정여창(鄭汝昌)ㆍ강겸(姜謙)ㆍ이수공(李守恭)ㆍ정승조(鄭承祖)ㆍ홍한(洪澣)ㆍ정희랑(鄭希良) 등은 난을 고하지 않은 죄로, 김굉필(金宏弼)ㆍ이종준(李宗準)ㆍ이주(李胄)ㆍ박한주(朴漢柱)ㆍ임희재(林熙載)ㆍ강백진(姜伯珍) 등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한 죄로 귀양보냈다.

한편 이극돈ㆍ유순(柳洵)ㆍ윤효손(尹孝孫)ㆍ어세겸(魚世謙) 등은 수사관(修史官)으로서 문제의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하였다. 이로써 사화 발단에 단서가 된 이극돈이 파면된 뒤 유자광은 그 위세가 더해진 반면, 많은 사림파 인사들이 희생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윗글 [조선] 갑자사화 (두산)
아래글 [조선] 사화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40 사전1 [조선] 무오사화 (두산) 이창호 2001-09-01 998
39 사전1 [조선] 사화 (두산) 이창호 2001-09-01 3050
38 사전1 [조선] 훈구파 (두산) 이창호 2001-09-01 1030
37 사전1 [조선] 산림 (두산) 이창호 2001-09-01 1011
36 사전1 [조선] 사림 (두산) 이창호 2002-08-06 982
35 사전1 [조선] 붕당정치 (두산) 이창호 2001-09-01 1655
34 사전1 [조선] 붕당 (두산) 이창호 2002-10-15 1035
33 사전1 [조선] 향약 (두산) 이창호 2002-05-05 1233
32 사전1 [조선] 서원 (두산) 이창호 2002-04-22 1443
31 사전1 [조선] 조선시대의 과거 (두산) 이창호 2001-09-01 1107
1,,,291292293294295296297298299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