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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9-16 (월) 09:54
분 류 문화사
ㆍ조회: 1056      
백제의 복식
백제의 복식

백제의 복식 생활은 유물은 물론 기록도 많지 않아 정확히 파악 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주변 국가인 중국의 [이십오사] 일본의 [일본서기]등의 단편적인 기록 및 무령왕릉 출토의 부장품, 양의 직공도 등을 통해 그 대략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백제의 복식 모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고 본다.

곧 허리까지 오는 저고리에 바지(또는 치마)를 입었고 필요에 따라 포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양의 직공도에 보이는 백제국사의 옷 모양이,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의 옷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한층 확실시되고 있다.

다만 백제국사의 옷 모양에서 특이한 사실은 바지 끝단에 선이 둘러져 있었고 양복바지와 같이 대님을 매지 않고 그대로 입었다는 점이다.

물론 고구려 백화의 인물상에서도 바지 밑단에 가선을 두르거나 부리를 동여매지 않고 입은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예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만큼 고구려와 백제의 의복 차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백제 사람들의 머리 모양은 기혼녀는 머리를 둘로 나누어 정수리에 얹는 형태였으며, 미혼녀는 머리를 땋아서 뒤로 늘이거나 땋은 머리를 둥그렇게 앉은 뒤 한 가닥은 뒤로 내려뜨려 기혼녀와 구별이 되게끔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자의 머리 모양은 백제 무녕왕릉에서 작채가 출토된 바 있어,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수계식 상투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작채란 머리를 모두 위로 끌어 올린 다음 대각선으로 마주 찔러 머리를 고정시키는데 사용되었던 비녀를 말한다.

한편 문헌의 기록을 조합해 볼 때 백제는 제8대 고이와 27년에 공복제도를 정하여 16품의 등위를 구분하는 둥 복식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분을 확실시했다.

출전 : http://www.contest.co.kr/98/shiraz/html/백제.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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