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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1-10-09 (화) 22:21
분 류 사전1
ㆍ조회: 837      
[조선] 보부상 (한메)
보부상 褓負商

전통 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 경제를 매개하였던 전문적 상인.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명칭이다.

보상은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하였고, 부상은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하였다. 보상은 상품을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녔기 때문에 <봇짐장수>, 부상은 지게에 짊어지고 다녔기에 <등짐장수>라고도 하였다. 보부상은 대개는 1일 왕복이 가능한 시장을 돌면서 상품을 유통시켰으나 대보상·대부상들은 수운(水連)과 우마차로 다량의 상품을 유통시키기도 하였다.

[기원] 부상의 기원은 고대 사회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부상단(負商團)이 조직된 것은 조선 초로서 조정에서는 국가 대사나 국난 위기 때 이들을 수시로 사역하였다. 보상의 조직이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전국적 조직이 형성된 것은 1879년(고종 19) 발표된 <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이전부터 지역적으로 정해진 규율과 접장(接長)이 있었고 산재한 조직을 전국적 상단(商團)으로 묶어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규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상과 보상은 별개의 행상조합으로 성장하였으나 1883년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하여 통합되었다가 85년에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하면서 부상을 좌단(左團), 보상을 우단(右團)으로 구별하고, 역원(役員)만을 상리국에 통합, 단일화시켰다. 정부에 의한 보호와 관리가 시작된 것은 보부상이 강대한 조직체로 발전하여 정치적으로 활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 보부상 조직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민주적 투표에 의한 임원 선거와 안건의 심의를 위한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다는 점이다.

⑴ 보상 : 현존하고 있는 충청남도의 보부상단 중 상무사우사(商務社右社)의 경우 매년 음력 3월 3일부터 중점(中點)·공사(公事)라는 정기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전회원이 의무적으로 참석하였고 임원을 선출하였다. 보상의 성인회(成人會)라고 할 수 있는 요중(僚中)의 임원은 영위(領位)·반수(班首)·공원(公員) 등이 있었고 요중의 산하 단체로 동몽청(童蒙廳)이 있었다. 상무사우사 위에는 각사(各社)들을 망라, 통할하는 도접장과 도반수가 있는데 중앙에서 임명하였고 중앙의 임원은 도접장 중에서 임명되었다. 각도 임원의 직인(職印)은 상리국 본국에서 만들어 위조를 예방하였다. 도접장은 소관 도내의 행상을 통섭하고 회원의 수를 파악하였다. 보상회원끼리는 상부상조와 결속이 강하여 대내적 규율과 대외적 상권보장을 강화하였다. 보상단의 재정은 시장 세금·벌금의 징수, 신표(信標) 대금수납으로 이루어졌다.

⑵ 부상 : 천민 출신인 부상은 내적 단결력과 친목이 절실히 요구되어 윗사람은 아버지처럼 아랫사람은 아이처럼 보살필 것을 신조로 하였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지 않았고 국가적으로도 보호와 대우를 받았다. 정부는 이들에게 어염(魚鹽) 등의 전매권을 주었다. 부상단은 이익공동체적 상인단체이지만 혈연·정신적 공동체의 성격을 나타내었다. 부상의 임원은 중앙 임원과 지방 임원이 있는데 중앙은 팔도임방도존위(八道任房都尊位)를 비롯하여, 35명이 있었고 지방 임원은 반수·접장을 비롯해서 11∼18명이었다.

[역사적 활동] 보부상은 국가의 일정한 보호를 받는 대신 국가의 유사시에 동원되어 정치적 활동을 수행해 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식량과 무기를 운반, 보급하고 전투에도 가담하였다. 정조 때의 수원성 축조 때에도 석재와 목재·철기를 운반, 제련하여 장안문(長安門)을 만들었으며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에는 전국의 보부상이 동원되어 프랑스군과 싸웠다. 1882년에는 대원군에 반발한 민영익(閔泳翊)이 보부상을 이끌고 서울에 침입하려 하자 보부상의 관할이 삼군부·혜상공국 등으로 바뀌었다.

한편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에서는 관군에 소속되어 동학군과 격전하였다. 그 뒤에는 황국협회(皇國協會)·공진회(共進會) 등으로 이속되어 통솔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보부상 말살 기도에 의해 전국의 보부상단이 소멸되어 현존하는 단체는 충청남도의 부여·한산을 일원으로 하는 충청우도 저산팔구 보부상단과 예산·덕산을 중심으로 하는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뿐이다.

출전 : [한메파스칼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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