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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3 (일)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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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23      
[조선] 숙종 (브리)
숙종 肅宗 1661(현종 2)~1720(숙종 46)

조선의 제19대 왕(1674~1720 재위).

재위 기간 동안 조선 중기 이래 계속되어온 붕당 정치가 절정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대동법의 확대 실시, 양전의 시행, 호패법의 실시, 군제의 정비 등을 통해 양난 이후 무너져가는 봉건 체제를 재정립해 나가려는 정책을 시도했다. 이름은 순(焞). 자는 명보(明普).

즉위 및 정국 동향

현종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초비(初妃)는 영돈녕부사 김만기(金萬基)의 딸인 인경왕후(仁敬王后), 계비(繼妃)는 영돈녕부사 민유중(閔維重)의 딸인 인현왕후(仁顯王后), 제2계비는 경은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의 딸인 인원왕후(仁元王后)이다. 1667년 왕세자에 책봉되었고, 1674년 8월 즉위했다.

숙종 초기 집권층이었던 남인은 병권의 장악과 서인에 대한 대책을 둘러싸고 청남(淸南)과 탁남(濁南)으로 분열되어, 허적(許積)을 중심으로 한 탁남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숙종은 김석주(金錫胄)ㆍ김익훈(金益勳) 등 외척을 기용하는 한편 서인을 재등용하고자 했다. 1680년(숙종 6) 복선군(福善君)과 탁남의 영수인 허적의 서자 허견(許堅) 등이 역모했다는 고변이 있자 이를 계기로 남인들을 축출하고 서인들을 등용시켰다(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그러나 서인 계열은 남인의 숙청 문제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고, 1689년 희빈 장씨(禧嬪張氏) 소생 왕자(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가 다시 남인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기사환국[己巳換局]). 남인은 이후 정국을 이끌면서 1694년에는 서인이 인현왕후 복위를 도모하려 했다는 고변을 하고 옥사를 일으켰다(→ 색인 : 갑술옥사).

이러한 상황에서 숙종은 인현왕후를 서인(庶人)으로 폐비한 것을 후회한다는 전지(傳旨)를 내려 소론 정권을 성립하게 하고 남인의 다수를 명의죄인(名儀罪人)이라 하여 중앙 정계에서 몰아냈다(甲戌換局). 그뒤 정국은 서인 내의 노론ㆍ소론 사이에 정권을 둘러싼 각축이 벌어지면서 노론 일당 전제화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노론ㆍ소론 당쟁의 핵심은 희빈 장씨의 처벌 문제 및 장씨 소생의 세자와 연잉군(延君 : 뒤의 영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문제였다. 숙종은 노론의 주장을 받아들여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리는 한편, 1717년에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숙종 재위기간중의 남인ㆍ서인, 노론ㆍ소론의 당쟁은 조선 중기 이래 붕당 정치의 과정에서 쌓여온 모순이 폭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당파간의 견제와 대립을 이용하여 양 난 이래 손상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신권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확보하려는 숙종의 정치적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쟁의 밑바탕에는 양 난 이후의 국가재조(國家再造) 방향을 둘러싼 대립이 가로놓여 있었다. 즉 정통 주자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정치 운영의 주체를 양반 사대부에 두며 당시의 지배적 경제 제도인 지주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부세 제도의 부분적인 개선을 통해 봉건 체제의 모순을 수습하려는 입장과, 고전 유학의 범주에서 주자학 비판의 근거를 찾고 왕권 강화를 바탕으로 토지 제도를 개혁하여 소농 경제를 안정시키려는 입장 사이의 대립이었다. 숙종 때의 당쟁은 전자의 주장을 전개한 노론 계열이 정국을 점차 장악해가는 과정이었다.

사회 경제 정책

먼저 방납(放納 : 토산물의 貢出)의 폐단을 막고 국가 재정의 충실을 기하기 위해, 1608년(선조 41) 경기도에 시범적으로 실시된 이래 강원도와 충청도ㆍ전라도로 확대된 대동법의 적용 범위를 경상도(1677)와 황해도(1717)에까지 확대하여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전정(田政) 부문에서는 광해군 때부터 시작된 양전 사업(量田事業)을 계속해서 강원도와 삼남 지방에까지 확대하여 서북지방 일부를 제외한 전국에 걸쳐 양전을 마무리지음으로써 국가 재정 수입의 안정적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고 당시 민폐의 대상이었던 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포제(戶布制)의 실시를 강구했으나 양반층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자 그 대신 1703년 양역이정청(良役釐正廳)을 설치, 양역 변통의 방안을 모색하도록 하여 이듬해 군포균역절목(軍布均役節目)을 마련함으로써 1필에서 3~4필의 심한 차이를 보이던 양정(良丁) 1명의 군포 부담을 2필로 균일화했다. 또한 호패법(戶牌法)의 실시를 강행하여 유민(流民)과 도피자를 방지함과 동시에 전국의 양정 수를 명확히 파악함으로써 봉건질서의 안정ㆍ강화를 도모했다.

아울러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에 맞추어 상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주전(鑄錢)을 본격화하여 6차례에 걸쳐 상평청ㆍ호조ㆍ공조 및 훈련도감ㆍ총융청의 군영과 개성부, 평안ㆍ전라ㆍ경상 감영으로 하여금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조ㆍ통용하게 했다. 이와 같이 숙종대에 이루어진 제반 제도의 정비와 운영상의 개선은 양 난 이후 문란해진 국가 재정 구조를 개선하고 일반 농민층의 부담을 부세 제도의 면에서 경감시킴으로써 심화되어가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고 봉건 지배 체제를 안정화하려는 것이었다.

국방ㆍ외교 정책 및 기타 치적

숙종은 즉위한 다음해 대흥산성(大興山城)을 완공하고 용강(龍岡)에 황룡산성(黃龍山城)을 수축하여 변경 지대의 방비를 강화하는 한편 1712년 북한산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남한산성과 함께 서울 수비의 양대 거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종래의 훈련별대(訓鍊別隊)와 정초청(精抄廳)을 통합하여 금위영(禁衛營)을 신설, 5군영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임진왜란 이후 계속된 군제의 개편을 마무리지었다.

한편 폐한지(廢閑地)로 버려둔 압록강 주변의 무창(茂昌)ㆍ자성(慈城)의 2진을 개척하여 옛 영토의 회복 운동을 벌였으며, 청과의 국경 분쟁이 일어나자 1712년에 함경감사 이선부(李善溥)로 하여금 청과 협상하여 백두산 정상에 정계비(定界碑)를 세우게 함으로써 국경선을 확정지었다. 일본과는 1682, 1711년에 통신사를 파견하여 왜은(倭銀) 사용 조례를 확정지어 왜관무역(倭館貿易)을 정비하는 한편, 막부(幕府)로부터 왜인의 울릉도 출입 금지를 보장받기도 했다.

이밖에 사육신을 복관시키고, 노산군(魯山君)을 복위시켜 단종(端宗)으로 묘호를 올렸으며, 폐서인(廢庶人)이 되었던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 강씨를 복위시켜 민회빈(愍懷嬪)으로 하는 등 왕실의 충역 관계(忠逆關係)를 재정립했다. 그리고 명분의리론이 크게 성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명의 은공을 기린다는 명목으로 대보단(大報壇)을 세워 존명의리와 북벌론의 기치 아래 사회기강을 단속하는 작업이 행해지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선원록 璿源錄>ㆍ<대명집례 大明集禮> 등이 간행되고, <대전속록 大典續錄>ㆍ<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등이 편찬되었다. 능은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군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시호는 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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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조 방전법 시행의 역사적 성격 <국사관논총> 38 : 최윤오, 국사편찬위원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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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조 양역변통론의 전개와 양역대책 <국사관논총> 17 : 정만조, 국사편찬위원회, 1990
숙종초기의 정치구조와 환국 <한국사론> 15 : 홍순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6
숙종대 갑술환국과 정치참여 계층분석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 정석종, 범조사, 1985
숙종과 기사환국 <전북사학> 8 : 이희환, 전북대학교 사학회, 1984
조선후기 숙종연간의 미륵신앙과 사회운동 <한우근 박사 정년기념사학논총> : 정석종, 지식산업사, 1981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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