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4-05 (목) 07:03
분 류 뒤안길
ㆍ조회: 4524      
[고려] 태조 왕건의 가족들
태조 왕건의 가족들

왕건은 신혜왕후 유(柳)씨를 비롯하여 총 29명의 아내를 두었으며, 그들에게서 25남 9녀를 얻었다. 29명의 부인들 중에서 제2비 장화왕후 오씨가 1남(혜종),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劉)씨가 정종과 광종을 비롯한 5남 2녀,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가 1남 1녀, 제5비 신성왕후 김씨가 1남, 제6비 정덕왕후 유(庾)씨가 2남, 숙목부인이 1남, 천안부원부인 임씨가 2남, 흥복원부인 홍씨가 1남 1녀, 소광주원부인 왕씨가 1남, 성무부인 박씨가 4남 1녀, 의성부원부인 홍씨가 1남을 낳았다. 이외에 정비 신혜왕후 유씨를 비롯하여 나머지 12명의 부인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이들 중 선혜왕후 유씨를 비롯한 여섯 왕비와 그들에게서 태어난 왕자들 중 후대 왕권 구도와 관계가 있는 대종과 안종의 삶을 간략하게 싣고, 혜종, 정종, 광종 등은 각 왕의 실록에서 다루기로 한다,

신혜왕후 유(柳)씨 (생몰년 미상)

태조의 본부인 유씨는 경기도 정주(貞州, 승천)에서 태어났으며, 삼중대광 유천궁(柳天弓)의 딸이다.

유천궁은 경기 북부 지역의 큰 부자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의 집안을 일컬어 '어른댁(長者家)'이라고 불렀다.

태조가 그녀와 만난 시기는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군대를 거느리고 각 지역을 정벌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궁예 휘하에 들어간 것이 896년이고, 왕건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으므로 장수로 활약할 만큼 성장한 때였다. 하지만 유천궁이 경기 지역의 유력가인 점을 고려한다면 아직 초적의 무리로 인식되고 있던 궁예 휘하의 장수에게 딸을 내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왕건이 유씨를 만난 시기는 궁예가 정식으로 후고구려를 세운 901년 전후가 될 것이다.

이때 유씨의 나이는 당시의 결혼 적령기인 열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계산해볼 때 유씨는 왕건보다 다섯에서 일곱 살 정도 아래였을 것이므로 그녀는 882년에서 884년 사이에 태어났을 듯싶다.

[고려사]는 왕건이 그녀를 늙은 버드나무 아래서 만났다고 되어 있다. 군대를 거느리고 정주(승천) 땅을 지나다가 말을 쉬게 하느라고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가 시냇가에 서 있는 유씨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넨 왕건은 그녀의 덕스러운 얼굴에 반해 그날 유천궁의 집에서 묶었다. 그리고 유천궁은 그날 밤 자신의 딸 유씨를 왕건과 동침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왕건이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쉬다가 개천가에 서 있는 유씨를 발견했다는 말은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의 일반적인 결혼 관념에 따르면 물 근처에서 여자를 만나는 것은 다산을 상징하고, 또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치부했다. 따라서 왕건과 유씨의 이야기도 이런 일반적인 결혼 관념에 끼어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유천궁은 경기 지역의 대부호였다. 때문에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뛰어난 장수를 사위로 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왕건 역시 경기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유천궁의 재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왕건이 유천궁의 사위가 된 것은 [고려사]의 이야기처럼 우연히 이뤄진 일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쨌든 유천궁은 자신의 딸을 왕건과 동침토록 했고, 왕건은 그의 집에서 얼마간 머물다가 떠났다. 왕건이 전장으로 떠난 뒤 소식이 없자 유씨는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그러다가 오래 뒤에 왕건이 이 사실을 알고 그녀는 데려와 부인을 삼았다고 한다.

유씨는 당찬 데가 있었던 모양이다. 궁예의 독단적인 처사에 반발하여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대사를 도모하자고 찾아왔을 때 왕건은 주저하였다. 이때 유씨는 밖에서 엿듣고 있다가 왕건을 독려하여 군사를 일으키게 했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유씨의 고려 개국 공로에 대해서는 934년 후당의 명종이 태복경, 왕경 등을 보내 그녀를 '하동군부인'에 봉하는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글은 '국사 대책을 좋은 계책으로 보좌하였으며, 부인으로서 총애와 우대를 받았다고'고 그녀를 칭찬하며 '일반적 관례를 초월하여 특수한 명예를 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씨는 아이를 낳지 못했고, 죽은 뒤 왕건의 묘 현릉에 합장되었다. 그녀의 사망 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장화왕후 오씨 (생몰년 미상)

장화왕후 오씨는 나주 목포 사람으로 부친은 오다련군이며 조부는 오부돈이다. [고려사]는 그녀를 미미한 가문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지는 않다.

왕건이 오씨를 만난 때는 910년을 전후한 무렵이다. 이는 혜종이 912년 태생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때 오씨의 나이를 당시 결혼 적령기인 17세 정도라고 추측해보면 그녀의 출생 연대는 대략 893년에서 895년을 전후한 시기가 된다.

왕건과 오씨의 만남을 [고려사]는 다소 신비화시키고 있다. 왕건이 나주에 진주하여 시냇가를 바라보니 오씨가 빨래를 하고 있어 동침했다는 것이다.

[고려사]는 왕건과 오씨의 동침 장면을 기록하며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태조가 그녀를 불러서 동침을 하였는데, 그녀의 가문이 한미한 탓으로 임신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정액을 돗자리에 배설하였는데, 왕후가 그것을 즉시 흡수하였으므로 임신이 되어 아들을 낳았는 바 그가 곧 혜종이다.

[고려사]는 또 이 일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혜종의 얼굴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주름살 임금'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씨의 신분이 미미한 탓에 혜종은 왕건의 장손임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뻔했다. 왕건은 장남 무를 세자로 삼고 싶었지만 오씨의 신분이 한미한 것을 염려하여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이때 대광을 맡고 있던 박술희의 도움으로 자신의 뜻대로 장남을 세자로 세우게 된다.

오씨는 혜종 이외에 자식을 낳지 못했으며, 사망 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신명순성왕후 유(庾)씨 (생몰년 미상)

신명순성왕후 유씨는 충주 사람으로 내사령 유긍달의 딸이다. 그녀는 태자 태, 정종, 광종, 문원대왕 정, 증통국사 등의 여섯 아들과 낙랑과 홍방 두 공주를 낳았다.

유씨는 다른 어떤 왕후보다도 많은 자식을 낳았고, 그녀 소생 중에 두 명이 왕이 되었으나 [고려사]는 그녀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고 있다. 또 유씨 소생 낙랑공주는 신라의 마지막 왕 김부(제56대 경순왕)와 혼인하여 왕건이 신라 세력을 포용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

왕건이 유씨와 결혼한 시기는 920년 이전으로 추측된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태자 태의 출생연대가 정종과 광종이 두 살 터울임을 감안할 때 920년 경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씨는 900년을 전후해서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며, 왕건이 왕이 된 이후에 처음 맞이한 왕비였던 만큼 당시의 세력 판도와 관련된 정략 결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왕건의 후비 중에 충주 출신은 그녀 하나뿐이었는데, 이것은 곧 그녀의 아버지 유긍달이 충주를 대표하는 호족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녀의 사망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그녀 소생 광종이 954년 봄에 숭선사를 창건하여 그녀의 명복을 빌엇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신정왕후 황보씨 (?∼983)

신정왕후 황보씨는 황주 사람으로 삼주대광 황보제공의 딸이다. 그녀 소생으로는 성종의 아버지 대종 왕욱과 광종의 비 대목왕후가 있다.

그녀가 제4비가 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신명왕후보다는 늦게 결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녀 역시 신명왕후의 경우가 마찬가지로 왕건이 호족세력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정략결혼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고려 건국 초기에 해당하는 920년경에 결혼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황보씨는 태조가 죽은 후 40년을 더 살았으며 사망 당시의 나이는 여든 살 가량이었다. 며느리 선의왕후가 일찍 죽는 바람에 성종을 비롯한 손자들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쏟았다. 효덕태자와 성종, 경장태자 등은 그녀가 직접 양육하였다.

태조의 부인 중에 황주 출신은 두 명이었는데, 그녀를 먼저 택한 것을 보면 황보제공이 황해도의 유력한 호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종조에 남긴 조문에 따르면 그녀는 덕이 많고, 성격이 후덕했으며, 검소하고 슬기로워 백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능은 수릉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다만 개성 근처일 것으로 추측된다.

신성왕후 김씨 (생몰년 미상)

신성왕후 김씨는 신라 왕족이며 경순왕의 큰아버지 김억렴의 딸이다. 김씨가 왕건의 제5비가 된 것은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935년 직후이므로 936년 초가 될 것이다.

935년 11월 신라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뜻을 표시하자 왕건은 이에 대한 답례로 사신을 보냈다. 고려 사신은 경순왕에게 왕건이 신라 종실과의 혼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전했고, 이에 경순왕은 자신의 사촌누이 김씨를 고려로 시집보낸다.

김씨 소생으로는 안종이 있는데, 그는 제5대 왕 경종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와 결혼하여 제8대왕 현종을 낳았다('경종실록' 헌정왕후 황보씨 편 참조).

그녀의 사망 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정덕왕후 유(柳)씨 (생몰년 미상)

정덕왕후 유씨는 경기조 정주(승천) 출신이며, 시중 유덕영의 딸이다.

그녀는 제6비였지만, 결혼은 제5비 신성왕후 김씨보다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 소생 선의왕후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 대종과 결혼하고, 문혜왕후가 제3비 신명왕후 유씨 소생 대종과 결혼한 것으로 봐서 그녀의 결혼 시기는 신정왕후 황보씨와 비슷한 시기인 920년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출생 연대도 신정왕후와 비슷한 시기인 903년쯤일 것이다.

그녀 소생으로는 왕위군, 인애군, 원장태자, 조이군 등의 네 왕자와 문혜왕후(문원대왕비), 선의왕후(대종비) 등이 있었다.

그녀의 사망 연대와 능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대종 욱(旭) (?∼969)

대종 왕욱은 신정왕후 황보씨 소생이며, 제6대 왕 성종의 아버지이다. 그의 출생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광종 20년(969년)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욱은 태조와 제6비 정덕왕후 유씨 소생 선의왕후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효덕태자, 성종, 경장태자, 헌정왕후(경종 3비), 헌애왕후(경종 4비) 등을 두었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태왕으로 추존되어 묘호를 대종이라고 하고, 능호를 태릉이라 하여, 대묘에 합사하였다.

안종 욱(郁) (?∼997)

안종 왕욱은 신성왕후 김씨 소생이며, 제8대왕 헌종의 아버지이다. 981년에 경종이 죽자 그의 제4비 헌정왕후 황보씨가 사가로 나와 거처하였는데, 왕욱은 그녀와 정을 통하여 임신케 했다. 이 일이 발각되자 성종은 왕욱을 귀양보냈으며, 그가 귀양가던 날에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고 죽었다.

성종은 헌정왕후가 죽은 후 왕욱의 아이를 보모에게 맡겼는데, 아이가 두 살이 되자 아버지를 찾으므로 왕욱에게 보냈다. 왕욱은 귀양지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죽음이 임박해오자 아들에게 금 한 주머니를 주면서 이렇게 유언했다.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에게 주고 나를 이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에 매장하되, 시체를 엎어 묻어달라"

유언을 남긴 왕욱은 성종 15년(997년)에 세상을 떴다. 그리고 그의 아들 현종이 1010년에 왕위에 오르자 효목대왕으로 추존되고, 묘호를 안종이라 하였다.

현종은 1018년에 그의 능을 건릉에 옮겼으며, 1028년에 능호를 무릉으로 개칭했다.

출전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 1996, pp.41∼49
   
윗글 [금산사, 법주사] 토착 미륵신앙의 땅, 금산사와 법주사 1
아래글 [인취사] 충남 아산 인취사 생태기행 "극락정토로세"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780 사료 [조선] 호패법 이창호 2002-06-10 4884
779 사전2 [고대] 단군신화 (한메) 이창호 2003-07-06 4616
778 사찰 [금산사, 법주사] 토착 미륵신앙의 땅, 금산사와 법주사 1 이창호 2001-05-12 4551
777 뒤안길 [고려] 태조 왕건의 가족들 이창호 2001-04-05 4524
776 사찰 [인취사] 충남 아산 인취사 생태기행 "극락정토로세" 이창호 2001-07-27 4501
775 사전2 [조선] 조선의 지방행정제도 (민족) 이창호 2003-04-28 4500
774 사전2 [조선] 조선시대의 정치 (민족) 이창호 2003-04-28 4483
773 사전2 [사상] 유교-조선후기의 유교 (민족) 이창호 2004-03-28 4309
772 시대 [근세] 4. 근세 사회의 성격 (지도서) 이창호 2001-04-05 4286
771 사전2 [고려] 고려 (브리) 이창호 2003-05-10 4191
12345678910,,,8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