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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05 (금) 23:38
분 류 문화사
ㆍ조회: 5633      
[미술] 불상 (민족)
불상(佛像)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높이 93.5cm, 삼국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83호개념

불타(佛陀, Buddha)의 가르침을 기초로 한 불교 교리에 의한 예배의 대상을 시각적인 조형 매체를 통하여 표현한 조각상. 엄격한 의미로는 부처〔如來〕의 존상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부처의 상은 물론 보살상(菩薩像)·천왕상(天王像)·명왕상(明王像)·나한상(羅漢像) 등을 모두 포함한다.

종류

[불상]

불타란 출가하여 수행을 거듭한 뒤 자기 스스로 진리, 즉 보리(菩提)를 얻은 각자(覺者)라는 의미이다. 대승 불교(大乘佛敎)에서는 모든 중생(衆生)이 수행하면 불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부처는 인도의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로, ‘석가족(釋迦族)의 성자(聖者)’로 불리던 석가모니(釋迦牟尼), 즉 석존(釋尊)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석존 이전의 과거에도 부처가 있어 연등불(燃燈佛)·다보불(多寶佛) 등이 있다. 혹은 석가를 포함한 과거칠불(過去七佛 : 毘婆尸佛·尸棄佛·毘舍浮佛·拘留孫佛·拘那含佛·迦葉佛·釋迦牟尼佛)이 있다고 한다. 또한 여러 정토 세계(淨土世界)에도 많은 부처가 있으며 시방(十方)에 걸쳐 무수한 부처가 있다고 믿는다.

불교의 교리가 발달함에 따라 부처의 성격도 구체화되어, 인간 세계에 태어나 불법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여 증명한 석존은 응신불(應身佛), 여러 불국토(佛國土)에 나타난 부처는 보신불(報身佛) 그리고 불법의 진리 자체를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집합체로서 인식된 부처인 법신불(法身佛)의 삼신불(三身佛) 사상이 등장하는 등 상징적인 의미의 많은 부처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예배의 대상으로서 우리 나라에서 널리 숭상된 불상으로는 석가불·아미타불(阿彌陀佛)·약사불(藥師佛)·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경주 구황리 금제여래입상, 통일 신라, 692년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80호.[보살상]

대승 불교가 발달함에 따라 차츰 보살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보살은 성도(成道) 또는 성불(成佛)의 뜻을 품고 보리를 구하고 있으나, 현재는 중생을 교화 제도(敎化濟度)하기 위하여 부처를 도와 오랫동안 보살행(菩薩行)을 하는 분이다. 보살은 대개 부처를 보좌하여 수행하는데 이를 일생보처(一生補處)의 보살이라고 부른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현재 도솔천(兜率天)에서 보살행을 하지만 56억7천만년 후에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으로써 석존의 업적을 계승할 미래의 부처이다. 관음(觀音)과 대세지(大勢至)는 아미타불의 보처보살이며,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은 석가모니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보처보살, 일광(日光)과 월광(月光)은 약사여래의 보처보살이다.

보살은 상으로 표현될 때에는 단독으로 예배되는 경우도 있으나 불상의 양쪽 협시(脇侍)로 표현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보살상의 표현에 있어서 옷 입는 형태는 불상과는 달리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가 없다. 상체는 나신(裸身)으로 천의(天衣 :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라고 부르는 숄 같은 것을 어깨에 걸쳐서 몸에 두르며 치마와 같은 상의(裳衣)를 입는다.

불상과 달리 몸에 화려한 장식을 하여 목걸이나 팔찌 등을 걸치고 있는데 몸체에 걸쳐진 구슬 장식은 영락(瓔珞)이라 부른다. 머리에는 보관(寶冠)·목걸이·팔찌 등으로 장식하였다. 이것은 싯다르타가 성도하기 전 귀인(貴人)으로서 수행하는 과정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보살상 중에 보관에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으면 관음보살, 불탑(佛塔)이 있으면 미륵보살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이러한 표현에 의해서만이 특정 보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보살상이 손에 연꽃이나 정병(淨甁)·보주(寶珠) 같은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보이나 명문이 없는 경우 정확한 보살명을 확인하기 어렵다.

[기타 제상(諸像)]

넓은 의미로 불상의 범위에는 불상과 보살상 이외에도 인도의 불교 성립 이전부터 있었던 브라만교나 민간 신앙의 여러 신들이 불교 세계를 수호하는 신으로 포섭되어 예배되는 많은 상이 있다. 즉, 천부(天部)에 속하는 범천(梵天)·제석천(帝釋天), 불국토를 사방에서 수호하는 사천왕(四天王), 성역(聖域)의 입구를 지키는 인왕(仁王) 그리고 원래는 인도의 토착 신앙의 신이었으나 불법에 교화된 팔부신중(八部神衆), 불법을 받들고 불국토를 장엄(莊嚴)하는 비천(飛天) 등 불교에 관계되는 모든 신상(神像)들을 넓은 의미의 불상이라는 용어에 포함하여 부르기도 한다.

또한 부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여 전수(傳授)하는 나한상이라든지 조사상(祖師像), 밀교(密敎)의 명왕상들까지도 불상에 포함된다. 천부상 중에서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도깨비를 밟고 서 있다. 각기 사방을 수호하며 북에는 다문천(多聞天), 동에는 지국천(持國天), 서에는 광목천(廣目天), 남에는 증장천(增長天)이 있다. 각기 들고 있는 무기들이나 얼굴 표정이 다르다. 한편 절의 입구나 탑문에 조각되어 있는 인왕상은 좌우에 하나씩 쌍을 이루고 있어 성스러운 지역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은 수호신적인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석가의 권속 중 불법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팔부신중에는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眷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憂羅伽)가 있다. 조각으로 표현될 때에는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도상적(圖像的)인 특징

불상은 대부분 대좌(臺座) 위에 놓이며 상 뒤에는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가 있어 장엄의 효과를 더해 준다. 광배는 머리에 있는 두광(頭光)이나 몸 뒤에 있는 신광(身光)으로 구성되고, 주변이 화염문(火焰文 : 불꽃무늬)으로 장식되어 부처의 신성함을 강조하여 준다. 또한 광배에는 조그마한 화불(化佛)이 있어 여러 형태로 변화되어 나타나는 영겁의 불타 세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불상은 인간의 형체를 빌려서 표현하지만, 그 부처가 상징하는 여러 초인간적인 성격이 신체적인 특징으로 나타난다. 머리에는 육계(肉鉅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있으며 머리카락은 짧고 꼬부라져서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형이다. 귀는 길며, 이마의 한가운데에는 백호(白毫)라는 긴 털이 있어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비쳐서 볼 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이 있다. 이러한 부처 표현의 초인간적인 성격이 신체적으로 표현될 때에 크게는 32상(三十二相) 80종호(八十種好)의 특징이 있어 보통의 인간의 표현과 구별이 된다고 한다.

부처의 법의는 대개 두 어깨를 덮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 형식과 한쪽만을 덮는 편단우견(偏袒右肩 : 왼쪽 어깨에 옷을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남) 형식으로 구분된다. 자세, 손의 모습(手印), 지물에 따라서도 그 불상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상 표현의 도상적 규범은 경전상의 의궤(儀軌)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으로 인도에서 성립되어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불교와 불교 미술이 서역과 중국을 거쳐서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동안 새로운 의미의 도상이 첨가되거나 지역적인 특성이 반영되어 약간씩 변모된 불상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수인]

불상이나 보살상의 표현에는 그 상의 성격과 의미에 따라 여러 형태의 손 모습을 보여 준다. 이를 수인 혹은 인상(印相)이라 한다. 오른손을 위로 올리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두려워 말라는 의미의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왼손을 밑으로 하여 소원을 받아들인다는 여원인(與願印)이 있다. 또한 오른손으로 땅을 짚어 지신(地神)에게 부처가 마군(魔軍)을 물리쳤음을 증명하는 자세로서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하는 의미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불법을 설하는 의미의 설법인(說法印),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일체라는 뜻을 나타낸 지권인(智拳印), 아미타극락정토의 9등급을 나타내는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등이 가장 대표적인 수인이다.

[자세]

불·보살상의 표현에는 자세에 따라서도 그 상징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가 있다. 보통은 두 다리를 포개어 앉은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좌상이나 입상(立像)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내리는 의상(倚像),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얹어 놓은 반가상(半跏像), 두 다리를 교차하고 앉은 교각상(交脚像),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왼발은 직각으로 구부리거나 대좌 밑으로 내려뜨리는 유희좌상(遊戱坐像), 누워 있는 와상(臥像) 등이 있다.

역사

[기원 및 전래]

인도에서는 석존의 입멸 이후 약 500년 동안 불상이라는 예배 대상이 조성되지 않았었다. 전설에 의하면 석존이 도리천(克利天)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에게 설법을 하였는데 이때에 열렬한 신자였던 스라바스티성(舍衛城)의 프라스트나지왕(波斯匿王)과 코삼비성(尻賞彌城)의 우다야나왕(優塡王)은 각각 금과 향목(香木)으로 5척의 불상을 만들어서 이 세상에 잠시라도 석존이 없는 허전함을 달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유물상으로 보면 불상이 처음 조성된 시기는 1세기경인 인도의 쿠샨 왕조(Kushan王朝) 시대였다. 그 이전 수세기 동안에는 부처의 전생의 선행을 이야기한 본생담(本生譚)을 묘사한 본생도(本生圖), 또는 일생의 중요한 사건이나 가르침의 내용을 묘사한 불전도(佛傳圖)가 회화나 부조 등 여러 가지 상징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숭앙되었다. 불상 표현의 이러한 단계를 무불상(無佛像) 표현 시대라고 한다.

예를 들어 청정(淸淨)한 연화는 석존의 탄생을, 보리수(菩提樹)는 해탈을, 법륜(法輪)은 불법(佛法)을 설하여 바퀴가 굴러가듯 사방에 영원히 전파된다는 의미로, 불탑은 열반(涅槃)의 상징으로서 신앙되었다. 그리고 부처 자신의 존재는 불족적(佛足跡)이나 빈 의자로써 표현되었고 부처의 사리(舍利)나 불아(佛牙)는 부처 자신의 진신 그 자체로서 숭앙되었다.

그러나 쿠샨 왕조 시대에 이르러 불상의 표현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도 서북부 간다라(Gandhara) 지방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방의 고전 문화의 영향을 입은 곳이다. 불상이라는 신격(神格)이 인체의 형상을 빌려서 표현되는 것은 그리스의 신상 표현의 전통이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한편, 인도 중북부의 마투라(Mathura) 지방은 이전부터 전해 오는 인도 고유의 전통을 이어 약간 늦게 불상 표현이 등장하였다고 추측된다.

간다라 조각은 소조상이나 회색의 편마암 조상이 많으며 서구적인 불안(佛顔)에 사실적인 표현이 강조되는 데 비하여, 마투라 조각은 붉은 색에 흰 반점이 있는 사암질(砂巖質) 조상이며, 신체 묘사는 상징적이고 엄격함이 강조되어 인도적인 예배 대상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인도의 불상은 굽타(Gupta) 시대에 이르러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불상 표현이 이루어졌다.

굽타 조각의 대표적인 제작지는 쿠샨조부터 불상 조성이 활발했던 마투라 지방과 녹야원(鹿野園)이 있는 베나레스 근처의 사르나스(Sarnath) 지방이다. 건장한 체구에 균형 잡힌 신체 비례 그리고 몸에 꼭 달라붙은 법의 밑에 팽팽하고 긴장감이 도는 불신의 표현은 마치 불법 자체가 불상에 응결되어진 것같이 신성한 감을 보여 준다.

굽타 이후 팔라(Pala) 시대에는 힌두교의 융성으로 불상의 조성은 인도 동북부 벵골 지방에 치중되었다. 12세기 이후에는 인도에서 불교 문화가 거의 자취를 감춘 대신 남으로는 해로(海路)로 실론과 동남아 지역으로 퍼져 갔다. 북으로는 육로로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동전(東傳)하면서 발전하였다.

특히 서역은 동서 무역의 길목으로도 중요하였으며 타크라마칸 사막을 중심으로 천산 남로(天山南路)인 코탄·미란을 지나거나 천산 북로(天山北路)인 키질·쿠챠·투르판 등지의 여러 불교 문화의 중심지를 지나 중국의 돈황(燉煌)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서역의 불상은 여러 지역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즉 인도·티베트·이란의 요소에 서역의 지역적인 특성이 가미되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접근할수록 중국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도상과 양식이 혼재, 절충되어 발전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1세기경의 후한시대로 생각된다. 그러나 유물상으로는 최근 장쑤성(江蘇省)에서 발견된 후한 말기의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 이외에는 대부분 3, 4세기경 동경(銅鏡) 뒷면의 부조나 소형의 도제불(陶製佛) 혹은 고식(古式)의 청동불(靑銅佛) 등에 보이듯이 본격적인 독립된 예배 대상으로 인식되어 제작된 것 같지는 않다.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에 이르러 북방 호족(胡族)들의 적극적인 불교 수용 태세에 따라 불상 제작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후조(後趙)의 건무4년명(建武四年銘, 334년)의 금동불좌상은 현존하는 최고의 명문이 있는 불상이다. 대체로 5세기 후반까지의 북위시대의 불상에는 서역이나 간다라의 영향이 강하였으며, 6세기에 들어서서부터는 좀더 중국화된 불상 조각이 발달하였다. 이것은 불교 자체가 점점 토착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규모의 석굴 사원의 조영이 시작되었다. 돈황의 천불동(天佛洞)을 비롯하여 병령사(炳靈寺)·맥적산 석굴(麥積山石窟)·운강 석굴(雲岡石窟)·용문 석굴(龍門石窟)·천룡산 석굴(天龍山石窟) 등 남북조시대에서 당대(唐代)까지 많은 사원과 불교 벽화와 불상이 조성되었다. 이와 같은 석굴 사원은 중국 북방에 치중되었다.

이민족 통치의 북조는 불교를 국교로 신봉하며 적극적인 신앙 생활과 조상 활동을 편 데 비하여, 남조는 한문화(漢文化)의 전통을 이어 좀더 학문적인 태세로 불교를 수용하고 개인적인 신앙 위주로 발전하였다. 현존하는 남조계의 불상은 예도 많지 않거니와 소규모이며 부드럽고 환미감이 강조되어 온화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하여, 북조의 불상은 강직하고 예리한 조각 수법에 엄숙하고 위압하는 듯한 조형감이 있어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수나라의 중국 통일과 더불어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중국 불상 조각의 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용문(龍門) 봉선사(奉先寺)의 비로자나본존과 주변의 보살·나한·신장상이 7세기 후반의 긴장감이 있으면서 단정한 조각 양식을 대표한다. 8세기 초의 장안 보경사(寶慶寺)의 부조상은 고전적인 균형과 조화를 이룬 완숙기의 당대 불상 양식을 보여 준다.

천룡산 석굴의 불상은 풍만하고 유연하며 약간 세속적인 요소가 강조되는 8세기 중엽 이후의 중국 불상 양식을 예견할 수 있다. 많은 석조상과 금동상들이 당대의 불상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전통은 이후 오대·요·금 및 송대의 불상 양식 조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체로 금동·목조 혹은 도제 불상이 많으며 당의 양식에서 출발하여 좀더 표현이 과장되거나 장식적인 요소가 첨가되면서 변모되었다.

우리 나라 불상 양식의 변천에 계속됨.

≪참고문헌≫

韓國佛像의 硏究(黃壽永, 三和出版社, 1973), 韓國의 佛像(秦弘燮, 一志社, 1976), 韓國彫刻史(文明大, 悅話堂, 1980), 佛像硏究(崔完秀, 知識産業社, 1984), 韓國古代佛敎彫刻史硏究(金理那, 一潮閣, 1989), 高麗·朝鮮時代의 彫刻(文明大, 韓國美術史의 現況, 一志社, 1992).

<김리나>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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