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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3 (일) 16:19
분 류 사전2
ㆍ조회: 325      
[조선] 이건방 (브리)
이건방 李建芳 1861(철종 12)~1939

한말의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춘세(春世), 호는 난곡(蘭谷).

생애

아버지는 상안(象晏)이다. 작은아버지인 상기(象夔)에게 입양되었으며 종형인 건창(建昌)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 어릴 때부터 경서(經書)를 비롯한 여러 서적을 읽었고 처음에는 주자학을 공부하다가 자라서는 왕수인(王守仁)과 정호(程顥)의 책을 탐독했다. 입양된 지 얼마 안 되어 친아버지와 양아버지가 모두 세상을 떠나 양가의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느라 과거를 볼 수 없었다. 1885년(고종 22) 진사시에 합격했다. 종형 건창이 같이 활동할 것을 권했으나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노모를 봉양했다. 1894년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와 <원사 原士>를 지어 은둔한 선비들을 비판했다.

사상

이건방의 사상은 그의 저서 <난곡존고 蘭谷存藁>(13권)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난곡존고>의 <원론 原論>과 <속원론 續原論>에서 허위의 학문을 배척하고 진실과 진리의 학문을 추구하는 진가(眞假)의 논리를 펴고 있다. 진(眞)은 사람의 정(情)에 합당한 것이고, 인간의 정에 합당한 것이 성현의 도(道)에 합당한 것이며, 성현의 도가 곧 양지(良知)이고, 양지에 합당한 것이 바로 자신의 도라는 것이다.

이처럼 허(虛)를 배척하고 진과 실을 추구하는 가운데 당시 조선 사회를 이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주자학자들의 폐단을 비판했다. 특히 <속원론>에서는 송시열(宋時烈)과 그 계열의 학자들이 주자의 학설을 끌어다가 반대론자를 복종시키며, 말을 근사하게 꾸미나 언행이 일치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빙자하여 큰 권세를 누렸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양신묵(梁信默)이 명(明)의 숭정연호(崇禎年號)를 쓰자고 주장하자 크게 반대하고, 이들의 북벌론(北伐論)을 헛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건방은 근본이 확립되어야 도덕이 실천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학문은 그 근본을 확립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학문이 실학적인 것임을 강조했는데, 실제로 그는 정약용(丁若鏞)의 저술을 외우다시피 했으며, <방례죽본서 邦禮竹本序>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서양 학술과 동양 학술의 장점을 취하여 조화시킴으로써 국혼을 보존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학문적 성격은 제자인 정인보(鄭寅普)에게 계승되어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학문으로 발전되었다.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CD GX], 한국브리태니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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