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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10 (토) 09:19
분 류 사전1
ㆍ조회: 2714      
[농업] 조선 중기의 농업 (민족)
농업(조선 중기의 농업)

세부항목

농업
농업(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업)
농업(상고시대의 농업)
농업(고려시대의 농업)
농업(조선 초기의 농업)
농업(조선 중기의 농업)
농업(조선 후기의 농업)
농업(조선 말기의 농업)
농업(일제강점기의 농업)
농업(광복 후 농업)
농업(참고문헌)

조선 중기의 농업에 있어서 정부의 대책은 진휼, 대동미포(大同米布) 반감, 군보미(軍保米) 삭감, 진상(進上)을 줄여주고, 저수지나 둑 등을 논· 밭으로 일구게 허용, 담배경작 금지, 양조금지 등 응시적(應時的)인 것들에 급급하였다. 더욱이 중기 후반부터 성숙하기 시작한 자아의식의 확대와 실용후생의 학풍은 농정면 또는 농업 기술면에 비판의 눈을 돌리게 하였다.

≪반계수록 磻溪隨錄≫ 가운데의 전제(田制)를 중심으로 하는 농론(農論)은 그 백미(白眉)에 속한다. 임진왜란 중 또는 난후의 중국·일본과의 통교(通交)에 따라 몇몇 외래작물의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메리카대륙 원산인 고추·호박·담배 등의 세 가지 작물이 선조·광해군 때에 일본 또는 중국에서 도입되어 신속하게 보급됨으로써 전국 방방곡곡에서 재배되었다.

호박은 식량에 보탬이 되는 데다 가꾸기가 쉬우며, 고추와 담배는 일반인의 기호에 맞아 그 재배 보급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의 확산을 가져왔다. 고추는 우리 식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담배는 전업작물(專業作物)로서 경제적인 위치도 확보하여갔다.

한편, 조선 시대 초기의 농서들과 중기의 농서들을 비교해 보면, 농민들의 역생활(曆生活)이 24절기 중심으로 굳어져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태양의 운행을 정확히 계산하여 1년의 길이를 정하고, 그것을 24등분하여 24절기라 하고 농경에 필요한 계절변화를 지표로 한 것이다. 〈농가월령가〉의 내용을 절기별로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입춘(立春):섣달에 물에 담가두었던 가을보리를 바깥에 놓아 얼게 한다(봄에 파종할 것). 농기구(쟁기·삽·후치·써레·번지 등)를 갖춘다.
②우수(雨水):비온 다음날에 띠와 솔새를 베어 도롱이를 만들고, 뜰 안팎의 잡초를 태워 재를 만들어 재거름으로 하여 보리밭 봄갈이에 쓴다. 얼음이 풀리면 봄보리를 파종한다.
③경칩(驚蟄):절내(節內)에 봄보리를 다 뿌리도록 한다. 콩·들깨·수수·삼을 파종한다. 망전(望前)에 과목·잡목을 심고 홍화(紅花)와 쪽〔藍〕과 담배〔南草〕를 파종한다.
④춘분(春分):묵은 땅을 쟁기로 갈아 기장·조·메밀·목화 등을 파종한다. 닥나무·청포를 심고 가을보리밭을 매고 두렁 사이에 콩이나 조를 심는다.
⑤청명(淸明):올조·올기장을 건조한 땅에 심고 올벼를 파종하며 목화씨를 뿌리고 보리밭을 간다.
⑥곡우(穀雨):목화씨를 뿌리며 참깨를 섞어 심는다. 습한 땅에는 율무를 파종하고, 잠박(蠶箔)을 만든다.
⑦입하(立夏):중생도(中生稻)를 파종하고 삼밭〔麻田〕을 다시 갈고 비가 오지 않으면 천수답에서 건답직파한다.
⑧소만(小滿):이 절내에 늦벼를 모두 파종하고 목화밭을 초벌갈이 하며 올조와 이른콩의 김을 맨다. 올벼의 모내기를 한다.
⑨망종(芒種):도리깨를 고치고 조밭을 두벌갈이하며, 들왕골을 베어 자리 짤 것을 마련한다. 비온 뒤에 담배모를 모종한다. 중생벼의 모를 낸다.
⑩하지(夏至):보리를 급히 거두어들이고 그루갈이로 우선 콩이나 팥을 심되 그 다음에는 기장·조를, 그리고 그뒤에는 녹두를 심고 들깨를 모종한다. 늦벼의 모를 내고 목화밭의 김을 맨다.
⑪소서(小暑):잡초와 버들가지를 베어 잘게 썰어 외양간에 넣는다. 비온 뒤에는 돌삼〔山麻〕을 베고 목화밭의 김을 맨다.
⑫대서(大暑):올기장·올조를 거두어들이고 그루갈이로 메밀을 심는다.
⑬입추(立秋):입추 후 4, 5일경에 메밀을 심고 삼밭에 무씨를 뿌리며, 목화밭의 김을 여섯번째로 맨다. 그루밭에 콩과 조를 파종한다.
⑭처서(處暑):올벼를 거두어들이고 잡초와 버들가지를 베어 잘게 썰어 외양간에 넣는다. 목화밭을 일곱차례째 맨다. 참깨를 베어 처마에 매달아 말려 씨를 거둔다.
⑮백로(白露):절초에 배추와 상추를 심고, 산중의 잡초와 참갈가지를 베어 잘라 쌓아두어 겨울과 봄에 외양간에 넣는다.
16. 추분(秋分):가을보리를 파종하는데, 그루갈이 곡식이 수확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는 한로절(寒露節)에 파종해도 좋다. 중생벼를 수확하고 갈풀도 많이 베어둔다.
17.  한로(寒露):꼴풀을 베어 마르면 쌓아두어 겨울 동안 소·말을 기르는 데 쓴다. 잡초와 참갈가지를 베어둔다.
18. 상강(霜降):들깨의 이삭이 거뭇해지면 곧 베어 씨를 채취한다. 칡을 베어서 밧줄을 만들고 닥나무잎이 떨어지면 베어 쪄서 껍질을 벗긴다. 껍질은 종이를 만들고 속의 큰 것은 울타리를 만들 수 있고 가는 것은 짤 수 있다.
19. 입동(立冬):추수가 이미 끝났으니 우선 움을 만들고 울타리를 보수하며 창호(窓戶)와 벽을 살펴본다. 갈대와 물억새를 베어 다음해 봄에 쓸 잠박을 만든다. 메주를 디딘다.
20. 소설(小雪):볏짚을 도리깨로 두드려 남은 곡식을 회수하고 무논에 갈풀이 무성하면 이 달에 반갈이〔反耕〕함이 좋다. 억새풀을 베어 날개(이엉)를 만든다. 숯을 굽는다. 비온 뒤 목화밭을 반갈이한다.
21. 대설(大雪):비온 뒤에 띠와 솔새를 베어 밧줄이나 도롱이를 만드는 데 쓴다.
22. 동지(冬至):움 또는 토굴을 만들고 멍석을 짜며 날개를 엮는다.
23. 소한(小寒):멍석을 만들고 이엉을 짠다.
24. 대한(大寒):가을보리를 물에 담가두고 농기구를 간수한다. 섣달의 눈을 항아리에 넣어 얼지 않게 두었다가 봄보리 파종 전에 담갔다 쓰면 밀·보리가 황증(黃蒸)에 걸리지 않는다.

농업 기술의 변천을 보면, 효종 때에 간행된 ≪농가집성 農家集成≫은 증보된 ≪농사직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세종 때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지경법(地耕法)에 있어서 메마른 밭에 녹두를 키워 무성하였을 때 엎어갈면 잡초와 해충이 적어지고 밭이 기름지게 된다고 녹비사용을 권장한 것이 추가되어 있다.

또, 증보된 조도앙기항(早稻秧基項)에서는 영남과 기타 남도의 행법을 많이 소개하되 재와 분(糞)의 용법, 사질토(砂質土)에 대한 유의사항, 앙초(秧草), 즉 참갈·억새풀 기타 잡초를 외양간즙액·인뇨 등에 처리하여 퇴적한 것의 사용 등을 논하였다.

그리고 화누법(火麴法)이라 하여 논에 건초를 깔아 태우고 관수하는 제초법도 소개되어 있고, 벼모의 이앙이 늦어 파리오줌병이 생겼을 때에는 건초를 두껍게 덮어 적당히 성장하였을 때에 모종을 하라고 하였다.

기장과 조의 재배에서 줄기〔莖節〕가 너무 무성하면 우경(牛耕)하여 흙으로 줄기를 덮어주면 새로 뿌리가 나서 열매가 좋아진다는 것도 부가되어 있다.

그리고 ≪농가집성≫에는 종목화법(種木花法)이 수록되어 있는데 목화를 참깨·청태(靑太) 사이에 사이짓기하는 것은 목화에 손해를 준다 하여 전업자(專業者)는 목화를 홑짓기하는 것이라고 논하였다. 목화의 적지(適地)로는 건조한 모래토양을 권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가집성≫에 수록된 목화재배법의 내용은 상세하여 택지(擇地)·종자처리·씨뿌리기·거름주기·김매기·순치기 등 재배상의 기술이 상당히 진전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경상좌도에서는 습한 밭에도 목화경작을 하고 있다 하였으니 건조한 모래토양 원칙에서 벗어나 진일보된 기술도 있었던 것 같다.

〈농가월령가〉에 따르면 가을보리를 냉동처리하여 봄에 파종할 수 있게 하는 기술(현대용어로는 春化處理)이 있었으며, 벼에는 조(早)·중(中)·만(晩)의 익는 시기별 품종이 있어 각기 파종·이앙·수확의 시기와 방법이 잘 구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맥류의 그루갈이에도 윤작의 순서가 잘 짜여 있어 조·기장·수수 등과 콩류의 안배가 묘하게 되어 있다. 거름의 준비에 있어서도 인분뇨·외양간거름은 물론 재의 마련 및 두엄과 녹비의 제조를 위한 가지가지 풀과 잎의 수집과 활용 등 용의주도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목화재배에서는 전업(專業)을 위한 집약재배가 논술되어 있다. 다른 특용작물로 염색용 작물과 제지용 작물인 닥나무 등의 재배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담배의 파종·모종이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면 전래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이 기호작물이 얼마나 신속히 이 땅에 보급되었는가를 암시하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농가의 필수용품인 밧줄·멍석·이엉·잠박·도롱이·뱁댕이 등의 제조를 위하여 수시로 띠·갈대·물억새·돌삼 등 야생잡초를 십분 활용하였음을 살필 수 있다.

당시의 채소류 및 과일류의 재배상황을 허균(許筠)이 지은 ≪도문대작 屠門大嚼≫의 관계부분과 다른 농서들을 참고해 살펴보면, 채소류로는 오이·가지·마늘을 비롯하여 무·아욱·부추·염교·미나리·배추·갓·토란·생강·파 등이 많이 재배되었고, 고려 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수박과 참외 등도 각기 명산지를 이루고 있다.

과일류로는 강릉에서 돌연변이종인 배를 얻어 키웠는데 크고 단맛이 있으며 육질이 연하였다는 천사리(天賜梨)와 정선의 금색리(金色梨), 평안도의 현리(玄梨), 석왕사의 홍리(紅梨)·대숙리(大熟梨) 등의 배, 온양의 조홍시(早紅시), 남양의 각시(角시), 지리산의 오시(烏시) 등 감, 황도(黃桃)·반도(盤桃)·승도(僧桃) 등 복숭아, 그리고 당행(唐杏)·자도(紫桃)·녹리(綠李) 같은 자두류가 있었다. 밤·대추가 각지에서 생산되었음은 물론이다.

고려 때부터 전통이 있던 감귤류로는 금귤·감귤·청귤(靑橘)·유감(柚柑)·감자·유자 등이 제주를 위주로 하여 서남해안에서도 산출되었다.

이들 이외에 우리 나라에서는 능금(지금도 있음)이라는 소형 과일이 있어, ≪계림유사 鷄林類事≫에 의하면 고려 중기에는 ‘핏부’라고 하였던 모양이다. 그 뒤에 임금(林檎)의 음을 따서 ‘능금’ 또는 ‘님금’이라 하였는데, 이보다 대형인 사과(査果, 또는 掠果)가 효종 때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날 ‘사과’라고 하는 것은 한말에 들어온 서양사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축산방면의 모습은 효종말에 간행된 ≪목장지도 牧場地圖≫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을 겪고 병자호란까지 거친 직후의 목장의 마필은 3분의 1로 줄어든 비참상을 나타냈는데, 그 뒤의 복구노력이 얼마나 컸던지 효종말 당시 마필의 수효가 2만 필이 넘었다. 물론 목장은 폐지된 곳이 많았다.

<이춘녕>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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