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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01-11 (일) 10:02
분 류 사전3
ㆍ조회: 2555      
[현대] 서울올림픽대회-대회준비 및 운영 (민족)
서울올림픽대회(대회준비 및 운영)

세부항목

서울올림픽대회
서울올림픽대회(대회준비 및 운영)
서울올림픽대회(스포츠이외의 행사)
서울올림픽대회(전야제)
서울올림픽대회(성화봉송)
서울올림픽대회(개회식 및 폐회식)
서울올림픽대회(경기운영)
서울올림픽대회(성과 및 의의)

[대회경비(재정)]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뒤 7년 동안, 각종 시설과 준비 및 운영에 투입된 비용은 모두 2조3826억 원에 이른다. 이 중 대회 직접사업비는 1조1084억 원이고 여건조성사업비는 1조2742억 원이다. 이 비용에는 체육시설투자·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종합개발·김포공항 확장공사·가로정비 등 사회간접자본 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2조3826억 원 규모의 투자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는 4조7504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소득유발 효과는 1조8462억 원 정도로 추산되었다.

서울올림픽 폐막 직후 박세직(朴世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은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서울올림픽은 252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대회였다고 발표하였다.

총지출은 5890억 원이었고 총수입은 8410억 원이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자체의 재정흑자 2520억 원 가운데는 정부출연금 371억 원, 선수촌·기자촌·패밀리아파트 분양기부금 1315억 원, 국민성금 565억 원, 올림픽공원 내 조형작품 조성기부금 90억 원 등 모두 2341억 원의 기부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올림픽 관계 이익금은 179억 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또한 이익금 중에서 12억7000여만 원을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持分)으로 할당하고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세계평화의 광장에 1억8000여만 원을 들여서 올림픽운동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지분이란 당초에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합의했던 사항으로서, 서울올림픽을 통해 1000억 원 이상의 흑자를 내면 0.48%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할당하고, 1000억 원 미만이면 20만 달러 이하를 할당하기로 한 것이다.

수입 부문을 세분하면 텔레비전 방영권료 2188억 원, 아파트 분양수익금 1315억 원, 휘장사업 수입금 819억 원, 기념주화 판매수익금 1208억 원, 올림픽복권 수입금 1174억 원, 국내외 성금 565억 원, 광고수입 282억 원, 입장권 판매수입금 209억 원, 선수촌과 기자촌 입촌료 116억 원, 우표 판매수익금 25억 원, 조형작품 조성기부금 90억 원, 정부출연금 371억 원, 이자 48억 원 등이다.

[경기장]

서울올림픽에 사용된 경기장은 모두 34개이며 연습장은 72개였다. 개회식과 폐회식, 축구와 승마 결승전, 그리고 육상경기가 거행된 올림픽 주경기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메인스타디움으로서 필드의 넓이는 105×67m, 수용인원은 7만 명이다.

이 경기장은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되었다. 스탠드가 2층으로 꾸며졌고 스탠드 위에 완만한 곡선의 지붕을 씌웠기 때문에 한국적인 미와 조화를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이 잠실 주경기장은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으며, 한국을 상징하는 조형물로서도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게 되었다.

이 밖에 송파구 방이동에 마련된 올림픽공원에는 사이클경기장(트랙 333.3m, 수용인원 6,000명)·체조경기장(바닥넓이 67×43m, 수용인원 1만5000명)·펜싱경기장(바닥넓이 70×55m, 수용인원 7,000명)·역도경기장(바닥넓이 50×35m, 수용인원 4,000명)·테니스경기장(면 18개, 수용인원 1만5000명)·수영경기장(연면적 7,585평, 지하 1층 지상 3층의 경영풀:50×25×3m, 다이빙풀:25×25×5m, 연습풀:50×12.5×2m, 수용인원 1만 명) 등이 있고, 경기종목에 따라 각종 경기장이 분산되어 있다.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사용된 농구경기장(바닥넓이 49×42m, 수용인원 2만 명)·복싱경기장(바닥넓이 48×40m, 수용인원 8,000명) 등은 송파구 잠실동에, 조정경기장(코스 132×2,212×3m, 수용인원 2만5000명)은 경기도 광주군 미사리에, 승마경기장은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서울승마공원(마장마술 11면, 수용인원 3만 명)과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에 있는 종합마술경기장(마장마술 28∼32㎞)에서 각각 치러졌다.

서울대학교·한양대학교 체육관은 각각 탁구와 배구경기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상무체육관은 레슬링경기장으로, 장충체육관은 태권도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 요트경기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수영만에 설치된 4개 경기장에서 거행되었다.

[선수촌]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과 충분한 휴식여건을 제공하여 최상의 신체조건을 유지할 수 있고, 친목과 화합 분위기를 도모하며 최적의 안전유지를 목표로 건립된 것이 서울올림픽의 선수촌이었다.

서울올림픽이 개막되기 14일 전인 9월 3일부터 선수들을 맞아 올림픽이 끝난 3일 뒤인 10월 5일에 모든 선수을 돌려보낸 이 선수촌에는 모두 1만3626명이 투숙하였다. 입촌비는 1인 1일 42달러였으며, 주요 시설은 아파트가 86동으로 여기에는 선수·임원 숙소와 라운지·관리실·국가올림픽위원회사무실 등이 있었다.

선수회관은 지하실에 대표단 부사무실·휴게실·진료실·국제행사 부사무실·디스코테크·주방·창고 등이 있고, 1층에 안내센터·국가올림픽위원회 서비스센터·전신전화국·식당·경기안내센터·비디오 및 유선텔레비전(CATV)실·우체국·은행·식전사무실, 2층에 식당·극장·전자오락실·탁구장·한국관(관광안내소)·항공안내소, 3층에 쇼핑센터·국제올림픽위원회 사무실·이용원·미용원·당구장·세탁소·음악감상실·다방·회의실·사진관 등이 있었다. 이 밖에 행정센터·선수촌본부·IP라운지·합동상황실·병원·종교관 등이 고루 갖추어 있었다.

급식은 4,2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선수회관 1층과 2층 식당에서 카페테리아식으로 AD카드에 의한 자유급식제를 채택하였다.

메뉴는 5일 주기였으며 1일 영양가는 6,000㎈ 이상이었다. 아침 밥은 6시부터 10시까지, 점심시간은 11시부터 16시까지, 저녁시간은 17시부터 23시까지였으며 남은 시간에는 간이식을 제공하였다.

숙소 관리에서 소모품은 룸메이드를 통하여 수시로 보급하였으며, 정리정돈 및 청소도 룸메이드가 담당하였다. 리넨류는 무료 서비스하였으며 시트·베갯잇은 3일에 1회씩, 타월류는 1일 1회씩 세탁하였다. 전화기·텔레비전·전열기(커피포트) 등은 안전관리상 선수숙소에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각국 선수단이 입촌할 때는 반드시 선수촌 내 야외 국기광장에서 입촌 공식행사를 하고 상견례를 마친 뒤에 입촌하였다. 매일 저녁 8시에는 선수회관식당에서 재촌자(在村者) 중 그날이 생일인 선수들을 위한 생일축하 행사를 가졌다. 행사는 먼저 축하음악 및 축하의 말에 이어 생일을 맞는 선수의 인사말이 있고 선물증정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대회기간중 희망하는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인지역의 우수생산업체를 시찰하게 하였으며, 서울시내 중류 이상 가정에 대한 가정방문도 실시하였다.

[메인프레스센터와 올림픽방송센터]

보도진의 취재와 송고활동에 적합한 시설·장비·물자와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하여 메인프레스센터(Main Press Center, MPC)가 설치되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의 한국종합전시장 별관에 마련된 메인프레스센터는 1988년 9월 3일부터 10월 5일까지 운영되었으며, 주요 시설은 공동기사 작성실, 언론사 개별 사무실, 임시 전신전화취급소, 기자회견실, 사진현상소, 카메라 수리 및 대여소, 식당, 의무실, 경기결과 복사 배포실, 공동시청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메인프레스센터를 이용한 보도진은 인쇄매체의 취재기자 3,864명, 사진기자 533명, 기술보조원 800명이었는데, 그 중 외국 기자가 4,297명이고 국내 기자는 900명이었다.

각 경기장에는 메인프레스센터의 기능을 대행할 수 있는 SPC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각 SPC에는 보도석·공동 기사작성실·임시 전신전화취급소·인터뷰실·휴게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MPC에서는 보도지원을 위하여 공식 기자회견 및 정례브리핑, 보도자료 제작과 배포, 취재 안내센터 운영, 기타 홍보자료 배포 등을 하였다.

또한, 보도사진 서비스를 위해 사진현상소와 카메라 수리 및 대여소를 설치, 운영하였고, 메인프레스센터와 경기장 간의 필름을 전달하는 일과 각 경기장 내 사진 촬영지역을 선정해 주는 일 등을 하였다.

이 밖에도 순환버스와 렌터카로 보도진의 수송편의를 꾀하였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기자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언어서비스를 했으며, 기자촌 및 호텔 등의 숙박 안내를 하였다.

인쇄매체 보도진과는 별도로 전파 및 음파매체 보도진을 위한 국제방송센터(International Broadcasting Center, IBC)는 여의도의 한국방송공사(KBS) 본관 옆에 따로 설치되었으며, 규모는 2만2156평에 지하 2층, 지상 9층이었다.

국제방송센터의 기능은 경기장으로부터 국제영상 및 음향신호의 수신 및 분배, 방송사의 개별 제작, 위성송출 전송기능, 방송인을 위한 등록·예약·안내·전산 등을 서비스하는 것이었다.

국제방송센터를 이용한 방송인은 국내인 3,160명, 외국인 6,250명 등 모두 9,410명이었다. 기본 영상·음향 분배·해설음향 분배·일일 요약물제공·국제송출 은행 등의 기본 시설과, 편집 및 본국 송출 등을 돕기 위한 개별 시설을 비롯, 방송자료 정보제공·예약사무소·회의실·정보센터·은행·우체국·식당·응급실 등 지원시설을 갖추었다.

[전산시스템]

올림픽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1960년 미국의 스퀘어벨리에서 열린 제8회 동계올림픽 때였다. 비록, 경기결과만을 처리하는 소규모였으나 이때부터 올림픽에서의 컴퓨터 활용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을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는 종래의 전자전송 시스템인 EMS를 개발하여 경기결과 제공뿐만 아니라, 참가선수·임원·보도진·조직위원회직원 등 모든 올림픽가족 상호간의 연락체계까지 확립하였다.

그러나 제24회 서울올림픽에서는 로스앤젤레스올림픽보다 몇 단계 더 발전된 전산시스템으로 대회의 모든 운영과 진행을 뒷받침하였다.

서울올림픽에서 사용된 전산시스템을 기능별로 나누어 보면, 경기운영시스템(Games Information on-Line Network System, GIONS)·종합정보망시스템(Wide Information Network Services, WINS)·대회관리시스템(Seoul Olympic Management System, SOMS)·대회지원시스템(Seoul Olympic Support System, SOSS) 등이다.

경기운영시스템은 참가선수 및 임원의 등록관리, 경기운영 및 결과처리, 경기정보관리 등 3대 주요 업무를 중심으로 대회운영이 원활하도록 돕고, 다양한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종합정보망시스템은 전자우편 및 경기운영시스템으로부터 경기 정보를 전송받아 제공하는 경기결과 정보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세계 52개 나라의 공중 정보통신망 가입자가 즉시 경기결과를 검색, 인출할 수 있게 하였다.

공중 정보통신망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를 위해서도 텔렉스망을 접속시켜 상호간에 메시지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한 종합정보통신시스템이었다.

대회관리시스템은 올림픽의 인력관리·입장권관리·등록카드 발급관리·선수촌관리 등의 업무를 전산처리하였다. 대회지원시스템은 숙박관리·수송관리·물자관리·연습장관리 등의 대회지원 업무를 전산처리하였다.

[안전(보안)대책]

서울올림픽의 안전대책을 주관한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경찰과 군 등 약 11만2000여 명의 안전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여 잠실 주경기장과 선수촌 등 300여 개의 대회 관련시설에 배치, 시설의 안전확보와 참가선수단의 신변안전을 완벽하게 보장하였다.

국가안전기획부를 주축으로 하여 관계부처 합동으로 편성된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올림픽안전대책을 더욱 전문적이고 능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선수단 신변보호대·경기장경비대·선수촌경비대·관련시설경비대·교통관리대·출입국대책반·소방안전대·식음료안전관리대·대(對)테러특공대·공항경비대 등 16개 기능별로 전문화된 특수 임무부대를 편성, 운용하였다.

이 밖에 4,500명 규모의 민간 안전자원봉사대를 활용하여 상호유기적인 협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현장 안전경비활동을 눈에 보이지 않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직적으로 수행하였다.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국제테러 방지를 위하여 미국·일본 등 우방각국과 공조(共助) 협력체제를 확립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국제테러분자 6,000명에 대하여 신원정보와 600여 개의 국제테러조직 동향 등에 관한 자료를 분석, 활용하였다.

공항·경기장·선수촌 등에는 금속탐지기 등 6만여 점에 달하는 각종 최신 과학장비를 설치하여 올림픽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위해요소를 사전 색출, 봉쇄하였다. 올림픽기간중 테러도발과 돌발사태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경찰과 군으로 편성된 대테러특공대를 비롯, 폭발물 처리반과 기동타격대를 운용하였다.

대테러특공대는 각종 형태의 테러사건을 빠르게 진압할 수 있는 고도의 대테러 작전능력을 갖춘 정예요원으로 구성했으며, 1분에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소음기관단총, 레이저조준경 등 특수장비를 갖추었다.

또한, 위장된 폭발물을 찾아내기 위해 일단 의심의 여지가 있는 물건에 대해서는 전자식 청진기와 엑스레이 투시기로 철저히 검사했으며, 64마리의 폭발물 탐지견(探知犬)으로 하여금 콤퍼지션-4와 같은 금속탐지기로 적발되지 않는 폭발물을 찾아내게 하였다.

안전조정 통제본부는 소련 등 참가선수의 전용항공기와 선박에 대해서도 안전경비를 특별히 강화했으며, 참가선수단이 입출국하는 공항(空港)에 영접센터와 의전요원을 배치하고 전용 심사대와 검사대를 운영하여 통관수속 지원 등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각국의 수상급과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등 주요 인사는 별도로 수행경호하고, 선수·임원 등의 차량에는 무장한 신변보호 요원이 함께 타고 다니며 기동보호하였다. 적대관계에 있거나 분쟁 당사국의 선수 임원의 상호마찰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하여 숙소를 분리, 배치하고 이동할 때도 분리하여 호송하였다.

선수촌·기자촌·경기장에는 전자경보기·폐쇄회로 TV·금속탐지기 등 각종 과학경보 감시장비를 설치해서 위해 인물과 위해 물품의 출입을 통제하고, 마라톤 등 도로경기와 요트경기장에는 지상 및 수중탐색과 공중감시를 연결하는 입체 경비체제로 임하였다.

이와 같은 안전대책을 실시한 결과 대회기간중 발생한 사고는, ① 위해 물품 소지자 적발 18건, 검거 13명, ② 올림픽 방해책동 시위 16건, 유인물소지 18건, 검거 53명, ③ 출입증 부정사용 발생 21건, 검거 21명, ④ 외국인 절도사건 9건, 검거 15명 등으로 나타났다.

[교통 및 숙박]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 각국 선수·임원·심판과 IOC·IF·NOC 위원, 귀빈 및 보도진이 입국해서 출국할 때까지, 즉 9월 3일부터 10월 5일까지의 33일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는 최적의 교통편의를 제공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선수 임원 1만4000명, 심판진 2,000명, 귀빈 5,000명, 보도진 1만4000명을 34개 경기장, 82개 연습장, 30개 호텔 및 각종 장소에 수송하였다.

여기에 투입된 장비는 버스 776대(국방부지원 95대, 수송업체에서 임차 681대), 미니버스 309대(수송업체 임차 254대, 국방부 지원 55대), 승용차 1,340대(휘장사업 420대, 택시회사 지원 603대, 정부투자기관·금융기관·사기업체지원 152대, 국방부 지원 165대), 화물차 69대(화물수송 용역업체 선정), 특수차 62대(구급차·트레일러 등-수송업체 용역, 국방부 지원) 등 모두 2,556대이었다.

또한, 여기에 투입된 인원은 운전기사 3,208명(단기 고용), 정비사 1,572명(자원봉사자 포함, 업체 지원), 조직위원회 직원 34명(용역), 행정 및 운영요원 683명(임대) 등 모두 5,497명이었다. 수송방법은 선수·임원·심판을 위하여 116개 노선에서 순환버스를 운행하였으며, 선수단 규모에 따라 전용차를 할당 운행하였다.

보도진에 대해서는 기자촌·IBC·MPC·경기장 사이에 순환버스를 운행했으며, 요구에 따라 렌터카(유료)도 알선해 주었다. 귀빈에 대해서는 전용차를 할당, 운행했고 공식행사 또는 연회에 참석할 때는 단체수송을 하였다.

숙박은 대상 인원 3만9960명(선수촌·기자촌 투숙자는 제외)을 관광호텔(1만6800명)·대회용아파트(1만2960명)·지정 여관(9,700명)·민박(500명) 등으로 분산, 투숙시켰다.

좀더 세분하면 IOC·IF·NOC 대표단은 본부 호텔인 신라호텔을 비롯한 20개 특급호텔(롯데·힐튼·하이야트·워커힐·프라자·조선·앰버서더·가든·팔레스·세종·코리아나·리버사이드·뉴월드·롯데월드·뉴서울·리베라·인터콘티넨탈·스위스그랜드·라마다르네상스·캐피탈)에서 투숙했으며, 올림픽 참가선수 가족 및 관광객은 대회용 아파트에서 투숙하였다.

요금은 특급호텔이 8만5000원∼11만2500원, 1급호텔은 5만3400원∼6만8500원, 2급호텔은 3만8000원, 3급호텔은 3만5000원이었으며, 대회용 아파트는 32평형이 9만2000원, 43평형과 49평형이 각각 18만 원씩이었다.

[위생 및 방역대책]

대회기간중의 위생과 방역을 위해 의무지원센터를 설치하였으며, 그 밑에 위생담당관·공해담당관·방역담당관을 두어 선수촌·기자촌·대회용 아파트·MPC·IBC·청소년캠프·올림픽공원·전 경기장, 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 지역에 별도의 점검반을 상설 운용하였다.

주요 임무는 ① 경기장 및 행사장 급식시설과 위생 지도 점검, ② 식품 및 조리기구 등에 대한 위생검사, ③ 식음료 검식, 검수 입회 확인, ④ 식품 부패 및 이상 발견시 신속한 식품의 수거와 폐기 조처, ⑤ 식중독 사고 발생시 신속한 대처, ⑥ 환경위생 접객업소 위생점검 등이었다.

위생점검 대상은 식당·스낵바·다방·휴게실·식음료매점·디스코장·자동판매기·식품보관창고·이미용업소 등으로, 오전 6시부터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하였다.

검사대상은 천연재료(어패류·육류·야채·과일류)·음료수(미네랄워터·수돗물·엽차)·가공식품(우유·빵·식품제품·어육연제품 등 유효기간 표시식품, 도시락)·조리기구(칼·도마·행주·개숫물) 등이었으며, 주 검사항목은 비브리오균·살모넬라균·대장균·포도상구균 등이었으나, 대회기간중 위생불량 또는 방역대책 미비 등으로 인한 발병 사고는 전혀 없었다.

[자원봉사요원]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진행하는 데는 언어·지식·품행 3요소의 요건을 갖춘 일정 수준 이상의 우수 인력 5만276명의 활동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 중 책임이 무겁고 난이도가 높은 직무를 담당한 요원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1,435명이 차출되었으며, 단기고용과 용역 외 자원봉사자도 2만7221명이나 되었다.

자원봉사제도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때 처음 채택된 제도로서, 공개모집에 의해 선발한 인원을 소정교육을 거쳐 올림픽기간에 운영요원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 때 이 제도를 채택, 높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에 서울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채택하였다.

1987년 9월 11만6000명의 응모자 중에서 3만 명을 선발, 1년 동안의 교육(소양교육·직무교육·현장적응훈련·종합 예행연습)을 거쳐 서울올림픽에서는 통역 및 번역, 경기·사무 지원, 서비스, 출입통제 분야에서 완벽에 가까운 성과를 올려 주었다.

학생·직장인·가정주부·해외거주 동포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는 식사제공과 1일 교통비 2,000원씩을 받는 무보수로 헌신적으로 봉사함으로써 서울올림픽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각종 국내·국제회의]

제94차 IOC총회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인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2일 오전 6시 사마란치 IOC위원장과 한국의 이현재(李賢宰) 국무총리 등 각국 대표 1,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극장에서 개회식을 가진 IOC총회는 13일부터 장소를 신라호텔로 옮겨 각종 현안 과제를 다루었다.

제94차 IOC총회에는 베르톨프 바이츠·알렉산드르 드메로드·리처드 파운드 등 부위원장과 집행위원 전원 90명의 IOC위원이 참석하였으나, 김유순 북한 IOC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총회는 15일 회의에서 최고정책결정 및 집행기관인 집행위원회의 새 위원으로 한국의 김운룡(金雲龍)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 겸 IOC위원을 선출하였으며, 선임 IOC위원으로 영국의 앤 공주, 콜롬비아의 피델 멘도사, 모리셔스의 램 뤼시 등을 뽑았다.

또한, 1994년 제17회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노르웨이의 릴리하마르를 선정하였다. 제17회 동계올림픽 유치를 희망한 도시는 이 밖에 미국의 앵커리지,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 불가리아의 소피아 등 3개 도시가 더 있었으나, 투표 결과 릴리하마르로 결정되었다.

북한을 비롯한 알바니아·니카라과·쿠바·에티오피아·세이셸 등 서울올림픽에 불참하기로 한 6개국에 대한 처벌문제를 논의한 총회에서는 IOC에서 모든 회원국에게 지급하던 지원금(솔리타리티기금) 6,000달러를 6개국에 대해서는 중단하기로 했으며, 다음 올림픽 출전권을 박탈하는 문제 등은 1990년 동경(東京)에서 열리는 IOC총회에서 다시 다루기로 하였다.

이 밖에 서울올림픽을 전후하여 서울에서 개최된 스포츠관계 국제회의는 IOC집행위원회(9.11.∼12.), IOC분과위원회(9.10.∼12.), ANOC집행위원회(9.16.)를 비롯, 체조·핸드볼·배구·수영·역도·조정·사이클·유도·카누·레슬링·하키·요트·육상 등 각 경기단체별 국제연맹회의와 ’88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9.9.∼15., 단국대학교 천안분교) 등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많은 관심을 집중시켰던 회의는 올림픽의 공동개최 문제를 협의한 남북한 체육회담이었다. 1985년 2월 1일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남북한 NOC에 각각 서한을 보내고 ‘북한선수단의 서울올림픽 출전 문제’에 관한 협의를 가지도록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

이 제의에 따라 1985년 10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스위스의 로잔에서 제1차 남북한체육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우리측은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선정한 IOC총회 결정과 올림픽헌장을 존중할 것’을 주장하면서 올림픽헌장 범위 내에서 배구·축구·핸드볼·탁구·양궁 등 일부 종목의 예선경기를 평양에서 분산, 개최하도록 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북한측에서는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반박하면서 ① 주최는 남북한 NOC가 공동으로 해야 하며, ② 대회 명칭도 ‘조선올림픽경기대회’ 또는 ‘조선평양 서울올림픽경기대회’로 하고, ③ 경기종목은 서울 12개, 평양 11개로 하며, ④ 개폐회식은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따로 거행하여야 하고, ⑤ 텔레비전 방영권의 이익도 반반씩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IOC측에서는 양쪽 주장에 대하여 ‘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따로따로 개최한다는 것은 올림픽헌장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며, 일부 종목의 분산 개최는 가능하다.’고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북한측에서 본래의 주장을 계속 고집하여 제1차 회담은 아무 결론 없이 끝났다.

이어 1986년 1월 8·9일에 제2차 회담, 1986년 6월 10·11일에 제3차 회담, 1987년 7월 14·15일에 제4차 회담을 가졌으나 북한측에서 끝내 공동개최를 주장하였기 때문에 모처럼의 남북한체육회담은 아무 성과 없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뒤 1988년 5월 13일 일본의 니가타(新瀉)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북한선수단 단장이 “공동개최가 아니면 북한의 서울올림픽 불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서울올림픽에 관한 북한과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관광 및 기념품]

올림픽기간을 전후해서 서울을 다녀간 외국관광객은 모두 24만1299명으로, 1987년 같은 기간의 17만6150명보다 37%의 증가율을 나타내었다.

이와 같은 증가현상은 서울올림픽 관광기획단의 활동이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987년 4월 22일에 발족된 이 기획단은 1988년 12월까지 관광업무를 수행하였다.

서울올림픽 관광코스는 총 18개 코스로 다음과 같다.

① 서울시내(경복궁-국립박물관-서울타워-이태원상가-창덕궁-비원-대한생명63빌딩-한강유람선-문화예술축전행사장-서울놀이마당).

② 수도권(민속촌-이천도요지).

③ 판문점(종군기자탑-자유의 다리-전진기지).

④ 강화도(광성보-전등사-갑곶돈대-인삼밭-토산품판매장-인삼제품공장).

⑤ 경주(천마총-경주국립박물관-첨성대-김유신장군묘-민예품단지-보문단지-석굴암-불국사).

⑥ 제주도(삼성혈-만장굴-민속자연박물관-성산일출봉-제주민속촌-서귀포-정방폭포-천지연폭포-중문단지).

⑦ 설악산(한계령-오색약수터-신흥사-권금성-통일전망대-낙산사-오죽헌-경포대-영동고속도로) 등이다.

관광객을 국가별로 나누어 보면 일본 10만4274명, 미국 3만3619명, 대만 1만1504명, 기타 7만1066명, 재외교포 2만836명 등이었다.

한편, 서울올림픽 기념품 중 기념주화의 인기가 단연 으뜸이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한국은행에 제작을 의뢰하여 만든 기념주화는 금·은·니켈·백동화(貨) 등 모두 32종 1056만 개였는데, 가장 높은 인기를 끈 것은 1온스짜리 거북선 금화였다.

액면가 5만 원인 이 금화는 100만 원을 주고도 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일곱 가지 종류의 주화를 1세트로 한 7종세트는 액면가 9만8000원이고 5종세트는 8만 원으로 비교적 비싼 편이었으나, 1056만 개 전량이 매진되었다.

그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것은 체신부에서 발행한 기념우표였는데, 32종 1억4000만 매가 거의 매진된 상태였다. 금·은·동 1세트인 기념메달도 1세트당 91만5000원에 1만5000세트가 모두 팔렸다.

이 밖에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공식지정한 업체인 대왕산업의 민속공예품 봉산탈·하회탈 등 88종 1만9880개가 완전 매진되었으며, 남교물산의 호돌이컵 10만 세트, 에덴상공사의 호돌이 배지와 기타 업체에서 제작한 열쇠고리·소형종(鐘)·호돌이인형·호돌이마스코트·넥타이핀·티스푼·기념접시·재떨이 등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대체로 집계된 기념품 판매 총액은 356억2600만 원이다.

<이의재(李義宰)>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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