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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2-08-10 (토)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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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270      
[농업] 조선 후기의 농업 (민족)
농업(조선 후기의 농업)

세부항목

농업
농업(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농업)
농업(상고시대의 농업)
농업(고려시대의 농업)
농업(조선 초기의 농업)
농업(조선 중기의 농업)
농업(조선 후기의 농업)
농업(조선 말기의 농업)
농업(일제강점기의 농업)
농업(광복 후 농업)
농업(참고문헌)

조선 후기 농업정책은 영조 때에 제언당상(堤堰堂上)을 두어 모경자(冒耕者:임자의 승낙없이 남의 땅에 농사를 짓는 사람)를 과죄(科罪)하는 임무를 맡기는 한편, 제방을 개수하며 수차(水車)를 제조, 보급하는 등 수리정책에 힘을 썼다.

균역법을 베풀어 일반민의 납세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었고, 그 보충은 어염세와 은결(隱結:탈세를 목적으로 조세의 부가 대상에서 제외시킨 땅)의 과세로 이루었다.

권농의 교서가 빈번하였고, ≪농가집성≫·≪구황촬요 救荒撮要≫ 등 서적의 중간이 있었으며, 옥토에 담배가 과하게 재배되므로 그것을 금하기도 하였고, 우역(牛疫)이 창궐하여 사람이 대신 쟁기를 끌게 되므로 소 잡는 것을 금지하기도 하였으며, 측우기를 각지에 나누어준 때도 있었다.

정조 스스로 농정에 유의하여 제언의 개축, 제언절목(堤堰節目)의 전국 반포, 새로운 제언(萬年堤·祝萬堤 등)의 축조가 있었고 권농행사가 많았으며 농서를 널리 구하기도 하였다.

헌종 때에도 권농윤음(勸農綸音)이 내리고 각 도에 제언수축의 공사가 있었으나, 큰 가뭄과 흉년이 잦아 모를 내지 못한 논에 다른 곡식을 심는 일과, 모내기 금지의 안(案)이 대책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황폐하여 방치된 땅의 경작을 장려하여도 비옥한 전답마저 많이 폐기되고 감히 개간할 의사도 보이지 않았으며, 어쩌다 맞는 풍년에도 영세민의 고생은 오히려 흉년 때보다 못하지 않았다.

여러 해 체납된 환곡과 신포(身布:평민의 身役 대신에 바치던 무명이나 베), 그리고 부역에 대한 독촉이 성화 같아 1년 소작의 곡식이 모조리 상납되는 참경을 빚어내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이때부터 척신에 의한 세도정치가 점점 심하여가면서 관기(官紀)의 부패는 더하여가고 국민은 도탄에 빠져 신음하게 되었다. 철종 때에는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이 절정에 다다랐다.

1600년대에는 실학의 풍조가 성숙하기 시작하여 이것이 농업연구면에도 반영되고 적지 않은 농정서와 농업기술서가 저술되었다. 1700년대에 들어서는 정상기(鄭尙驥)의 ≪농포문답 農圃問答≫이 나왔고, 이어서 ≪반계수록≫이 저작 후 100년 만에 간행되었다.

정조 때에는 강력한 권농정책 아래 농서의 대대적인 모집이 있어 그 중에서도 북학파의 석학들이 농업면에 보여준 관심은 괄목할만한 일이다.

농업면에 탁견을 보여준 학자로는 박제가(朴齊家)와 박지원(朴趾源)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빈번한 연경(燕京) 방문에서 얻은 견문과 경험에 보태어 예리한 식견으로 ≪북학의 北學議≫와 ≪과농소초 課農小抄≫를 각기 엮어 내놓았다.

이 밖에 서호수(徐浩修)의 ≪해동농서 海東農書≫, 이규경(李圭景)의 ≪백운필 白雲筆≫, 서유구(徐有梏)의 ≪행포지 杏蒲志≫·≪종저보 種藷譜≫ 그리고 백과전서식의 ≪임원경제지≫, 정약용(丁若鏞)의 논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농업론 등이 실학파학자들의 농정과 농업기술에 대한 연구업적으로 나타났다. 이들 논저들은 탁월하고 혁신적인 내용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농론(農論) 자체로 또는 보급되지 않은 교본(敎本)으로 매몰되고 말았다.

자연재해에 따른 흉작과 악정(惡政)에 시달린 농민들에게 대용식품이 될 외래작물의 도입은 이 시기의 식량 사정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 중에서 고구마〔甘藷〕·감자〔馬鈴薯〕 및 옥수수가 특기할 만한 것들이다. 고구마는 1763년(영조 39)에 통신사 조엄(趙湄)이 대마도에서 씨고구마〔種藷〕를 얻어 부산진으로 보낸 것이 그 도입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거의 같은 때에 이광려(李匡呂)와 강계현(姜啓賢)도 씨고구마를 얻어 심어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강필리(姜必履)는 동래(東萊)에서 시험재배하여 민간에 장려하는 한편 ≪감저보 甘藷譜≫를 지었다.

이들은 씨고구마를 서울로 보내 재배를 꾀하였으나 실패하고, 재배는 한때 영남지역에만 보급되었던 모양이다. 1813년(순조 13)에 이르러 김장순(金長淳)과 선종한(宣宗漢)이 많은 씨고구마를 기호지방에 보급시키기 시작했으며 ≪감저신보 甘藷新譜≫를 저술하였다.

그 뒤 1824년에 당시 호남순찰사였던 서유구가 ≪종저보≫를 편찬하여 호남지방에도 재배를 장려하였다. 고구마의 재배에 알맞은 땅은 기름지고 가볍고 질이 거치른 땅으로 양지쪽을 택하여 여러 차례의 겨울갈이로 벌레알을 죽이고 거름을 한 뒤 곡우 전에 3, 4차 갈아서 둔덕을 만들어 모를 옮겨 꽂고 생육이 진전하여 무성하게 되면 적절히 마디와 덩굴을 막거나 자르고, 가벼운 서리가 한두 번 내린 뒤 수확한다.

≪종저보≫의 풍부한 내용을 보면 영남·호남·기호 각지에 알맞는 고구마 경종법(耕種法: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방법)을 알아내느라 무던히 노력한 자취가 역력하다.

이와 같이 여러 인사들이 고구마의 재배법을 연구하였고 그 보급에 힘썼건만, 그 재배법과 저장법이 까다로워 파급의 속도가 느렸다. 감자는 고구마보다 60년이나 뒤늦어 함경북도를 통하여 도입되었으나 불과 10여년 만에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갔다.

두만강을 건너 도입, 보급한 공로자는 명천김씨(明天金氏)·이향재(李享在)·신종민(申鍾敏)·김사승(金士升) 등이 있다. ‘북저(北藷)’라고도 하는 감자는 ‘남저(南藷)’라고도 불린 고구마와 달라 한랭지에도 잘 견디며, 재배법이 비교적 간단하며 다수확성이다.

이 새로 도입된 작물은 평지는 물론 화전(火田)에 이르기까지 단시일에 보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거의 모든 농가마다 심는 옥수수는 30여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크게 나누어 수끼계·당쉬계·강남(강냉이)계·옥수수계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어느 때 어느 경로를 통하여 들어왔는지 ≪농가집성≫·≪색경 穡經≫·≪산림경제≫ 등에도 이 곡물이름의 기록이 없고,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옥수수에 5품종이 있으며 비옥한 땅에 자라고 쪄먹고 죽을 쑤어먹기 좋다 하였다.

그런데 1800년대 초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는 서유구의 ≪행포지≫에는 옥수수 품종이 청·백·홍 3품종이 있으며, 가루로 하여 양식으로 충당할 수 있고 맛이 밀가루에 견줄만하나 국민들이 그리 숭상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면 이때에도 널리 보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땅콩〔落花生〕은 1778년경에, 완두콩〔豌豆〕은 두만강을 건너 들어온 것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농경기술의 발달도 부진하여 농구의 모습은 경작에 맞지 않고 장공기술(匠工技術)도 좋지 않아 질과 능률이 떨어져 중국의 농구를 본떠서 만들거나 도입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파종도 살파(撒播:씨뿌림)와 밀파(密播:씨앗을 빽빽이 배게 뿌림)에 치우쳤고, 거름의 수집·운반·저장에 힘쓰는 것이 부족하였다.

채소류의 재배도 종자의 선택과 거름주는 방법이 시원하지 않아 모처럼 북경에서 들여온 것도 몇 해 지나지 않아 퇴화하기 일쑤였다. 수차제(水車制)는 논의만 많았을 뿐 별로 보급을 못 보았고, 수리시설은 허물어져만 갔다. 목화재배는 활발했으나 누에와 뽕은 쇠퇴하여 양잠은 여인의 소업(所業)으로 축소되고 과목류 재배도 매년 줄어갔다.

이러한 농업의 쇠퇴 속에서도 목화와 인삼재배 등은 그 기술과 경영이 발전했다. 특히, 인삼은 산삼종자를 산곡에 파종하는 산에 옮겨 심어 기르는 삼양법(蔘養法)에서 출발하여 차차 집약적인 삼밭에서 가꾸는 가삼재배(家蔘栽培)가 이루어졌다. 가삼법이 시작된 것은 정조 때이며, 정조 말에서 순조초에 걸친 기간에는 개성에까지 그 재배지가 북진되어 결국 그곳이 명산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즈음에 중국과 일본에의 사신들의 내왕이 잦고 실학자들과 관심있는 인사들의 열성이 가세되어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의 도입이 단시일에 꽃피게 되었음은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기후와 토질이 판이한 원산지에서 이 땅에 도래, 정착되기까지에 나타난 재배법의 연구와 보급노력은 당시 농업기술발달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이춘녕>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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