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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4-11-28 (일)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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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784      
[근대] 아프리카 분할 (한메)
아프리카 분할

<식민지시대>

⑴ 아프리카 분할

1870년대의 제국주의기(帝國主義期)에 들어선 유럽 열강은 공업제품 시장과 원료 공급원을 찾아서 아프리카를 분할해갔다. 북아프리카에서는 70년의 프로이센―프랑스전쟁 후, 통일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의 적대감정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프랑스의 관심을 식민지 획득에 쏠리게 하였으며, 프랑스는 1881년 튀니스를 병합했다.

이집트에서는 1879년 부왕 이스마일이 영국·프랑스의 재정관을 해임시켰다는 이유로 양국 정부는 부왕을 퇴위시켜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라비 파샤의 반란이 일어나 영국과 프랑스는 공동으로 그 진압에 나섰으나, 프랑스의 국내위기 때문에 영국은 단독으로 1882년에 이집트를 점령했다. 수에즈운하 개착에 다액을 투자하고 있었던 프랑스는 그 대상(代償)으로 서아프리카에 진출하게 되었다.

중앙·서아프리카에서는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분지의 지배를 목표로 1876년 국제아프리카협회를 설립했는데, 이에 대해 프랑스는 탐험가 드 브라자를 파견하여 82년 콩고 하구 북쪽 지역을 획득했다. 한편 영국은 1884년의 영국―포르투갈협정으로 포르투갈의 콩고 하구 영유를 인정하는 것과 교환조건으로 그곳에서의 자유로운 교역권을 얻었다.

독일은 1883년 상인 A.뤼더리츠의 요청에 따라 남서아프리카(나미비아)의 영유를 주장하였으며, 서아프리카에서도 같은 해 토고란드와 카메룬을 획득했다. 이리하여 콩고분지의 지배를 결정하기 위한 베를린회의가 1884년 11월에 시작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포르투갈의 콩고분지 지배를 거부하고, 레오폴드 2세의 콩고자유국에 의한 지배와 그곳에서의 각국의 자유무역을 인정했다.

한편 프랑스는 니제르강 상류 지역으로부터 항구쪽으로 세력을 신장하려 했으나 도중에 만딩고제국을 재건하려는 사모리 투레의 저항을 받아 지연되었으며, 그 동안 영국은 상인 G.골디의 요청으로 해안부를 영유했다. 동아프리카해안부는 잔지바르의 술탄 지배하에 있었는데 독일식민협회의 C.피터스가 내륙 수장(首長)들과 맺은 협정을 방패로 하여, 독일은 1884년 베를린회의에서 독일령 동아프리카(탕가니카)의 영유를 인정케했다.

한편 영국은 1879년 매키논의 영국 동아프리카회사가 얻은 특권을 방패로 하여 영국령동아프리카(케냐)의 영토권을 주장하여, 1886년 영·독협정에 의해 동아프리카 내륙부를 이분했다. 이어서 영국·독일의 관심은 나일강 수원에 쏠렸으며 양국의 각 특허회사는 부간다왕국에 사절을 파견했으나 독일이 한발 앞섰다. 그러나 1890년 영·독협정으로 독일은 영국의 우간다 영유와 잔지바르의 보호령화를 인정했으며, 그대신 영국은 북해의 헬골란트섬을 독일에 할양했다.

이탈리아는 이미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를 영유하고 있었는데, 1888·89년 프랑스·영국과 각각 협정을 맺어 이 지역을 삼분할(三分割)했다. 동아프리카해안부 술탄의 주권을 인정한 영·불협정(1862)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영·독협정으로 잔지바르를 보호령화한 데 대해,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의 보호령화를 영국이 인정케 했다. 또한 프랑스는 영국의 로열니제르회사의 북방확대를 두려워하여, 1890년 이 회사의 지배지역을 니제르강의 중류 세이에서 차드호를 잇는 선으로 정했으나 동서의 선은 확정되지 않았었다.

이집트를 지배하는 영국은 프랑스가 가봉에서 동진하여 나일강 상류에 접근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1896년 영국은 수단을 재정복하려고 H.H.키치너가 이끄는 이집트군을 파견하고, 1898년 옴두르만 싸움에서 마흐디군을 무찌르고 하르툼에 들어갔다. 한편 프랑스는 J.B.마르샹 사령관의 군대가 동진하여 파쇼다로 진군하여 1898년 양군은 파쇼다에서 대치했는데, 외교교섭 결과 프랑스가 철퇴했다(파쇼다 사건).

남아프리카에서는, 1889년 영국여왕으로부터 특허를 받은 C.J.로즈의 영국남아프리카회사가 북방 마타베렐란드와 마쇼날란드의 병합(로디지아)을 기도했으며, 동시에 바로첼란드(잠비아), 니아살랜드(말라위)도 병합했다. 그러나 마니칼란드(모잠비크의 일부)에서는 포르투갈과 대립하여, 1890년 영국·포르투갈협정으로 국경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로즈는 보어인공화국(트란스발과 오렌지자유국)과의 병합을 기도하여, 1895년 제임슨 침입사건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로즈의 정치생명은 끝났다.

그 뒤 영국의 남아프리카 정책은 J.체임벌린 식민장관과 J.밀너 남아프리카 고등판무관에 인계되었으며, 1899년 그들은 마침내 보어인공화국과 개전(開戰)하였고 1902년 영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 보어전쟁의 종결로,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은 사실상 끝났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아프리카' 항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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