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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5-01-02 (일)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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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095      
[국가] 헝가리 (두산)
헝가리 Hungary

유럽의 중앙 동부, 도나우강 중류에 있는 내륙국.

I. 개관

위치 : 유럽 중동부
면적 : 9만 3030㎢
인구 : 1013만 6000명(2003)
인구밀도 : 109명/㎢(2003)
수도 : 부다페스트
정체 : 공화제
공용어 : 헝가리어
통화 : 포린트(Forint, Ft)
환율 : 232.32Ft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 4,830$(2003)

면적은 9만 3030㎢, 인구는 1013만 6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109명/㎢(2003)이다. 정식 명칭은 헝가리 공화국(Republic of Hungary)이다. 헝가리어로는 머저르 쾨즈타르서샤그(Magyar K)이다. 수도는 부다페스트이고 공용어로는 헝가리어를 사용한다. 북쪽으로 슬로바키아, 북동쪽으로 우크라이나, 동쪽으로 루마니아, 남쪽으로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서쪽으로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에 접한다.

II. 자연

헝가리 국토의 중앙부를 도나우강과 지류 티서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그 유역에 넓은 헝가리 분지가 펼쳐져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야이고 북부 국경에는 카르파티아산맥, 서부 국경에는 알프스의 지맥이 있으며, 그밖에 도나우강 서쪽 지역에는 헝가리 중앙산지가 북동에서 남서로 뻗고 그 남쪽 기슭에는 중앙유럽에서 가장 큰 벌러톤호(湖)가 있다. 군데군데 사구(砂丘)와 초원이 보이는 도나우강 동쪽의 평야는 얼푈드(Alf熙ld)라는 저지(低地)로, 물이 모자라 관개사업에 의해 경지화되어 있다.

특히 티서강(江) 동부 평원에는 경지가 많아 서부의 죄르 부근 평야(小얼T드)와 함께 헝가리의 중요한 농업지대를 이룬다. 전국토의 3/4이 저평원 지대, 1/5은 400m 이하의 구릉지대이며 5% 정도가 400~1,000m 정도의 산악지대이다.

기후는 대체로 대륙성기후이며 연평균기온은 10.5℃이다. 겨울에는 추위가 혹심하여 1월 평균기온 -3∼-1℃로, 도나우강 연변의 보요에서는 -34.1℃를 기록한 적도 있다. 여름은 꽤 무더우며 7월 평균 기온은 20∼26℃를 나타낸다. 연평균강우량은 600㎜이다.

III. 주민

헝가리 사람들은 스스로를 마자르라고 부르는데, 전체인구의 96.6%를 차지하며 그외는 독일계(1.6%), 슬로바키아계, 루마니아계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다. 한편 헝가리 국내에는 예로부터 독일인·유대인이 꽤 많았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이주 등으로 그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헝가리어(마자르어)는 우랄어족에 속하며 원주지는 우랄산맥 부근으로 추정된다. 마자르족은 헝가리로 이동하는 동안 여러 종족과 접촉하여 영향을 받았다.

특히 투르크계의 오노구르족(Onogur)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오늘날의 헝가리(Hungarian, Hongrois, Ungar)라는 명칭도 이 오노구르에서 나온 것이다. 마자르족은 건국 후에도 이 지역에 먼저 정착해 살던 슬라브족과의 교섭, 16∼18세기의 오스만투르크에 의한 점령, 제1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된 오스트리아 통치 등 다른 민족과의 접촉이 잦아 헝가리인의 인종 구성은 매우 복잡하다. 2000년 10월 현재 총인구는 1001만 명으로 최근에 172만여 명이 줄어들었다. 수도인 부다페스트에는 181만 명이 살고 있고, 종교는 가톨릭교도가 67.5%, 칼뱅교도가 20%, 루터교도가 5%를 차지하며 그리스정교도도 있다. 1990년 1월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는 법률이 채택되었다.

IV. 역사

헝가리인(마자르족)은 우랄산맥 부근의 옛 땅으로부터 오랜 기간의 민족 대이동시대를 거쳐 추장 아르파드에게 이끌려 896년 현재의 헝가리 지역(당시의 판노니아 지방)으로 이주하였다. 헝가리에서 봉건국가가 형성된 것은 아르파드가(家)의 게저(재위 972∼997) 시대부터이다. 게저의 아들 이슈트반 1세(재위 997∼1038)는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고 행정조직을 정비하여 거의 완전한 국가적 통일을 실현, 평화스러운 정주 생활의 터전을 닦았다. 1241∼42년에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국토가 황폐해졌으나 15세기 마티아스 코르비누스왕(재위 1458∼1490) 치세에는 중부 유럽 제일의 강국이 되었고, 문화적으로도 궁정을 중심으로 르네상스가 개화하였다.

그러나 1526년의 모하치전투(戰鬪)에서 오스만투르크에 패한 후 약 2세기에 걸쳐 국토의 대부분이 점령당했다. 이에 따라 서부와 북부 지역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세력권에 들어갔으며 동부의 트란실바니아 지방만이 투르크의 보호 아래 반독립 공국(公國)이 되었다. 이 공국의 전성기는 베틀렌(재위 1613∼1629)의 시대로 수도 줄로페헤르바르(현 알바이울리아)는 30년전쟁 당시 프로테스탄트 문화의 중심지였다. 17세기 말 오스만투르크 대신 헝가리 전역의 지배자가 된 합스부르크가는 헝가리인에 대하여 경제적·종교적 압박을 가한 결과 트란실바니아의 라코치 페렌츠 2세가 이끄는 대규모 민족반란(1703∼1711)을 초래하였다. 이 반란이 실패한 뒤 오스트리아의 헝가리 지배체제는 일단 확립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와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어 1848∼1849년의 독립전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L.코슈트를 지도자로 하는 헝가리측은 국민군을 조직하여 오스트리아군에 항전하였으나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항복하였고 코슈트는 국외로 망명하였다. 독립전쟁 후 헝가리는 한때 오스트리아의 군정(軍政)에 시달렸으나 19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화약(和約:아우구스라이히)이 성립됨으로써 이중제국(二重帝國)의 일원이 되어 정치적 안정을 획득하였다. 그후 헝가리인의 경제적·문화적 수준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헝가리는 독일·오스트리아 동맹 쪽에 서서 참전하였다. 대전 말기인 1918년 10월에는 좌익 계열의 카롤리가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오스트리아로부터의 분리와 공화제 실시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카롤리 정부는 휴전 처리에 실패하여 단명으로 끝나고, 그 대신 B.쿤을 중심으로 하는 헝가리소비에트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쿤 정부도 루마니아군의 침입으로 수개월 만에 붕괴되고 구(舊)제국의 해군제독인 M.호르티 등 우익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 6월 트리아농 조약으로 옛 영토의 약 72%, 인구의 60% 이상, 경제력의 80% 이상을 상실하였는데, 이것은 실지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운동을 조장하였고 나아가서는 독일·이탈리아 중심 구도에 접근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탈리아 측에 가담한 헝가리는 전쟁 말기가 되자 국토가 전쟁터화 되었으며, 전후에는 소련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1946년에 공화제가 실시되고 1949년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어 라코시가 이끄는 근로자당(공산당)에 의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서 공산주의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라코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1956년의 헝가리 의거를 불러일으켰다. 10월 23일 부다페스트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하여 약 10만의 시민이 봉기한 반소(反蘇)·반공 운동은 소련 군대의 개입으로 수만 명의 사상자와 20만 명에 이르는 국외 망명자를 낸 채 진압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근로자당은 사회주의 노동자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J.카다르를 당 제1서기로 선출하였다. 1964년에는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개선하였고, 1968년에는 경제개혁을 단행하였으며, 동구 공산권 중에서는 폭넓은 자유화 정책을 시도하였으나 소련의 체코 침공에 가담함으로써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1972년 헌법을 개정하여 당의 지도적 위치를 명시하였으나 1975년에는 과도한 경제자유화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리 포크가 해임되고 라자르가 임명되어 카다르-라자르 체제가 되었다.

1988년 5월에는 32년 만에 카다르가 제2선으로 물러나고 서기장 카를리그로스가 취임하면서 정치개혁이 급진전되었다. 1989년 10월 23일 국가원수 대행인 국회의장 마티야스 수로슈는 40년간의 1당 독재 국가사회주의의 마감을 선언하고 다당제와 대통령제 도입, 국호변경 등을 골자로 하는 새헌법을 채택하였다. 1990년 3월에 복수정당제가 도입되었다.

V. 정치

1. 정부기구

헝가리의 최고권력기관은 1989년 10월 개정된 헌법에 의하면 입법부인 국민회의이다. 단원제 의회인 국민회의는 1구 1인 소선거구에서 176명, 지역정당명부에서 152명, 전국정당명부에서 58명 등 총 386명의 의원들로 구성되고, 18세 이상 남녀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임기는 4년이며, 대통령이나 내각 혹은 전체 의원 1/5 이상의 요구에 의해 적어도 연 2회 소집된다. 1990년 3월 첫 자유 총선거를 거쳐 내각책임제 민주정부가 출범하였으며, 1998년 5월에 의회선거에서 청년민주동맹이 전체 의석수의 38.34%를 차지하였고 독립소지주당, 헝가리민주포럼과 연정을 구성하였다. 1998년 7월 청년민주동맹의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an)이 총리에 취임하였다.

의회는 헌법과 법률의 제정, 국가예산과 사회경제계획의 결정, 대통령과 각료회의 임원의 선출, 선전포고 및 휴전협정 체결 등의 권한을 가진다. 1989년 개헌으로 대통령제가 처음 도입되었다. 대통령은 의회에서 선출되고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있다. 또한 국가의 원수로서 군 통수권을 가진다. 2000년 8월 페렌츠 마들(Ferenc Madl)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행정부의 최고기관은 각료회의로, 의장(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의회에서 선출된 장관들로 구성된다. 각료회의는 내각을 지도하고 법을 집행하며 경제계획을 이행한다.

지방행정은 피라미드 구조의 평의회들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22개의 구(區)평의회, 주요 4개 시(市)에 13개의 지구(地區)평의회, 각 주(州)에 촌(村)평의회가 있다. 사법부는 최고재판소·주재판소·군재판소로 구성되고 각 재판소의 판사들은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무기한이다. 최고재판소장은 의회에서 선출된다. 검사장은 의회에서 선출되며 일반검사들을 임명한다.

2. 정당

1945년 소련군이 헝가리에 진주한 1945년 이후 사실상 공산당 1당제였으나 1989년 변혁 이후 복수정당제로 이행하였다. 1918년 탄생한 공산당은 1948년 6월 사회민주당과 합당하여 근로자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M.라코시를 당 서기로 선출하였다. 1956년 10월 헝가리 사태로 알려진 군중시위에 의해 개혁주의자인 I.너지가 정권을 잡았으나, 11월 3일 소련군의 개입으로 붕괴되고 친소적 개혁주의자인 카다르가 집권하였다. 이때부터 근로자당은 사회주의노동자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33년간 1당독재를 실시하였다.

1989년 1월 의회가 정당 설립을 인정하는 결사법과 집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복수정당제로 이행하였다. 그해 10월 6일 사회주의노동자당은 당대회를 열어 헝가리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당제와 시장경제 도입을 포함한 신강령을 채택하였다. 1989년 10월 18일 신헌법이 통과되었고 23일에는 국명을 헝가리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헝가리는 동구권 개혁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1990년 3월 25일 43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개표 결과 집권당이던 사회당(HCP)은 33석을 얻는 데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민주포럼(HDF) 165석, 자유민주동맹(FFD) 92석, 독립소지주당 43석 등으로 다당제가 되었다. 제1당이 된 민주포럼은 독립소지주당 및 기독교민주인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민주포럼의 J.안탈을 총리로 선출하였다.

5월 2일 의회는 제2당인 자유민주동맹의 반체제 작가 A.곤츠를 의장 겸 임시 대통령에 선출한 후 8월 3일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집권 연정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인기가 하락하기 시작, 1992년 5∼6월 보궐선거에서 사회당에게 패배하였다. 199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곤츠가 재선되었고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여 사회당 및 자유민주연합간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에 쥴라 호른을 선출하였다. 1998년 5월의 총선에서 청년민주동맹이 승리하여 독립소지주당 및 헝가리 민주포럼간 연정을 구성하고 7월에 당수 빅토르 오르반이 총리로 취임하였다. 2002년 5월 제4차 총선이 실시된다.

3. 외교

헝가리는 1989년 이전까지 친소적 외교정책을 펼쳐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창설회원국으로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에 가입하였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사태에도 소련의 입장을 따랐다. 그러나 다른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대서방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어서 1973년 서독과 국교 수립, 1977년 카다르의 바티칸 방문, 1982년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 초청 등을 이루었고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와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국제부흥개발은행 또는 세계은행)에 가입하였다.

1996년 5월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였다. 1999년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였고 1992년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준회원이 되었으며 2003년까지 정식가입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1989년 변혁 이후에는 외교정책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1989년 7월 미국 대통령 부시가 헝가리를 방문하였고, 1990년 6월에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탈퇴를 결정하였으며, 1991년 COMECON 해체 이후에는 대서방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유럽질서형성을 위해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특히 비세그라드 4국(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간 협정을 통해 중동구지역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유럽국가들의 협력체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루마니아와도 1996년 9월 기본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루마니아 거주 헝가리계 소수 민족의 지위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4. 군사

헝가리의 병역은 징병제로, 18∼55세의 성인남자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복무 기간은 3년에서 2년, 1년, 9개월로 점차 줄어들었다. 2000년 현재 총병력은 육군 2만 4300명, 공군 1만 2400명이고 국방비 규모는 1894억 달러(GDP 대비 1.61%)이다. 1999년 3월에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였다.

VI. 경제

1. 경제개혁

1966∼1967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68년 1월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계획경제의 대체적인 틀 속에서 ① 기업의 이윤추구를 용인하여 경영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② 고용·투자·생산내용 등의 기업의 자주성을 높이며, ③ 어느 정도 시장경제기구를 도입하여 수급의 균형을 도모한다는 것을 주요골자로 하였다. 새 경제제도는 기업관리자의 보수를 노동자보다 우대하고 손실이 있는 경우의 부담도 크게 하는 등 물적 자극과 경쟁, 시장·가격면에서의 역할을 중요시하고 있다. 가격도 종래의 공정가격 이외에 최고제한가격·슬라이드 가격·자유가격의 4종류를 신설하여 폭이 넓어졌다.

또한 세계경제의 영향에서 빚어진 경제악화 타개책의 일환으로 1976년 1월부터 경제 레귤레이터(금융·세금 및 가격 등에 관한 기본적 틀을 결정하는 조치)의 수정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경제개혁의 기본노선을 견지하면서 현실적 요청에 맞도록 정책을 약간 조정한 결과라 할 것이다. 새 제도는 당초 계획경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는 큰 성과를 올렸으나 과잉투자·무역적자 증대 등의 폐해가 발생하였다.

1979년 11월 종래의 경제규제 조치를 수정, 시장 메커니즘의 적용 강화를 도모하는 시책을 1980년 1월부터 실시하였다. 이것은 가격원리를 철저히 하여 저수익 경제활동을 일소하고 투자재원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업적에 대응하는 임금 지급 등에 의해 생산효율의 향상과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경제개혁은 제2의 단계에 돌입하였다.

1990년 집권한 헝가리 민주 포럼은 인플레이션 억제 등과 같은 경제 개혁을 통하여 개혁 과정의 충격을 최소화하였고 대외신용을 유지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1991년 3월 소유권 제도의 확립과 국내자본의 효율성 제고, 교육, 행정 개혁을 위한 "경제 전환 및 발전 계획"을 채택하였지만 경제 개혁에 따른 혼란과 긴축 정책 등의 부작용으로 1990~1993년까지 헝가리 경제는 역성장을 하였다.

그러나 1993년 이후 경제 안정화 조치에 따라 시장경제가 진정되고, 공업 생산 및 투자가 증가하여 1994~1995년 동안 2% 이상의 성장과 1996~1997년에는 3~4%의 경제 성장을 달성하였고 1996년 5월에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였다. 2000년 4월에는 국제경쟁력 향상, 균형 있는 고속 경제성장 달성,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가입 등 3대목표 달성을 위한 중장기 신국가개발계획 세체니계획(Szechenyi Plan)을 발표하고 7개 중점개발 부문을 선정하였다.

2. 광업

헝가리는 지하자원이 적은 편이지만 보크사이트는 풍부하여 세계 주요수출국의 하나이며, 바코니산지가 유명하다. 알루미늄·망간도 풍부하여 수출이 가능하다. 그밖에 에너지자원으로는 석탄이 매장량 24억t으로 풍부하나 대부분이 갈탄이므로 열량이 낮으며 남서부의 페치 부근, 카르파티아산맥 남부의 구릉지, 터터바녀 탄전, 도로그 탄전 등이 있다.

석유는 리스메 유전 등을 중심으로 자급률 50% 이하이며, 석유·천연가스·철광석 등은 50% 이상을 러시아의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메체크에는 우라늄 원광이 매장되어 있어, 원자력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1987년 공업 총생산에서 6.9%를 차지했던 광업부문의 저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해 적자탄광의 폐광 등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3. 공업

제1차 5개년계획(1950∼1954)에서 중공업화에 역점을 두고 전통적인 경공업·식품공업을 소홀히 한 결과 다른 공업이나 경제부문과의 균형이 무너졌으므로, 현재는 중공업 우선 정책을 수정하여 국내의 공업원료 및 공업의 전통에 알맞은 정책이 채택되고 있다. 공업생산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증가율이 둔화되어왔으나 1993년 이래 매년 7∼10% 정도 증가하고 있다. 주요 공업으로는 기계, 금속가공, 화학, 식품공업이나 산업구조를 개편하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하이테크 산업에 중점 투자하여 통신, 정밀기계, 제약업은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공업제품은 국영·협동조합 및 개인에 의하여 생산되나 규모가 큰 것은 모두 국영기업에 의한 중앙집중이 심하다. 경제개혁 조치로 사기업의 활성화 및 부실 국영기업의 매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2000년 4월 세체니 신경제개발 계획(Szechenyi Plan)을 발표하고 산업 생산체계 강화에 애쓰고 있다.

4. 무역

헝가리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 국민소득의 약 42%를 무역이 차지한다. 대외무역은 국가가 독점하여 대외무역부가 전반적인 수출입의 계획과 관리를 담당한다. 무역실무는 각종 수출입공단 및 수출입 허가를 얻은 생산기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밖에 외국회사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하고 그 거래를 대행하는 무역대리점(10여 개)이 있으며 1968년 신경제관리제도(경제개혁)의 도입 이래 수출입을 행하는 기업 및 무역대리기업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2000년 현재 헝가리의 교역실적은 수출 254억 달러, 수입 275억 달러이다. 수출은 1997년과 1998년 사이에 20%가 넘는 큰폭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러시아 경제침체의 장기화와 유고사태로 인한 영향으로 1999년에는 저조한 실적을 보였다. 지역적으로는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국가가 전체 수출의 77%, 수입의 58%를 차지하였다.

수출입품목을 보면 농산물 등의 수출과 원자재 등의 수입이 많아 헝가리 경제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주요 수출품은 기계·공업용 제품·식육·야채·과일·가축·압연강·섬유제품·버스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석유·철광석·석유화학원료·합성섬유·화학비료·종이·목화 등이다.

5. 교통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서유럽에서 발칸 방면으로 달리는 육상 국제선의 통과지로, 최근에는 관광에 역점을 두고 있어 주요도로는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 유럽교통망과 연결된 6개 도로망(1,230㎞)이 있으나, 헝가리 내부 도로망과 연결된 부분은 41% 에 불과하여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경제체제와의 연결을 통한 경제발전 도모 및 낙후지역 개발 촉진을 위해 도로망 확충에 노력하고 있다. 또 주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트럭노선은 서유럽에서 쿠웨이트·이란에까지 이른다. 도로의 총연장은 18만 8203km(1998)이고 1996년 등록된 자동차수는 226만 대이며 2만 대가 버스이다.

1996년 현재 철도의 총 길이는 7,714km이고 전화율(電化率)은 30%이다. 부다페스트에 최초의 지하철이 건설된 것은 1895년의 일인데 유럽에서는 런던에 이어 2번째로 오랜 역사를 가진다. 지하철의 총 길이는 34.6km이다.

부다페스트 시내를 관류하는 도나우강의 체펠섬에는 자유항이 있고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한 하천교통도 활발하다. 항해 가능한 내륙수로는 총 길이 1,373km에 달한다. 바다는 없지만 현재 해양상선을 보유, 불가리아의 바르나항(港)을 근거지로 활동한다.

VII. 사회

1. 사회보장

헝가리는 무료의료제도·연금·가족수당 등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의료 및 연금은 사회보험에 의해 처리되고 노동조합 전국평의회가 운영과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연금에는 노령·불구·과부·고아 등의 각종 연금이 있다. 노령연금은 남자 60세, 여자 55세 이상의 사회보험 가입자가 받을 수 있다. 1998년 현재 연금 수령인구는 전체인구의 31.2%이다. 최근 연금수혜를 받는 노년인구 증가 등으로 인하여 재정적자가 증가하고 있어 이를 축소하기 위해 정부는 자구책을 찾고 있다.

노동시간은 공업 및 건설공업에서는 주 44시간제이며 그밖에는 주 48시간제가 보통이다. 또 최근에는 주 5일 근무제도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노동환경의 보전, 부인·소년의 노동보호는 비교적 잘 이루어져 있으며 종업원 100명 이상의 특정기업에 근로자 문제를 심사하는 기관으로 사회재판소가 마련되어 있다. 한편,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어 정부는 인구증가 정책과 함께 효율적인 노동력 배치에 부심하고 있다.

2. 교육

헝가리의 교육제도의 기본은 1961년의 교육체제 개선에 관한 교육법령이 기본이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모든 교육이 국립이었으며, 무료였으나 1990년 이후 사립교육이 부활된 후 국립대학은 1995년부터 소액의 수업료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1년부터 16세까지의 교육은 의무교육이며 초등교육 과정은 4년, 6년, 8년제가 있고, 중등교육 과정은 문법학교와 직업학교 과정이 있다. 고등교육 과정은 3, 4년제의 전문대학과 5, 6년제의 정규대학 과정이 있다.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은 부다페스트에 있는 에트베슈로란드대학(1635년 창설)이다. 문맹률은 2%이다.

3. 스포츠

헝가리는 비록 작은 나라이기는 하지만 올림픽의 메달 획득 경쟁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스포츠가 활발하다. 강세를 보이고 있는 종목으로는 수구(水球)·펜싱·핸드볼·유도·축구 등을 들 수 있고 제일 인기 있는 종목은 축구이다. 스포츠 조직으로는 헝가리 체육스포츠평의회 이외에 각종 종목별 평의회가 있고, 그 밑에 학교·근무처·지역마다 스포츠 클럽(서클)이 조직되어 있다. 클럽수는 약 1만 1000여 개이고 가입자수는 42만여 명이다.

VIII. 문화

1. 문학

헝가리어로 쓰여진 초기 문헌은 주로 종교적 문서이거나 연대기(年代記) 종류이고 진정한 국민문학은 16세기의 서정시인 B.발라시라든지 17세기의 서사시인 M.즈리니로부터 시작된다. 그 뒤에는 한때 침체상태에 빠지기도 하였으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까지는 내셔널리즘의 열풍과 함께 뛰어난 시인·작가가 배출되어 국민문학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 문학가로는 M.초코나이 비테즈, M.뵈뢰슈머르치, 극작가 S.키스팔루디, J.카토나가 손꼽힌다.

특히 카토나의 사극(史劇) 《방크 반 Bank Ban》(1821)은 헝가리 극단(劇壇)의 명작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까지도 무대에 올려진다. 이 밖에 국민문학 전성기에 태어난 특이한 작가로는 헝가리 최대의 시인 S.페테피가 있다. 그는 파란으로 점철된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서정시를 남겼다. 헝가리는 독립전쟁에 패배한 뒤 오스트리아의 압제에 시달렸으나 이런 시기에도 J.아라뉘의 서사시 《톨디 Toldi》(1847∼79)라든지 I.머다치의 《인간의 비극 Tradgedy of Man》과 같은 수준높은 작품이 발표되어 국민문학의 전통을 지켰다.

1867년의 화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성립, 안정기에 접어들자 문단에서도 M.요카이, K.미크사트와 같은 평이한 작품 스타일의 산문작가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요카이는 많은 장편을 써서 국제적인 인기작가가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서유럽 문예사조에 젖은 젊은세대의 문학가들이 잡지 《서방(西方) Nyugot》을 발간함으로써 헝가리 문학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 그룹의 중심 인물인 E.아디는 프랑스 상징파의 영향을 받은 시인인데 표현과 사상이 격렬하여 신·구세대 사이에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뉴가트파(派)의 문학가로는 시인이며 소설가인 M.바비츠, D.코스틀라니 등이 있으며 이들은 제1·2차 세계대전의 문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헝가리 리얼리즘 문학의 제1인자인 Z.모리츠도 이 잡지를 통하여 배출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 밖에 세계대전 중에 활약하였던 작가로는 희곡 《릴리옴 Liliom》을 쓴 F.몰나르를 비롯하여 J.헬타이 등의 도시파(都市派) 작가들이 있으며 시인으로는 A.요제프가 걸출한 인물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작가로는 소설·희곡 부문에서 많은 역작을 내놓은 L.네메트와 G.이예스, 강렬한 비판정신으로 영향력을 보여준 소설가 T.데리를 비롯하여 사보, 레이에시, 루카치, 산도르 페퇴피, 콘라드 등이 있다.

2. 음악

19세기의 헝가리 음악가는 주로 외국에서 활약하였던 F.리스트를 비롯하여 가극(歌劇) 작곡가로 유명한 F.에르켈을 꼽을 수 있으며, 국립 음악학교를 설립하고 국립 가극장을 세움으로써 뛰어난 음악가가 많이 배출되었다. 20세기의 헝가리 음악은 B.바르토크와 Z.코다이의 2대 작곡가로 대표되며 이밖에 연주 부문에서도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는 J.후바이, C.플레시, J.시케티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명연주자들이 많고, 피아니스트 E.도흐나니, L.크라우시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밖에도 레나 4중주단,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이나 지휘자 유진 오르만디 등 유럽과 미국에서 활약하는 음악가도 많다.

IX. 과학기술

헝가리는 재료·전자·화학부문 등의 기초과학에서 한국보다 발전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상품화하는 기술 수준과 생필품 등의 생산기술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헝가리는 서구 선진 기업들의 직접투자를 유치하여 생산기술을 보완하려고 노력 중이다. 헝가리는 1960년대 중반부터 작지만 성장 가능한 컴퓨터 산업을 개발해왔다. 동유럽에서 가장 도전적인 컴퓨터 제조업체에 하나인 비디오톤(Videotone) 전자회사는 1970년대에 몇 개의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였으며, 컴퓨터 제품을 서독·오스트리아·핀란드 그리고 동유럽 COMECON(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경제상호원조회의) 국가들에 수출하였다.

1980년대 초의 경제개혁으로 인하여 국영기업, 연구재단 그리고 PC를 제조하는 개인회사까지도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헝가리는 인상적인 소프트웨어 생산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많은 서구의 국가들이 헝가리의 프로그램을 구매하거나 헝가리의 설계자와 소프트웨어 하청계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전자산업은 1986년에 일어난 화재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많은 주요 공장들이 불에 탔다.

1997년 현재 전화회선은 309만 5000회선이며, 이동전화는 1999년 7월 126만 9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하였다. 통신사는 1880년 설립된 이래 헝가리 최대 통신사로 운영되고 있는 MTI(Magyar Tavirati Iroda) 등이 있다. 라디오는 1925년 정규방송을 시작한 이래 3개 국영 채널과 상업방송이 운영되며 TV 방송은 1958년 정규방송을 시작한 이래 3개 채널이 운영되었으나 1997년 주파수 재조정 및 민영화 작업을 거쳐 현재 국영방송 3개, 민영방송 2개가 운영되고 있다. 1990년 이래 19개 주(County)에 각각 1개 이상의 유선방송사가 설립되어 지역뉴스 및 정보 제공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현재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업자(ISP)는 16개이고 인터넷 사용자는 65만 명이다.

X. 대한관계

헝가리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1948년 11월 남북한 동시수교를 맺었으며, 1989년 2월 다시 한국과 단독수교를 맺었고 1998년 북한과 대사급 관계를 회복하였다. 한국은 1989년 이후 삼성·대우·현대 등 민간기업들의 대(對)헝가리 합작투자와 기술교류가 활발하며 2001년 10월 현재 현지법인 15개사가 있다.

1989년 대통령 노태우, 1996년 국무총리 이수성, 2001년 12월 대통령 김대중이 헝가리를 방문하였고 헝가리에서는 1990·1993년 대통령 괸츠, 1996년 총리 호른이 방한하였다. 2000년 현재 대(對)한 수입 1억 8000만 달러, 대한수출 1억 700만 달러이다. 수출품은 돼지고기, 컴퓨터 부품, 전자부품, 자동차 부품 등이고, 수입품은 컬러 TV 및 부품, 자동차, 가전제품, 섬유.직물 등이다. 2000년 말 현재 한국인 체류자는 400여 명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Deluxe], ㈜두산,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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