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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10-28 (월) 19:44
분 류 사전1
ㆍ조회: 1026      
[조선] 인현왕후 (민족)
인현왕후 仁顯王后 1667(현종 8)∼1701(숙종 27)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

본관은 여흥(驪興).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준길(浚吉)의 딸이다. 1681년(숙종 7) 가례(嘉禮)를 올리고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예의가 바르고 덕성이 높아 국모로서 만백성의 추앙을 받았으나, 왕자를 낳지 못하여 왕의 총애를 잃게 되었다. 특히, 장소의(張昭儀)에게서 왕자 윤(昀 : 경종)이 출생하자, 숙종의 총애는 장소의에게 쏠리게 되었다.

1689년에 숙종이 왕자 윤을 원자로 봉하고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송시열(宋時烈) 등 노론파 인사들이 소를 올려 이에 반대함으로써 숙종과 심하게 대립하였다. 숙종은 이들을 면직, 사사시키고, 이현기(李玄紀)ㆍ남치훈(南致薰) 등 남인들을 등용하는 이른바 기사환국이 일어났으며, 지위가 오른 희빈 장씨(禧嬪張氏)의 간계로 폐서인이 되어 안국동 본댁(本宅 : 感古堂)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뒤 숙종이 폐비에 대한 처사를 후회하고 있던 중에 1694년 소론파의 김춘택(金春澤)ㆍ한중혁(韓重爀) 등이 폐비복위운동을 일으키자, 이를 저해하려는 남인 민암(閔睦)ㆍ김덕원(金德遠)ㆍ권대운(權大運) 등을 유배, 사사시키는 갑술옥사를 거쳐 다시 복위되었다.

그 뒤 덕을 베풀고 희빈 장씨와 화기(和氣)를 도모하면서 살았으나, 원인모를 질병으로 1701년에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한 궁녀가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쓴 소설 ≪인현왕후전≫이 전한다. 시호는 효경숙성장순의열정목인현왕후(孝敬淑聖莊純懿烈貞穆仁顯王后)이고, 능호는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 서오릉(西五陵) 묘역내에 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璿源系譜.

<박정자>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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