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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17 (수) 20:54
분 류 사전3
ㆍ조회: 857      
[근대/현대] 노동운동 (두산)
노동운동 labour movement 勞動運動

근대적인 임금노동자 계급이 생활조건을 유지·개선시키기 위하여 전개하는 조직적인 운동.

I. 개관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창출 및 증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노동력의 상대적인 과잉화를 초래하여 산업예비군(産業豫備軍)을 만들어 내고, 필연적으로 약자인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절대적 궁핍화를 불가피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이에 따라 자본축적에 따른 빈곤의 축적과,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가계급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항과 투쟁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투쟁이 바로 노동운동이다.

즉, 노동운동은 노동자계급의 일상적인 요구, 끊임없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 임금 등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기본목적으로 하면서, 크게는 노동자계급이 임금의 노예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노동운동은 목적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생산자로서의 임금노동자들이 임금 등 노동조건의 유지·개선을 목적으로 벌이는 노동조합운동, 둘째, 영국의 노동당과 같이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노동자들이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정치 활동을 전개하는 노동자 정당운동, 셋째, 로치데일의 소비조합운동과 같이 노동의 재생산(再生産)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전개하는 노동조합운동이 그것이다.

ll. 역사

노동운동이 처음 발생한 곳은 산업혁명을 맨 먼저 이룩한 영국이었다. 영국 노동운동의 선구자는 17세기 후반에 중세의 직인층(職人層)에서 발생한 우애조합(友愛組合:friendly society)이다. 이 조합은 상호부조와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조직되었는데, 그후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은 이 조합의 영향을 받아 공제운동(共濟運動)의 형태로 이어졌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의 진행으로 종래의 수공업직인(手工業職人)이 임금노동자로 전락하자 신식기계와 공장제 공업의 발전에 반감을 품은 노동자계급은 러다이트운동(Luddites Movement)이라는 공장기계 파괴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영국 정부는 1799년 단결금지법을 제정하여 노동운동을 탄압하였으나, 1822년에 이 법을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도 급속히 발전하여 R.오언 등의 지도로 1834년 50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포함하는 전국노동조합대연합(全國勞動組合大聯合)이 결성되었으나 방해와 재정궁핍 등으로 실패하였다.

또 1832년에 제정된 신선거법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은 선거권 확장을 요구하며 차티스트운동(Chartist 運動)이라는 폭력적 정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고, 1844년 로치데일의 노동자 28명이 시작한 로치데일조합(Roche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라고 하는 소비협동조합운동도 노동운동의 유력한 일부가 되었다.

17세기 후반 점차 자본주의의 기초가 안정되어 감에 따라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이 탄생하였는데, 1851년 합동기계공조합(合同機械工組合)을 선구로 토목공·탄갱부(炭坑夫)·방직공들 사이에 널리 퍼진 직업별노동조합(職業別勞動組合:craft union)이 그것이다. 이 운동은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용인하면서 숙련직공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하여 일정한 임금수준을 유지하도록 하려는 운동으로서 오늘날의 노동조합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운동은 본능적·자연발생적인 운동에서 조직적·계획적인 사회운동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정당운동도 나타났는데, 18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여 평화와 협동의 원리에 입각한 이상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공상적 사회주의는 본래 노동운동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K.마르크스와 F.엥겔스가 양자를 결합하여 1847년 세계 노동자들의 단결을 전제로 하는 공산주의 동맹을 결성하고 이듬해 그 강령이라 할 수 있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조직은 1851년 해산되었다. 그 후 서유럽 제국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국제적 단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1864년 런던에서 제1인터내셔널을 결성하였고, 1889년 파리에서 제2인터내셔널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내부 분열과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국가간의 대립으로 붕괴되었으며, 1919년에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제2인터내셔널을 재건하여 1940년 와해될 때까지 공산주의를 모체로 하고 있던 제3인터내셔널과 대항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독일·이탈리아·에스파냐 등에서 파시즘(Facism)이 대두되어 노동운동은 이들 국가 내에서 크게 제약받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인 1945년 파리에서 세계노동조합연맹(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이 결성되었으나 냉전의 격화에 따른 내부 분열로 서방 자유세계의 노동조합들이 탈퇴, 1949년 런던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을 조직하여 세계노동조합연맹에 대항하게 되었으며, 많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거나 연립정부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노동운동은 세계 각국에서 빠르게 활성화되어,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노동운동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세력으로 자래매김하였다.

lll. 한국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부산·원산·인천·목포·군산 등의 항구가 차례로 개항되면서 형성된 부두노동자와 전국 각지의 광산노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1898년 목포항의 부두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으며, 1901년 운산광산에서는 채광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가는 것에 반대하여 광산노동자들이 노동을 거부하는 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때의 노동운동은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운동이라기보다는 자연발생적·산발적으로 전개되었다는 데에 그 한계가 있었다.

그후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일본의 식민지 공업화정책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운동은 민족독립운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급격히 성장한 노동자들의 조직력을 기반으로 1920년 조선노동공제회와 노동대회가 창립되었다.

이 두 단체는 비록 계몽단체의 성격을 띤 노동운동조직이었으나, 최초의 전국단위의 노동자 조직이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후 이들은 1922년 조선노동연맹회와 1924년 조선노농총동맹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1925년 다시 조선농민총동맹과 조선노동총동맹으로 분리되었다.

이처럼 노동운동이 조직화되면서 노동자들의 파업도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노동운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노동운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어 그해 12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결성되었다.

신탁통치 찬반문제를 둘러싼 당시의 정치상황이 노동운동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미군정은 좌익계 노동단체인 전평을 불법화하고, 그들의 비호 하에 1946년 3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을 탄생시켰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노총은 유일한 합법노조로 인정되었고, 그 명칭도 1954년 4월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대한노총)로 바꾸었다. 제1공화국 시기에 대한노총은 자유당 정권의 전위대로 활동하다가 5·16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1961년 8월 군사정권은 '재건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하향식으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결성하도록 하였다. 한편, 1960년대와 197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됨에 따라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었고, 노사대립이 격화되었으며, 사회적 불균형이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의 노사개입이 이루어졌다. 이에 노동운동은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민주노조 결성 등을 요구하며 극한투쟁을 벌였다.

특히 1970년대에 발생한 전태일분신자살사건, 동일방직사건, YH무역농성사건 등은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청년지식인들의 노동현장 참여가 이루어졌고, 그와 함께 민주노조건설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면서 유신체제에 대하여 민주화를 요구하는 정치투쟁과도 결합되었다.

1980년 민주화운동이 고조되면서 노동운동도 활성화되었으나 5·17비상계엄확대조치로 다시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 이후 7·8월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대우조선 등 대기업의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과격화·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결과 신규노조가 급증하게 되었고, 기존의 한국노총에 대한 어용화시비가 일면서 1990년 1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가 결성되었다.

한편, 사무직종사자·교사 등의 화이트칼라층에서도 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이 조직되었다. 또한 11월에는 16개의 대기업노조들이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조회의'(대기업연대회의)를 결성하여 임금협상 등에서 보조를 맞추기로 하였다.

1993년 6월에는 전노협·업종회의·현대그룹노조협의회(현총련)·대우그룹노조협의회(대노협) 등이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를 결성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들 신규노조의 탄생으로 현대중공업과 서울지하철 및 철도 파업 등과 같이 대규모화하면서, 그 동안 장기간 유지되던 한국노총의 단일체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1995년 11월 전노협·전국업종노동조합회의(업종회의)·전노대 등이 주축이 되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결성한 뒤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양대 축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3년의 경우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강행과 관련한 전교조의 연가투쟁, 운송하역노조 화물연대의 5월 총파업, 그리고 6·28 철도파업에 이어 7월에는 철도파업에 대한 무력진압에 대항해 금속산업연맹·화학섬유연맹·보건의료노동조합 등이 연대파업에 들어가는 등 한국의 노동운동은 갈수록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1년 12월 말 현재 민주노총의 총 노동조합수는 966개, 총조합원수는 59만 5594명, 총가맹조직은 금속산업연맹·공공연맹·전교조·사무금융연맹 등 16개 산업별 연맹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 산업별 노동조합수는 제조업이 216개, 비제조업이 747개이며, 이 가운데 847개가 수도권에, 850개가 비수도권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반면 한국노총은 2002년 12월 말 현재 3,374개의 단위노동조합에 총 94만 774명의 조합원이 있으며, 27개의 회원조합, 16개의 지역본부, 52개의 지역지부가 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엔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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