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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3 (일) 17:05
분 류 사전2
ㆍ조회: 257      
[조선] 경신환국=경신대출척 (브리)
경신대출척 庚申大黜陟

1680년(숙종 6)에 남인 세력이 정치적으로 대거 축출된 사건.

숙종 초기에는 1674년(현종 15) 예송(禮訟)에서 승리한 남인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1659년에 벌어진 첫번째 예송에서는 서인이 승리하여 남인이 실각하였으나, 1674년의 2번째 예송에서 남인이 승리하여 숙종 초년에는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 숙종은 서인에 속하는 모후인 명성왕후의 족질 김석주에게 군권(軍權)을 맡겨 남인을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군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의해 앞으로의 권력의 향배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군권을 장악하려는 정치세력간에 각축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김석주 등을 견제하기 위해 남인 윤휴는 도체찰사부(都體察使府)의 설치를 주장하여 도체찰사부가 설치되고, 남인 허적이 체찰사에 임명되었다. 도체찰사부는 영의정을 도체찰사로 하는 전시의 사령부로서 외방 팔도의 모든 군사력이 그 통제를 받게 되었다. 총융사와 수어사도 경기도의 군사력으로 간주되어 도체찰사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도체찰사가 된 허적은 훈련도감과 어영청마저 도체찰사부에 소속시켜 군권을 하나로 합치자고 건의하였다.

이에 김석주 등이 강력히 반발하여 도체찰사부는 일시 혁파되었으나, 1678년 영의정 허적의 건의로 복설되었다. 군권을 비롯한 권력이 남인, 그 가운데서도 탁남(濁南)에 편중되자 숙종은 이들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고 서인들을 유배에서 방면해주었다. 그러던 중 1680년 3월에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이 조부의 시호를 맞이하는 잔치에 궁중의 천막을 가져다 쓴 사건이 발생하였다. 숙종은 이날 비가 내리자 허적에게 궁정의 기름먹인 천막을 가져다 쓰라고 명하였으나, 이미 가져간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군권을 서인에게 넘기는 전격 조치를 취하였다. 훈련대장을 남인계인 유혁연에서 총융사 김만기로 바꾸고 김만기의 후임에는 신여철을, 수어사에는 김익훈을 임명하였다. 이들은 모두 서인들이었다.

한달 뒤에 재등장한 서인들로 구성된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남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종실 복창군ㆍ복선군ㆍ복평군을 절도(絶島)에 안치(安置)하라는 계를 올렸다. 거기다가 허적의 서자인 허견이 이들과 함께 역모를 꾸몄다는 고변이 있었다. 이 역모 사건으로 허견이 능지처사(凌遲處死)되고 복선군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역모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판명된 허적ㆍ오정창ㆍ윤휴ㆍ이원정ㆍ민희ㆍ유혁연 등 남인의 실권자들은 관직에서 쫓겨나 유배를 당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인이 중앙 정계에서 대거 축출되고 서인이 재등장하였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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