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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31 (월)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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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711      
[조선] 현종 행장 3 (실록)
현종 대왕 행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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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101] 황면재(黃勉齋) : 황간(黃幹).
[註 1102] 연기(練期) : 소상(小祥)을 말함.
[註 1103] 문순공(文純公) 이황(李滉)이 기대승(奇大升)의 논평을 듣고 깜짝 놀라 옛날의 견해를 바꾸면서 : 선조 즉위년, 즉 1567 명종(明宗)의 상에, 공의전(恭懿殿:인종 비(仁宗妃) 박씨(朴氏)를 말함)이 명종에게 수숙(嫂叔)이 되어 복(服)이 없어야 한다고 의논이 정해졌는데, 이황도 그 설을 인정하였다. 기대승은, "형제가 전국(傳國)하여 차례를 이었으니 나름대로 군신ㆍ부자의 의리가 있는데 어찌 복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기복(朞服)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니, 퇴계가 크게 깨닫고, 조정에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군자가 있지 않았으면 어떻게 국가가 제 구실을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승의 변례(變禮)에 통달한 것을 훌륭하게 여기고 퇴계가 선한 말을 선뜻 따르는 것을 칭찬하였다.《고봉집(高峰集)》 속집(續集). 기명언(奇明彦)의 명언은 기대승의 자(字).
[註 1104] 선왕 : 효종을 말함.
[註 1105] '죄없는 선비를 죽인다.' :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말로,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죄없는 선비를 죽이면 대부(大夫)가 그 나라를 떠나가야 한다." 하였다.
[註 1106] 흉인(凶人) : 윤선도를 가리킴.
[註 1107] '제갈양이 마속을 죽인 일' : 삼국(三國) 촉(蜀)의 제갈양(諸葛亮)이, 자식처럼 사랑하는 장수 마속(馬謖)이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제갈양의 명령을 어기고 대패하자, 눈물을 흘리며 그를 목베어 죄를 다스리고 사기를 고무시킨 일.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마속전(馬謖傳).
[註 1108] 계복(啓覆) : 임금에게 아뢰어 사형수를 다시 심리하는 일.
[註 1109] 음사(淫祀) : 내력이 바르지 못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
[註 1110] 공민왕은 이존오(李存吾)의 소를 불태웠고, : 공민왕 15년(1366)에 이존오(李存吾)가 우정언(右正言)으로 있을 적에 신돈의 전횡에 분격하여 소를 올려 탄핵하자, 왕이 크게 노하여 그 소를 불태우게 하였다. 뒤에 신돈이 모반하자 신돈을 주벌하고, 이존오의 충성을 사모하여 증직하고 10세 된 이존오의 아들에게 장사직장(掌事直長)을 제수하였다. 《석탄집(石灘集)》 하(下).
[註 1111] 광해주(光海主)는 정온(鄭蘊)의 소를 불태웠습니다. : 광해군 6년(1614) 정온(鄭蘊)이 부사직(副司直)으로 소를 올려 영창 대군(永昌大君)의 처형이 인륜에 어긋남을 지적하고 그 가해자인 강화 부사(江華府使) 정항(鄭沆)을 참수하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광해가 크게 노하여 승정원을 몹시 꾸짖고 그 소를 불태우게 하였다. 《동계집(桐溪集)》.
[註 1112] 세실(世室) : 오랜 세대를 두고 제사지내는 위패(位牌)를 모시는 종묘의 신실(神室).
[註 1113] 사친(四親) : 고조ㆍ증조ㆍ할아버지ㆍ아버지를 말함.
[註 1114] 양묘(兩廟) : 인종ㆍ명종.
[註 1115] 역사(逆祀) : 낮은 분을 위에, 높은 분을 아래에 제사지내는 것. 《좌전(左傳)》 문공(文公)의 2년조에 '8월 정묘일(丁卯日)에 태묘(太廟)에 제사가 있어 희공(僖公)의 신주를 위에 올려 모셨으니, 역사(逆祀)이다.' 하였다. 그 주석에 '희공(僖公)이 민공(閔公)의 형이고 민공과 부자 사이가 되지는 않으며, 일찍이 신하였으므로 위치가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민공의 윗자리에 있게 하였으므로 역사(逆祀)라 한다.' 하였다.
[註 1116] '단선(壇蟬)의 제도' : 단과 선은 제사지내는 장소. 흙을 모은 것을 단, 땅을 깎은 것을 선이라 한다. 《예기(禮記)》 제법(祭法)에 "천자는 7묘(七廟)와, 단(壇) 하나, 선 하나를 세운다……. 먼 조상을 위해 조묘 둘을 만들어 제사지낸다. 조묘에서 제사받을 수 없는 조상은 단에서 제사지내고, 단에서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조상은 선에서 제사지낸다. 단과 선에서 제사지내는 조상은 기도할 일이 있어야 제사지내고, 기도할 일이 없으면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선에서도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조상은 이를 귀(鬼)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도할 일이 있어도 제사지내지 않는다." 하였다.
[註 1117] 천험(天險) : 천연의 험요(險要). 곧 오르거나 넘볼 수 없는 것을 비유함.
[註 1118] 삭선(朔膳) : 매월 초하룻날에 각도에 나는 물건으로 임금이나 왕비에게 올리는 음식상.
[註 1119] 혼조(昏朝)에서 절개를 세웠고, : 윤선도가 광해 8년(1616)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일당의 횡포를 들어 상소했다가 경원(慶源)에 유배되었다.
[註 1120] 무술년 : 1658 효종 9년.
[註 1121] 내사옥(內司獄) : 내수사 안에 있는 감옥.
[註 1122] 갑진년 : 1664 현종 5년.
[註 1123] 실봉(實封) : 어전에서 개봉하게끔 견고하게 봉한 편지.
[註 1124] 풍정연(豊呈宴) : 임금 내외의 경사를 경하하기 위해 무엇을 바치는 잔치 자리.
[註 1125] 아병(牙兵) : 대장 휘하에 있는 병정.
[註 1126]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註 1127]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註 1128] 을사년 : 1665 현종 6년.
[註 1129] 영호 군병(迎護軍兵) : 맞이하여 호위하는 군병.
[註 1130] 별조(別造) : 특별 제조.
[註 1131] 을미년 : 1655 효종 6년.
[註 1132] 정미년 : 1667 현종 8년.
[註 1133] 무신년 : 1668 현종 9년.
[註 1134] 기유년 : 1669 현종 10년.
[註 1135] 신덕 왕후(神德王后) : 태조의 계비(繼妃) 강씨(康氏).
[註 1136] 염분포(鹽盆布) : 소금 굽는 가마에 대해 물리는 세포(稅布)임.
[註 1137] 경술년 : 1670 현종 11년.
[註 1138] 기유년 : 1669 현종 10년.
[註 1139] 명년 : 1672 현종 13년.
[註 1140] 계축년 : 1673 현종 14년.
[註 1141] 기유년 : 1669 현종 10년.
[註 1142] 지난해 : 1671 현종 12년.
[註 1143] 효고(孝考) : 효종.
[註 1144] 편배(編配) : 유배 죄인을 배치하는 것.
[註 1145]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註 1146] 노기(盧杞) : 당 덕종(唐德宗) 때의 간신. 덕종 때 동중서 문하 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발탁되었다. 천성이 음험하여 정치를 크게 어지럽혔다. 《당서(唐書)》 권223 하.
[註 1147] 한(漢)나라 때에 쌀이 붉게 썩고 돈꿰미가 썩어 셀 수 없는 것 : 한 문제(文帝)ㆍ경제(景帝) 때에 공순하고 검소를 숭상하며 중농 정책을 써서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고 곳간에 재화(財貨)가 남아 돌아, 서울의 돈이 수만 금으로 돈꿰미가 썩어서 셀 수 없고, 태창(太倉)의 곡식이 너무 묵어 창고에 넘쳐서 밖에 노적하였는데, 쌀이 부패하여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8 효경 황제(孝景皇帝).
[註 1148] 당(唐)나라 때에 쌀 한 말 값이 3전이었던 것 : 당 태종(唐太宗) 정관(貞觀) 원년에 관중(關中) 지방에 흉년이 들어 쌀 한 말 값이 비단 한 필이었는데, 3년에 풍년이 들어 흩어졌던 자가 고향에 돌아오고 쌀 한 말 값이 3, 4전에 불과하고 1년에 사형을 결단한 것이 겨우 29인이었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36 당기(唐記) 태종 황제(太宗皇帝) 상(上).
[註 1149] 방악(方岳) : 감사를 말함.
[註 1150] 명농(明農) : 농인(農人)을 밝게 가르침.
[註 1151]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註 1152] 임자년 : 1672 현종 13년.
[註 1153] 경술년 : 1670 현종 11년.
[註 1154]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註 1155] 교산(喬山)의 염려 : 산릉(山陵)이 무너지는 염려. 교산(喬山)은 황제(皇帝)를 장사지낸 산. 황제를 교산에 장사지내니, 산릉(山陵)이 홀연히 무너져서 무덤은 비어 있고 시체가 없어졌으며 다만 칼과 신발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다. 《포박자(抱朴子)》 극언(極言).
[註 1156] 장릉(長陵)의 흙을 한 줌 가져가는 자가 있더라도 : 장릉(長陵)은 한 고조(漢高祖)의 능. 곧 한 고조의 능을 파헤침을 말한다. 한 문제(漢文帝) 때에 도적이 한 고조의 사당에 있는 옥 가락지를 훔쳐 갔는데, 정위(廷尉) 장석지(張釋之)가 기시형(棄市刑)에 처하자, 한 문제는 멸족(滅族) 명을 적용하지 않았다 하여 대노하였다. 장석지는 "지금 종묘의 기구를 훔쳤는데 멸족한다면, 가령 어리석은 백성이 장릉(長陵)을 파헤친다면 폐하께서 무슨 법으로 치죄하겠습니까." 하였다. 《한서(漢書)》 장석지전(張釋之傳), 《통감절요(通鑑節要)》 권7, 《한서(漢書)》 태종(太宗) 효문 황제(孝文皇帝) 상(上).
[註 1157] 정미년 : 1667 현종 8년.
[註 1158]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註 1159] 10일 안에 이른 연왕(燕王)의 글과 : 한 소제(漢昭帝) 때에 상관걸(上官桀)이 대장군 곽광(霍光)을 제거하고자 하여 사람을 시켜 연왕 단(燕王旦)의 상서(上書)를 가짜로 만들어 곽광의 죄를 고발하게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곽광이 갓을 벗고 소제에게 사죄하니 소제는 "짐은 이 상서가 거짓임을 알았다. 장군은 죄가 없다. 장군이 교위(校尉)를 조용(調用)한 것이 10일이 못 되었는데 연왕이 그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였다. 이때 소제의 나이는 14세였는데 상서한 자는 과연 도망하였다. 연왕은 소제의 형으로 제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원망하다가 이를 이용하여 곽광을 모반자로 몰아 내치려 한 것이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11 한기(漢紀) 효소 황제(孝昭皇帝).
[註 1160] 내탕(內帑) : 임금의 사적 재물을 넣는 곳간.
[註 1161]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註 1162] 일죄(一罪) : 십악(十惡)에 해당하는 중죄. 사형.
[註 1163] 연산(燕山) : 중국 하북성(河北省) 계현(薊縣) 동남에 있는데, 뒤에 이곳에 연산부(燕山府)ㆍ연경로(燕京路) 등을 두었다. 원나라 때에는 연경(燕京)에 도읍을 정하였으니 곧 원의 수도였던 연경(燕京)을 말한다. 고려는 충렬왕(忠烈王) 이후 원의 부마국(駙馬國)이 되어 원의 간섭을 받았으며 왕실의 호칭도 격하되었다.
[註 1164]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註 1165] 인선 왕후(仁宣王后) : 효종비 장씨(張氏).
[註 1166] 대왕 대비(大王大妃) : 인조 계비(仁祖繼妃) 조씨(趙氏).
[註 1167] 중서부(衆庶婦) : 여러 며느리.
[註 1168] 기해년 : 1659 효종 10년.
[註 1169] 정부의 동ㆍ서벽(東西壁), : 의정부의 좌참찬(左參贊)과 우참찬. 관리가 출근하여 모여 앉을 때 좌석의 동쪽에 앉는 벼슬을 동벽(東壁), 서쪽에 앉는 벼슬을 서벽(西壁)이라 한다. 의정부의 좌참찬, 홍문관의 응교(應敎) 등이 동벽에 해당되고, 의정부의 우참찬ㆍ홍문관의 교리ㆍ수찬 등이 서벽에 해당한다.
[註 1170] 정희 왕후(貞熹王后)가 장순 왕후(章順王后)의 상에서와 : 정희 왕후는 세조비(世祖妃) 윤씨(尹氏)이고, 장순 왕후(章順王后)는 예종비(睿宗妃) 한씨(韓氏)이다. 장순 왕후가 정희 왕후의 며느리가 되며, 세조 7년(1461)에 정희 왕후보다 먼저 승하하였다.
[註 1171] 소혜 왕후(昭惠王后)가 공혜 왕후(恭惠王后)의 상에서 : 소혜 왕후(昭惠王后)는 덕종비(德宗妃) 한씨(韓氏)이고, 공혜 왕후(恭惠王后)는 성종비(成宗妃) 한씨(韓氏)이다. 공혜 왕후는 소혜 왕후의 며느리가 되는데 성종 5년(1474)에 소혜 왕후보다 먼저 승하하였다.
[註 1172] 대행 대왕(大行大王) : 죽어서 시호를 올리기 전의 임금. 여기서는 효종.
[註 1173]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을 입고 : 공의 중자(公儀仲子)의 상(喪:중자〈仲子〉의 아들 상임)에 단궁(檀弓)이 문복(免服)을 하였다. 문복은 5세친(世親) 즉 10촌에게 입거나, 붕우로서 다른 나라에서 죽어 주인이 없는 자에게 입는 복인데, 중자(仲子)가 단궁에게 5세친이 아니고 또 상이 다른 나라에서 죽은 자가 아닌데, 단궁이 문복을 입었다. 이것은 중자(仲子)가 적손(嫡孫)을 버리고 그의 서자(庶子)를 세웠으므로 단궁이 입어서는 안 될 복(服)을 입음으로써 중자(仲子)가 세워서는 안 될 서자(庶子)를 세운 그것을 기롱한 것이다. 단궁은 예를 아는 사람으로 이것이 예에 합당하지 않음을 중자의 형인 자복 백자(子服伯子)에게 물었고, 자유(子游)도 공자(孔子)에게 물었는데, 공자는 "손자를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
[註 1174] 자유(子游)가 최복(衰服)을 입었다 : 사구(司寇) 혜자(惠子)의 상(喪)에 자유(子游)가 마최(麻衰)를 입고 숫삼의 요질(腰絰)을 띠고 조문했다. 혜자의 형인 문자(文子)가 이를 사양하였다. 원래 친구의 상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고운삼의 요질을 두르는 것이 예이다. 그러나 자유는 혜자가 적자(嫡子) 호(虎)를 폐하고 서자를 세웠으므로 짐짓 예가 아닌 옷차림으로 조문했던 것이다. 혜자의 형 문자가 깨닫지 못하자, 자유가 자기가 서야 할 손의 자리에 서지 않고 신하의 위치에 서니, 문자는 자유의 행동이 기롱의 뜻임을 깨치고 혜자의 적자(嫡子)인 호(虎)를 붙들고 들어와 남향하여 서게 하였다 한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
[註 1175] 앞뒤 : 앞은 효종 대왕의 상, 뒤는 비인 인선 왕후의 상임.
[註 1176] 재려(齎廬) : 인선 왕후의 승하로 현종이 재계하는 상려(喪廬).
[註 1177] 남군(南郡) : 남쪽에 있는 온양(溫陽)을 말함.
[註 1178] 옛 사람이 말하기를 '순(舜)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문왕(文王)은 내 스승이다.' : 맹자(孟子)가 성간(成覵)이 제 경공(齊景公)에게 이른 말을 인용하여, 등문공(滕文公)에게 성선(性善)을 말하고 선정(善政)을 행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순(舜)은 어떠한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말은 안연(顔淵)의 말이고, '문왕(文王)은 내 스승이다.'는 말은 주공(周公)의 말을 공명의(公明儀)가 인용하여 한 말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
[註 1179] 한 무제가 제 양공(齊襄公)이 복수한 말을 인용한 것 : 한 무제는 태초(太初) 33년(102)에 완(宛)을 정벌하고 난 그 위세로 호(胡)를 곤궁하게 하려 할 의향을 두어 조령(詔令)을 내려 말하였다. "고제(高帝)가 평성(平城)의 근심을 끼쳐두셨고, 고후(高后:한 고조의 황후인 여후) 때에 선우(單于)의 서간(書簡)이 아주 패역(悖逆)하였다. 옛날 제 양공(齊襄公)이 9세(世)의 원수를 갚으니, 《춘추(春秋)》에서 위대하게 여겼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11 한기(漢紀) 세종 효무 황제(世宗孝武皇帝) 하.
[註 1180] 윤대(輪對)의 뉘우침 : 윤대는 서역(西域)에 있던 지명으로 한 무제(漢武帝) 때에 공물을 바쳤고, 한(漢)에서 전졸(田卒) 수백 인과 관리를 두어 통제하였는데 한 무제 말년에 윤대를 포기하고 애통(哀痛)의 조서를 내려 기왕의 정벌로 국력을 소모하고 백성을 고통스럽게 한 것을 뉘우쳤다. 《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 《통감절요(通鑑節要)》 권11 한기(漢紀) 무제(武帝) 하.
[註 1181] 신선 구하는 일을 파할 수 있었던 것 : 한 무제(漢武帝)가 즉위한 이래 신선술을 좋아하여 승로반(承露盤)을 만들고, 방사(方士)를 보내어 신선을 구하는 등 매우 미혹되었는데, 말년에 신선을 기다리는 방사(方士)를 다 파하고 신하들을 대하여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가 전에 어리석어서 방사(方士)에게 속임을 당하였는데, 천하에 어찌 선인(仙人)이 있겠는가. 다 요망한 것일 뿐이다. 음식물을 조절해 먹고 약을 먹으면 병이 조금 적을 수 있을 뿐이다."하였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11 한기(漢紀) 무제기(武帝紀) 하.
[註 1182] 아버지를 협제(脅制)하고, 오랑캐를 신하로 삼았다 : '아버지를 협제(脅制)하였다.'는 것은, 수 공제(隋恭帝) 때에 천하가 어지러우므로 이세민(李世民:당 태종의 성명)이 천하를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아버지 당공(唐公) 이연(李淵)에게 기병(起兵)할 것을 권하자, 듣지 않으므로 진양궁인(晋陽宮人) 배적(裵寂)을 시켜 이연을 모시고 술을 먹으면서 강요하게 하여 소청을 얻었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34 수기(隋紀) 공제(恭帝).
[註 1183] 건성(建成)의 일 : 건성(建成)은 당 고조(唐高祖)의 태자(太子)이며 당 태종(唐太宗)의 형. 당 태종이 진왕(秦王)으로 있을 적에 공이 많고 명망이 높자, 건성이 원길(元吉)과 공모하여 당 태종을 참소하여 죽이려 하였다. 당 태종이 건성(建成)을 사살하고 심복인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제왕(齊王) 원길(元吉)을 사살하였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36 당기(唐紀) 태종(太宗) 상.
[註 1184] 송 태조(宋太祖)가 한잔 술로 병권을 해제한 일 : 송 태조가 무장으로 즉위한 건륭(建隆:960∼962) 이래로 번진(藩鎭)의 병권을 해제하고 장리(贓吏)는 중법으로 다스렸다. 오월(吳越) 전숙(錢俶)이 내조(來朝)하자 재상들은 전숙을 억류하고 그 영지를 취하자고 청하였으나, 송 태조는 듣지 않고 귀국시켰다. 또 남한(南漢)의 유장(劉鋹)이 그 나라에 있을 적에 짐독(酖毒)을 술에 타서 신하를 즐겨 죽였다. 유장이 내조(來朝)하자 송 태조가 술을 따라 유장에게 주니, 유장은 독약이 들어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술잔을 받들어 올리고 울며 아뢰기를 "신의 죄가 용서받지 못하겠으나 폐하께서 이미 죽이지 않으셨으니 대량(大梁)의 포의(布衣)가 되어 태평 성세를 보기를 원하오며 감히 이 술은 마시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송 태조는 웃으며 "짐은 성심을 미루어 남에게 대하는데 어찌 그처럼 하겠는가." 하고 유장의 술잔을 가져다 자신이 마시고 별도로 술을 따라 유장에게 주었다. 《송사(宋史)》 권1 권3 송태조 본기(宋太祖本紀).
[註 1185] 송 진종(宋眞宗)이 천서(天書)로써 태묘(太廟)에 고한 것 : 천서(天書)는 송 진종(宋眞宗)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글. 송 진종이 글안(契丹)과 전연(澶淵)의 맹약 맺은 것을 수치로 여겨 천서(天瑞)에 의해 봉선(封禪)하여 사해(四海)를 진정할 양으로 꿈에 신인이 천서(天書)를 내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승천문(承天門)과 태산(泰山)에서 얻어서 신하들과 함께 광적으로 기뻐하였으며 대중상부(大中祥符) 6년(1013) 12월에 천서(天書)를 조원전(朝元殿)에 바치고 마침내 옥청궁(玉淸宮)과 태묘(太廟)에 고하였다. 《송사(宋史)》 권6 권7 진종 본기(眞宗本紀).
[註 1186] 삼재(三宰) : 좌참찬을 가르킴.
[註 1187] 임인년 : 1662 현종 3년.
[註 1188] 사사(査使) : 어떤 일의 조사를 위해 온 사신.
[註 1189] 향천(鄕薦) : 시골 주군에서 인재를 천거하는 것.
[註 1190] 방효유(方孝孺) : 명(明)나라 태조(太祖), 혜제(惠帝) 때의 명신. 자(字)는 희직(希直). 혜제(惠帝) 건문(建文) 때에 시강 학사(侍講學士)가 되었다. 연왕(燕王:뒤에 성조〈成祖〉임)의 군사가 들어와서 그를 불러 조서(詔書)를 초하게 하자, 방효유는 최질(衰絰)로 이르러 호곡(號哭) 소리가 전폐(殿陛)에 사무쳤다. 성조(成祖)가 의자에서 내려와서 위로하고 좌우 신하들을 돌아보고 붓과 종이를 주게 하며 말하기를, "조서를 선생이 아니면 초를 할 수 없다." 하였다. 방효유는 붓을 땅에 던지며, "죽이면 곧 죽을 뿐이지 조서는 초할 수 없다." 하였다. 마침내 시장에서 사지가 찢어지는 형을 당하고 종족과 친우로서 연좌되어 죽은 사람이 수백 인이었다. 성조(成祖)는 태조의 네째 아들로 처음에 연왕(燕王)에 봉해졌는데, 태조가 승하하자, 군사를 일으켜 건문제(建文帝)를 축출하고 정난병(靖難兵)이라 일컫고 서울을 함락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방효유(方孝孺) 등 건문제(建文帝)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연경(燕京)에 천도(遷都)하였다. 《명사(明史)》 방효유전(方孝孺傳).
[註 1191] 상위(象緯) : 해ㆍ달과 오성(五星).
[註 1192] 내장(內藏) : 궁내의 곳간.
[註 1193] 임자년 : 1672 현종 13년.
[註 1194] 상장(廂將) : 임금의 거둥 때 호위하는 장수.
[註 1195] 갑인년 : 1674 현종 15년.
[註 1196] 장번 내관(長番內官) : 대궐 안에 거처를 두고 장기간 대전, 세자궁에 번드는 내시.
[註 1197] 이원(尼院) : 인수사와 자수사.
[註 1198] 음사(淫祀) : 사신(邪神)을 제사지내는 것.
[註 1199] 신기(神機) : 신묘한 기산(機算).
[註 1200] 선왕의 뜻을 소술(紹述)하려는 것 : 선왕은 효종. 효종의 북벌 계획을 계승하여 이룩하려는 것을 말한다.
[註 1201] 갑인년 : 1674 현종 15년.
[註 1202] 대비(大妃) : 효종비 장씨(張氏).
[註 1203] 반우(返虞) : 장례 치른 뒤에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
[註 1204] 중궁(中宮) : 현종의 비 김씨(金氏).
[註 1205] 사왕(嗣王) : 숙종.
[註 1206] 사왕(嗣王) : 뒤의 숙종.
[註 1207] 신해년 : 1671 현종 12년.
[註 1208] 진하(陳夏)를 아울러 썼으나 경력(慶曆)의 치세(治世)에 해가 되지 않았고 : 진하(陳夏)는 진집중(陳執中)과 하송(夏竦)을 말하고, 경력(慶曆)은 송 인종(宋仁宗)의 연호, 송 인종이 부필(富弼)ㆍ한기(韓琦) 등을 정승에 임용하여 경력지치(慶曆之治)란 태평 성세를 이룩하였으나, 재주는 있으면서 다소 간사한 하송(夏竦)과, 예에 무식하고 영리(榮利)를 추구한 진집중(陳執中)을 중직과 정승에 임용하였다. 《송사(宋史)》 하송전(夏竦傳) 진집중전(陳執中傳) 인종 본기(仁宗本紀).
[註 1209] 왕려(王呂)가 권세를 부렸으나 실로 중조(中朝)의 탄식이 나오게 하여 원우(元祐)의 태평을 이루었다. : 왕려(王呂)는 왕안석(王安石)과 여혜경(呂惠卿)이고, 원우(元祐)는 송 철종(宋哲宗)의 연호, 왕안석과 혜경이 신종(神宗) 때에 집권하여 청묘(靑苗)ㆍ수리(水利)ㆍ균수(均輸) 등 여러 신법(新法)을 만들었다가 물의가 일어나자 당시 명신을 배척하였다. 송 철종이 즉위 초에 여공저(呂公著)ㆍ사마광(司馬光) 등 명신을 불러 써서 왕안석이 건의하여 만든 신법을 파하고, 어진 사람을 등용하여 언로(言路)를 트니 천하의 인심이 흡족하여 치세로 행하였다. 《송사(宋史)》 신종ㆍ철종 본기(神宗哲宗本紀).
[註 1210] 임금도 무시하고 아버지도 무시하는[無君無父] 논설을 물리쳐서 : 기해년(1659) 효종의 상(喪)에 효종의 모비(母妃)인 자의 대비(慈懿大妃) 조씨(趙氏)의 복제(服制)를 송시열 등이 기년(朞年)으로 정하였는데, 현종 1년(1660)에 허목(許穆) 등이 상소하여 삼년(三年)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기년으로 정하였다. 현종 15년(1674)에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복제(服制)를 의정(議定)하면서 기해복제(己亥服制)의 의례 제신(議禮諸臣)을 추죄(追罪)케 하였다.
[註 1211] 사도(斯道) : 유도(儒道).
[註 1212] 옛날 주(周)나라의 왕계(王季)는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사랑을 쌓아 문왕(文王)의 빛난 덕과 무왕(武王)의 큰 공렬(功烈)을 이룩하게 해 주었고 : 왕계(王季)는 주 태왕(太王)의 세째 아들, 문왕(文王) 아버지. 이름은 계력(季歷). 그의 형 태백(泰伯) 및 우중(虞仲)이 형만(荊蠻)으로 도망하여 왕위를 계력에게 양보하였다. 계력은 왕위에 올라 태왕의 업을 닦아 문왕에게 전하고 무왕 때 은(殷)을 멸하고 주(周)를 창건하였다. 《사기(史記)》 권4 주본기(周本紀), 서경(書經) 입정(立政).
[註 1213] 한(漢)나라의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는 몸소 공손과 검소를 행하여 건원(建元)의 성대한 정벌의 공을 이루도록 터전을 만들어 주었으며 : 문제(文帝)는 한 고제(漢高帝)의 중자(中子)로 혜제(惠帝)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효제(孝弟)를 숭상하고 농사를 권장하여 검소와 질박을 천하에 보임으로써 예의가 일어났다. 경제(景帝)는 문제(文帝)의 맏아들로 즉위하여 문제의 업을 계승하여, 절약 검소하고 백성을 사랑하였다. 건원(建元)은 한 무제(漢武帝)의 연호로 B.C 140∼134. 경제의 중자(中子)로 즉위, 문제 경제의 업을 이어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유학을 높이며, 남월(南越)ㆍ동월(東越)을 평정하고 조선을 치고 서남이(西南夷)와 흉노를 물리치고 서역(西域) 제국과 교통하였다. 《사기(史記)》 권10, 11.
[註 1214] 잔포(殘暴)한 자를 교화시키고 사형을 없앨 수 있는 덕 :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착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기를 백 년 동안 하면 잔포한 사람을 교화시키고 사형을 없앨 수 있다.' 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이 말이여!" 하였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註 1215] 백성을 화하게 하고 빨리 덕을 공경하는[諴小民疾敬德] 도 : 《서경(書經)》 소고(召誥)에 있는 말로, 성왕(成王)의 시정(始政) 때에 소공(召公)이 성왕에게 고한 말이다.
[註 1216] 문자 문손(文子文孫)이신 유자왕(孺子王) : 《서경(書經)》 입정(立政)에 나오는 말로, 성왕(成王)에게 현재(賢才)을 임용하는 도리로 진계(進戒)한 것이다. 곧 성왕은, '무왕(武王)의 문자(文子)이신 어린 왕'이라는 뜻이다.

출전 : 현종실록 부록 현종 대왕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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