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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11-01-25 (화) 13:37
분 류 사전2
ㆍ조회: 232      
[조선] 김만기의 졸기 (실록)
광성 부원군 김만기의 졸기

광성 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가 졸(卒)했는데, 나이가 55세였다. 김만기는 문원공(文元公) 김장생(金長生)의 증손(曾孫)이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깊이가 있었으며 묵직하고 후덕하여 구차하게 헐뜯거나 비웃지 않았고, 젊어서 등제(登第)하여 청렴한 재량으로 한 시기에 중시되었었다.

헌종조(顯宗朝)를 당하여 오랫동안 요로(要路)에 있으면서 유현(儒賢)을 보호하고 간사한 말과 치우친 말을 가리고 막아내어, 더욱 사류(士類)들이 의지하는 바가 되었다. 비록 세속 사람들이 시기하게 되어도 고려하지 않았고, 인경 왕후(仁敬王后)5915)가 덕선(德選)5916)받게 되면서는 더욱 삼가고 가다듬어 평소의 행동이 변함없었다.

성상(聖上)의 초년에 늙은 간신이 정권을 쥐고 있고 반역하는 종친(宗親)이 흘겨보고 있어 국가 사세의 위태로움이 터럭 하나에 매어달린 것처럼 두려웠었는데, 그야말로 모가 나지 않으면서 밀물(密勿)5917)하게 계획을 세워 그들의 기선(機先)을 제압하여 써먹을 수 없게 함으로써,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어 맑아지고 종사(宗社)가 다시 편안해지게 만들어, 그의 공이 컸었다. 주토(誅討)가 이미 끝나게 되어서는 즉시 극력 사직하여 장수(將帥)의 인수(印綬)를 내놓고 집으로 돌아와 8년을 살다가 졸(卒)했다.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일 처리 잘한 것을 칭찬했고, 공명(功名)을 세울 적에 비록 취향(趣向)이 달랐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한 하자를 지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부고(訃告)가 전해지자, 하교(下敎)하기를, "슬픔과 서러움이 각가지로 지극하다." 하고, 3년 동안 녹(祿)을 주도록 명하였으며, 희정당(熙政堂)에서 거애(擧哀)했다. 뒤에 시호(諡號)를 문충(文忠)이라고 내렸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9책 94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재정-국용(國用)

[註 5915] 인경 왕후(仁敬王后) : 숙종의 왕비로서, 김만기의 딸.
[註 5916] 덕선(德選) : 덕이 있어 왕후로 뽑히는 것.
[註 5917] 밀물(密勿) : 임금의 곁에 있어 추기(樞機)에 참여함.

숙종 18권, 13년(1687 정묘 / 청 강희(康熙) 26년) 3월 15일(계사)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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