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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14 (토) 22:11
분 류 사전2
ㆍ조회: 593      
가야 고분
가야의 옛 영역이었던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일대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낙동강의 주변지역이 중심이 되며, 지리산 너머의 남원·임실 등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 고분은 구릉의 정상 또는 비탈을 입지로 선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당시의 산성(山城)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이는 점이다. 즉 대구 달성고분군의 남서쪽에 달성이 있고, 고령 지산동(池山洞)고분군 부근에 이산산성(耳山山城)이, 함안(咸安)의 말이산(末伊山)고분군 부근에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다.

그리고 하나의 구릉 위에 연주형(連珠形)으로 축조한 고분군의 양상은 서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고분은 기본적으로 원삼국시대의 여러 무덤형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각 지역마다 특색있게 변천하고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가야고분군에 대한 연구는 사료(史料)가 적은 가야사의 복원에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이들 고분에는 대표적인 돌덧널무덤[石槨墓] 외에 돌방무덤[石室墳]·움무덤[土壙墓]·널무덤[木槨墓]·독무덤[甕棺墓]·돌널무덤[石棺墓] 등이 있다. 신라·가야 지역에서 큰 봉토분, 즉 고총(高塚)의 발생은 실질적인 왕국의 출현과 때를 같이 하고 있을 것이며, 그것은 3세기 말~4세기 초 경이라고 생각된다.

이때까지는 아직 신라·가야 지역이 모두 돌널무덤·움널무덤[土壙木槨墓] 등을 쓰고 있었다. 움무덤은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주검을 넣는 무덤형식으로 주로 김해·창원·합천·부산 등지를 비롯하여 가야 영역 안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이 매장방식은 청동기시대 말기에 처음 등장하여 현재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어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덧널무덤은 일반적으로 구덩이 안에 덧널 시설이 마련되고 그 안에 널을 안치한 형식의 무덤이다. 한편 독무덤은 나무로 짠 널 대신 독 하나를 단독으로, 또는 두 개를 이어 붙여 사용한 것으로 널무덤과 같이 주로 낙동강 하류의 김해·부산·창원 등의 지역과 대구·안동 등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돌널무덤은 판석을 네모지게 조립해 만들고 그 안에 주검을 넣는 방법으로, 널의 한쪽에 칸을 지어 껴묻기용[副葬用]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며 머리쪽이 발치쪽보다 넓게 만들어져 있어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의 전통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무덤은 구덩이 안에 돌널을 넣어 만드는 것이 기본적인 방식이지만 부산 괴정동(槐亭洞)에서처럼 돌덧널[石槨] 안에 독널을 넣은 특이한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이전 단계의 무덤에서 4세기경에 이르면 경주에서는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 성행하고, 영남지역 일대에서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 널리 쓰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이 돌덧널무덤만을 가야고분이라고도 한다.

돌덧널무덤은 두꺼운 깬돌[割石]을 쌓아 네모진 돌덧널을 만들고, 다시 그 안에 주검을 넣은 나무널[木棺]이나 돌널[石棺]을 배치한 양식이다. 이 묘제는 돌상자무덤에서 변화 발전한 고인돌 이래의 전통이며, 움무덤과 함께 경상도 지방에 깔려 있는 기본 묘제라고 하겠다. 이것은 김해 예안리(禮安里)·부산 복천동(福泉洞)에서 보듯이 덧널무덤에도 채택되어 덧널무덤을 소멸시키는 결과도 되었지만, 경주의 김씨(金氏) 왕족들은 끝내 덧널을 고수해, 돌은 광벽(壙壁)이 아니고 덧널을 감싸는 보호막으로 쓴 것이다.

돌덧널무덤들은 지면에 구덩이를 파고 강돌·포갠돌 등을 쌓아서 네 벽의 돌덧널을 만들어 위로부터 주검을 넣은 구덩식과 세 벽과 천장을 먼저 쌓은 뒤 터진 한쪽 벽으로 주검을 넣고 그 벽을 막는 앞트기식[橫口式]으로 구분되는데, 두 형식 중 구덩식이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돌덧널무덤은 가야의 대표적인 무덤형식으로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차이가 보인다.

창녕·고령·경산 등지에서는 봉분의 기슭 주위에 둘레돌[護石]을 돌려주는 형식이 많고 칠곡 구암동(九岩洞)과 창녕에서는 돌덧널의 윗면 전체를 강돌로 덮은 것도 발견되고 있어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과의 관련도 엿볼 수 있다. 또 구덩식이 앞트기식으로 발전하면서 주로 많은 돌덧널을 가진 무덤으로 변해가는데, 고령 지산동에서는 돌덧널무덤과 봉분 둘레의 둘레돌 사이에 규모가 작은 돌널무덤이 여러 개 발견되었고, 이 돌널무덤들은 딸려묻기[殉葬]한 것들로 밝혀졌다.

이 밖에 돌방무덤은 가야 말기에 고구려·백제 무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무덤형식으로 원칙적으로 부부합장을 위한 무덤이다. 앞트기식 돌덧널과 대체로 동일한 구조이나 널방[玄室]을 만들고 그것을 막은 한쪽 짧은 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 것이 특색이다. 고령 고아동(古衙洞)과 영주시 순흥면(順興面)처럼 벽화무덤도 만들어졌는데, 지산동 절상천장총(折上天障塚) 등이 유명하다. 산청·진주 등지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묘제를 가진 가야고분은 대체로 돌널무덤→돌덧널무덤→돌방무덤 순으로 변천하는데 각 고분에는 조영시기를 대표하는 각종 유물이 껴묻혀 있어 가야의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들 가야고분에서는 토기를 비롯해서 널과 널장식·장신구·무기·말갖춤새 등이 출토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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