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1-26 (토) 12:05
분 류 사전2
ㆍ조회: 573      
안학궁 (두산)
안학궁 安鶴宮

북한의 평양시 동쪽에 있었던 고구려 시대의 궁성.

안학궁은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427년(장수왕 15년)에 건립된 궁성으로서 평상시 왕이 거처하여 정사를 펴던 곳이다. 그리고 567년(평원왕 9년) 오늘날의 평양 중심부에 건립된 장안성(長安城)으로 다시 천도할 때까지 고구려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평양시 대성산(大城山) 남쪽 기슭에 그 궁터만 남아 있다.

안학궁의 규모와 구조는 1957년부터 이루어진 안학궁터에 대한 발굴작업으로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꺼운 성벽으로 네모나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궁성 한 변의 길이는 622m에 이르고, 둘레는 2,488m, 넓이는 약 38만㎡에 달한다. 궁궐터는 남궁·중궁·서궁·동궁·북궁 의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거기서 모두 52채의 궁전터가 발견되었다. 중궁 가운데 제1호 궁전터는 앞면 길이가 90.5m, 옆면 너비가 33m, 궁전의 크기는 앞면이 87m, 옆면이 27m나 되는 매우 장대한 건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성벽은 돌과 흙을 섞어서 쌓았으며, 성벽 밑부분은 평균 너비 8.8m로 안팎에 일정 높이까지 돌을 쌓고 그 안에 진흙을 다져 넣었다. 성벽 네 모서리에는 각루를 세우고, 궁성의 문은 남쪽에 남문을 비롯하여 남서문ㆍ남동문의 세 대문이 있었으며, 동·서·북쪽에도 각각 하나의 대문이 있었다. 그리고 궁성 동서쪽 성벽 밖으로는 해자(垓字)가 있었다. 또 궁성에는 큰 궁전 등과 회랑, 인공적으로 만든 동산과 호수도 있었다.

이 궁성은 약 35cm의 고구려자[尺]를 사용하여 설계, 건립되었는데, 5세기 무렵의 고구려 건축술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윗글 국내성 (두산)
아래글 궁남지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780 사전2 환도성 (두산) 이창호 2002-01-26 681
779 사전2 국내성 (두산) 이창호 2002-01-26 540
778 사전2 안학궁 (두산) 이창호 2002-01-26 573
777 사전2 궁남지 이창호 2002-09-15 665
776 사전2 가야 고분 이창호 2002-09-14 592
775 사전2 풍납토성 청동초두 이야기 이창호 2002-03-03 901
774 사전2 풍납토성 출토 청동 초두 이창호 2002-02-20 651
773 사전2 풍납토성과 사유재산권 보호 대책 (민족예술) 이창호 2002-02-19 769
772 사전2 풍납토성 (명지대) 이창호 2002-02-19 826
771 사전2 김태식, '한국판 폼페이' 풍납토성의 감춰진 진실 이창호 2002-02-19 514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