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1-10 (토) 18:18
분 류 사전3
ㆍ조회: 2558      
[근대/현대] 올림픽대회 (민족)
올림픽대회(Olympic會)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정한 도시에서 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스포츠경기 대회.

[개설]

올림픽대회는 고대 그리스 제전경기(祭典競技)의 하나인 올림피아제(Olympia祭)에서 기원되었다. 올림피아제는 기원전 776년에 시작되어, 4년에 한 번씩 393년까지 총 293회가 개최되었다. 그 뒤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1896년 프랑스의 쿠베르탱(Coubertein,P.)에 의하여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되었다.

처음에는 하계대회만을 실시하여 오다가 1924년부터 동계대회가 신설되었고, 올림픽대회라고 하면 통상 하계대회를 일컫는다. 올림픽대회는 1996년 아틀란타올림픽대회까지 26회가 개최되었고, 동계올림픽대회는 1998년 나가노대회까지 18회가 개최되었다.

근대올림픽의 개최목적은, 첫째 아마추어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신체적·정신적 자질의 발전을 도모하고, 둘째 스포츠를 통한 상호이해와 우의증진 정신으로 젊은이를 교육하여 보다 발전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며, 셋째 전 세계에 올림픽 정신을 널리 보급하여 국제친선을 도모하는 데 있다.

이에 따라 올림픽대회의 참가는 어떠한 국가나 개인·인종·종교 또는 정치적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모든 참가자는 ‘이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라는 올림픽 신조를 가장 소중히 지키고 존중하여야 한다.

[고대올림픽대회]

고대 그리스인들은 각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시기에 올림피아·피티아(Phthia, 기원전 582년)·이스트미아(Istmia, 기원전 582년)·네미아(Nemia, 기원전 573년) 등에서 신을 찬양하기 위한 제전경기를 벌였다.

이 중 올림피아제가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것으로, 기원전 776년을 그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 올림피아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절대신인 제우스(Zeus)에게 바치는 일종의 종교행사에서 비롯되었으며, 펠레폰네소스반도 서부연안의 올림피아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올림픽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이 경기대회를 개최한 것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은 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이를 단련시켜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신을 숭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는 도시국가 형태인 여러 개의 폴리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올림피아대회는 순수한 헬라(Hella)인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고, 신을 모독한 자나 범법자·노예 등은 제외되었다.

또한, 참가선수는 10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대회 한 달 전 제우스신전에 기도를 올리고, 합격심사를 거친 뒤 한 달 동안 감독 밑에서 합숙을 하도록 하였다.

이는 현재의 선수등록·예선이나 출전기록·합숙 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대회 전후 한 달 동안은 선수와 관객의 안전을 위하여 그리스 전역에 휴전이 선포되었고, 제전은 엄숙한 가운데 개막되었다.

한편, 여성에 대해서는 선수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참관조차 할 수 없었다. 대회 기간은 처음에는 하루뿐이었으나, 전성기에는 5일간으로 연장되었고, 국세가 신장됨에 따라 참가자도 그리스 전역에서 지중해의 식민지까지 확대되었다.

경기 종목은 처음에는 단거리 종목 한 가지뿐이었으나, 점차 중거리경주·장거리경주·5종경기·레슬링·권투 등이 추가되었다. 그 내용은 〔표 1〕과 같다.

올림픽대회의 승자에게는 제7회 때부터 신의 나무〔神木〕로 상징되는 올리브나무의 가지와 잎으로 된 관이 주어졌고, 이때는 모두가 일어나서 승리를 축하하였다.

또한 올림피아에 승리자의 상(像)을 세웠으며 고국에서는 성벽의 일부를 헐고 그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올림픽의 승자가 많은 나라에는 성벽이 필요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패권다툼으로 점차 국가주의적인 경향이 짙어져 전문적인 선수를 양성하고 승리를 추구함에 따라 올림픽 정신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기원전 338년 그리스는 독립을 잃고 마케도니아의 치하로 들어갔다. 알렉산더 대왕은 경기를 애호하여 마케도니아 치하에서도 올림픽 경기를 계속하게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네로 황제 때에 이르러서는 4년에 한 번씩 개최하던 올림픽대회를 2년 동안이나 연기시켰다.

네로황제는 자신의 부하 50명을 참가시켜 승리를 강점하는 한편 역대 우승자의 상을 부수어 버리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올림픽대회의 신성성이 완전히 무시되고 동시에 그리스의 인구감소와 국력쇠퇴로 경기를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테오도시우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293년 기독교 이외의 신을 모시는 행위를 금지하라는 칙령을 내리자, 고대 올림픽대회는 제393회를 마지막으로 개최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올림픽대회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올림픽 스타디움의 경주로(競走路) 길이를 거리 측정 단위로 삼은 것과 우승자를 처음으로 등록한 기원전 776년을 그리스의 기원 원년으로 한 점, 달리기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의 이름으로 올림피아드(Olympiad)를 명명하였던 점 등이 그것이다.

한편, 올림픽대회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던 점이나 대회기간 동안 전쟁 중지 등은 근대 올림픽에서 인종과 종교 차별의 금지, 세계평화와 우의증진이라는 이상과 목적 설정의 근본이 되었다.

[근대올림픽대회]

(1) 변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대회는 르네상스시대까지 1,000여 년 동안 장막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때에 이르러 그리스 문화를 찬양하고 재현하려는 운동으로 말미암아 올림피아 유적을 발굴하게 되었고, 1881년 독일의 쿠르티우스(Curtius,E.)가 올림피아 유적 발굴에 성공하면서 “올림피아 제전이 그리스 문화의 근원이었다.”라는 획기적인 발표를 하게 되었다.

이에 쿠베르탱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대회에 심취하게 되어 스포츠를 통한 청소년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하여 세계 청소년을 한자리에 모아 우정을 나누게 함으로써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 1892년 프랑스 스포츠연맹 창설 3주년 기념회의에서 올림픽의 부활을 제창하였다.

쿠베르탱의 제창은 곧바로 결실을 맺지는 못하였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1894년 6월 국제스포츠회의에서 각국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받게 되어, 1896년 제1회 올림픽대회를 아테네에서 개최하기로 하는 한편, 국제교류를 위하여 4년마다 각국 도시를 돌아가면서 개최하도록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올림픽에 관한 모든 문제를 협의, 결정하기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발족되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에는 13개 국에서 311명의 선수가 참가하였고, 경기는 10개 종목이었다. 1908년 영국의 런던에서 개최된 제4회 대회는 종래에 개인자격으로 참가하던 것을 이 때부터 국가를 대표해서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하게 되었다.

191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5회 대회부터는 개최국의 정부와 개최 도시가 대회경비를 부담하고 찬조금도 공식화되어, 이 대회를 계기로 더욱 충실한 단계로 발전하게 되었다.

1920년의 제7회 대회 때부터 쿠베르탱이 5대륙을 상징하는 청·황·흑·녹·적색의 오륜기를 고안하여 대회장에 등장시켰고, 1921년에는 〈올림픽헌장〉을 제정, 공포하였다.

1924년부터는 동계 경기가 독립되어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16개 국 307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제1회 동계대회를 개최하였고, 경기 종목은 5개였다. 1928년의 제9회 대회 때에는 경기장의 마라톤탑 위에 커다란 돌접시를 얹어 놓고 여기에 불을 피워 대회기간 동안 타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성화(聖火)의 기원이 되었다.

1936년 제11회 대회 때부터는 그리스 신전에서 성화를 채화하여, 개회식장까지 옮겨와 성화대에 점화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1964년 제18회 대회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일본의 동경에서 개최되었고, 1980년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2회 대회는 공산권에서 열린 최초의 대회였는데,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자유진영 70개 국이 불참하여 올림픽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어 제23회 대회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자, 이번에는 소련 등 동유럽국가 20여 개 국이 불참하여, 올림픽대회가 정치적·군사적 대결로 동서세력의 대치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러나 1988년 제24회 대회가 우리 나라의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160개 국이 참가하여, 스포츠를 통한 동서화해와 세계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역대 올림픽대회와 동계올림픽대회의 개최지 및 규모는 〔표 2〕·〔표 3〕과 같다.

(2) 한국의 올림픽 참가

우리 나라는 1947년에 IOC에 가입하였고, 1948년 7월 제14회 런던올림픽대회부터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하였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이 올림픽대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제10회 대회 때부터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대회에서는 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마라톤에서 손기정(孫基禎)이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하고, 남승룡(南昇龍)이 3위를 차지하여 마라톤 한국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으나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어 민족의 울분을 자아냈다.

여기에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없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경주 모습을 호외로 발행하여 정간을 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48년 제14회 때부터 정식으로 참가하여 육상·농구·복싱·축구·역도·사이클·레슬링 등 7개 종목에 68명이 출전하였고, 1952년의 제15회 헬싱키대회에는 6·25전쟁중이었지만, 올림픽의 이념구현을 위하여 5개 종목에 14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올림픽대회에서는 올림픽대회 참가 사상 처음으로 양정모(梁正模)가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제23회 로스앤젤레스대회에서는 유도의 하형주(河亨柱)·안병근(安炳根), 복싱의 신준섭(申俊燮), 레슬링의 김원기(金原基)·유인탁(柳寅卓), 양궁의 서향순(徐香順) 등이 6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밖에 은메달 6개와 동메달 7개를 기록하여 140개 국이 참가한 가운데 10위로 부상,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였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대회에서는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160개 국 중 종합순위 4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금메달을 탄 선수들을 살펴보면, 양궁에서 김수녕(金水寧)이 여자개인전에서 우승하고, 김수녕·왕희경(王喜敬)·윤영숙(尹映淑)이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하였고, 남자단체전에서도 박성수(朴成洙)·전인수(田仁秀)·이한섭(李漢燮)이 우승하여 양궁에서만 3개의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탁구에서도 여자 복식의 양영자(梁英子)·현정화(玄靜和)와 남자단식의 유남규(劉南奎)가 우승하여 금메달 2개를 차지하였고, 단체구기종목에서는 최초로 여자 핸드볼 팀에서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나머지 6개는 모두 체급경기인 격투기 종목에서 나온 것으로, 레슬링은 그레코로만형 74㎏급에서 김영남(金永南)과 자유형 82㎏급에서 한명우(韓明愚)가, 유도는 60㎏급에서 김재엽(金載燁)과 65㎏급의 이경근(李璟根)이, 복싱은 플라이급에서 김광선(金光善)과 라이트미들급에서 박시헌(朴時憲)이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우리 나라의 역대 올림픽대회 참가 현황과 메달 획득 결과는 〔표 4〕와 같다.

한편, 동계올림픽대회의 경우 우리 나라는 제4회 대회 때 김정연(金正淵)·이성덕(李聖德)·장우식(張佑植) 등 3명의 선수가 처음으로 참가하였고, 1948년 제5회 대회 때부터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감독과 선수들이 참가하였다. 역대 동계올림픽대회 참가 내역은 〔표 3〕과 같다.

[대회구성]

올림픽대회의 개최에 관한 규정을 정한 〈올림픽헌장〉은 제1장 기본원칙, 제2장 국제올림픽위원회, 제3장 국내올림픽위원회, 제4장 올림픽대회, 제5장 올림픽대회 부칙이 5장 60조로 되어 있다. 이 〈올림픽헌장〉을 중심으로 대회의 여러 가지 구성 요건을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기본원칙

올림픽대회는 4년을 1기로 하는 올림피아드(올림픽 기간)마다 열린다. 그러나 반드시 그 올림피아드 최초의 해에 열어야 하고, 제1연도에 열지 않을 때에는 대회가 없는 올림피아드로 되고 순서대로 순번을 붙인다.

동계올림픽대회는 올림피아드 기와는 별도로 제8올림피아드의 1924년에 개최된 대회를 제1회로 하여 실제 실시된 횟수에 따라 순번을 붙이며, 하계대회와 같은 해에 실시한다. 올림픽대회에서는 그 나라 국민만이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을 가지게 되고, 대회는 개인 사이의 경기이지 국가간의 경기는 아니다.

② 국제올림픽위원회 규약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대회와 올림픽 운동에 관한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며, 개별 경기의 기술적 통제는 각각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 ISF)에 위임한다.

올림픽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맹하고 있는 국가올림픽위원회(National Olympic Committee, NOC)만이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영리 목적이 없는 조직으로 자주적인 독립단체이며, 모든 정치·종교·상업적인 압력을 받지 않는다.

③ 올림픽대회

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선수의 연령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 공식 프로그램은 육상·조정·농구·복싱·카누·사이클·펜싱·축구·체조·역도·핸드볼·필드하키·유도·레슬링·수영·다이빙·수구·근대5종·승마·사격·양궁·배구·요트 등의 경기 가운데에서 선택된다.

그 밖에 건축·문학·음악·회화·스포츠우표·사진 등의 예술전시를 하게 된다. 대회기간 중이나 대회 전 또는 대회가 끝난 지 1주일 동안은 대회 개최지나 그 주변에서는 다른 국제경기대회를 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또한, 대회의 프로그램은 최소한 3대륙 및 40개 국에서 남자에 의하여 실시되고 있는 경기, 여자는 2대륙 및 25개 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경기에 한하여 포함시킨다. 단체 경기는 참가신청국을 6∼16개 국까지로 제한하고, 경기는 1∼6위까지가 결정되었을 때 끝내도록 하였다.

한편, 대회조직위원회(Olympic Organizing Committee, OOC)는 그 나라의 독특한 경기와 외래의 경기 각 1개씩을 시범 종목으로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올림픽 메달은 수여하지 않는다.

동계올림픽대회는 스키·스케이트·아이스하키·봅슬레이·루지 및 바이어슬론을 실시할 수 있고, 메달과 상장은 하계대회 때 사용한 것과 다른 것으로 사용한다.

대회의 상은 대회조직위원회가 만들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수여하는데, 1·2·3위는 각각 금·은·동메달을, 4·5·6위는 상장만을 수여한다. 개회식 때에는 개최국의 언어표기순 또는 ABC 순으로 각국이 행진하고,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는 행진의 선두에 서며, 개최국은 맨 마지막에 서게 된다.

이들 각국 대표단은 주경기장을 한 바퀴 돈 뒤 중앙에 정렬하며, 개최국의 원수가 개회선언을 하고 이어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간단한 환영사를 하게 된다. 그 뒤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올림픽기가 서서히 게양되고, 개최도시의 시장은 전회에 대회를 개최한 도시의 대표자가 넘겨 주는 올림픽기를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받게 된다.

이어 최종주자가 올림피아에서 운반해 온 성화를 들고 트랙을 한 바퀴 돈 뒤 성화대에 점화하고, 선수대표의 선서, 개최국의 국가연주, 대표단 퇴장이 이어진 뒤 갖가지 축하 프로그램이 펼쳐지게 된다.

올림픽대회의 오륜기는 1920년 제7회 대회 때부터 사용하였는데, 흰바탕의 기 한가운데에 5대륙을 상징하는 청·황·흑·녹·적의 5색 고리를 연결시켜 세계적인 우의와 단결을 상징하고 있다.

올림픽의 이상은 한마디로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 증진에 있다. 따라서 올림픽의 표어도 ‘보다 빠르게(citi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강하게(fortius)’로 하였다.

또한 “올림픽대회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쿠베르탱의 말이 올림픽의 이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올림픽의 개최는 국제스포츠단체의 기초를 확립시켰고, 각국의 스포츠단체는 올림픽을 목표로 체육진흥을 도모하였으며, 세계인의 우의증진과 문화교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회가 해를 거듭하면서 국가 사이의 국력과시의 전시장으로 변모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정치적인 대립에 휩싸여 본래의 순수한 이념이 오염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올림픽의 바른 정신을 재정립하여 세계 젊은이들의 순수한 우정의 장으로 구현해나가도록 세계 각국의 노력이 요망된다.

≪참고문헌≫

大韓體育會史(대한체육회, 1965), 大韓體育會50年(대한체육회, 1970), 올림픽대회참가보고서(대한체육회, 1932∼1996), 체육연감(대한체육회, 1973∼1998).

<정찬모(鄭燦謨)>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근대/현대] 올림픽경기대회 (두산)
아래글 [현대] 민속씨름대회 (브리)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2978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개회식 및 폐회식 (민족) 이창호 2004-01-11 3134
2977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성화봉송 (민족) 이창호 2004-01-11 1565
2976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전야제 (민족) 이창호 2004-01-11 1645
2975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스포츠이외의 행사 (민족) 이창호 2004-01-11 2189
2974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대회준비 및 운영 (민족) 이창호 2004-01-11 2551
2973 사전3 [현대] 서울올림픽대회-개관 (민족) 이창호 2004-01-10 2160
2972 사전3 [근대/현대] 올림픽대회 (브리) 이창호 2004-01-10 2390
2971 사전3 [근대/현대] 올림픽 (한메) 이창호 2004-01-10 4676
2970 사전3 [근대/현대] 올림픽경기대회 (두산) 이창호 2004-01-10 3102
2969 사전3 [근대/현대] 올림픽대회 (민족) 이창호 2004-01-10 2558
12345678910,,,303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