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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0-06-05 (토) 15:27
분 류 문화사
ㆍ조회: 710      
[무덤] 널무덤 (민족)
널무덤

      김해 예안리 76호분. 선사 시대부터 쓰이던 분묘의 일종으로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장치하는 장법. 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사진

김해 예안리 76호분. 선사 시대부터 쓰이던 분묘의 일종으로 지하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장치하는 장법.

선사 시대부터 쓰이던 분묘의 일종으로 지하에 구덩이[토광(土壙)]를 파고 직접 유해를 장치하는 장법(葬法). 평면형태는 방형ㆍ장방형ㆍ원형ㆍ타원형이 있다.

일반적으로 널[관(棺)]이나 덧널[곽(槨)]과 같이 일차적으로 유해를 보호하는 시설[장구(葬具)]이 있는 종류는 널무덤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관용적으로는 나무널[목관(木棺)]과 나무덧널[목곽(木槨)]을 사용했어도 이미 부패해 존재 유무를 확인하기 곤란한 때에는 널무덤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널무덤은 인류 사회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묘제로서 세계적으로는 중기 구석기 시대부터,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유행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약간의 지역적인 편차가 있기는 하나 초기 철기 시대부터 출현하여 삼국 시대 전기까지 유행한 묘제로 정의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평안남도 평양시 태성리, 황해도 은율군 운성리, 경상북도 경주시 조양동, 경상남도 김해시 예안리 널무덤군(群)이 있다.

태성리 유적은 서기전 1세기 이후의 유적으로서 평안도 재래의 동검문화(銅劍文化)와 중국 전한문화(前漢文化)가 복합된 유물상을 보여, 세형동검과 철기, 전한계 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널ㆍ덧널과 같은 장구도 검출되었다.

조양동 유적은 1∼3세기의 유적으로서 두 시기로 구분된다. 이른 단계에서는 철기ㆍ청동기ㆍ와질토기가 함께 출토되며 목관이 장구로 사용되었다. 늦은 단계에서는 철기ㆍ와질토기가 함께 출토되며 덧널이 장구로 사용되었다. 예안리 유적은 4세기 때의 유적으로서 덧널이 장구로 사용되었으며, 철기와 도질토기(陶質土器)가 함께 출토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 널무덤으로 알려져 온 사례들은 모두 널 또는 덧널을 장구로 쓰고 있어, 이들을 널무덤으로만 명명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구덩이 내부에 사용된 장구에 따라 널무덤[목관묘(木棺墓)]과 덧널무덤[목곽묘(木槨墓)]으로 분류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타당할 것 같다.

≪참고문헌≫

土壙墓(重松和男, 世界考古學事典 上, 平凡社, 1979), 태성리고분군발굴보고(채희국, 유적발굴보고 1959년 5집, 과학원출판사).

<최종규(崔鍾圭)>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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