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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06-07 (목) 22:03
분 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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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324      
[남북국] 2120. 염거화상 부도

2120. 염거화상 부도

통일 신라(844), 높이 1.7m, 원래 강원도 원주시 흥법사에 있었다고 전함, 현재는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앞뜰로 옮겨짐. 국보 제104호.

신라 부도 전형 양식의 기원이 되는 것은 도의선사의 제자인 염거화상의 부도이다. 이 부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남아 있는데, 원소재지나 연대 등은 아직도 불확실한 점들이 있다. 원주 흥법사지에서 1914년경 서울의 파고다공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며, 해방 뒤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경복궁 중건 공사로 1990년대에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뒷뜰로 옮겨졌다가, 2004년 현재의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앞뜰로 옮겨졌다. 이 부도 안에서 나왔다고 하는 염거화상명탑지(廉巨和尙銘塔誌) 동판(銅板)에 근거하여 844년 입적한 염거화상의 부도로 생각하고 있다.

이 부도는 마치 장고의 몸체를 연상케 하는 형태[고복형(鼓腹形)]의 연꽃 받침대에 8각당을 얹은 모습[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을 하고 있다. 염거화상의 부도는 이후 하대 신라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모든 부도의 기본 형태가 된다.

이 부도의 옥개석 지붕에는 기왓골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처마 밑에는 비천, 탑신에는 사천왕, 탑신받침 안상(眼象) 안의 천인(天人), 상대석의 연꽃잎, 중대석의 여러 무늬, 하대석의 사자 등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이 부도는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장중한 맛을 풍긴다. 염거화상은 가지산문의 제2조이다.

염거화상의 제자인 보조선사의 부도(880)에 이르면 9세기 하대 신라의 석조물에서 부도가 지닌 위치를 확연히 확인하게 된다. 9세기 경주의 중앙 귀족 문화를 본뜬 석탑은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할지라도 새로운 양식인 부도의 건조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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