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사전1 한국사사전2 한국사사전3 한국사사전4 한국문화사 세계사사전1 세계사사전2
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6-16 (일) 17:51
분 류 사전1
ㆍ조회: 3369      
[조선] 조선 개화기의 역사적 성격 (민족)
조선(2)(역사적 성격)

세부항목

조선
조선(1)(정치) 1
조선(1)(정치) 2
조선(1)(경제) 1
조선(1)(경제) 2
조선(1)(사회)
조선(1)(문화)
조선(1)(대외관계)
조선(1)(연구사)
조선(2)(1864년∼1910년대의 조선)
조선(2)(국제관계)
조선(2)(정치)
조선(2)(사회경제)
조선(2)(사상ㆍ종교)
조선(2)(역사적 성격)
조선(2)(연구사)
조선(2)(참고문헌)

개항에서 강점에 이르는 시기는 조선이 중국 중심적 세계 질서로부터 벗어나 근대적 국제 질서로 편입되어 마침내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간 과도기였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한국인이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을 지향, 외세에 대한 투쟁과 개화ㆍ자강의 노력을 멈추지 않은 역사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 노력은 헛된 것 같았지만,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으로 계승, 광복 후 우리 나라 발전의 토대를 이루었다. 현대 한국의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은 이 시대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이 시대의 역사적 성격을 부문별로 나누어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정치적으로 조선은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이후의 한국사는 아시아의 국지적 요인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게 되었다. 즉 조선에 관심을 가진 서구 열강 및 일본의 움직임이 한국사의 전개에 영향을 주는 주요소로 작용하기 시작,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간의 각축전에서 승리한 일본의 침략으로 마침내 조선이 병탄되었다.

둘째, 국내정치적으로, 잠재된 채 부분적으로만 표출되었던 전통적인 왕조 체제의 모순이 외세의 충격으로 더욱 심화되면서 그것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이와 함께 전통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이 서구의 근대 문물을 앞장서서 수용, 유력한 정치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국내 정치는 이러한 개혁 세력과 기존정치 체제를 고수하려는 보수 세력간의 정권 투쟁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개혁 세력이 추진한 이상은 정치적으로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을 통해 민족적 이상이 구체화되고 그것이 사회ㆍ문화계에 확산되어 이상이 실현될 토대가 형성되었다.

셋째, 경제적인 면에서 이 시기는 전통적 자급자족의 경제 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주의적 세계경제 체제에 편입되는 과도기였다. 그러나 불평등조약 체제 하에서 진행된 조선의 대외 무역은 정부 재정의 악화, 토착 산업의 와해 등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외세의 경제적 침략에 대항하는 저항 운동이 야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동시에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근대적 산업을 일으켜 민족자본을 형성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제국주의 국가의 대규모 기업과의 경쟁에서 열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산업화에 필요한 자연 자원을 많이 탈취당한 위에 양반지주층이 가진 부(富)가 민족적 산업자본으로 전용되지 못해 산업화의 전제 조건인 원시적 자본 축적이 적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 침략과 한국기업가들의 민족산업 형성 과정을 통해 이 시대에는 철도ㆍ전신ㆍ공업 기계 등 근대적 산업 시설이 보급되었다.

넷째, 사회적인 면에서 이 시기는 전통적인 양반신분 체제가 해체되면서 신흥 계층이 등장하는 유동적인 사회였다. 신분제 사회에서 천대받던 중인ㆍ상민 등이 관계에 진출하고, 상인들이 자본을 축적해 근대적 기업가로 성장하였다. 또, 양반 지주 중에서 기업가로 신분 전환을 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당시 개화지식인들은 서구의 근대적 학문과 기술을 익히고, 이들 신흥중산층과 제휴해 근대 민족국가의 이념을 정립, 실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국한되었고, 농촌 사회까지 침투하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농촌 사회는 이농(離農)ㆍ빈농 대 부농의 대립이란 현상을 보이기는 했으나, 전통적인 지주―소작 관계는 온존되고 있었다.

다섯째, 사상적인 면에서는 전통 사회의 이데올로기였던 유교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그 대신 새로운 사상 체계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서구사상의 영향 하에 변형된 유학 체계인 개신유학사상과 기독교ㆍ동학 등 새로운 사상이 영향력이 큰 사상으로 부상하였다. 이들 사상으로 민족주의 및 민주주의적 정치 이념은 개발되었고, 반면 보수적 유학사상은 여러모로 계속 그 뿌리를 보존하고 있었다.

여섯째, 문호 개방 뒤 근대적 교육제도가 도입, 실시되었으며 새로운 교육의 결과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이 지속되었다. 동시에 이 시기에는 한글이 보급되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는 등 문화적 민족주의가 발달하였다. 또, 양반 중심의 귀족문화에서 일반 서민을 위주로 한 새로운 국민문화가 대두하고 있었다. 신문과 잡지의 발행, 국ㆍ한문혼용체로 서술된 교양 서적의 보급, 언문일치체 신소설의 등장 등은 이러한 국민문화의 기반을 다져주는 구실을 담당하였다.

<유영익>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윗글 [조선] 조선 개화기 연구사 (민족)
아래글 [조선] 조선 개화기의 사상과 종교 (민족)
 
    N     분류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3000 사전1 [알림] 이후의 내용은 '한국사 사전 2'에 이어집니다. 이창호 2010-07-05 1317
2999 사전1 [조선] 김우명의 졸기 (숙종실록) 이창호 2002-11-03 1658
2998 사전1 [조선] 김우명 (한메) 이창호 2002-11-03 1320
2997 사전1 [조선] 김우명 (두산) 이창호 2002-11-03 1236
2996 사전1 [조선] 김우명 (민족) 이창호 2002-11-03 1288
2995 사전1 [조선] 김육의 졸기 (효종실록) 이창호 2002-11-03 1333
2994 사전1 [조선] 김육 (한메) 이창호 2002-11-03 1256
2993 사전1 [조선] 김육 (두산) 이창호 2002-11-03 1427
2992 사전1 [조선] 김육 (민족) 이창호 2002-11-03 1823
2991 사전1 [조선] 회니시비-송시열과 윤증 (김갑동) 이창호 2002-11-03 2336
12345678910,,,300

이창호의 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