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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0-09 (화) 22:15
분 류 사전1
ㆍ조회: 747      
[조선] 보부상 (두산)
보부상 褓負商

고대 사회 이래 상품 집산지에서 구입한 일용 잡화물을 지방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에게 판 행상인(行商人).

직접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교환 경제를 매개한 전문적인 상인이며, 일종의 행상조합으로서, 원래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의 두 개의 상단(商團)으로 구분되었고 취급하는 물품도 각각 달랐다. 부상은 나무그릇 ·토기 등과 같은 비교적 조잡한 일용품을 상품으로 하여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였으므로 ‘등짐장수’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보상은 비교적 값비싼 필묵, 금 ·은 ·동 제품 등과 같은 정밀한 세공품(細工品)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였으므로 ‘봇짐장수’라고도 한다.

[기원 ·조직] 부상의 기원은 고대 사회에서 주로 사람의 머리 ·등을 이용하여 물품을 운반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동제상구(同濟相救)하는 하나의 상인조직으로 형성된 것은 조선 전기였다. 부상단의 합법적 단체권을 가진 ‘부상청(負商廳)’의 창설에 관해서는 여러 다른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것으로 본다.

즉, 부상청은 부상배가 조선 건국에 봉공진충(奉公盡忠)한 대가로 국가의 보호 아래 육성되었고, 그 대신 유사시에는 국가에 동원되어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수천 부상이 동원되어 식량과 무기를 운반, 보급하고 직접 전투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또한 병자호란 때도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식량을 운반하고 성을 지켰다. 전쟁이 끝난 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벼슬을 주려하나, 이를 사양하자 어염(魚鹽) ·토기 ·목기 ·목물(木物) ·수철(水鐵:무쇠) 등 다섯 물건의 전매권을 부여하였다. 이 밖에도 이들은 1866년(고종 3)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공하였을 때도 프랑스군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웠다.

이에 반해 보상이 언제부터 조직을 갖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1879년(고종 19) 9월에 발표된 ‘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을 따르면 이전부터 지역적으로 각기 정해진 기율과 우두머리인 접장(接長)의 소임이 있어 뭇보상을 통솔해왔으며, 이렇게 흩어진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전국적인 상단으로 조직한 것이 보상단이다. 동제상구(同濟相救)를 위해 무뢰배나 하급 관리의 침탈을 금지하여 상권 확립을 꾀하고, 또한 한성부에서 8도의 도접장(都接長)을 차출하면 일종의 신분증인 도서(圖書)를 발급하여 보상의 신분을 보장하였다. 이처럼 보상과 부상은 각각 별개의 행상조합조직으로 발전해 왔으며 부상이 보상의 상품을 가지고 행상한다든지, 그와 반대되는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이러한 보상과 부상을 통합하여, 83년(고종 20)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하고 군국아문(軍國衙門)의 지휘를 받게 하였다. 85년에는 혜상공국을 상리국(商理局)으로 바꾸는 동시에 부상을 좌단(左團), 보상을 우단(右團)으로 구별하고 다만 역원(役員)은 상리국에 통합, 단일화하였다. 94년 갑오개혁에 따른 정부기구 개편시 보부상단은 농상아문(農商衙門)의 관할 아래 통합되었고, 97년(광무 1) 다시 황국중앙총상회(皇國中央總商會)에 속하였다가, 다시 황국협회(皇國協會)로 이속되었다. 99년 다시 상무사(商務社)로 이속되면서 부상은 좌사(左社), 보상은 우사(右社)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1903년에 공제소(共濟所) ·상민회(商民會)로, 1904년에 진명회(進明會)로 이속되었고, 그해 12월 다시 회장 이준(李儁)과 총무 나유석(羅裕錫) 등을 임원으로 한 공진회(共進會)의 통솔을 받았다.

[개항 이후 활동] 개항 이후 조선 정부가 보부상단의 보호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보부상이 개항 후 청국과 일본 등 외국상인의 침투로 극심한 난국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부상은 개항 당시 상인단체 가운데서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단체이므로 정부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정부는 보부상단의 조직체를 이용하여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데 동원한 것이다.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주 감영의 영병(營兵) 250명과 함께 보부상 1,000여 명이 동원된 이래로 농민군 토벌에 참여, 농민군과 대립하였다. 또한 광무 정권 당시 정부는 황국협회에 소속된 보부상단을 동원하여, 정부의 비자주적 외교 활동을 비판하며 반정부 운동을 벌인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탄압하기도 하였다. 보부상은 이러한 활동의 대가로 정부로부터 어염 ·수철 ·토기 ·목기(木器) ·목물(木物) 등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전매특권을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부는 보부상단에 소속되지 않는 행상을 상단조직에 포섭하는 한편, 불량행상을 단속하고 외국상인의 불법 행위를 금함으로써 보부상의 권익을 보호하였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보부상은 전국적 조직으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 이루어져 권력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특권적 상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특권적 성격 때문에 상업자본의 축적은 물론, 개항 이후 변화되는 새로운 경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결국 전통적인 보수 상인 단체의 성격을 탈피하지 못하였다. 또한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식민지화한 뒤 민족 상업을 탄압하게 되면서 완강한 전국적 조직력을 가진 보부상도 탄압을 받아 거의 소멸되고, 현재 충남의 일부 지방에서 보부상단의 존재를 발견할 정도이다.

출전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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