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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1-10 (토)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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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3037      
[근대/현대] 올림픽경기대회 (두산)
올림픽경기대회 Olympic Games

IOC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스포츠대회.

I. 개관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스포츠대회이다. 본래 올림픽 경기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경기(祭典競技)의 하나로, 종교·예술·군사훈련 등이 삼위일체를 이룬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하고도 찬란한 결정체였다.

여러 신을 섬기던 각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올림픽 대회가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면 올림피아로 몰려들어 신전에 참배하며 제례를 지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 경기가 훈련의 성격을 띠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고대올림픽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았지만, BC 776년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문헌상의 기록을 근거로 통상 이때를 올림피아의 원년으로 본다. 이후 1,200여 년 동안 계속되다가 그리스가 로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 AD 394년 폐지를 명령하는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바로 AD 393년에 열린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고대올림픽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경기 종목은 장거리 및 단거리 경주, 권투, 경마, 마차 경주, 트럼펫 경연이다. 승자에게는 월계관이 씌어졌으며, 500드라크마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한 공개적인 축하행사에서 귀빈석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와 평생 연금을 받았다.

그후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던 고대올림픽 경기는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on)의 노력으로, 1894년 6월 23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파리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유럽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얻어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당초 그의 의도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 패하여 사기가 저하된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고, 아울러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하여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상호이해와 우정을 다지고 세계평화를 이룩하려는 데 있었다.

1896년 유서깊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13개국 311명으로 ‘인류평화의 제전’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걸맞지 않은 작은 규모였다. 올림픽이 국제대회로서 면모를 갖춘 것은 1908년 제4회 런던대회 때 부터였다.

이 대회에는 22개국 1,999명이 20개 종목에 참가함으로써 대회규모가 획기적으로 확대되었는데, 각국이 처음으로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하였으며 경기규칙 제정, 본격적인 여자경기종목 채택, 마라톤 코스의 확정 등 조직과 관리면에서 체계가 갖추어졌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이 사업의 실현을 위해서 단지 산파역할을 하였지만, 그의 한결같은 염원은 이 대회가 영원한 성공을 거두어서 아름다운 스포츠정신이 세계 어느 곳에나 보급되어 온 세계의 청년들이 진실로 평화를 사랑하며 인생에 대한 존엄성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이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이상은 바로 현실생활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 이상 3가지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쿠베르탱은 올림픽 경기의 이상을 인간의 완성은 물론 세계의 평화에 두었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교류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이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림픽 경기의 아이디어는 꿈이 아닌 합리적인 정신의 소산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함에 따라 올림픽 경기의 숭고한 정신은 점차 퇴색하여 그동안 제1·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3번이나 중단되었고, 최근에는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테러가 일어나는가 하면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례까지 빚고 있다.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22회 모스크바 대회 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여 자유진영 국가들이 불참하는 사태를 빚었으며, 제23회 로스앤젤레스 대회 때는 그 반작용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불참사태를 가져왔다.

그러나 동·서 냉전으로 인한 분단의 현장인 서울 올림픽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과 쿠바 등 몇 나라를 제외한 동·서가 한자리에 모이는 대축전이 되었으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대회,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 대회에 이어 제27회 대회는 2000년 9월에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렸으며, 2004년 제28회 대회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린다. 오늘날 세계각국의 스포츠인들은 근대올림픽이 창설된 6월 23일을 ‘올림픽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동계대회는 하계대회와 별도로 4년에 한 번씩 겨울기간에 열린다. 제1회 대회는 1924년 프랑스의 사모니에서 개최되었으며, 16개국 258명의 선수들이 빙상·스키·아이스하키·봅슬레이·군대정찰경기 등 5개 종목에 참가하였다.

한국은 제1·2·3·4·6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참여하였다. 1994년 제17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 1998년 제18회 일본 나가노 대회에 이어 2002년 제19회 대회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다.

ll. 고대올림피아제

1. 기원 및 정신

그리스의 제전경기는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로 많이 개최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성대하고 유명했던 것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피아(Olympia)와 피티아(Pythia), 2년마다 열리는 이스트모스(Isthmos)와 네메아(Nemea)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올림피아는 BC 776년에 시작하여 가장 오래 지속되었고 영향력이 제일 컸으며, 모두 293회에 걸쳐 AD 393년까지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이 올림피아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절대신인 제우스 주신(主神)에게 바치는 일종의 종교행사로, 그 여흥으로 여러 가지 운동경기가 열렸다.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반도 서부연안의 올림피아에서 열렸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올림픽’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는 도시국가 형태인 여러 개의 폴리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각 도시국가는 다른 도시들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잠시 동맹의 형태로 결합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느 시기에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혀서 모이고 흩어진 형편이라, 이러한 범헬라적인 행사는 사실상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영향력이 큰 올림픽 경기를 주기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올림픽 참가자들이 경기에 참가하는 행위가 제약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올림픽이 열리는 때에는 선수와 참관인의 왕래를 돕기 위해 일체의 전쟁행위를 중단하였다. 이는 다름아닌 올림픽평화를 뜻하며, 이념의 대립에 의한 반쪽 올림픽 또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중단해야 했던 20세기의 올림픽과 대조를 이룬다.

처음에는 참가한 도시국가가 10여 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뒤 점점 늘어나 제23회 올림픽 때는 100개가 넘는 거의 전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에서도 참가하기에 이른다. 올림픽경기의 우승자에게는 상품으로 올리브관을 수여하였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피아제를 통해서 육체와 정신의 단련은 물론, 온 국민의 단합과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오늘날 근대 올림픽에서도 여러 민족과 국가가 이 행사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2. 경기내용

고대올림픽의 경기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의 자격규정은 매우 엄격하였는데, 순수한 헬라인으로서 남자일 것, 배신자나 범법자가 아닐 것, 10개월 이상 체육관에서 연습을 쌓을 것, 대회 1개월 전에 올림피아제에 참가하여 제우스 신전에 기도를 올리고 자격심사에 합격할 것 등이었다. 또한 여성에 대해서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참관조차 할 수 없었으며, 이방인과 노예도 참가할 수 없었다.

대회기간은 처음에는 하루였으나 황금시대에는 5일로 연장되었다. 초기에는 경기종목이 단순하였으므로 하루만에 모든 일정이 끝났지만, 종목이 점점 추가되고 참가인원 및 참가 도시국가의 수가 많아지면서 자연히 행사일정도 길어졌다. 기원전 3세기 말로 접어들면서 전체 올림픽 프로그램은 5∼7일로 진행되었다.

경기종목은 최초에는 단거리경주 종목뿐이었으나 대회의 발전과 더불어 종목이 추가되었다. 단거리경주는 191.27m의 직선코스(1스타디온)로 돌기둥을 세워 20개 코스로 구획하여 20명이 동시에 출발할 수 있게 했으며, 기록에 따르면 52년 동안 이 한 종목만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BC 724년 제14회부터는 디아울로스라 하는 중거리경주가, BC 720년 제15회부터는 돌리코스라는 장거리경주가 실시되었다.

BC 708년 제18회 대회 때부터 고대5종경기와 레슬링이 도입되었다. 고대5종경기는 근대5종경기와 마찬가지로 군사훈련을 염두에 두고 도입된 경기로, 멀리뛰기·창던지기·단거리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이 포함되었다. BC 688년 복싱이 처음 선을 보였으며, 길이가 2m쯤 되는 끈을 손에다 감고 상대편이 쓰러지거나 손을 들어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하였다.

BC 680년 4두전차경주는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었으나 더러 사고가 일어났다. 경마와 격투기는 BC 648년 제33회 대회부터 실시되었다. 판크라티온은 인기 있던 종목으로, 레슬링과 복싱을 합친 것 같은 격렬한 격투기였다. 나팔수·전령경주는 제96회 대회부터 실시되었다.

소년경기는 BC 632년 제37회 대회부터 단거리경주와 레슬링이, 제38회 대회부터는 5종경기가, BC 616년 제41회 대회부터는 복싱이 실시되었다. BC 520년 제65회 대회부터는 몸에 투구와 갑옷을 입은 채 한 손에는 방패와 다른 손에는 창을 들고 스타디온을 왕복으로 달리는 무장경주가 도입되었다. 쌍두전차경주는 BC 408년 제93회 대회부터 실시되었다.

소년 판크라티온은 BC 200년 제145회 대회 때 한번 실시되었다. 승리자에게는 제7회 대회부터 신목이라 불린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이 주어졌다. 이때는 모두 일어서서 승리를 축하했으며, 올림피아에는 그의 상이 세워졌다. 그뒤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하여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인정받게 됨에 따라 이교(異敎)의 제전인 올림피아 경기는 393년 제293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lll. 근대올림픽

1. 부할배경

393년 막을 내린 올림픽을 부활시키려는 운동은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ubertin) 이전에 이미 유럽 각지에서 있었다. 이는 중세 말기부터 일어난 고대 이집트와 로마 및 그리스의 문명에 대한 관심의 증대와 향수와 같은 것이 유럽 사회를 휩쓸게 되면서 비롯되었다. 르네상스에서 이룩된 인문주의운동의 전개는 고대 그리스를 재현하려는 운동으로 나타났고, 이런 사상적 배경은 급기야 올림피아 유적지 발굴로 이어졌다.

근대 그리스는 1829년 터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이 되었다. 같은해 프랑스는 고고학 조사반을 그리스에 파견하여 유적의 일부를 발견하였으며, 그리스는 나름대로 선조의 올림피아제를 되살려서 1859년에 대회를 부활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근대올림픽의 태동기에는 민족주의 움직임과 더불어 산업화와 국제화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산업사회가 발전함에 따라서 1851년 런던에서는 처음으로 만국박람회가 열렸는데, 이 박람회는 근대올림픽 초기에 올림픽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근대 올림픽운동이 본격적으로 싹튼 것은 그후 독일의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rnst Curtius)가 1881년 올림피아(Olympia) 유적지를 발굴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그는 “고대 올림피아의 제전이야말로 그리스 문화의 근원이었다”는 새로운 견해를 발표하였으며, 올림픽의 위인 쿠베르탱을 탄생시켰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유럽의 곳곳에서는 이미 올림픽이라는 이름의 경기가 행해지고 있었다.

쿠베르탱은 군인이 되고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나약해진 프랑스 청년의 심신을 강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영국에 유학하여 ‘워털루에서 영국군이 승리한 것은 이튼 교정에서 꽃핀 스포츠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스포츠가 청소년의 교육으로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뒤 그는 스포츠야말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온세계 청년들의 희망이라고 믿고 1889년 ‘프랑스 스포츠연맹’을 조직하였다. 그는 이와 더불어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해 세계의 청년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여 우정을 나누게 한다면 이는 곧 세계평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 올림픽 부활을 제창해 오다가 드디어 1894년 6월 16∼23일까지 열린 국제스포츠회의에서 쿠베르탱의 올림픽 제의는 유럽 각국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얻었고,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쿠베르탱의 건의에 따라 그리스의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Dimitrios Bikelas)가 초대 IOC 위원장이 되었고 쿠베르탱은 사무총장에 머물렀다. 이들은 제1회 대회를 1896년 유서깊은 아테네(Athenae)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2. 경기정신

근대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에 있다. 따라서 올림픽의 표어도 라틴어인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라고 하였다. 이것은 아르퀼(Arcueil) 대학의 학장이기도 했던 헨리 디데옹(Henri Martin Dideon) 목사가 학교 운동선수들의 공로를 치하할 때 한 말을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이 인용한 것이다.

또한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쿠베르탱이 말한 올림픽 강령 속에서 올림픽의 이상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올림픽 개막식 때 전광판에 나타나는 이 강령은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센트럴 펜실베이니아(Central Pennsylvania)의 에텔버트 탈보트(Ethelbert Talbot) 주교가 한 말을 쿠베르탱이 인용하여 채택한 것이다.

올림픽경기대회는 해를 거듭함에 따라 많은 변모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제1·2차 세계대전 등으로 3번이나 중단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올림픽이 국가간의 국력과시의 전시장으로 변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국제정치사회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의 숭고한 정신과 이념마저 오염시켜 가고 있다.

lV. 올림픽헌장

올림픽경기대회의 개최에 관한 규정을 정한 것으로서, 1914년 파리(Paris)에서 열린 IOC(Ine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대강(大綱)이 결정되고 1921년 로잔(Lausanne)에서 열린 IOC에서 제정·공포되었으며, 그후 1925년과 1930년에 일부가 수정되었다. 그때까지 IOC는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의 의견과 총회의 협의로 안건을 처리해 왔다.

제1장 기본원칙, 제2장 국제올림픽위원회, 제3장 국내올림픽위원회, 제4장 올림픽대회, 제5장 올림픽대회 부칙 등 5장 60조로 되어 있다. 올림픽의 기본원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올림픽운동의 목적은 청년들에게 아마추어 스포츠의 기조를 이루는 육체적 노력과 도덕적 자질을 일깨워주고, 동시에 4년마다 행해지는 이해관계를 떠난 우호적인 경기대회에 세계의 경기자를 모이게 함으로써 인류평화의 유지와 인류애에 공헌하는 데 있다(제1조).

둘째, 올림픽경기대회는 제1올림피아드, 즉 계속된 4개년으로 일컬어지는 1기(期)를 위한 제전이다. 근대의 제1올림피아드 제전은 1896년 아테네(Athenae)에서 개최되었다. 만약 경기대회를 개최할 수 없었더라도 올림피아드와 경기대회는 1896년부터 기산(起算)하여 순번을 정한다(제2조).

셋째, 올림픽경기대회는 4년마다 개최한다. 대회는 모든 나라의 올림픽 경기자들을 공정·평등하게 경기에 참가시킨다. 대회는 어느 국가 또는 개인에 대해서도 인종·종교 또는 정치상의 이유로 차별대우해서는 안된다(제3조). 넷째, 올림픽경기대회를 개최하는 영광은 하나의 도시에 주어지는 것이지, 하나의 국가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올림픽경기대회가 열리는 도시의 선정은 IOC의 전권(專權)에 속한다(제4조). 그러나 1977년 IOC 총회에서 ‘올림픽대회 개최의 영예는 개최되는 하나의 도시에 주어진다’라는 기본원칙의 조항을 고쳐 ‘개최의 영예는 국가에 주어진다’라고 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1988년 대회부터 적용하도록 조문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1988년 이후부터는 한 국가의 복수의 도시에서 개최할 수도 있게 되었다.

다섯째, 동계 올림픽경기대회는 하계 올림픽경기대회와 같은해에 개최한다. 제1회 동계 올림픽경기대회는 제8올림피아드에 속하는 1924년에 개최되었다. 동계 올림픽대회는 이 해부터 기산하여 개최순으로 순번을 정하며, 올림피아드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제5조).

여섯째, 올림픽경기대회는 개인간의 경기이며 국가간의 경기가 아니다(제9조).

그러나 IOC는 1974년의 총회에서 규정의 근본원칙을 대폭적으로 수정하여 제26조 참가자격에서의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올림픽 경기자’로 바꾸었다. 동시에 그 자격규정도 아마추어보다 완화되었는데, 참가선수는 그가 소속된 국내 또는 국제경기연맹의 승인 아래 일정한 경제적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V. 시기와 기간

1896년의 첫 올림픽경기를 흔히 ‘제1회 올림픽경기’ 또는 ‘제1회 올림피아드’라고도 한다. 올림픽 정관(定款) 제5장 제52조에 따르면, 올림픽경기대회는 그 올림피아드의 최초의 해에 연다고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제2올림피아드에서는 1900년, 제18올림피아드에서는 1964년, 제24올림피아드에서는 1988년에 올림픽경기대회를 개최해야 한다.

올림피아드는 4년 동안 계속되는 기간을 나타내며, 올림픽경기의 개막과 더불어 시작하고 다음 올림픽의 개막과 함께 끝난다. 대회는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다른 해로 넘길 수 없다. 제1연도에 열지 않을 때는 그 올림피아드는 대회가 없는 올림피아드가 되며, IOC의 승인 없이는 그 개최도시의 권리도 없어진다.

어느 달에 대회를 개최하느냐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으며, OOC(Olympic Organizing Committee:올림픽조직위원회)의 제안에 의해서 IOC(In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가 결정한다. 하계 및 동계대회의 개최기간은 개회식을 포함해서 16일 이내로 한다. 만약 일요일에 경기를 하지 않을 때에는 기간을 그 일수만큼 연장할 수 있다.

Vl. 프로그램

하계 올림픽경기대회의 공식적인 프로그램은 육상·조정·농구·복싱·배드민턴·탁구·테니스·카누·사이클·펜싱·축구·체조·역도·핸드볼·필드하키·유도·레슬링·수영·다이빙·수구(水球)·근대5종·승마·사격·양궁·배구·요트 가운데 최소한 15종목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밖에 건축·문학·음악·미술·조각·회화 ·스포츠우표·사진 등 예술전시가 이루어진다. 여자선수는 복싱·축구·근대5종경기·수구·역도·레슬링 등의 종목을 제외한 전종목에 참가할 수 있다.

대회기간이나 대회 전 또는 대회가 끝난 다음 1주일 동안은 대회 개최지나 그 주변에서 다른 국제경기대회를 열어서는 안된다. 최소한 3대륙 및 40개국에서 남자에 의해 실시되고 있는 경기에 한하여 올림픽대회의 프로그램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여자는 2대륙 25개국).

정식 경기종목에 포함되지 않은 특정 경기종목은 IOC(Inet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와 ISF(Inetrnational Sports Federation:국제경기연맹)의 합의에 의해 올림픽 프로그램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러나 1976년 전체 올림픽 참가선수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남자 5만m 경보 종목이 제외된 반면 여자 조정경기가 처음으로 포함되었다.

OOC(Olympic Organizing Committee:올림픽조직위원회)는 IOC의 승인을 얻어 그 나라의 독특한 경기와 외래경기 하나씩을 데몬스트레이션(시범경기)으로서 추가할 수 있다. 올림픽헌장 제48조 부속규칙에 따르면, 시범경기는 적당한 정도로 간단해야 하며  올림픽경기의 공식종목이 아니므로 참가자의 선발, 신분의 증명, 시상 및 의전에 관한 규칙 등은 헌장규칙 제26조의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단, 이들 경기의 우승자에게는 올림픽메달을 수여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경기는 대회를 초치하는 단계에서 IOC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그후에는 변경할 수 없다. IOC는 ISF과 협의하여 각 경기의 실시종목을 결정한다. 단체경기에서는 그 참가신청국을 6개국 이상 16개국 이하로 한다. 또한 경기는 1∼6위까지가 결정되었을 때 끝난다.

ISF는 필요할 경우 대회가 열리기 전에 신청팀 수를 16개 팀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된다. IOC는 어떤 경기 어떤 종목이라도 프로그램에서 제외할 수 있다. IOC는 국제적으로 부적당한 경기, 또는 독자적인 판단으로 올림픽규정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지 않은 경기는 제외시킬 수 있다.

Vll. 성화릴레이와 선서

올림픽경기대회가 열리기 전에 그리스 올림피아의 성스러운 의식에서 점화된 횃불을 릴레이하여 개회식장으로 옮겨오는데, 이 횃불을 올림픽성화라고 부른다. 첫 올림픽성화는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Amsterdam) 대회에서 처음으로 타올랐으며, 베를린(Brelin) OOC(Olympic Organizing Committee: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카를 디엠(Carl Diem)의 제안으로 1936년 제11회 베를린 대회부터는 릴레이가 시작되었으며, 1952년 이후의 모든 올림픽경기에서 이 방식을 따르고 있다.

올림픽성화는 고대올림픽에서 유래한 것으로, 경기기간 동안 제우스 신전에서 계속 타올랐다. 성화는 올림픽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Olympia)의 고대 유적지 안에 있는 헤라신전에서 고대 그리스의 복장을 한 아름다운 여사제들에 의해 채화되어 수석 여사제역가 태양빛을 오목거울로 모아 점화한다.

이어 개최국의 선수대표가 단상에 올라 왼손으로 올림픽기의 한쪽 모서리를 쥐고 오른손을 들어 선서를 한다. 성화는 고대올림픽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올림픽이 펼쳐지는 대회기간 동안 타오르게 된다. 1928∼1948년까지 단순한 ‘올림픽 불’ 또는 ‘올림픽 횃불’로 불리다가 1950년 올림픽헌장에 성화로 규정되었다.

올림픽선서는 고대에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파우사니아스(Pausanias)의 기록에 따르면, 올림픽 참가자들과 관계자들이 올림피아의 관청에 모여서 경기를 하는 동안 규정위반을 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했다고 한다. 근대올림픽에서는 아마추어 규정의 위반 여부를 두고 벌어진 끊임없는 잡음 때문에 생겨났는데,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은 1906년 처음으로 이를 도입할 것을 시사하였다.

그 내용은 “모든 선수들의 이름으로, 우리팀의 명예와 스포츠의 영광을 위하여, 진정한 스포츠맨십에 입각하여 규칙을 준수하며 경기에 임할 것을 선서합니다”이다. 1920년 제7회 안트베르펜(Antwerpen) 대회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으며, 당시 벨기에의 펜싱선수 빅토르 부앙(Victor Boin)이 선창하였다.

이 선서는 1961년에는 선수들의 약속형태로 바뀌었다. 1968년부터는 선수들이 선서를 한 다음 심판들도 선서를 한다. 올림픽성화 및 선서 등 올림픽의식은 IOC(Inrernational Olympce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에 귀속된다.

Vlll. 올림픽기

올림픽기란 근대올림픽을 상징하는 기로 오륜기를 말한다. 올림픽경기대회 기간 동안 경기장 내의 메인폴에 게양되며, 주경기장과 경기장 주변에 많은 참가국의 기와 함께 게양된다. 개회선언과 동시에 게양되었다가 폐회식 종료시에 내린다. 흰 바탕에 선을 두르지 않고 중앙에 오륜마크를 앉혔으며 좌측 상위 깃대 쪽에 청색이 오도록 단다.

처음으로 이 기가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에 의해서 언급된 것은 1913년 8월, IOC(Ine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잡지인 《올림픽 리뷰 Olympic Revue》의 기사에서였다.

올림픽마크와 마찬가지로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1914년 6월 파리의 소르본(파리)대학에서 열린 IOC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첫선을 보였고, 이 자리에서 IOC의 공식기로 채택되었다.

그 이후에도 올림픽경기는 아니지만, 올림픽조직위원회를 대표하는 성격으로 1915년 3월 18일에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만국박람회장에서 공식적으로 올림픽기가 게양되었다. 그러나 1916년 올림픽 때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무산되어 이 기를 게양할 수가 없었다.

1914년 4월 3∼5일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챗비운동장(Chatby Ground)에서 개최된 범이집트 경기에서 이 기가 선을 보였으며, 당시 이집트 IOC위원인 안젤로 볼라나키(Angelo Bolanaki)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나중에 그가 그리스로 이주한 뒤 1959년 IOC에게 되돌려주었다. 1920년 제7회 안트베르펜(Antwerpen) 대회 때부터 올림픽기는 개막식과 폐막식 행사의 한 부분이 되었으며, 올림픽 기간 동안 주경기장에 게양된다.

국경을 초월하는 것을 뜻하는 흰색 바탕에 위쪽 원은 왼쪽에서부터 파란색·검정색·빨간색이며, 아래의 원은 노란색과 초록색의 고리 5개가 서로 얽혀 있다. 5가지 색은 세계 여러 나라 국기에 대개 이 5가지 색이 들어 있어 세계의 결속이라는 의미에서 채택되었다. 동그란 고리 5개는 올림픽정신으로 하나가 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오스트레일리아·아메리카의 5개 대륙을 상징한다.

이 최초의 기는 1984년 올림픽경기 이후 마침내 사용을 마감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새로운 올림픽기가 탄생하여 현재까지 사용해 오고 있다. 올림픽 폐막식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의 시장이 다음번 올림픽이 열릴 도시의 시장에게 이 기를 넘겨준다. 그리고 이양된 기는 다음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차기 개최도시의 시청에 보관된다.

Vllll. 상품

고대올림픽에서 승자에게 주어지는 공식적인 상은 올리브 가지로 만든 관이 전부였다. 근대올림픽에서는 승자에게 메달을 주었는데, 이 역시 변동이 많았다. 1896년 제1회 아테네(Athenae) 대회에서는 1등에게 은메달과 올리브관 및 우승증서를, 2등에게는 은메달을 주었지만, 3등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였다.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대회에서 처음으로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었는데, 1등에게 금도금을 한 금메달, 2등에게 은메달, 그리고 3등에게는 동메달을 수여하였다.

메달의 앞면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Amsterdam) 대회 때부터 변함없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 이 도안은 이탈리아의 주세페 카시올리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문양은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Nike)라고 전해진다. 1960년 제17회 로마(Rome) 대회에서 처음으로 목에 걸 수 있도록 메달에 리번이나 고리사슬로 된 목걸이가 부착되었으며, 1968년부터는 메달의 뒷면에 각 종목을 새겨 넣었다. 4∼8위까지는 상장만 주어지며, 같은 순위일 때는 동일상품이 수여된다.

1972년부터 각 조직위원회는 메달의 뒷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동계 올림픽경기대회에는 메달의 모양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 IOC가 원하는 것은 단지 각 동계 올림픽경기대회의 메달이 다른 모양이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현재의 올림픽헌장이 요구하는 메달의 규정은, 지름은 최소한 60mm이어야 하고 두께는 3mm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1등과 2등에게 주어지는 메달은 순도는 1,000분의 925 이상 순은이어야 하며, 1등의 메달에는 다시 최소한 6g의 순금이 입혀져야 한다. 제1회 아테네 대회에서는 입상자가 상을 받기 위해서 왕이 있는 단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오늘날과 같은, 등수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메달 수여단상은 1932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단체경기에서는 개인종목의 득점을 총계하여 순위를 결정하는 단체종합을 제외하고, 1·2·3위가 확정된 팀의 선수들 가운데 한번이라도 경기에 투입된 선수 모두에게 메달과 상장이 주어지되, 결승전에 참가하지 않은 선수는 상장만 주어진다.

종합종목에서는 팀에 메달과 상장 각 하나씩 주어진다. 우승팀의 선수라도 경기를 하다가 퇴장당하거나 그밖에 불명예스럽게 시합에 참가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아무 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대회 참가선수와 역원에게는 기념메달이 주어지며, 우승자 전원의 이름은 경기장의 벽에 조각해서 그 영광을 오래도록 남게 한다.

X. 영예표창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운동이나 스포츠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비경쟁 상패를 수여해 왔는데, 이것이 올림픽 영예표창이다. 전에는 둘뿐이었으나, 현재 6개가 있으며 수상대상도 새로이 구분되었다. 올림픽컵은 1906년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ubertin)이 기증한 것으로서, 현재는 스포츠에 공헌한 단체나 협회에 수여된다. 이 올림픽 컵을 최초로 수상한 단체는 프랑스의 투어링 클럽이었다.

올림픽 디플로마는 쿠베르탱의 제안으로 IOC가 1905년에 제정한 것으로, 스포츠에 공적이 많은 개인에게 주어진다. 펜레컵은 1905년 IOC 위원 펜레가 기증한 것으로, 대회참가의 유무를 불문하고 올림픽운동에 공헌한 스포츠 클럽에 주어진다. 타헤르 트로피는 IOC 위원 타헤르가 1950년에 기증한 것으로, 올림픽운동에 공이 큰 경기자에게 수여된다.

보나코사 트로피는 IOC 위원 보나코사를 위해 이탈리아 NOC(National Olympic Committee:국내올림픽위원회)가 1954년에 기증한 것으로, 올림픽에 공헌한 NOC에게 준다. 도쿄[東京] 트로피는 1965년 일본 도쿄시가 기증한 것으로, 스포츠맨십을 발휘한 선수에게 준다. 이밖에 1975년 제정된 올림픽훈장은 현직 IOC 위원들을 제외한 올림픽운동의 공로자 가운데 생존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수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금·은·동메달을 수여한다.

또한 개인기록 달성을 통해서나 스포츠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올림픽의 대의를 이루는 데 탁월하게 공헌한 사람에게도 수여된다. 최초의 금메달은 20년 동안 IOC 위원장직을 역임했던 미국의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에게 수여되었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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