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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3-26 (화) 23:1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4926      
[고려] 고려미술 (한메)
고려미술 高麗美術

관련항목 : 한국미술

고려 시대에 발달한 미술의 총칭.

고려 미술은 송(宋)나라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에 원(元)나라 미술이 유입될 때까지 그 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국가의 불교 장려책으로 비대해진 불교 귀족이 과거 제도를 통해 형성된 관료 귀족과 더불어 고려 미술의 후원자가 되었다.

특히 청자(靑磁)나 불화(佛晝)에서 보이는 세련미와 섬세함은 근대화한 송나라 미술 양식을 받아들인 고려 귀족들의 감정이나 기호, 즉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최고품에 대한 희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귀족취향의 고려청자와 금속공예 등이 호화롭고 정교함에 비하여 건축·조각 등의 불교 예술은 신라 시대에 비해 뒤떨어졌다.

후기의 예술은 문벌 귀족의 몰락과 함께 전기의 귀족 예술에 비해 쇠퇴하였으며, 원나라 예술의 영향으로 조형미술의 형태와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목조 건축]

고려의 목조 전축은 양식상 주심포식(柱心包式)과 다포식(多包式)으로 나뉜다. 주심포식은 중국 재래 양식으로 한국에는 이미 삼국 시대에 들어왔으나, 고려 때는 세부적 변화를 일으킨 남송(南宋)의 주심포식을 이어받았다.

주심포식의 특징은 ① 기둥 위에 팔을 벌린 것처럼 짜올려져 지붕을 받치는 공포(拱包) 또는 포가 기둥 위, 즉 주심(柱心)에만 있고 ② 2개의 주심포 사이에 지주(支柱)가 필요할 때에는 조그만 동자주(童子柱)나 복화반(覆花盤)을 배치하며 ③ 포를 조성하는 지형(肢形)의 첨차는 벽 안팎으로 2단(段) 이상 짜나가지 않으며 ④ 첨차 굴곡 부분의 겉면은 S자 모양으로 깎고 ⑤ 천장은 천장판 없이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으로 한다.

한편, 고려 말기에 들어온 다포식의 특징은 ① 공포는 주심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배치하고 ② 2개의 주두(柱頭)를 가로로 연결하는 창방(昌枋)을 얹어 그 위에 공포가 앉도록 하며 ③ 공포의 벽간외(壁間外) 출목수(出目數)는 3개 또는 그 이상이 소요되고 ④ 건물 외부에서는 첨차 끝이 혀처럼 벅면과 반대방향으로 뻗으며 ⑤ 천장은 서까래가 안 보이게 널을 짠 격자천장이다.

주심포식이 간결하고 정리된 효과를 내는 데 비해서 다포식은 화려한 장식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건물을 크고 견고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현존하는 고려 시대 목조 건물로는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서후면(西後面)에 있는 봉정사극락전(鳳停寺極樂殿)과 경상북도 영풍군(榮豊郡) 부석면(浮石面)의 부석사무량주전(浮石寺無量壽殿)·부석사조사당(浮石寺祖師堂),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수덕사대웅전(修德寺大雄殿) 외에 강릉객사문(江陵客舍門)·심원사보광전(心源寺普光殿;황해북도 황주군 구락면)·성불사응진전(成佛寺應眞殿;황해북도 황주군 주남면)·석왕사응진전(釋王寺應眞殿;강원도 안변군 문산면) 등이 있다.

이 중 봉정사극락전은 주심포식에 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1363년(공민왕 12)에 보수한 것으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부석사무량수전과 수덕사대웅전도 주심포식 건물이다. 심원사보광전·석왕사응진전 등은 다포식으로, 특히 후자는 다포식이면서 2출목공포·공간포(空間包) 등 수법상 고려와 조선을 연결하는 과도기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탑파]

고려 석탑은 신라탑의 형식을 변질시키면서 고려탑의 고유형식을 성립하였으나, 조각에서 보듯 신라탑의 전통은 사라지게 되었다. 특색은 ① 옥개석(屋蓋石)의 층급(層級)받침이 얇은 4단 또는 3단으로 되어 있고 ② 탑신(塔身)이 높고 좁으며 ③ 기단(基壇)에 연판(蓮瓣)을 새기는 등 대좌화(臺座化)하는 경우가 있고 ④ 6각·8각 등 특이한 탑 형태가 생기기도 하였다.

고려 초기의 탑으로는 의령(宜寧) 보천사지(寶泉寺址) 3층석탑과 해남(海南) 대홍사(大與寺) 북미륵암(北彌勒庵) 3층석탑 등이 있는데, 전자는 신라의 형식으로부터 하성기단(下成基壇)의 중간탱주(中間撑柱)가 하나로 줄고 상성기단(上成基壇)에서는 모무 없어져 1매(枚)의 면석(面石)으로 되어 있으며, 후자는 신라탑에서 옥개석 층급받침이 퇴화한 형태이다.

중기의 탑으로는 1010년(현종 1)의 예천(醴泉) 개심사지(開心寺址) 5층석탑이 역시 신라의 전통을 남기면서도 퇴화된 하성기단과 섬약한 4단받침 위의 두터운 옥개석 등 고려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으며, 광주(光州)의 서(西)5층석탑은 옥개석의 신라적 견실성(堅實性)에도 불구하고 높고 가파른 탑신이 뚜렷한 고려의 색을 보여준다. 남계원(南溪院) 7층석팁은 얇게 조각된 3단의 층급받침을 가지며 중후하면서 4귀가 반전(反轉)하는 완전한 고려탑으로 되어 있다. 한편 부여(扶餘) 장하리(長蝦里) 3층석탑·비인(庇仁) 5층석탑·강진(康津) 월남사지(月南寺址) 모전석탑(模塼石塔) 등과 같이, 호남지방에서는 백제탑의 전통이 고려까지 반영된 경우가 있어 고려탑 중에서도 특이한 지방군을 이루고 있다. 또 월정사(月精寺) 8각9층탑과 평안북도 영변(寧邊) 보현사(普賢寺) 8각9층탑처럼 요(遼)·송(宋)의 탑 양식을 따른 것도 있다.

현재 경복궁에 있는 경천사지(敬天寺址) 10층석탑은 높이 13m의 대리석제(製)로 3층의 <亞>자형 탑신 위에 7층의 방형(方形) 탑신이 얹혀 있으며, 목조건뭍 형대의 탑신과 요란한 조각 등 화려한 장식성이 대좌형 기단과 함께 몽고미술의 직접적 영향을 보여준다. 정읍(井邑) 천곡사지(泉谷寺址) 7층석탑은 뚜껑을 맞덮어 놓은 듯한 옥개석을 비롯해 길고 홀쭉한 옥신석(屋身石), 낮고 편평한 기단 등이 고려탑으로서는 전통의 소멸을 나다내는 말기적 작품이다.

이상의 전형적 석탑 이외에 석조부도(石造浮屠)도 만들어졌다. 부도는 신라 팔각당식(入角堂式)과 특수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11세기 초까지 성행하였으며 그 후부터 후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신라 8각당식은 하동(河東) 쌍계사(雙溪寺) 부도, 공주(公州) 갑사(甲寺) 부도, 남원(南原) 실상사(實相寺) 부도, 명주(溟州) 보현사(普賢寺) 낭원대사오진탑(朗圓大師悟眞塔), 문경(聞慶) 봉암사(鳳岩寺) 정진대사원오탑(靜眞大師圓悟塔), 여주(驪州) 고달사지(高達寺址) 부도 및 원종대사혜진팁(元宗大師慧眞塔), 서산(瑞山) 보현사(普賢寺)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곡성(谷城) 대안사(大安寺)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구례(求禮) 연곡사 부도, 흥법사(興法寺) 진종대사탑(眞宗大師搭;경복궁내), 거둔사(居頓寺) 승묘탑(勝妙塔), 진양(晉陽) 용암사지(龍岩寺址) 부도, 장흥(長興) 보림사(寶林寺) 서(西)부도 등이 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조각의 간소화, 일직선으로 된 처마 끝선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특수형식으로는 김제(金堤) 금산사(金山寺) 석종(石鐘), 여주 미륵사(彌勒寺) 보제존자(普濟尊者) 석종, 석등형(石燈形)의 불국사(佛國寺) 사리탑, 골호형(骨壺形)의 부토사(浮土寺) 홍법국사실상탑(弘法國師實相塔;경복궁내), 방형신전형(方形神殿形)의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搭;경복궁내), 석탑형의 영전사지(令傳寺址) 보제존자사리탑(普濟尊者含利塔) 등이 남아 있다. 석종형 부도는 태화사지(太和寺址) 부도처럼 신라와 흡사한 예도 있으며, 고려에 재현된 석종은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성행하기도 하였다.

불국사 사리탑은 운문간석(雲文竿石)의 석등형으로, 고려인의 창의라고 믿어지나 신라양식과 매우 흡사하다. 이 탑은 조각의 부드러움, 전체의 균형있는 조화 등이 두드러진 경주지방에 남아 있는 신라의 전통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고려 귀족들의 춰미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지광국사현묘탑으로, 기단에서 상륜부(相輪部)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장식으로 이루어져 전통적인 한국 양식에서 크게 이탈하고 있다.

[조각]

고려의 불상 조각은 신라에 비하여 현저히 뒤떨어지며 한국 조각사로 볼 때 쇠퇴기라고 할 수 있다. 신라조각의 기교와 정신이 9세기에 들어와 소멸 과정에 있을 때 고려의 개국은 한반도 중부를 중심으로 조각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새로운 정신과 살지고 정열에 넘친 얻굴, 길게 찢어진 눈과 작은 입이 빚어내는 미소는 고려조각의 특유한 멋을 자아낸다. 월정사 석조보살, 강릉 신복사지(神福寺址) 석조보살 등에서 이러한 자연주의에로의 복귀를 볼 수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광주(廣州) 철조석가여래좌상(鐵造釋迦如來坐像)은 석굴암 본존을 본뜬 작품으로서 고려의 새 힘을 반영한 수작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각 부흥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거불(巨佛)에 대한 제작 욕구를 마애불(磨崖佛)로서 충족하였다. 한편 이 무렵에 제작된 은진미륵(恩津彌勒)과 대오사(大烏寺) 석조미륵, 안동(安東) 이천동석불(泥川洞石佛) 등에서는 불상에 대한 작가의 무계획한 제작 의도와 체념을 엿볼 수 있다. 후기의 불상조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여래좌상이나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의 금동보살좌상에서처럼 웃음이 없는 사각형의 얼굴, 두터운 가죽같은 옷, 형식적인 의습(衣褶) 처리 등 예술적 퇴보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러한 고려 조각의 흐름 속에서 독보적인 것은 안동(安東) 하회동(河回洞)에서 전래하는 11개의 오리나무가면을 들 수 있다. 이 가면들은 생명감이 넘치며 특히 남자가면은 굴곡이나 입체감이 고조되고 표정이 과장되어 있는데, 중앙아시아를 통해 화북(華北)으로 들어온 서양인들의 조각전통을 이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여자가면은 불룩 튀어나온 광대뼈 등 생명감을 강조하는 기본태도는 같으면서 모습은 한국적이고 턱이 붙어 있어 여성적인 성격을 더하고 있다. 전라남도 해남(海南)에서 출토된 소조나한두(塑造羅漢頭;동국대학교박물관)도 불룩한 두 뺨, 사실적인 입술, 뾰족한 코, 동공(瞳孔)을 가진 눈 등이 하회가면들과 같은 계통의 조각이며, 고려시대에 들어온 서역조각(西域彫刻)의 전통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보여진다.

[회화]

현존하는 고려 회화는 대부분이 불화(佛畵)에 속한다. 현존하는 고려화적(畵蹟)을 열거하여 보면, 일반화는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안향상(安珦像)》이 있는데, 이 세 작품은 현재 일본에 있다. 불화는 《나한상(羅漢像;국립중앙박물관·일본)》 《양류관음상(楊柳觀音像;일본)》 《아미타상(阿彌陀像;일본)》 《금칠석가병(金漆釋迦屛;국립중앙박물관)》 《관무량수경변상(觀無量壽經變相;일본)》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일본)》 《석가설상도(釋迦說相圖;일본)》, 벽화는 《수덕사벽화(修德寺壁畵)》 《부석사조사당벽화(浮石寺祖師堂壁畵)》 《개성수락동고분벽화(開城水落洞古墳壁畵)》 《장단법당방고분벽화(長湍法堂坊古墳壁畵)》 《공민왕릉벽화(恭愍王陵壁畵)》 《거창고분벅학(居昌古墳壁畵)》 등이 있다.

불화에서는 세선화(細線畵)와 송·원나라식의 착색세밀화(着色細密畵)가 유행한 것으로 추정되며, 착색세밀화의 대표적인 예는 일본 도쿄〔東京〕 센소사〔淺草寺〕에 있는 《양류관음상》으로 1점(點) 1획(劃)에 정성을 들인 정밀화의 극치가 종교미와 함께 훌륭한 격조를 이루고 있다. 작가나 수요자들이 함께 바란 것은 사진과 같은 정밀함과 용모·지체(肢體)·동작·의복 등에서 풍기는 대자대비의 정신이었으며,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에 의하여 승화되었으나 바탕은 역시 고려의 귀족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화의 이와 같은 경향은 중기 이후, 특히 원나라 침입 이후 몽고의 취향도 곁들여진 말기 현상이었다고도 추정된다. 고분벽화에서는 그림의 성격 및 화지(畵地)의 조건 때문에 묵선(墨線) 위주의 평면적 약화(略畵)로 되어 있으며, 1971년에 발견된 거창군(居昌郡) 둔마리(屯馬里) 고분벽화가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벽화는 전실(前室)로 추측되는 동실(東室)의 동벽과 서벽의 북반부에 남아 있고, 목관이 들어 있던 서실(西室)의 서벽 남반부에도 남아 있다. 벽면에 흰 회칠을 하고 그 위에 묵으로 인물의 윤곽과 모발을 그린 다음 황갈색·청록색으로 의복을 채색한 것이며, 사실성보다는 생동감에 치중하였다. 인물들은 대부분 연화문두광(蓮花文頭光)을 가진 불계천녀(佛界天女)들이나 바지를 입은 남자도 섞여 있다. 이 벽화는 강한 필선(筆線)이 인물의 동작을 강조하고 있으나,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같은 용모의 달걀형 얼굴이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회화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편 고분에 십이지석(十二支石)을 돌리던 통일신라의 묘제(墓制)나 석관(石棺)에 사신(四神)을 선각(線刻)하던 고려의 풍습 등이 벽화로 전이된 것이라고 추측되나, 고려와 같은 시대인 요·송의 대륙묘제로부터의 새로운 자극에 영향받은 것으로도 짐작된다.

[공예]

통일신라의 범종(梵鐘)이 고려 시대로 이어졌으나 형식이 차츰 변화하고 특히 12세기부터는 크기도 작아져 조각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라종의 전통은 점차 사라졌다. 신라종의 경우에는 입지름과 높이의 비율이 1:1.3 정도인데 비해 고려종은 처음에는 1:1.1∼1.2이다가 후기에 1:1까지 되어 옆으로 벌어진 형태가 되었다. 또 종신상대(鐘身上帶) 위에서 연판(蓮瓣) 또는 학문대(花紋帶)가 밖으로 돌출하거나 옆에 있는 유통 상부에 구형(球形) 장식이 있는 것도 11·12세기 이후의 고려종의 특색이다. 종신(鐘身)의 비천(飛天) 대신에 여래·보살상 등이 나타나는 것도 고려종의 새로운 현상이다.

현존하는 고려종은 그 수가 적지 않은데 연대가 확실한 기년명종(紀年銘鐘)으로는 일본히로시마〔廣島〕 쇼렌사〔照連寺〕 종을 비롯하여 국내외에 15개가 알려져 있다. 이 중 천흥사종(天興寺鐘;국립중앙박물관)은 높이 1.7m의 대종(大鐘)으로 형태부터 세부묘사까지 신라종을 모방한 작품이며, 여주(驪州) 상품리(上品里)에서 출토된 청녕사년명종(淸寧四年銘鐘)은 높이 63.5㎝, 입지름 53.5㎝로 상대에서 돌출한 화문대, 유곽(乳廓) 밑에 매달린 듯한 조그만 좌불 등 고려종으로서의 특색을 갖추고 있다.

고려 시대 불교 공예품으로 종 다음으로 특색있는 것은 동제향로(銅製香爐)이다. 이것은 넓은 테를 돌린 주발과 같은 몸체 밑에 위가 좁고 밑이 퍼진 나팔 모양의 굽이 달린 것으로, 표면에는 연화(蓮花)·보상화(寶相花)·용(龍) 등의 문양과 불상을 상징하는 범자(梵字)가 은(銀)으로 상감(象嵌)되어 화려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고려의 동향로는 신라 시대의 형식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되나 아름다운 형태에 은상감장식을 한 것은 고려 고유의 특색이다. 현존하는 향로에는 밀양(密陽) 표충사(表忠寺)의 것을 비롯해서 국내외에 5개가 있다. 1214년(고종 1)의 건봉사(乾鳳寺) 향로만 해도 보상학문(寶相花紋)이 회화적인 구도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1344년(충혜왕 복위 5)의 봉은사(奉恩寺) 향로는 완전히 도안화(圖案化)하여 공간 충만의 역할만을 하고 있어 문양에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고려 시대 도자기는 무유(無釉)와 시유(施釉)로 나뉘며, 이 중 시유도자기가 고려자기를 대표한다. 무유도자기는 색조나 태토질(胎土質)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신라토기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유도자기는 청자(靑磁)·백자(白磁)·천목(天目)·녹유(綠釉) 등이 있다. 고려청자는 문종(文宗) 전후에 송나라의 화난〔華南〕 저장성〔浙江省〕 월주요(越州窯)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변천은 일반적으로 청자의 발생에서 쇠퇴까지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하였으나 점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비색청자(翡色靑磁)가 등장하고, 중기 이후에는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象嵌靑磁)가 출현하였는데, 상감청자는 순전히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감청자가 다시 동철기(銅鐵器)에 접목되어 은동상감기(銀銅象嵌器)를 낳았는데, 고려 말기에 이르러 청자는 실질적으로 쇠퇴하였으며 점차 속화(俗化)되었다.

<이종애>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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