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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5 (금) 14:58
분 류 문화사
ㆍ조회: 2762      
[미술] 토기 (한메)
토기 土器 earthenware

찰흙에 자갈이나 모래를 섞어 반죽하여 형상을 만들어 불에 구은 용기.

소성(燒成)온도는 비교적 낮은 600∼900℃이다. 가마에서 소성시킨 도자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평지나 간단히 움푹 패인 자리에서 구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도기(1200℃ 이상)나 자기(1350℃ 이상)와 구별되며 토기보다는 높은 온도, 도기보다는 낮은 온도(1000℃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질토기(陶質土器)라고 하는데 신라토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표주박ㆍ가죽부대 등의 용기를 모방하여 바구니에 찰흙을 발라 구워 만든 것이 토기제작의 처음이라는 설, 빵 만드는 것과 토기 만드는 것을 관련시켜 제작공정이 비슷하다고 설명하는 설이 있다. 이에 대해 고고학상 발굴사실을 중요시하는 입장도 있다. 이란에 있는 약 8000∼9000년 전의 간즈다레유적에서는 땅에 고정시킨 토기가 출토되었다.

토기 제조공정은 실물관찰ㆍ민족학적 식견ㆍ실험고고학 등으로 추정된다. 흔히 소재ㆍ성형ㆍ조정ㆍ시문(施文)ㆍ건조ㆍ소성 순서로 진행된다. 찰흙의 곱고 거칠음의 선별 또는 혼합재료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태토(胎土)가 만들어지고, 특이한 혼합재료는 지역성이나 시대성을 나타내어 토기의 특징을 이룬다.

토기성형법은 녹로의 사용 여부로 크게 나뉜다. 녹로에는 회전대가 있으나 대부분의 선사시대 토기는 녹로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어내는 수날법, 반죽한 흙으로 여러 개의 고리를 만들어 쌓아올리는 윤적법(輪積法), 반죽한 흙을 흰떡가래 모양으로 길게 흙띠를 만들어 코일스프링처럼 감아올리는 권상법(卷上法), 형틀을 만들어 찍어내는 형틀법 등을 사용하였다.

용기 벽을 얇게 하고, 기면(器面)을 판판하게 만들어 기면의 치밀도나 거칠거칠한 면을 만들 목적으로 형태를 갖추는 조정방법이 있다. 손끝ㆍ천ㆍ가죽ㆍ뼈ㆍ돌ㆍ조가비ㆍ대(竹)ㆍ잎 등을 기면에 대고 물손질하거나 깎고 긁거나 갈아 유약을 칠하는 등의 작업으로 목적하는 성형을 이루는 방법도 있다. 무늬효과를 거두기 위해 침문(沈文)ㆍ부문(浮文)ㆍ도채(塗彩)ㆍ채문(彩文)ㆍ묘화(描畵)ㆍ안료충전ㆍ상안(象眼) 등 수법을 이용한다.

건조는 토기 형태를 완성하고 무늬가 만들어진 뒤에 시행한다. 치밀한 소재품은 그늘에서 천천히 말리지만, 거친 소재품은 햇빛에서 단시간에 건조시킨다. 가마 사용 여부와 소성방법에 따라 토기면 색조에 변화가 생긴다. 토기의 각 부분 명칭은 물건을 출입시키는 부분을 아가리[口部], 아래 끝부분을 밑바닥[底部], 그 중간을 몸통[基部]이라고 한다. 각 부분의 모양에 따라 동이ㆍ뚝배기ㆍ접시ㆍ독ㆍ항아리 등으로 나뉜다.

일용성 여부에 따라 일상생활용에는 저장용ㆍ운반용ㆍ취사용ㆍ식탁용 등이 있고, 일상생활과 무관한 의례용ㆍ매장용 등이 있다. 고고학 연구에서는 생활과 밀접한 토기를 특히 중요시한다. 긴 세월 동안 썩지 않고 많이 출토되어 발견되기 때문이다. 자료가 풍부하므로 시대적ㆍ지역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때로는 방언과 토기의 지역차이가 겹쳐져 문화사적 뜻을 짐작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BC6000년 무렵에 토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선사시대의 빗살무늬[櫛文]ㆍ민무늬[無文]토기로 구분된다. 빗살무늬토기는 그릇 표면에 빗과 같은 시문구(施文具)로 기하학적인 무늬를 시문한 토기로, 바닥이 둥글고 뾰족한 장란형(長卵形)이 기본형이다. 민무늬토기는 그릇 표면에 무늬가 없으며 기종(器種)도 다양하고 지역간의 차이도 크다.

김해식토기(金海式土器) 즉 원삼국토기(原三國土器)는 선사시대 민무늬토기와 삼국시대 신라토기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토기이다. 사용기간은 약 BC1000∼300년 동안에 이른다. 이 시기의 토기는 주로 한강 이남 지역에서 출토되며, 새로운 치철(治鐵)ㆍ제도(製陶)기술이 도입되는 선사(先史)에서 유사(有史)시대로의 과도기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토기의 양상도 매우 복잡하다.

삼국시대 토기 가운데 백제ㆍ가야토기는 형태ㆍ제작기법상 신라토기와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삼국시대 토기의 출토품 가운데 원삼국토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라토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고구려 토기는 남아 있는 것이나 발굴된 것이 극히 적어 충분한 검토가 불가능하며, 중국 한(漢)나라 계통의 회색연질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백제는 일찍부터 세련된 토기를 제작하였는데, 4세기의 몽촌지구(夢村地區) 백제토기는 곧게 서며 목이 짧고 밑이 납작한 회도(灰陶)항아리로 어깨에 사격선무늬(斜格線文)의 띠가 둘려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또 중국 한ㆍ육조(六朝)시대의 반형(盤形) 세발토기[三足土器]를 닮은 토기도 나타난다. 그것이 4세기 중엽 백제토기의 특색있는 세발토기로 바뀌고 있다. 또한 이 시대 토기 가운데 특색있는 것으로 가락동 2호분의 윤기나는 검은 토기는 고구려 토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토기는 약 3세기말∼10세기에 걸쳐 사용된 토기로 신라 영내에서 제작된 회색계의 경도(硬陶)를 가리킨다. 특징은 굽다리접시[高杯]의 경우, 뚜껑이 없다가 350년 무렵부터 뚜껑이 생기고 아가리에 뚜껑받이가 생겼으며, 다리에도 구멍이 뚫리는 등 전형적인 신라 굽다리접시의 출현과 긴목항아리[長頸壺], 원통형 기대(器臺)의 출현이다. 또한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와 주형(舟形)토기도 특기할 만하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인화무늬(印花文)가 주류를 이루고, 기능적ㆍ실용적인 토기가 많이 만들어졌다. 또한 높은굽다리 긴목항아리가 다리가 얕아진 긴목항아리, 다리의 구멍이 몹시 작아진 굽다리접시의 뚜껑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굽을 가진 사발, 꽃병 등의 그릇이 특색이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유약이 입혀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토기들은 고려시대로 이어지면서 음식용이 아닌 저장용용기로 변하고, 청자의 발달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도자기가 나타나면서 일반화 되었다. → 도자기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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