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한국사사전1 한국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5 (금) 16:06
분 류 문화사
ㆍ조회: 3275      
[미술] 청자 (한메)
청자 靑磁

도자기의 한 가지. 철분이 조금 섞인 백토(白土)로 만든 형태 위에 철분이 1∼3% 들어 있는 장석질(長石質) 유약을 입혀 1250∼1300℃에서 환원염으로 구워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맑고 푸른색을 띠는데 이것은 유약과 바탕흙〔胎土〕에 들어 있는 미량의 산화제이철이 강한 환원소성(還元燒成)으로 인하여 산화제일철이 되기 때문이다. 청자의 바탕흙·유약 및 굽는 방법 등은 지역·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이에 따라 자기의 색도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청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져 동양의 도자기 역사에 기맥을 형성하는 기본적 요소가 되었다.

[중국]

잿물을 토기 표면에 바르고 고온으로 구워낸 은(殷)나라 때의 회유토기(灰釉土器)가 그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원숙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후한시대(後漢時代) 이후이며, 특히 저장성〔浙江省〕 북부에서 옛 가마터가 많이 발견되어 그 기술연마의 정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저장성 북부 웨저우〔越州〕지방의 청자를 웨저우자〔越州磁〕라 하는데, 삼국·서진(西晉)시대에 이르러 활발히 제작된 청록·청회색의 수수한 청자를 흔히 구웨저우자〔古越州磁〕라 한다. 육조시대(六朝時代)에는 바탕흙의 질이 좋아지고 유약도 장석유에 가깝게 되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각지에 가마〔窯〕가 생겼고 당말 오대(唐末五代)에는 질적으로 완벽한 비색청자(翡色靑磁)가 등장하였다. 북송(北宋)에서는 관요(官窯)가 설치되었으며 루저우요〔汝州窯〕 등 북방청자의 가마가 만들어졌다. 남송에서도 관요가 설치되어 슈네이쓰요〔修內司窯〕·룽취안요〔龍泉窯〕 등에서 명품으로 평가받는 청자가 제작되었는데, 특히 룽취안요에서 만든 분청색의 침청자(砧靑磁)는 해외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그 뒤 침청자는 녹색의 색조가 강해져 원(元)나라 때와 명(明)나라 초에 이르러서는 톈룽사청자〔天龍寺靑磁〕로 바뀌었고 명나라 후기에는 투명성이 강한 칠관청자(七官靑磁)로 바뀌었다. 청(淸)나라 때에는 징더전요〔景德鎭窯〕에서 송나라 청자의 모방이 성행하였다. 오늘날의 청자 생산중심지는 여전히 저장성 일대이다.

[한국]

8세기 무렵부터 회유토기가 발달하여 청자 제작의 기반이 확립되었고 당나라 도자기가 유입되었다. 9세기 무렵부터는 중국 저장성 웨저우지방 청자와 그 기술이 유입되어 서남해안의 가마에서 일훈문굽계청자(日暈文-系靑磁;햇무리굽청자)가 제작되었다. 이어서 질이 떨어지는 조질(粗質)의 값싼 청자가 역시 서남해안에서 생산되어 일반 백성들의 수요에 충당되었는데 이를 녹청자(綠靑磁)라 하였다.

그 뒤 고려 초에 강진(康津)·부안(扶安)·개경(開京:開城)으로 이어지는 관요가 형성되고 중국 남북방 가마의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여 청자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고려청자의 발생시기는 11세기 초 무렵으로 추측되며, 이때 비색청자가 제작되었다. 비색청자의 특색은 유약이 두껍고 고르게 발라짐으로써 가능한 깊고 은은하며 맑은 발색(發色)에 있었다.

그 뒤 의종 때(1147∼70) 상감청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감청자는 상감무늬를 전면적으로 쓸 경우에도 배경으로 여백을 남길 정도로 충분한 공간이 있고, 성격이 다른 몇 가지 무늬를 통일적으로 배열하여 화폭과 같은 효과를 낸다. 당시 상감청자 외에 무늬없는 청자도 제작되었다. 13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중반에 걸쳐 고려청자가 쇠퇴해갈 무렵에는 국가의 말기적 증상이 반영되어 청자기의 퇴조를 보이는데, 표면이 황록색조를 띠거나 비색을 잃으면서 상감무늬도 산만하고 조잡해지며 같은 무늬가 반복사용된다. 형태는 매병이 줄어드는 대신 접시류가 늘고 대접은 안이 깊어지며 측면이 평평한 광구대(廣口臺)가 된다. 이 밖에 진사(辰砂)·화청자와 같은 특수한 상감청자도 만들어졌다.

조선 초기 청자는 고려말 퇴락한 청자를 계승한 것과 새로운 백자가마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크게 구분된다. 앞의 것은 고려말의 조질청자보다 질이 향상되고 자기 형태에 생동감이 있으며 무늬가 활발해져 초기 분청사기상감과 기형·무늬가 거의 같다. 뒤의 것은 백자 바탕흙에 청자 유약을 입힌 것으로 기형도 새로운 백자와 거의 같은데 음각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이 두 계통은 15세기 중반까지 모두 질이 양호하였으나, 15세기 후반부터 고려청자를 계승한 청자는 사라지고 새로운 조선청자만이 백자가마에서 적은 양이 생산되어 17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

[기타]

베트남에서는 진왕조(陳王朝) 시대인 14세기 무렵에 청자가 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 송나라 남부청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산화하여 황색을 띤다. 타이에서도 같은 시기인 수코타이왕조시대에 사완칼로크요가 만들어졌으며, 얼마 뒤 북부에서는 산칸펜요와 판요에서 청자가 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17세기에 아리타〔有田;佐賀縣〕의 이마리요〔伊萬里窯〕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청자를 구웠고 기술적으로 나베시마요〔鍋島窯;佐賀縣〕가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그 뒤 일본 각지에서 청자가 구워져 한때 유행하였으나 현재는 주로 도예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한편 서양에서는 청자를 17세기초 H.뒤르페의 오페라 《라스트레》에서 상쾌한 암록색의 의상을 입었던 주인공 목동의 이름을 따서 셀라돈(celadon)이라 한다.

도자기

출전 : [한메디지탈세계대백과 밀레니엄], 한메소프트, 1999
   
윗글 [미술] 청자 (두산)
아래글 [미술] 상감청자 (두산)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1292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2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368
1291 문화사 [삼국] 고구려 와당 1 (서울대) 이창호 2011-02-06 1122
1290 문화사 [삼국] 신라 천마총 금관 (두산) 이창호 2002-01-26 1181
1289 문화사 [삼국] 신라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1578
1288 문화사 [삼국] 신라의 서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1091
1287 문화사 [삼국] 백제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918
1286 문화사 [삼국] 백제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6 987
1285 문화사 [삼국] 고구려 회화 (한메) 이창호 2001-11-26 951
1284 문화사 [삼국] 고구려의 회화 (두산) 이창호 2001-11-25 1059
1283 문화사 무용총 (한메) 이창호 2001-11-25 992
12345678910,,,13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