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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2 (금) 11:05
분 류 문화사
ㆍ조회: 7609      
[삼국] 백제미술 (한메)
백제미술 百濟美術

관련항목 : 한국미술

백제시대에 이루어진 미술의 총칭. 한반도 남서부에서 일어난 백제는 평탄한 지형과 따뜻한 기후 위에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 송(宋)나라·양(梁)나라 등 중국 남조(南朝)와 잦은 교류로 문물을 받아들여 격조 높은 미술을 낳았으며, 신라와 일본의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쳤다.

[회화]

공주 송산리 6호분 백호도고구려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들 나라와는 다른 차분한 화풍을 이루어 백제 특유의 완만하고 유연하며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으며, 고구려 회화와 유사한 양식을 창조했다. 고구려의 영향은 몇몇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며, 중국 남조 특히 양나라와의 교류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양서(梁書)》 등의 기록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하는 백제 시대 회화 작품으로는 공주 송산리6호분(公州宋山里六號墳), 부여능산리고분(扶餘陵山里古墳)의 사신도(四神圖)·연꽃무늬〔蓮花紋〕·비운무늬〔飛雲紋〕 등의 벽화, 부여 규암면 절터에서 발견된 <산수문전(山水紋塼)>, 무녕왕릉(武寧王陵)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 등으로 매우 드물다.

부여 외리 출토 백제 산수산경문전7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산수문전>은 백제 미술의 한 정점(頂點)이며, 백제 회화의 우수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좌우대칭으로 짜여진 이 벽돌은, 아랫부분의 도식화된 수면(水面)과 윗부분의 구름을 뺀 나머지 부분에 산들을 가득히 새겨 놓았다. 바위산과 소나무 덮인 산들이 첩첩이 겹치고 쌓인 모습을 공간감과 거리감 있게 나타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조화와 느낌에도 마음을 써서, 원융(圓融)한 세계를 이루었다.

<산수문전>의 이 삼산형(三山形) 산악도는 무녕왕릉 출토의 동탁은잔(銅托銀盞)에도 나타난다. 또한 백제회화는 일본의 고대회화 성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백가(白加)·아좌태자(阿左太子)·인사라아(因斯羅我) 등의 이름이 일본 기록에 남아 있다.

[조각]

부여 규암리 출토 관세음보살입상384년(침류왕 1) 중국 동진(東晉)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고부터 불상이 조각되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불상을 본뜨다가 차츰 백제 고유의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서울 뚝섬 출토의 금동좌불상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백제불상으로, 네모난 대좌 위에 두 손을 앞에 모은 선정인형식(禪定印形式)을 취하고 있다.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巖面) 신리(新里) 출토의 금동좌불상과 부여읍 군수리(軍守里) 절터에서 출토된 납석(蠟石)으로 새긴 불좌상이 뚝섬 출토 불상을 약간 발전시킨 6세기의 작품이다.

석조불상은 암벽에 돋을새김〔浮彫〕한 것들이 많다. 충청남도 태안군(泰安郡) 백화산(白華山)의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은 작은 보살을 중심으로 양쪽에 큰 보살이 서 있는 특이한 형식을 보여준다. 충청남도 서산시(瑞山市) 운산면(雲山面)의 마애삼존불은 얼굴의 티없는 웃음으로 <백제의 미소>라는 찬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우수한 수법을 보여준다. 왼쪽에 반가사유상을, 오른쪽에 관음보살입상을 거느린 삼존불은 삼국 시대에 널리 받아들여진 형식으로 특히 백제에서 성행했는데, 중국 남조 불상들에서 그 원류(源流)를 찾아볼 수 있다.

이 형식을 본뜬 일본의 초기 불상들인 호오류사〔法隆寺〕 유메노도관음〔夢殿觀音〕이나 금동48체불 중에도 두 손에 보주(寶珠)를 마주잡은 불상들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문화의 전파 경로를 짐작하게 한다.

7세기 전반기의 작품으로는 공주시(公州市) 의당면(儀堂面) 출토 금동보살입상 등이 있는데, 오른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둔 3곡자세와 달개〔瓔珞〕·천의(天衣)의 표현 등으로 미루어보아 중국 북제(北齊) 및 주(周)나라 말기와 수(隋)나라 초기의 새로운 양식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때의 석조상으로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삼기면(三箕面) 연동리(蓮洞里) 석불좌상이 있는데, 균형 잡힌 몸매와 세련된 옷주름을 보여준다.

[건축]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처음에는 고구려와 거의 같았고, 그 뒤 중국 남조의 양식이 더해졌으리라고 짐작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공주·부여·익산지방의 절터와 석탑(石塔) 2기뿐으로 자료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백제 초기의 목조건축은 강직하고 웅장한 고구려 양식이었다가, 점차 경쾌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변하고, 지붕은 맞배지붕·우진각지붕 외에도 중국에서 온 팔작지붕이 새로이 나타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석탑으로는 한국 석탑의 시원(始原)으로 삼고 있는 익산 미륵사지석탑(彌勒寺址石塔)과, 이를 바탕으로 백제양식의 완벽한 석탑으로 발전된 정림사지오층석탑(定林寺址五層石塔)이 있다. 부여지방의 여러 절터와 익산 미륵사 절터의 발굴로 백제 가람 배치의 대강이 밝혀졌고, 성터에 대한 조사도 많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구(遺構)는 석탑이다.

미륵사지석탑은 목조탑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현재 3면이 무너지고 동쪽만 남아 있다. 애초에 9층 또는 7층이었던 것이 6층 일부까지만 남아서 한국 석탑의 처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림사지석탑은 세부가 정리되고 크기가 줄었으며 받침부가 단려(端麗)해지는 등, 완숙한 의장을 보이는 전형적인 백제석탑이다. 백제의 석탑은 삼국통일 이후 석탑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 한국 석탑의 밑받침이 되었다.

[성곽]

부여 부소산성 전경삼국 가운데 가장 많은 성곽을 쌓았으며, 특히 산성(山城)을 많이 쌓았다. 산성 축성의 특징은 지형을 살려 산성을 쌓았는데, 초기에는 방어하는 데에 불리한 곳만 흙이나 돌로 성벽을 쌓아 올렸다. 백제의 도읍은 처음에 위례성(慰禮城)이었다가 한성(漢城)·공주·부여로 옮겼는데, 위례성은 지금의 서울특별시 송파구(松坡區)의 풍납동토성(風納洞土城)으로 비정(比定)되고 있다. 한성은 지금의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중부면(中部面)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짐작하고 있다.

세번째 도읍인 충청남도 공주시 시가지 북쪽에 공산성(公山城)이 남아 있다. 웅진시대(熊津時代)의 유구로 총길이 1925m로서 대부분 돌로 쌓았고, 남동쪽은 흙으로 쌓았다. 또 왕궁 주변에는 나성(羅城)도 쌓았다. 사비시대의 도읍지 부여는 나성이 완전히 정비되었는데 강을 끼고 산을 등지는 지형은 공주와 비슷했다. 시가지 북쪽에 부소산성(扶蘇山城)을 두고, 동서로 나성을 쌓았다. 사비성의 외곽 사방에 증산성(甑山城)·청마산성(靑馬山城)·석성산성(石城山城)·성흥산성(聖興山城)의 4개 산성이 설치되었다.

그 밖에 제2의 외곽성이라 할 수 있는 노성산성(魯城山城)·황산성(黃山城)·건산성(乾山城)·주봉산성(周峰山城)·건지산성(乾芝山城)을 두어 중요 길목을 방어하였다. 6세기 중엽 신라와의 다툼이 심할 때에는 신라와의 국경지대에 수많은 산성을 쌓았다. 전투용 성곽이었으므로 대부분 돌로 쌓아 견고했으며, 길이 1000m 안팎의 작은 규모였다. 크고 작은 38여 곳의 산성이 이때 지금의 대전(大田) 부근에 세워졌는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대전시 대덕구(大德區)에 있는 계족산성(鷄足山城)이다.

[공예]

백제 미술 가운데 가장 정채(精彩) 있는 부분은 공예였다. 토기와 기와로 대표되는 토공예, 무녕왕릉 껴묻거리〔副葬品〕에서 진면목을 드러낸 금속공예, 목공예 등으로서 백제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공예작품으로 표현하여 남겨 놓았다.

<토기>

백제 토기 각종한성 시대·웅진 시대·사비 시대로 그 특징을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한성 시대 토기는 원삼국시대 집터 유적인 강원도 춘천시(春川市)중도(中島),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가평읍(加平邑) 마장리(馬場里), 강원도 원주시(原州市) 소초면(所草面) 둔내리(屯內里) 등에서 출토되는 회색삿무늬토기〔灰色繩蓆紋土器〕·회청색경질민무늬항아리〔灰靑色硬質無紋壺〕 및 바닥이 편평하고 아가리가 밖으로 벌어져 있는 적갈색토기들이 발전하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법천리(法泉里),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芳荑洞)·가락동(可樂洞) 등에 있는 고분들에서 발굴된 토기들은 원삼국시대의 전통 위에 합(盒)·굽다리접시〔高杯〕 등의 새로운 그릇이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중국 월주요(越州窯)의 청자, 육조시대(六朝時代)의 두 귀 달린 청자들이 발견되기도 하고, 고구려 계통의 토기도 있는 것으로 보아 문화가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공주 출토 백제 연화문 와당웅진 시대에는 밑이 편평하고 어깨가 넓어지는 회청색경질민무늬토기〔灰靑色硬質無紋土器〕가 만들어지고, 중국 남조와의 교류로 그릇받침〔器臺〕·세발토기〔三足土器〕·병·뼈단지〔骨壺〕 등 독특한 백제토기가 만들어졌다. 사비시대에는 둥근바닥토기항아리〔圓底土器壺〕가 사라지고 벼루가 새로이 만들어졌으며, 뼈단지가 많이 만들어졌다. 또한 호자(虎子)·매화틀·긴목병〔長頸甁〕·닭모양토기 등이 간혹 출토되기도 한다. 신라 토기가 경질(硬質)임에 비해, 백제토기는 연질(軟質)·와질(瓦質)의 토기가 많다.


부여 출토 백제 뼈단지 각종또한 실용성과 더불어 소박하고 넉넉한 모양과 꾸밈으로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백제의 기와는 막새기와 안에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연꽃잎 끝이 둥그렇게 치켜져 올라가는 긴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연꽃잎은 아무 장식이 없이 양감(量感)이 도드라지지 않아 부드럽고 우아하다. 연꽃잎의 수는 8개이고, 빛깔은 회백색이다. 상서로운 뜻을 담은 막새기와는 그 하나하나의 개성적 의장에 의해 그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금속공예>

금속 공예는 무녕왕릉의 발굴에 의해서 비로소 그 면모를 나타냈다. 무녕왕릉의 껴묻거리 가운데에는 꾸미개〔裝身具〕·무기류·일상용품 등의 뛰어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금으로 된 관장식〔冠飾〕, 금으로 된 귀걸이, 왕의 머리뒤꽂이〔釵〕, 왕비의 은팔찌, 마디있는 목걸이 등의 화려한 장식품들은 당시 금속공예술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무녕왕릉 출토의 관장식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반남면(潘南面) 신촌리(新村里) 9호 독무덤 출토 금동관의 꾸밈새를 이어받은 것으로, 그 화려함과 독특함은 같은 시대의 신라 금관에 뒤지지 않는다. 또 귀걸이도 굽은옥〔曲玉〕에 금으로 모자를 씌워 달아맨 것이라든가 속잎모양을 맞새김〔透刻〕한 수법 등은 백제 고유의 것들이다.

이와 같이 백제의 금속공예는 꾸미개에서 가짓수의 다양함, 창의적인 모양, 세공(細工)의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무녕왕릉에서는 꾸미개뿐만 아니라 손잡이 부분에 용을 새긴 칼, 청동거울〔銅鏡〕 3개, 받침잔〔托盞〕 등의 금속공예작품들이 출토되었다. 칼에는 깊은 음각으로 꿈틀거리는 용을 새겼는데, 그 쓰임새는 껴묻거리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청동거울에는 달리는 4마리의 짐승, 반라(半裸)의 인물, 둥근꼭지장식〔圓紐〕, 사신(四神) 등의 무늬가 있다.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은 일본 군마현(群馬縣) 출토의 청동거울과 똑같은 거푸집으로 만든 작품으로 보여져 흥미롭다. 받침잔은 받침·잔·뚜껑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받침과 잔은 은으로, 뚜껑의 꼭지 밑부분의 연꽃무늬꾸미개〔蓮花紋裝飾〕는 금으로, 나머지는 은으로 만들었다. 각 표면은 연꽃·물새·구름·용 등이 부드럽게 음각되었으며, 둥근 형태와 각 부분의 비례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에서 출토된 청동자루솥도 백제의 특색이 충분히 발휘된 일품으로, 전체적으로 율동적이며 부드럽고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목공예>

무녕왕릉 껴묻거리에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머리고임〔頭枕〕은 머리를 누일 수 있도록 중간부분을 U자형으로 파내고 붉은 옻칠〔朱漆〕을 한 다음, 둘레 윤곽을 따라 금박띠를 돌리고, 그 안에 봉황·용·꽃무늬 등을 그려서 꾸몄다. 무녕왕릉에서는 나무로 만든 발받침〔足座〕과 봉황머리도 나왔다. 발받침에는 다리 얹는 부분과 밑면을 뺀 나머지 부분에 금판을 길게 오려서 거북등모양을 만들고, 각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화심(花心)에 달개가 1개 달린 금못을 박아 마무리하였다.

봉황머리는 1쌍으로 모습이 약간씩 다른데, 깎은 뒤에 엷게 옻칠〔漆〕을 하고 군데군데 붉은 옻칠과 금박으로 꾸몄다. 무녕왕릉의 또다른 목공예작품으로 옻칠처리한 널〔棺〕의 잔편(殘片)을 들 수 있는데, 나무를 다듬은 수법이 대담한 면을 보인다. 군데군데 큰 구리꾸미개를 박아 꾸몄다.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사진은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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