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2-19 (화) 21:21
분 류 사전2
ㆍ조회: 826      
풍납토성 (명지대)
풍납토성(風納土城)

◎ 문화재지정 : 사적 제11호
◎ 문화재명 : 풍납토성
◎ 분 류 : 성지(성곽)
◎ 면 적 : 면적 120.308m²
              길이 2,526m²
◎ 지 정 일 : 1963. 1. 21
◎ 소 재 지 :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73번지∼96번지 일대
◎ 소 유 자 : 국유 및 사유
◎ 관 리 자 : 송파구

풍납토성은 서울 송파구 풍납동 136번지 일대 3.5km(현재 2.2km 존재)에 걸쳐 만들어진 폭 40m, 높이 9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판축토성(나무 기둥을 세우고 나무판을 댄 뒤 진흙 등을 켜켜이 쌓아 만든 성)이다. 서쪽으로 한강에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작은 시내를 사이에 두고 몽촌과 송파로 통하는 길이 나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아차산성을, 동남으로는 멀리 남한산성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풍납토성은 둘레가 약 4km(남북, 약3km: 동서, 약1km) 정도로서 그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다.

그러나 1925년의 을축년 대홍수와 후대의 가옥 건축이나 택지개발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원래 모습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현재는 토성의 동벽, 동북쪽 모서리, 그리고 북벽과 남벽의 일부가 비교적 잘 남아 있을 뿐 한강에 면한 서벽은 을축년 대홍수 때 대부분 허물어져 없어졌다. 현재 토성의 동벽이 약 1,500m, 북벽이 약300m, 남벽이 약 200m, 서북벽이 약 250m 가량 남아 있다. 남아 있는 토성의 길이는 모두 약 2,250m이다. 또 동벽에는 거의 같은 간격으로 4군데가 크게 뚫려 바깥과 통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원래의 성문자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1963년 을축년(1925년) 대홍수 등으로 유실된 서벽과 동북벽 등을 제외한 성벽 2.1㎞를 사적으로 지정했다.

성벽의 축조 상태를 보면,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북벽의 경우 외벽은 정상에서 약 2m 내려간 위치에서 1단의 넓은 단을 만들고 거기서부터는 경사를 줄여서 성기를 만들고 있으며 성기의 너비는 30m 가량 된다. 그리고 성벽은 돌이 섞이지 않은 고운 모래로 엷게 한층 한층 다져서 쌓아 올렸다. 성벽의 높이는 일정하지 않으며 북벽은 약 8m이다. 성 내부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21m이고 가장 낮은 지점은 15.5m이지만 홍수로 인한 퇴적토로 2∼3m 정도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사학계는 일제 시대부터 줄곧 풍납토성을 백제의 ‘방어용 성(城)’정도로 해석해왔다. 대신 풍납토성에서 1㎞ 정도 떨어진 몽촌토성을 유력한 왕성으로 비정했다. 그러나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풍납토성 내부에 고층 아파트 재개발이 붐을 이루면서 지하 기초공사 도중 백제유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 1997년 1월 선문대 이형구교수가 풍납동 현대아파트 공사 현장에 몰래 들어가 다량의 백제 유물들을 발견,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신고하면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학계는“풍납토성은 한성백제(BC 18~AD 475년)의 왕성인 하남 위례성”이라는 이교수의 주장(83년부터 주장)에 주목했다.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도자기류>

지난해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풍납토성 성벽에 대한 학술조사 과정에서 토성의 규모가 폭 43m, 높이 9∼15m로 동양 최대규모의 판축토성(뻘흙과 나무껍질 등을 켜켜이 눌러 쌓아 만든 성)임이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이 같은 규모의 토성을 3.5㎞나 건설하기 위해서는 연인원 수십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권력을 필요로 하며, 이는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왕성일 가능성을 높인다고 조심스레 해석했다. 성벽에서 나온 목탄과 나무에 대한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축조 시기는 중심 연대가 기원 전후쯤으로 백제 건국 시기와 부합하는 동시에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첫 도성인‘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중국에서 만든 청동 자루솥과 동경, 유리구슬, 금제 귀고리 등 상당한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화재가 출토된 점과 지난해 10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경당연립 재개발 고층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지난 12월과 1월 ‘대부(大夫)’라는 관직이름이 새겨 진 토기, 왕실 제사 유적으로 추정되는 동-서축 16m, 남-북축 14m의 여(呂)자형 대형 건물터, 왕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로 바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10여 개의 말머리뼈 등 초기 백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점도 주목이 되고 있다.

학자들은 아직 확실한 유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풍납토성이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와 일본서기 등의 내용을 고려할 때, 위례성이 북성과 남성으로 지칭되면서 하나의 도성체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한다. 학자들은 이런 기록을 토대로 풍납·몽촌토성이 하나의 성으로 축조된 왕성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출전 : http://www.archival-science.com/cultural_asset/m6_3_2_5.html
   
윗글 풍납토성과 사유재산권 보호 대책 (민족예술)
아래글 김태식, '한국판 폼페이' 풍납토성의 감춰진 진실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780 사전2 환도성 (두산) 이창호 2002-01-26 681
779 사전2 국내성 (두산) 이창호 2002-01-26 540
778 사전2 안학궁 (두산) 이창호 2002-01-26 572
777 사전2 궁남지 이창호 2002-09-15 665
776 사전2 가야 고분 이창호 2002-09-14 592
775 사전2 풍납토성 청동초두 이야기 이창호 2002-03-03 901
774 사전2 풍납토성 출토 청동 초두 이창호 2002-02-20 651
773 사전2 풍납토성과 사유재산권 보호 대책 (민족예술) 이창호 2002-02-19 769
772 사전2 풍납토성 (명지대) 이창호 2002-02-19 826
771 사전2 김태식, '한국판 폼페이' 풍납토성의 감춰진 진실 이창호 2002-02-19 514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