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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4-21 (일) 18:42
분 류 사전1
ㆍ조회: 2724      
[삼국/남북국] 신라 연구사와 참고문헌 (민족)
신라(연구사)

관련항목 : 남북국시대, 삼국시대

세부항목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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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화)
신라(연구사)
신라(참고문헌)

1. 근대 이전 시기

신라가 멸망한 뒤 그 왕조의 역사와 제도ㆍ전장(典章)ㆍ문물에 대한 첫 번째 정리 사업은 고려왕조 초기에 시도되었다. 편찬 시기와 편찬자를 잘 알 수 없는 소위 ≪구삼국사≫가 바로 그것인데, 다만 이 책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 전해오는 신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서는 ≪구삼국사≫를 토대로 하여 여기에 중국 역대 정사(正史)의 한국 관련 자료를 크게 보충한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비록 유교의 도덕주의 사관에 입각해 종래의 고기(古記) 기록에 필삭(筆削)을 가한 혐의를 떨쳐버릴 수 없으나, 불충분한 대로 신라의 역사와 지리ㆍ제도ㆍ문물 전반에 대한 일단의 집성으로 신라사 연구의 기본 자료라 할 만하다. 한편 이보다 140년쯤 뒤에 나온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삼국 중 특히 신라 시대의 불교 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사적 기술이 풍부해 이 방면의 연구에서 거의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인용되어 있는 각종 고기류와 사찰의 고문서, 금석문 자료를 보면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신라 시대의 자료가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자료 중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매우 적은 실정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동국사략≫(일명 삼국사략)이 편찬되고, ≪삼국사절요≫에 뒤이어 그 일단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국통감≫ 등의 관찬 역사서가 편찬되었다.

하지만 주자학의 도덕적ㆍ교훈적 및 명분론적 윤리 사관에 입각한 사료의 필삭과 사론(史論)이 행해졌을 뿐,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 앞선 역사서의 불비(不備)를 보완하려는 노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조선 시대 중기를 거쳐 후기까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었다. 흔히 실학의 시대라고 불리는 조선 후기에 이르면 옛 강역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어 고대의 역사 지리에 대한 연구가 크게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이에 신라의 북방 한계선이 논의되고, 진흥왕 순수비 가운데 함흥 북쪽의 황초령(일명 草坊院碑)과 단천 소재의 마운령비가 이 문제를 검토하는데 있어 유력한 실마리를 제공해 그 뒤의 신라사 연구에 큰 자극을 주었다.

신경준이 ≪강계고≫(1756)에서 이 점에 대해 언급한 뒤 김정희는 1816년과 1817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산 비봉에 올라가 그 때까지 무학대사의 왕심비(枉尋碑) 혹은 몰자비(沒字碑)로 알려진 북한산비가 실은 진흥왕 순수비의 하나임을 확인하고, 이를 황초령비문과 대비하면서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을 토대로 해 본격적으로 논한 것은 신라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획기적 사건이었다.

현재 신라사 연구에서 금석문 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것임을 상기할 때, 김정희의 ≪진흥이비고≫(眞興二碑攷, 阮堂先生文集 1)야말로 신라사 연구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매우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기록된 소위 박ㆍ석ㆍ김(朴ㆍ昔ㆍ金) 3성에 의한 왕실의 교립(交立)현상을 허목(許穆)이나 이종휘(李種徽)가 중국 삼대(三代)에도 없던 일이라고 예찬한 데 반해 정약용이 교체의 본질을 필경 권력에 의한 혁명이었던 것을 간파한 것은 초기 신라사의 실상에 근접한 해석으로 주목할 만했다.

2. 일제 시대

실학의 시대가 끝난 뒤 신라사 연구는 백년 이상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비로소 근대역사학의 성립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한국고대사 연구가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으나, 신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했으며 더욱이 부정적이기까지 했다. 신채호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계열의 역사가들은 삼국 중 고구려의 상무적(尙武的)ㆍ자주적 기상을 찬양한 나머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최고 지배층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므로, 일본 통치 시대에 신라사 연구에 기여한 것은 오히려 실증사학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본 학자들의 연구 활동에 맞서서 1934년에 진단학회(震檀學會)를 창립해 기관지를 발간하면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 중 신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표적인 성과를 보면, 이병도(李丙燾)는 〈삼한문제의 신고찰〉(1934∼1937)이란 장편 논문에서 신라를 포함한 백제ㆍ가야의 국가 형성기반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고찰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김상기(金庠基)는 〈고대의 무역형태와 나말의 해상발전에 대하여〉(1934)에서 신라 말기에 해상발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출현한 장보고의 해상왕국 청해진의 흥망사를 폭넓게 검토하였다. 또한 신라 불교사 연구에서는 김영수(金映遂)가 〈오교 양종에 대하여〉(1938)에서 당에서 성립된 불교의 여러 종파가 신라에 전래된 뒤 교종의 5교, 선종의 9산으로 전개 발전해 간 사실을 입증한 것도 소중한 성과였다.

끝으로, 최남선이 1929년 함남 이원군 속칭 만덕산에서 조선 후기 이래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의만 무성했을 뿐 어느 누구도 확인한 바 없었던 진흥왕순수비 가운데 소위 마운령비를 발견,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한 것도 그 후의 신라사 연구에 큰 자극을 주었다. 한편 일본의 관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신라사 연구도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들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식민주의 역사학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식민지 지배기구를 독점한 상황에서의 연구였던 만큼 그 성과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친 매우 포괄적인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위 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에 의해 추진된 신라시대 초기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라든지 경주 남산의 불교유적 등에 대한 조사 연구활동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또한 건축사학자 후지시마(藤島亥治郞)에 의한 경주의 신라 왕경(王京) 유지에 대한 조사연구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문헌 사학 분야에서는 이마니시(今西龍)가 1906년 최초로 경주를 답사한 이래 신라시대의 유물ㆍ유적이라든지 금석문ㆍ고문서, 그리고 골품제도나 갈문왕제도 등에 대해 꾸준히 연구논문을 발표했는데, 이것들은 그가 죽은 직후 정리되어 ≪신라사연구 新羅史硏究≫(1933)로 간행되었다.

그 외에도 이케우치(池內宏)는 삼국통일전쟁시기의 역사지리 및 신라의 왕위계승과 무사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미시나(三品彰英)는 신라의 건국신화를 주변 여러 민족의 신화요소와 비교해 연구하는 한편 민속학 내지 민족학의 지식을 원용해 화랑에 대한 전문 연구서를 내놓았다. 역시 스에마츠(末松保和)는 신라의 6부제도라든지 군사제도를 비롯해 신라의 건국문제, 상고(上古) 및 중고(中古)시기의 세계(世系)문제 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그 뒤 일본에서의 신라사 연구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3. 해방 이후

8ㆍ15 해방과 더불어 우리 민족은 한국사 연구의 자유를 되찾게 되었다. 다만 해방 직후의 정치ㆍ사회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한국사 연구를 위한 제반 여건은 매우 열악하였다. 연구 인력은 부족했고, 연구를 위한 시설 및 자료 역시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 실정이었다. 이는 신라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반세기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학의 역량은 해방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증대하였다. 이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신라사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편의상 지난 50여 년간 신라사 연구의 전개과정을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의 제1기, 그로부터 1980년대까지의 제2기, 1990년대 이후의 제3기로 나누어 개관해 보기로 한다.

[제1기]

해방 이후 3년간의 혼란 끝에 정부가 수립되어 차분한 연구분위기가 조성되어 갈 무렵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진행 중인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젊은 역사 연구자들에 의해 역사학회가 결성되고 기관지로 ≪역사학보≫를 발간하기 시작한 것은 장래에 밝은 전망을 던져 주었다. 이와 동시에 일제시대부터 한국고대사 연구에 종사해 왔던 기성 연구자들(이른바 제1세대)도 잇따라 역작들을 발표하면서 학계를 이끌어 갔다.

역사학계의 최고 원로였던 이병도는 신라시대의 원시집회소로부터 화백회의에 이르기까지 정치형태의 변화과정을 여러 방면에서 입증한 〈고대 남당고〉(1954)를 비롯해 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해방 이전 시기의 업적을 토대로 고대사 연구의 성과를 총정리해 진단학회 한국사 총서의 하나로 ≪한국사-고대편-≫(1959)을 세상에 내놓았다. 씨는 뒤에도 신라사를 비롯해 고대사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했는데, 이는 ≪한국고대사연구≫(1976)로 정리되었다.

또한 해방 전 고대 한ㆍ일관계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이홍직(李弘稙)은 ≪삼국사기≫에 대한 엄정한 사료비판과 더불어 신라시대의 각종 금석문자료 및 고문서에 대한 면밀한 고증을 꾀하는 등 매우 견실한 학풍을 보여 주었다. 이 같은 업적은 씨가 죽은 직후에 나온 논문집 ≪한국고대사의 연구≫(1971) 신라편과 통일신라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 나온 연구업적으로서 사회학을 전공한 이덕성(李德星)의 유고집 ≪조선고대사회연구≫(1949)는 대학 강의만을 토대로 논문 〈신라왕계와 골품의 형성과정〉(≪歷史學硏究≫ 1, 1949)을 부록으로 싣고 있는 소품이지만 신라 초기의 왕위계승과 골품제도에 대해 흥미로운 견해가 엿보인다. 그러나 신라사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업적들은 해방 직후 학계에 새로이 등장한 소위 제2세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대개 역사학회 창립에 관여했고, 주로 그 기관지를 통해서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이기백(李基白)은 〈삼국시대 불교의 수용과 그 사회적 의의〉(≪역사학보≫ 6, 1954)를 통해 학계에 등장한 뒤 〈신라 사병고〉(1957)ㆍ〈신라 혜공왕대의 정치적 변혁〉(1958)을 잇따라 발표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신라의 정치제도와 신분제도에 대한 문제들을 일관성 있게 추구했는데, 이는 뒤에 ≪신라정치사회사연구≫(1974)로 정리되었다. 이로써 신라 지배세력의 변천과정과 더불어 국왕, 진골귀족들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상대등, 국왕 직속의 행정기관인 집사부 장관 시중을 정점으로 한 권력구조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 뒤 씨는 신라사상사 연구에 착수해 유교사상 뿐 아니라 신라통일기의 정토신앙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는데, 그 성과는 ≪신라사상사연구≫(1986)로 정리되었다. 이로써 국가불교의 성립기로부터 민중불교의 대두에 이르기까지 신라불교사의 여러 양상이 전반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한편 김철준(金哲埈)은 〈신라 상대사회의 Dual Organization〉(1952)을 발표한 이래 〈고구려ㆍ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1956)ㆍ〈신라시대의 친족집단〉(1968) 등 인류학적 방법을 신라사회사 연구에 적용한 논문을 발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뒤에 ≪한국고대사회연구≫(1975)로 정리되었다. 이 논문집에는 신라 상고(上古)의 세계(世系)와 기년에 대한 조정이라든가 녹읍(祿邑) 경영에서 볼 수 있는 귀족세력의 경제적 기반문제 그리고 후삼국 시대 지배 세력의 성격문제 등을 추구한 주목할 만한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변태섭(邊太燮)은 뒤에 고려시대사 연구로 주전공을 바꿨지만 〈신라 관등의 성격〉(1954)ㆍ〈묘제의 변천을 통하여 본 신라사회의 발전과정〉(1965) 등의 논문을 발표해 신라 관등제도에 있어서의 소위 중위제(重位制) 문제라든지 골품제도의 사회적 변질 분화과정을 심도있게 추구했다.

[제2기]

1970년을 전후해 소위 제3세대 연구자들이 다수 등장해 앞선 시기의 연구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연구분야를 개척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들의 연구성과를 주제별로 개관한다면 신라의 국가형성문제라든지 골품제도문제, 통일기 중국과의 외교형식의 변화문제 그리고 일본 쇼소인(正倉院)소장 신라촌락문서를 중심으로 한 사회 경제적 문제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신라의 국가형성사 연구는 해방 후 한국 고고학계가 거둔 학문적 성과에 힘입어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사를 그대로 믿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치프덤(Chiefdom : 族長社會ㆍ君長社會ㆍ邑落社會 등으로 번역됨) 사회에 대한 신진화주의 인류학자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원용해 전개되었다. 이 같은 입장에서 제2세대에 속하는 천관우(千寬宇)는 신라본기 초기 기사에 대한 긍정론에서 출발해 삼한의 국가형성문제를 새롭게 논하였다. 씨의 논문들은 뒤에 ≪고조선사ㆍ삼한사연구≫(1989)로 정리되었다.

또한 김정배(金貞培)는 고고학적 성과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사를 결합, 이에 치프덤사회 이론을 적용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뒤에 ≪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1986)으로 정리되었다. 한편 이종욱(李鍾旭)은 신라본기 기사에 인류학 이론, 특히 치프덤사회 이론을 적용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뒤에 ≪신라상대왕위계승연구≫(1980)ㆍ≪신라국가형성사연구≫(1982)로 정리되었다.

이현혜(李賢惠)의 ≪삼한사회성립과정연구≫(1984) 역시 고고학의 성과를 토대로 해 여기에 ≪삼국지≫ 동이전의 기사를 결합, 삼한지역에서의 소국(小國) 형성문제를 다루었다. 신라 신분제도의 대본(大本)이 되는 골품제도에 대해서도 특히 성립배경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여기서 긴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 왕경 6부의 성립 및 그 성격 변화문제였다.

노태돈(盧泰敦)의 〈삼국시대 ‘부’에 관한 연구〉(1975)라든지 신동하(申東河)의 〈신라 골품제의 형성과정〉(1979)은 이를 집중적으로 추구한 업적들이다. 또한 성골과 진골의 문제와 관련해 신라왕실의 씨족제도 내지 혼인제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는데, 이기동(李基東)의 ≪신라 골품제사회와 화랑도≫(1980)에 수록된 몇 편의 논문은 이를 주요한 검토 대상으로 한 것이다. 골품제도에 대해서는 1980년대에 들어와 이종욱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통일기 신라의 중국과의 교섭사 부문에서 새로운 면을 개척한 것은 신형식(申瀅植)의 소위 숙위(宿衛)외교 내지 숙위학생의 문제를 다룬 몇 편의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뒤에 그의 논문집 ≪한국고대사의 신연구≫(1984)에 수록되었다. 여기에는 신라 국왕의 지위를 검토한 논문이라든지 병부령ㆍ군주(軍主)제도를 밝힌 논문들이 역시 실려있다. 씨의 또 다른 논문집 ≪통일신라사연구≫(1990)에도 통일기 신라 전제왕권의 성격을 다룬 논문 외에 삼국통일 및 대외관계를 다룬 논문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신라의 삼국통일전쟁 수행 과정에서 전개된 중국과의 교섭사에 대해서는 이호영(李昊榮)이 집중적으로 추구했는데, 이는 뒤에 ≪신라삼국통합과 려제패망원인연구≫(1997)로 정리되었다. 신라의 중국과의 교섭사에 대해서는 제3기에 들어와 젊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면밀한 검토가 행해졌는데, 권덕영(權悳永)의 ≪고대한중외교사-견당사연구-≫(1997)는 그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쇼소인에 있는 신라촌락문서는 1953년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된 뒤 1950년대 말에 일본의 한국사학자 하타다(旗田巍)에 의해 기초적인 연구업적이 나왔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 우리 학계에서도 이를 둘러싼 연구 열기가 일기 시작해 단기간에 많은 논문들이 나왔다. 강진철(姜晋哲)ㆍ이태진(李泰鎭)과 한국에 유학해 논문을 발표한 카네와카(兼若逸之) 등은 촌락문서 자체에 대한 분석 뿐 아니라 나아가 이를 통해 정전제(丁田制)와 촌주제 그리고 녹읍제(祿邑制)를 중심으로 한 통일기 토지제도 전반에 걸쳐 그 실태를 파해친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이 통일기 사회경제사 연구는 뒤에서 보게 되듯이 제3기에 들어와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제3기]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신라사를 전공하는 연구자의 수효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것은 대학원 교육의 팽창 강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었고, 신라사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신라사 연구에서 세분화 내지 전문화 경향을 촉진했으며, 그 결과 1990년경을 전후해서 고도의 전문 주제를 선택해 박사학위논문을 제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례가 되었다. 여기서 젊은 연구자들의 업적을 몇 개의 부문으로 나누어 개관해 보기로 한다.

신라의 국가 형성 및 초기의 왕위 계승,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은데, 이형우(李炯佑)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초기국가 성장사 연구≫(1992)나 선석열(宣石悅)의 박사학위논문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기록의 문제와 신라국가의 성립≫(1996), 강종훈(姜鍾薰)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삼성족단과 상고기의 정치체제≫(1997) 등은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려고 하였다.

한편, 고고학적 자료를 갖고 국가형성기 및 상고기의 신라사회를 추구한 것으로는 최병현(崔秉鉉)의 논문집 ≪신라고분연구≫(1992), 최종규(崔鍾圭)의 논문집 ≪삼한고고학연구≫(1995), 박보현(朴普鉉)의 박사학위논문 ≪위세품으로 본 고신라사회의 구조≫(1995), 이희준(李熙濬)의 박사학위논문 ≪4∼5세기 신라의 고고학적 연구≫(1988) 등이 매우 주목된다. 그런데, 신라정치사회사 부문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역시 6세기 전반기 왕경 6부의 실체 및 골품제적 신분 평성 그리고 지방통치체제에 대한 문제였다.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80년대 말에 잇따라 발견된 울진 봉평비(524년 건립)와 영일냉수리비(503년 건립) 등 금석문자료였다.

이로써 종래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520년(법흥왕 7) 율령 반포를 전후한 시기의 신라사회를 해명하는데 있어 유력한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 이우태(李宇泰)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중고기의 지방세력 연구≫(1991), 강봉룡(姜鳳龍)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지방통치체제연구≫(1994), 서의식(徐毅植)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상대 ‘간’층의 형성 분화와 중위제≫(1994), 주보돈(朱甫暾)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중고기의 지방통치와 촌락≫(1995), 이수훈(李銖勳)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중고기 촌락지배연구≫(1995), 전덕재(全德在)의 논문집 ≪신라육부체제연구≫(1996) 등은 이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구한 노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6세기 금석문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로는 김창호(金昌鎬)의 박사학위논문 ≪6세기 신라 금석문의 석독과 그 분석≫(1994)이나 노용필(盧鏞弼)의 논문집 ≪신라진흥왕순수비연구≫(1996)가 주목된다. 신라의 정치 제도 일반이나 군사제도 혹은 특정한 시대의 정치과정을 다룬 연구도 적지 않게 나왔다. 이명식(李明植)의 논문집 ≪신라정치사연구≫(1992), 이인철(李仁哲)의 논문집 ≪신라정치제도사연구≫(1993), 이문기(李文基)의 논문집 ≪신라병제사연구≫(1997)는 제도사적 측면에서 접근한 노작들이다.

한편 구체적인 정치 과정을 다룬 것으로는 이정숙(李晶淑)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진평왕대의 왕권 연구≫(1994), 이영호(李泳鎬)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1995), 김수태(金壽泰)의 논문집 ≪신라중대정치사연구≫(1996)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시기에 들어와 종래 소홀하게 다루어져 온 신라 말기의 정치사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주목되는 일이다.

조인성(趙仁成)의 박사학위논문 ≪태봉의 궁예정권연구≫(1990), 김갑동(金甲童)의 논문집 ≪나말려초의 호족과 사회변동연구≫(1991), 이순근(李純根)의 박사학위논문 ≪신라말 지방세력의 구성에 관한 연구≫(1992), 신호철(申虎澈)의 논문집 ≪후백제견훤정권연구≫(1993), 김창겸(金昌謙)의 박사학위논문 ≪신라하대왕위계승연구≫(1994), 정청주(鄭淸柱)의 논문집 ≪나말려초의 정치사회와 문화지식층≫(1996) 등은 모두 이 방면에서 거둔 귀중한 성과이다.

신라촌락문서를 핵심으로 한 통일기 토지제도사 연구는 제2기에 비하면 한층 더 심화된 듯한 느낌이 든다. 김기흥(金基興)의 박사학위논문 ≪통일신라 토지제도연구≫(1994), 이인재(李仁在)의 박사학위논문 ≪신라통일기 토지제도연구≫(1995), 이인철(李仁哲)의 논문집 ≪신라촌락사회사연구≫(1996)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재미동포학자 김종선(金鍾璿)의 논문집 ≪한국 고대국가의 노예와 농민≫(1997)은 촌락문서를 분석한 논문을 포함해 한국 고대국가의 기본성격을 농민이 생산의 주역을 담당한 소위 농자정본(農者政本)사회라는 관점에서 일관성있게 추구한 논문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박남수(朴南守)의 논문집 ≪신라수공업사≫(1996)는 농업경제 이외의 사회경제사 부문에서 거둔 돋보이는 업적이다.

끝으로, 신라사 연구에서 불교사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큰데, 제3기에 들어와 많은 업적이 나왔다. 즉 김상현(金相鉉)의 논문집 ≪신라화엄사상사연구≫(1991)를 비롯해 김복순(金福順)의 논문집 ≪신라화엄종연구≫(1990), 정병삼(鄭炳三)의 학위논문 ≪의상 화엄사상연구≫(1991), 신종원(辛鍾遠)의 논문집 ≪신라초기불교사연구≫(1992), 추만호(秋萬鎬)의 논문집 ≪나말려초 선종사상사연구≫(1992)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최원식(崔源植)의 박사학위논문 ≪신라보살계사상사연구≫(1992), 김혜완(金惠婉)의 박사학위논문 ≪신라미륵신앙연구≫(1992), 김영미(金英美)의 논문집 ≪신라불교사상사연구≫(1994), 김두진(金杜珍)의 논문집 ≪의상 -그의 생애와 화엄사상-≫(1995), 남동신(南東信)의 박사학위논문 ≪원효의 대중교화와 사상체계≫(1995), 김남윤(金南允)의 박사학위논문 ≪신라 법상종 연구≫(1995) 등이 바로 그것이다.
→ 남북국시대, 삼국시대

신라(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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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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