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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30 (일)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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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89      
[현대] 북한-문화 (한메)
북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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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

[문화]

<언어>

북한은 언어의 기능을 혁명의 무기로 파악하여 언어의 혁명성·계급성·투쟁성을 강조함에 따라 인위적이고 적극적인 언어정책을 펼쳐왔다. 한편 <서울 표준어는 부르주아적 요소와 복고주의적 요소가 있으므로 이를 쓰면 인민들의 의식 속에 반동적 부르주아사상과 봉건·유교사상을 비롯한 온갖 낡은 사상이 머리를 쳐들게 될 것>이라는 이유로 <사회주의적 생활방식에 맞고 김일성이 몸소 쓰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도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제하였다고 언급하지 않고, 김일성이 <찾아주시고, 지켜주시고, 키워주신 우리 문화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평양말 또는 <문화어>라고 이름하여 한국어의 이질화(異質化)를 심화시켜 왔다. 8·15 이후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여 오다가 1949년부터는 한자를 폐지하고 한글을 전용하고 있으며, 66년 6월 이래 내각 직속의 <국어사정위원회>와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서 어휘선정과 사전편찬 작업을 하였다.

<문학>

북한의 문학은 <근로자·인민 대중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양하며 온 사회를 혁명화·노동계급화하는 데 복무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사회주의 건설 초기에 대중을 교양·혁명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인정되었던 문학은 대중교화 매체로서의 영화 등장과 함께 그 위치가 약간 흔들리고 있으나, 오늘에 와서도 시·소설뿐 아니라 영화문학 및 희곡, 가극의 대본 등으로 여전히 <혁명적 문화>의 핵심적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문학사조는 초기에는 8·15 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으나, 70년대 이후에는 주체사상을 보다 중시하게 되었다. 작품은 대부분 <어버이 수령과 지도자 동지>에 관한 것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당의 혁명전통, 경제건설, 남조선혁명 등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김일성에 대해서는 <수령형상문학>이라는 장르 아래 <4·15창작단>을 비롯한 전문단체가 창작한다. 그러나 최근 이광수·염상섭·채만식·이효석 등 소설가와 김소월·한용운 등 시인이 논의와 조명의 대상이 됨으로써 북한문학이 고정된 이념가치에서 탈피하여 부르주아문학을 재평가하는 변화를 보이는 등, <동질성 회복>에 눈뜨고 있다.

<문화·예술단체>

북한의 문학·예술단체는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의 선전선동부와 정무원 산하 문화예술부의 통제 아래 활동하고 있다. 모든 문화·예술단체는 정무원 문화예술부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에 망라되어 있고, 모든 예술인은 문예총에 가입해야만 문화·예술인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문예총에는 조선작가동맹·조선음악가동맹·조선영화인동맹·조선연극인동맹·조선미술가동맹·조선무용가동맹·조선사진가동맹 등 7개 문학·예술분야 직능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다. 대표적인 연극단으로는 국립연극단과 평양연극단 등이 있는데, 이들은 <3대 혁명연극>을 비롯한 각종 혁명적 연극을 주로 공연하는 상설 연극단이다.

북한의 연극은 한국과 같은 소극장 중심의 공연방식과 달리 대부분 수백 명에서 수천 명까지 동원되는 <집체예술>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극·가무(歌舞)예술단의 경우, 혁명가극·음악·무용 등 공연예술물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상설 예술단들이 조직되어 있다.

가무단과 가극단으로는 1971년 창단된 피바다가극단(합창단·무용단·교향악단 등 300여 명으로 구성), 1946년 평양가무단으로 출발한 만수대예술단(무용단·관현악단·성악인 등 300명), 47년 창단된 평양예술단(단원 300명), 평양학생소년예술단(68년 창단, 단원은 16세 이하 남녀학생 110명), 인민군협주단(47년 창단, 단원 300명), 평양교예단(52년 창단, 단원 300명) 등이 가장 유명하다.

한편 대부분의 공연장은 시설규모가 대단히 큰 것이 특징인데, 여기서 주로 공연되고 있는 <혁명가극>이나 <혁명연극>의 등장인물이 대부분 수백 명에 달하는 대작물이므로 무대가 특히 넓고 음향이나 조명시설 등이 잘 구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요 공연장은 평양 시내에 집중되어 있으나, 각도에도 도립 예술극장이 하나씩 있고, 시·군에는 <문화회관>이 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어 있다. 평양 시내에 있는 대규모 공연장으로는 2·8문화회관·평양대극장·동평양예술극장·만수대예술극장·모란봉극장 등이 유명하다.

북한에서의 극장이란 연극이나 가극의 공연을 위한 대규모의 시설을 뜻한다. 영화 상영을 위주로 하는 곳은 영화관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극장보다 소규모이다. 평양에서 유명한 영화관은 개선영화관·낙원영화관·전승영화관 등이다.

<연극·영화>

혁명연극의 경우, 《성황당》 《3인일당》 《경축대회》 등을 <3대 혁명연극>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것 역시 항일투쟁시기에 김일성이 창작·공연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비극적 요소가 강한 3대 혁명가극과는 달리 이들 혁명연극은 보다 풍자적이고 희극적인 요소가 짙다.

이들 3대 혁명연극은 가극보다 늦은 1978년 이후에야 비로소 정형화되었다. 한편 북한에서는 해마다 백 수십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데, 예술영화(극영화) 30여 편, 기록영화 30∼50편, 과학교육영화 30여 편, 아동영화 10여 편 등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들 영화의 주제와 제작방침은 모두 김일성 교시와 김정일이 썼다는 《영화예술론》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예술영화는 주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2·8예술영화촬영소 등에서 제작되고, 기록영화는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되며, 과학·아동영화는 조선과학교육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된다.

유명한 영화로는 북한의 인기배우인 오미란(吳美蘭)이 주연하여 1987년 평양에서 열린 비동맹·개발도상국의 국제영화축전에서 3개 부문에 걸쳐 횃불금상을 수상한 《도라지꽃》과 신상옥(申相玉)이 감독하고 최은희(崔銀姬)가 주연한 《소금》이 있는데, 《소금》은 1985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밖에도 이춘구(李春求)의 《열네번째 겨울》과 《군당책임비서》, 오혜영의 《나의 행복》, 최진우의 《월미도》 및 10부작 《임꺽정》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음악>

북한의 음악은 전통음악인 민족음악·교향곡·배합관현악 등의 연주곡과 가곡·가요·가극·아리아 및 영화주제가 등의 성악곡으로 크게 구별된다. 민족전통음악의 경우 악기가 많이 개량되어 전통적 음색에서 보면 변화가 크다.

발성법도 판소리 등에서 요구되는 두성·복성을 피하고 목에서 나오는 가냘픈 듯한 가성(假聲)을 쓴다. 서도창·남도창 등의 창법 차이도 사라졌다. 배합관현악은 민족전통악기와 서양악기를 혼합하여 연주하며, 민족적 음악으로서 중시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고전음악과 대중가요의 구분이 없어 대중가요나 영화의 주제가도 가곡과 차이가 없으며, 가요나 영화주제가의 가사 창작도 문학창작의 한 장르로 인정되고 있다. 북한의 국가는 박세영(朴世英) 작사, 김원균(金元均) 작곡으로 1947년 김일성에 의해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대개 행사 시작 때는 《김일성장군의 노래》을 부르고, 끝날 때는 《김일성수령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를 부르며, 국가는 대체로 대외관계 행사 때에 관현악으로 연주된다. 북한의 가요는 남한의 가곡과 가요를 합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전에는 송가(頌歌)·당정책가요·노동가요·행진가요·서정가요·아동가요 등 6가지로 구분했으나, 최근에는 대중가요를 포함시켜 7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한편 90년 10월 남한의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평양의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하고, 12월에는 북한의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의 90 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 참가함으로써 남북분단 45년 만에 남북음악교류가 이루어진 것은 뜻깊은 일이었다.

<미술>

흔히 도예·자수 등의 공예, 유화·조선화 등의 회화 및 조각·선전화·벽화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특이한 것은 <조선화>라고 하는 수채화로서, 전래의 동양화에 서양식의 채색을 가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자연 대상 자체를 유미주의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자연주의적> 풍경화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혁명사적지나 묘향산·백두산·금강산 등의 명산 및 노동의 모습을 담은 구상적 회화는 <사실주의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한편 포스터나 입간판 등을 <직관물>이라 하는데, 직관물에 해당하는 각종 선전화·포스터의 제작도 전통미술의 한 분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추상화를 <부르주아 반동적 표현기법>으로 간주하여 거부하기 때문에 추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무용·교예(巧藝)>

서양식의 발레와 전통무용의 2가지 유형이 있으나, <민족무용>이라고 하는 전통무용을 중시하여 해외공연은 거의 전통무용으로 꾸며지고 있으며, 자유로운 몸짓으로 미를 추구하는 현대무용은 퇴폐적이고 부르주아적이라 하여 거부되고 있다. 1987년부터 무용의 모든 동작을 기본으로 34개 자모를 결합시켜 표현하는 <무용표기법>을 개발해 쓰고 있다.

민족무용은 <혁명적 무용>으로 정비되었는데, 집단무(集團舞)가 강조되고 춤사위가 보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변화되었다. 북한이 자랑하는 레퍼토리로는 《칼춤(검무)》 《조국의 진달래》 《눈이 내린다》 《키춤》 등이 있다. 북한에서는 교예를 <육체운동을 형상수단으로 하여 인간의 체험과 정서, 지향 등을 반영함으로써 사회교양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 하여 서커스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중시하고 있다.

곡예(서커스)는 <착취계급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어 예술이 아니지만, 계급이 청산된 사회주의 사회의 교예는 참된 예술이라고 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한편 북한의 교예는 87년 몬테카를로 국제마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데, 높은 기교뿐만 아니라 힘차고 웅장한 스케일로도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혁명가극>

가극의 형식에다 항일·계급투쟁의 줄거리를 담은 것으로서, 《피바다》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은 북한이 자랑하는 <3대혁명가극>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피바다》는 1936년 8월 김일성이 2번째로 만강부락에 들어가 농민들을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연극으로 공연했었다는 혁명가극 중 대표적 작품이다.

이것은 8·15 후 소설·영화·가극 등의 형식으로 개작되었다. 이 가극은 무용·음악·미술을 대규모화하여 정형화한 첫번째 작품으로서, 이후 <피바다식 혁명가극 창작원칙>이 확립되어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을 대규모 가극으로 개작하는 지침이 되었다.

《꽃파는 처녀》는 북한에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고 하는 혁명가극 3편 가운데 가장 먼저 창작된 것으로 1930년 김일성이 오가자에서 연극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북한정권 수립 후 소설·영화·혁명가극 등의 형식으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1920년대 말에서 3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하여 꽃분이라는 어린 처녀가 혁명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낭만적이면서도 애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서경(序景), 내용 7장, 종경(終景)으로 구성되어 있고, <피바다식 혁명가극>의 제작방침에 따라 거대한 무대장치, 무대배경으로부터의 입체 조명과 환등 처리, 대규모 배경합창단의 합창과 군무 등을 도입하여 음악·무용·미술을 조화시킨 종합예술로서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36년 김일성이 각본을 쓴 것을 만강부락에서 최초로 공연했다는 것으로 8·15 이후 소설·영화·혁명가극 등으로 각색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일본이 비적(匪賊) 방지라는 미명 아래 만든 <민생단>이라는 자위단체가 동북항일연군 속에 첩자를 침투시키고 조선인과 중국인, 조선인과 조선인 사이의 이간질을 획책하였던 실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해설되고 있다.

<종교>

K.마르크스는 일찍이 종교란 <민중의 현실적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제, 즉 아편이다>라고 하여 종교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공산주의적 종교관은 북한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져서 김일성은 일찍부터 <종교는 일종의 미신이다.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상 미신을 믿는 것이다.

종교는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되어 인민을 기만하는 착취·압제의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또 근래에 들어와서는 제국주의자들이 후진국가 인민들을 침략하는 사상적 도구로 이용되었다>라고 《김일성저작선집(1967)》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헌법 제54조에는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선전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신앙의 자유와 함께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동시에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관에 따라 북한에서는 일찍부터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위한 혁명화 시책의 일환으로 반종교정책을 강력히 추진해 온 결과, 1955년 무렵에 이르러서는 북한에서의 모든 종교단체와 종교의식은 완전히 사라졌거나 지하화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은 자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사들에게 <가정교회>를 소개하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바티칸 교황청에 도움을 청하여 교회를 짓는 등 종교에 대한 대외적 유화정책(宥和政策)을 펴기 시작하였다. 1988년 이후에는 공인된 종교적 장소, 즉 교회·성당·사찰에서는 고유의 종교의식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북한에서 종교가 완전히 대중화·보편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방북 외국인 및 해외교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종교실태는 다음과 같다.

① 프로테스탄트교

오늘날 신자는 약 1만 명이며, 1983년 10월 《신·구약성서》가 발간되었고, 정식 교회당은 1988년 건립된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2개가 있다. 교직자는 목사와 전도사 등 약 15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신자들은 전국에 약 500개가 넘는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보며, 20여 명의 목사가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거의가 8·15 전에 안수를 받은 원로 목사들로 알려져 있다.

② 가톨릭

전국에 약 800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선전되어 왔다. 1988년 10월 평양에 최초로 장충성당이 건립되었는데, 이 성당에서는 보통 약 100명의 신자가 주일에 미사에 참례하는데, 신자의 연령층은 대부분이 40~50대이고 남녀 비율은 반반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③ 불교

전국에 약 1만 명 가량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국의 60여 개 사찰에 300여 명의 승려가 있다고 한다. 1988년 5월 석가탄신일 기념 법회가 정권수립 이후 처음으로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거행되었다. 조선불교도연맹은 1986년 세계불교도연맹(WFB)에 가입하였다.

④ 천도교

천도교 신자는 약 1만 5000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86년부터 천도교기념일의 하나인 천일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종교단체로는, 1945년 창설된 조선불교도연맹, 1946년에 창설된 조선기독교도연맹, 1946년 창설된 조선천도교중앙지도위원회, 1988년 창설된 조선천주교인협회와 종교단체간 협의체로 1989년 창설된 종교인협의회 등의 4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중앙 기구만 있을 뿐 하부조직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라는 노동당의 외곽단체에 가입되어 있으면서 한국의 종교계를 의식한 선전활동이나 노동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대내외 성명서 채택, 국제적인 종교단체들과의 연대를 위한 활동에만 치중하고 있다.

<스포츠>

북한의 스포츠는 군중체육·학교체육·국방체육 등 3개 분야로 구분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국방체육은 1967년 김일성 교시 <체육사업에서 국방체육을 대중화하는 데 대하여>가 발표된 이후 특히 강조되어 왔다.

국방체육이란 <인민들을 조국보위에 튼튼히 준비시키기 위하여 진행하는 대중적인 체육이며, 군사활동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군사지식과 기술기능을 습득하여 전체 인민들과 군인들을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군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튼튼하게 준비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체육>이라 말한다.

체육정책 담당기구로 정무원 산하의 국가체육위원회가 체육분야의 최고정책기관이며, 그 산하에 체육지도위원회(도)·체육구락부(시·군)를 두어 해당 지역단위 체육행정을 맡아보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국가체육위원회 산하에 국방체육협회·권투협회·농구협회 등 30여 개의 협회가 조직되어 있어 해당 분야 체육활동의 진흥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체육인 양성기구로는 조선체육대학·중앙체육학원 외에 각도에 고등체육전문학교가 설치되어 있으며, 각 사범대학과 교원대학에 체육학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중앙체육학원은 8년제로 인민학교 졸업생 중에서 체육특기자를 선발하여 전문교육을 실시한다.

그 밖에도 최고수준의 우수 선수들을 선발, 훈련하는 선수단이 상설되어 있는데, 2·8체육단(인민무력부 산하)·천리마체육단(정무원교육부 산하)·기관차체육단(철도안전부 산하)·강철체육단(조선직업총동맹 산하)과 북한의 대표급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4·25체육단 등이다.

전문체육인에 대한 대우를 보면, 국가대표선수 및 각 기관 소속 체육선수에게는 보수와 <소비품 공급> 등에 특혜를 주며, 우수 선수에게는 <공훈체육인>, 최우수 선수나 체육공로자에게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부여하고, 국기훈장 1급을 수여하기도 한다. 또한 연로연금지급에 있어 중앙기관의 국장급에 상응하는 예우 등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의 인민체육인으로는 육상의 신금단(辛今丹), 빙상의 한필화(韓弼花)와 1972년 뮌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사격의 이호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복싱의 구영조 및 레슬링의 이재식 등이 있다.

북한에서 개최되는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는 김일성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만경대상체육대회, 김정일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백두산상체육대회가 있고, 보천보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보천보횃불상체육대회, 당 및 정권창건기념 체육종목별선수권대회 등이 해마다 개최되며, 동계 빙상선수권대회가 2~3년마다 1회 정도 열리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그 동안 자본주의 경기라는 이유로 외면되어 왔던 야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평양에 야구장이 건립되고, 야구단을 결성하는 등 야구붐이 일고 있다. 1990년 8월에는 국제야구연맹(IBA)에 가입을 신청하였으며, 12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

주요 체육 시설에는 15만 명의 수용인원을 자랑하는 5·1경기장이 있으며, 제 13 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대비하여 1988년 9월에 준공된 안골체육촌에는 탁구·농구·배구·역도·수영·배드민턴경기관 등 10개의 체육시설과 기타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다. 백두산 부근의 삼지연(三池淵)은 천혜의 동계 스포츠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그 밖에 남포를 비롯한 각도에 3~5만 명 수용능력의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북한은 축구·탁구·체조·마라톤·역도·사격·빙상 등이 강세이다. 한편, 남북한은 1991년 4월 제 41 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일본)에 남북단일팀이 출전,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하였고, 6월의 제 6 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포르투갈)에도 단일팀이 출전, 세계 8강에 올랐다. 이것은 1963년 남북간에 체육단일팀 구성문제가 논의된 이후 28년만의 경사였고, 금후 남북단일팀 출전의 계기가 되었다.

<교육>

북한교육은 학업에 전념하는 교육체계와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를 양립시키고 있다. 교육을 공산주의 사회건설에 필요한 인간 양성수단으로 간주함에 따라 교육목표도 <주체형의 공산주의적 새 인간>의 육성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교육에 관한 기본정책의 수립과 총괄적 지도 및 통제는 노동당중앙위원회 산하의 과학교육부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중앙에서는 정무원 교육위원회가 노동당의 지도 아래 교육정책을 시행하고, 교육에 관한 행정을 총괄·지휘한다.

도·직할시 및 시(구역)·군 단위에서는 행정 및 경제지도위원회의 교육국(도)과 교육부(시·군)가 해당지역 단위에서의 교육행정을 관장하고 있다. 교육내용은 교육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정치사상적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탁아소에서부터 대학에 이르는 모든 교육과정에는 <인민을 노동계급화·혁명화·공산주의화>하는 정치사상교육 내용이 최우선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같은 정치사상교육의 내용 가운데 특히 주체사상에 의한 유일사상 무장과 집단주의적 가치관, 계급의식 등이 가장 우선되는 가치덕목으로 강조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교육제도의 본질은 전반적인 의무교육제도라고 규정하고, 1956년에 초등의무교육제, 1958년에는 중등의무교육제를 실시하였으며, 67년부터는 전반적 9년제 기술의무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1975년부터는 전반적 11년제 의무교육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유치원에서부터 인민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의 과정까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수업료·교과서·교복·학용품 등이 무상이거나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고등교육기관으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하여 4~6년제 일반대학, 3년제 교원대학, 2~3년제 고등전문학교 등이 있고, 더 높은 교육기관으로 3~4년제 연구원(硏究院), 2년제의 박사원(博士院)이 있다.

박사원은 1961년 2월 <내각결정 제 19호>에 의해 대학과 각종 과학원 등 연구기관에 설치되었는데, 자격요건은 학위(학사)와 학직(부교수)을 소지한 사람으로서 2년 이내에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대학 가운데 40% 이상은 큰 공장이나 기업소·협동농장·어장 등에 병설되어 운영되고 있는 공장대학·농장대학·어장대학 등이다. 이들 대학들은 각종의 교육시설에서 교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당 기업소나 농장이 자체 조달하고 운영하게 되어 있어, 정규 대학이라기보다 소속 근로자나 노동자들의 기능·기술 습득과 훈련을 위한 특수한 형태의 현장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는 3년제 근로자고등중학교, 4년제 공장고등전문학교, 5~6년제 공·농·어장대학 등에 부설되어 있는 야간교육과정과 통신교육과정이 있으며, 이 밖에 당과 정권기관 및 경제부문 간부들을 양성하기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인민경제대학·공산대학·김일성고급당학교·사로청대학 등이 있다. 그러나 고등교육은 개인 희망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의 추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학과의 선택도 당의 양성계획에 의해 배정받게 된다.

1990년 8월의 각급 학교 및 학생현황을 보면 대학교 273개교(31만 4000명), 고등전문학교 약 600개교(18만여 명), 고등중학교 4062개교(280만 6000명), 인민학교 4790개교(202만 2000명), 유치원 약 2만 4000개(140만여 명), 탁아소 약 3만 6000개(210만여 명) 등이 있다. 오늘날 북한은 교육의 질적 개선과 함께 전 사회의 인텔리화를 지향한 고등의무교육 실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특히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과학>

한편, 북한의 과학연구에 관한 기관으로는 최고기관으로 공화국과학원(共和國科學院)과 사회과학원(社會科學院)이 있고, 대학연구기관 외에 정무원의 각부·위원회 산하의 경공업과학원·농업과학원·교육과학원·의학과학원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공화국과학원은 1952년 창설되었는데, 64년 사회과학 부문을 분리시켜 사회과학원으로 발족시켰다. 이들 과학연구기관에서는 기초과학연구와 함께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이론적·실천적 여러 문제, 특히 국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과학화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과학 기술적 문제들의 연구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언론·출판>

북한의 각종 언론매체들은 <김일성 동지의 교시와 그 구현인 당의 노선과 정책을 해설·선전하고, 그것을 철저히 옹호·관철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고, 인민들의 정치사상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여 그들을 당과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 세우는 데 복무하는 것>으로, 대중 동원과 선전 선동 매체로서의 기능을 주된 임무로 하는 것이다.

① 방송

모든 방송수단은 당과 정무원에 의해 이원적으로 통제되는 가운데, 정무원 직속의 조선중앙방송위원회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민영방송은 없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중앙에 중앙방송국과 평양방송국, 원산·개성·남포·사리원·함흥 등 10곳에 지방방송국이 있으며, 유선방송으로 제3방송이 있다.

중앙방송은 대내용으로서 300kW의 출력이며, 중파 3개, 단파 4개 채널로 매일 22시간씩 방송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대외·대남선전용으로서 500kW의 출력으로 매일 23시간 30분씩 방송한다. 1989년 1월 1일 개국한 평양 FM방송은 주파수 92.5MHz와 105.2MHz로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방송한다.

이 밖에 특이한 것으로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대남사업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구국의 소리> 방송도 있다. 텔레비전(TV)방송의 경우 평양 TV방송은 1969년 8월부터 5kW의 출력으로 정규방송을 흑백으로 시작하였다. 1970년 4월 평양 TV를 조선중앙 TV로 개칭하였고(채널 11, 출력 25kW, PAL 방식), 1971년 대남용으로 개성 TV방송국(채널 10, 출력100kW, NTSC 방식)을 개국하였다. 컬러방송은 1974년 4월 15일 김일성의 62회 생일을 계기로 처음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 평양지방을 시청권으로 하는 만수대 TV방송국(채널 6과 12, PAL 방식)을 개국함으로써, TV방송국은 모두 3개가 되었다.

만수대 TV는 일요일에 외국영화를 방영하여 인기가 높다. TV의 방송시간은 평일의 경우 오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이고,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이다. 정기뉴스는 오후 6시와 9시 두 차례 방송된다.

② 신문

1989년말 현재 북한의 주요신문으로는 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의 기관지인 《로동청년》 등 중앙지 3개와 각 도별 지방지 10개 등 일간지가 있고, 이 밖에 격일간지 2종, 주 2회 발행지 9종, 주간지 2종이 있으며, 영·불어판 《평양타임스》와 《인민군신문》 등 특수지가 발간되고 있다.

북한의 신문은 뉴스의 전달매체라기보다는 <대중을 교양 선동하는 주요 무기>로 인식되기 때문에 기사 작성과 배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당의 철저한 지도와 통제 아래 이루어진다. 북한의 입장을 대내외적으로 공식표명하는 《로동신문》은 1946년 9월 1일에 창간되어 1년 내내 쉬지 않고 6면으로 150만 부를 발간하며, 가두판매도 하고 있다.

특수 일간지의 하나로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발행하는 기관지인 《평양신문》은 다른 신문과는 달리 연재소설·만화·상품광고·날씨기사, 영화 및 방송프로그램 소개 등 다양한 내용으로 편집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③ 통신

유일한 통신사로 46년 12월에 설립된 조선중앙통신사가 있다. 이 통신사는 정무원 직속 기관으로 있으면서 노동당 및 정무원의 대변매체로서 대내외 통신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으며, 일간 《조선중앙통신》 《사진통신》, 영어·러시아어·에스파냐어·프랑스어 등의 외국어 통신과 《조선중앙연감》을 비롯한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④ 잡지

북한의 모든 잡지는 금성청년출판사·문예출판사·사회과학출판사 등 국영 출판사나 조선직업총동맹·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작가동맹 등 여러 직능 단체들이 관련된 잡지를 분야에 따라 나누어 발행하고 있어 서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요한 잡지로는 정치교양 분야의 정기간행물로 《근로자》 《로동자》 《남조선문제》, 종합교양지로 《천리마》, 대외선전용으로 《Korea Today》 《Democratic People's Republicof Korea》 등이 있으며, 기타 각 분야별 전문지가 발간되고 있다.

<학술>

북한의 학술연구는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을 막론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에 공헌해야 하며, 당정책의 정당성과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및 기술혁명을 발전시키는 데 주력해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는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분야에서도 <주체>를 철저히 세울 것을 학술연구의 기간(基幹)으로 삼고 있다.

① 철학:초창기에는 마르크스철학이 연구의 주류를 이루어, 북한의 현실을 마르크스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성행하였다. 그 뒤 6·25를 거치면서 평화공존의 문제와 유심론철학 및 봉건사회로부터 공산주의 사회로의 비약적인 이행 여부 등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60년대부터는 <주체확립>이라는 대명제 아래 주체확립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북한의 대표적 철학서로는 정진석(鄭鎭石)·정성철(鄭聖哲)·전창원(全昌元)의 《조선철학사》와 최봉익의 《조선철학사상사연구》가 있는데, 여기서는 한국 철학사를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투쟁으로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철학적 사유 외에 계급투쟁의 정치사상·경제사상까지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② 민속학

북한 민속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에 걸쳐 물질생산문화에 대한 괄목할 만한 연구업적을 내놓고 있다. 즉 기존의 연구를 벗어나서 역사발전의 합법칙성으로서의 경제활동에 관련된 생활과 풍습에 주목하고 민속을 취급함에 있어서 생산풍습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이로부터 농촌근로자들의 풍속과 공장근로자들의 풍속을 대별하게 되었고, 민속형성의 역사적 과정의 순서로 보아 농민들의 생산풍습에 우선권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농민들의 생산풍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산력 발전 수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생산도구에 관한 연구에 진력하게 되었으며, <경제학이 민속학을 대신할 수 없다>는 명제도 제시하게 되었다. 이는 민속학에서 취급하는 생산도구에 관한 연구가 경제기술적 측면보다는 사회역사적 측면에서 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③ 역사학

8·15 이후 소련 역사학 방법을 모방한 북한의 역사학은 한국사의 유물사관적 해석에 주력함으로써, <한국사상의 노예제>의 실재여부 파악이 주된 문제로 부각되었으며, 1950년대∼60년대로 이어져 실학을 유물론에 입각하여 해석하였고, 한국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파악하였다. 또한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과 그의 사회주의 건설이론 등을 이론화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고고학 분야의 연구에서는 최근까지도 의욕적인 유적 발굴작업을 해오면서, 전기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수많은 고구려 고분 및 성지(城址) 등을 발굴하는 등 다채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한계로 인하여 문화적 우수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계급투쟁적 관점에서의 해석과 평가에 치중하고 있다.

④ 경제학

북한 경제학계는 1960년대 들어 이론적인 문제보다는 당장 경제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 실천문제에 주력하였고, 경제사연구에서는 근대 초의 자본주의 발전에 관한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 뒤 60년대 말부터 다른 학문분야와 동일하게 김일성의 경제사상과 경제이론을 해설, 선전하는 데 중점을 두어, 북한경제학을 <김일성의 경제학>으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추세는 경영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부분적으로 소련과 동유럽권에서 실시되는 리베르만방식에 의한 이윤추구와 독립채산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⑤ 교육학

북한에서의 교육은 처음부터 혁명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공산주의교육은 정치교육>이라는 소련식 교육관에 입각하여 교육목표가 세워졌기 때문에, 교육학도 마르크스 레닌주의 교육이론에 따라 수행되어 왔다. 따라서 북한의 교육학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교육의 기술적 문제해결에 이바지한다는 차원의 학문이며, 공산주의 교양과 계급교양이 궁극적인 목표로서 제시되었다.

결국 북한의 학술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탐구의욕에 의한 연구결과를 당이 정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책화를 위해 개인의 연구가 강요된다는 모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물·유적>

북한은 8·15 후의 남북분단 상황 아래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보해 보려는 의도로 유물·유적 발굴사업을 광범하게 벌여왔다. 이에 대하여 북한은 <유물·유적의 발굴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 영도하신 항일무장투쟁사를 전면적으로 연구, 체계화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적 기초가 마련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민족문화유산의 계승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민들의 애국사상을 고취하고 대중교양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유물·유적의 발굴 및 복원활동을 추진해 왔다.

북한은 8·15 직후부터 조직이나 법률정비를 끝내고 유물·유적 발굴사업을 활발히 벌여 1960년대 중반까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46년 4월 임시인민위원회에서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공포하고, 각 도인민위원회 산하에 <보존회>를 설치했다.

이어 1948년에는 <조선물질문화 유물조사보존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무부의 책임 아래 유물·유적의 발굴·보존·관리를 관장하도록 했다. 그 뒤 1952년 10월 과학원을 개설하고, 그 산하에 <물질문화연구소>를 두어 이 사업을 전담하게 했다. 1957년에는 과학원에서 사회과학원이 분리됨에 따라 물질문화연구소를 <고고학 및 민속연구소>로 개칭하여 사회과학원 산하에 두었다.

오늘날 유적·유물의 발굴·연구사업은 고고학 및 민속연구소에서, 보존·관리사업은 정무원 직속의 <문화유물보존지도국>에서 각각 담당하는 2원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처음으로 시작한 유적발굴사업은 1947년 함경북도 웅기군(지금의 先鋒郡) 송평리(松坪里) 조개더미〔貝塚〕를 들 수 있으나, 학문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뒤 1949년 함경북도 나진시(羅津市) 초도(草島)와 황해남도 안악군(安岳郡) 1·2·3호 고분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발굴대상을 시대별로 나누어 보면 구석기시대 8곳, 신석기시대 10여 곳, 청동기시대 30여 곳, 초기 철기시대 15곳, 삼국시대 이후 40여 곳으로 추계(推計)되고 있다.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평양특별시 상원군(祥原郡) 검은모루동굴에서 발굴된 홍적세 동물화석과 석기 등이 있고, 1987년 발굴된 황해남도 태탄군(苔灘郡) 의거리(義擧里) 부근의 동굴유적은 구석기인들이 동굴생활을 해왔음을 실증해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온천군(溫泉郡) 유적과 황해북도 봉산군(鳳山郡) 지탑리(智塔里)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온천군 유적에서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와 움집터가, 지탑리 유적에서는 조로 짐작되는 탄화곡물이 들어 있는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1981년에 발굴된 평양특별시 삼석구역(三石區域) 호남리(湖南里) 남경 유적을 들 수 있다. 한편 초기철기시대 유적으로는 1959년 발굴된 평양특별시 만경대(萬景臺) 유적, 1954년 발굴된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오동(五洞) 유적 등을 들 수 있으며,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벽화고분·돌무지무덤〔積石塚〕·산성 등 고구려 유적이 대부분이다.

북한이 발굴한 고분은 모두 58기로 이중 21기는 만주 지안〔輯安〕에 분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90년 이후 평양특별시 등 10여 개 지방에서 유물 및 유적이 발견되었다. 즉 평양특별시·개성직할시 및 황해남도 신원군(新院郡) 등지에서는 고조선(古朝鮮)·고구려시대의 유물이, 평안남도 순천시(順川市),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등지에서는 고대 유물이 각각 발굴되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황해남도 신원군 장수산 일대에서 발굴된 고구려 유적지인데, 북한의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남방정책의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이 유적지를 건설했다>고 주장하면서 이곳을 <남평양 유적지>로 명명하였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은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行宮)터와 축대토방·산성·고구려고분·벽돌과 붉은 기와 등이다.

행궁터는 남북길이 4㎞, 동서길이 5㎞이며, 축대토방의 규모는 76×67m 정도라고 한다. 산성의 경우 총길이는 10.5㎞이며, 험준한 능선을 돌아가면서 성벽을 쌓은 전형적인 고구려식 산성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 역사학자들은 행궁터의 규모가 평양특별시의 안학궁(安鶴宮)에 못지않은 점, 벽돌에 제작연도가 313년으로 기록되었다는 점, 대규모 고분이 발견된 점 등을 들어 이곳이 4세기 때 남방진출을 위한 강력한 기지로 만들어진 고구려의 <부수도(副首都)>였다고 주장하였다.

평양특별시에서 발굴된 고조선시대 유물로는 놋단검·청동·황동·은팔찌·가락지 및 섬세한 명주·천 등이 발굴되었다. 이와 함께 개성에서는 50여 점의 고려자기와 10여 점의 청동제품들이 출토되었는데, 청동정수병(靑銅淨水甁)과 네 귀 달린 청자가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청동정수병은 높이 35㎝, 지름 13㎝로 깨끗한 물을 담아두는데 쓰였으며, 네 귀 달린 청자는 형태와 색깔이 우수한 고려청자의 걸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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