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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0 (목) 08:31
분 류 사전3
ㆍ조회: 929      
[고대] 삼국시대의 음악 (민족)
음악(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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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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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삼국시대)
음악(통일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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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조선시대)
음악(1900년대 이후의 한국음악)
음악(참고문헌)

삼국시대란 고구려·백제·신라를 뜻하며,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게 될 음악사의 연대는 고구려와 백제가 중국과 교류하기 시작한 370년에서 668년까지이다.

삼국시대 음악에서 특기할 만한 내용은 금(琴)과 쟁(箏) 등의 외래악기를 개조하여 각각 거문고와 가얏고라는 고유의 현악기를 창제(創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자국의 음악문화를 발전시켰다는 점과, 고구려와 백제가 각각 중국의 북조와 남조의 악기를 받아들이고 이 외래악기를 사용한 자국의 음악으로 국제음악 활동에 참여하였다는 점이다.

특히, 삼국의 음악은 일본 궁중에 전해져 삼국악(三國樂)이라고 불렸으며, 중국 북조의 악기를 수용한 고구려의 음악은 수(隋)나라 궁중의 7부기·9부기 등에 참가하였다.

[고구려]

고구려의 대표적인 악기는 거문고이다. ≪삼국사기≫ 악지에는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개조하여 만든 현악기가 거문고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안악 제3호분의 후실 벽화에서 보이는 현악기가 분명히 거문고라면, 고구려에는 이미 357년 무렵〔東晉時代〕에 거문고가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 밖에 통구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한 연주자가 17개의 괘 위에 4현이 걸려 있는 현악기를 술대로 연주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악기가 바로 16괘 6현으로 된 현행 거문고의 원형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고구려의 거문고는 궁꼬(涇隸)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전하여졌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궁꼬는 횡적(橫笛)과 마꾸모(莫目:미상의 관악기)와 함께 춤을 반주하였다.

이와 같은 고구려 음악의 악기편성은 일본에 전해진 백제악의 편성과 비슷한 것으로 백제악이 풍속무(風俗舞)였던 예에 비추어 일본에 전해진 고구려악의 내용도 역시 민속춤임이 분명하고, 그에 따른 반주음악도 역시 관현합주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민속음악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예를 들면, ≪고려사≫ 악지에 고구려의 속악이라고 기록된 〈내원성〉·〈연양〉·〈명주〉 등과 같은 지방의 민속음악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본다.

이 밖에 ≪수서 隋書≫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 국내에서는 오현금·쟁·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 이 6종의 악기 중 오현금(또는 오현비파)과 피리는 서역악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까닭은 서역음악은 중국의 북조, 특히 북제(北齊)와 북주(北周)에서 성행하였던 음악으로서 이와 같은 서역음악이 고구려에 채용되었다는 것은 고구려와 중국 북조와의 교류관계를 암시해 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언급된 6종의 악기편성에서는 고구려 전기에 보였던 현악기 완함이 제외되고, 대신 오현비파가 수용됨으로써 고구려 음악이 ‘완함시대’에서 ‘오현비파시대’로 새롭게 전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 6종의 악기가 합주에 사용된 것이라면, 이 편성은 고구려가 일본에 전하여 준 궁꼬·마꾸모·횡적 등 세 가지 본토(本土) 악기에 의한 편성보다 수량면에서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악기의 내용도 외래악기임을 알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수의 9부기에 참가한 고구려악과 비교하여 보면 수량면에서는 9부기의 고려악의 14종보다 적고 악기의 내용면에서는 대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현비파와 피리를 포함한 여섯 가지 악기에 의한 고구려 국내의 음악은 거문고를 포함한 3종의 악기에 의한 민속음악과는 다르고, 수의 9부기에 참가하였던 14종의 악기에 의한 고려기(高麗伎)보다 제대로 갖추지 못한〔未具〕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 6종에 의한 음악의 쓰임새는 중국 9부기에 참가하였던 고려기의 음악이 중국의 황제를 위한 것이었음에 비추어, 외래악기 편성에 의한 고구려 음악 역시 궁중에서 외국사신을 위한 연향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의 7부기와 9부기에 포함되었던 고려기의 악기는 앞서 살핀 6종의 악기에 수공후·비파 같은 새로운 서역악기가 추가되었고, 여기에 오직 고려기와 서량기(西凉伎)에만 쓰였던 제고와 담고 등의 타악기가 추가되었다. 이 14종의 악기편성에서 주목되는 점은 도피피리를 제외한 13종의 악기가 서량기의 악기편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서량기에는 이 밖에도 종·경·국쟁·수(竪)공후·소(小)피리 등 5종이 더 있다〕.

이것은 고려기에 사용된 악기가 모두 외래악기에 의한 음악이며, 특히 서량과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 주는 것으로서, 삼국 중 고구려만이 당시 북조에서 성행하였던 서역음악의 수용에 힘입어 중국 조정(朝庭)의 7부기·9부기·10부기 등에 참가할 수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백제]

≪일본후기≫에 전하는 백제음악의 내용은 궁꼬·마꾸모·횡적 등의 편성으로 춤을 반주하는 고구려의 음악과 대개 같다. 이처럼 백제와 고구려가 동일악기의 편성으로 음악을 연주하였던 점은 양국이 부여족(夫餘族)이라는 동일민족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양국이 거문고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거문고가 신라에 수용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반드시 재고해 보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궁중에 전하여진 백제악은 백제국의 풍속무로 이에 따른 반주음악 역시 관련합주의 백제 민속음악이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여 주는 증거로 ≪고려사≫ 악지에 전하는 백제 음악조를 들 수 있다.

왜냐하면, ≪고려사≫ 악지에는 〈선운산〉·〈무등산〉·〈정읍〉 등의 곡명이 전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정읍〉은 거문고를 포함한 향악기로 반주하는 향당(鄕黨)의 음악, 즉 민간음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수서≫의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국내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炳)·지(炎)·적(笛) 등 일곱 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 중 지는 훈(塤)과 함께 오직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에만 사용된 악기이고, 나머지 고와 각을 제외한 4종의 악기도 모두 청악의 편성과 일치한다.

따라서 백제악에 사용된 이들 악기는 모두 중국 남조에서 수용된 외래악기로서, 고구려가 중국 북조와 교류하였던 것과는 달리, 백제는 중국 남조와 교류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5종의 악기에 의한 백제음악은 일본에 전한 ‘백제악 풍속무’에 따른 악기편성보다 수량면에서도 늘어난 것이고 악기의 내용도 다르다. 이 음악의 쓰임새는 고구려 음악의 경우와 같이 외국사신을 위한 연향악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외래음악을 받아들여 중국의 7부기 등에 참가하였던 고려기와는 달리, 백제 음악은 중국의 남송(南宋)과 북위(北魏) 등에 소개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음악으로 평가받았을 뿐이다.

그 까닭은 백제가 중국 북조와의 수교를 끊고 남조와 교류하는 동안, 북조에서 새로 일어난 서역음악을 수용하지 못하고,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예전 중국의 청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밖에 백제가 중국 남조의 음악을 수용하였던 예는 백제인 미마지(味摩之)가 중국 남조에 속하는 오(吳)나라의 기악무(伎樂舞)를 배워 일본에 전하였던 것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오나라의 기악무를 배운 바 있는 백제인 미마지는 612년 일본에 귀화하여 일본의 사찰을 중심으로 기악무를 가르쳤다고 한다.

기악무는 교훈적인 불교이야기를 담은 가면무용극으로, 각 장이 독립되어 있는 9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양주산대가면극〉에서 기악무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가야]

가야국은 현재의 경상남도 고령지방에 위치하여 약 6세기까지 존재하였던 부족국가이다. 가야국의 음악은 가야금으로 대표된다.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정확히 말하자면 수나라)의 악기인 쟁(箏)을 본으로 삼아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진흥왕 12년(551)의 기록에 의하면 가야금이 6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는데, 당시 가야금의 모양은 오늘날의 풍류가야금과 같이 12줄과 양이두(羊耳頭)를 갖추고 있었다. 이 점은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土偶)의 가야금과 일본 나라(奈良) 쇼소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금(新羅琴)의 모양에서도 알 수 있다.

한편 가야국의 악사 우륵은 가야금을 위하여 12곡의 곡을 만들었다. 이 12곡의 음악 내용은, 첫째 우륵에게 가야금을 위한 곡을 짓도록 명한 가실왕이 각국의 말이 다른 것처럼 가야금을 중국의 쟁과 다르게 만든 점, 둘째 우륵의 12곡을 배운 신라의 제자들이 우륵의 음악을 평하여 “가락이 복잡〔繁且淫〕하고 아정(雅正)하지 못하다.”라고 한 점, 셋째 12곡의 곡명 중 9곡이 지방 이름으로 되어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대개 지방의 속악(俗樂)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야금 음악은 가야금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추던 연향악이었다고 하겠는데, 이것이 신라 진흥왕대에 신라의 궁중음악〔大樂〕으로 채택됨으로써 가야의 멸망 이후에도 오늘날까지 가야금 음악의 맥을 잇게 되었다.

[신라]

신라는 가야국 멸망 무렵 가야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 가야금이 신라의 유일한 악기로 신라음악을 대표하게 되었다. ≪삼국사기≫ 악지 정명왕(신문왕) 9년조를 보면, 당시 신라의 연향악으로 쓰인 가야금의 용례를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알 수 있다(이하 금은 가야금을 가리킴).

① 가무(家舞):내물왕 때 4세기경 작. 감(監) 6인, 가척(家尺:가자비) 2인, 무척(舞尺:춤자비) 1인. ②하신열무(下辛熱舞):유리왕 때 3세기 작. 감 4인, 금(琴)자비 1인, 춤자비 2인, 노래자비 3인. ③사내무(思內舞):내해왕 때 3세기초 작. 감 3인, 금자비 1인, 춤자비 2인, 노래자비 2인.

④한기무(韓岐舞):연대 미상. 감 3인, 금자비 1인, 춤자비 2인, 노래자비 없음. ⑤상신열무(上辛熱舞):유리왕 때 3세기 작. 감 3인, 금자비 1인, 춤자비 2인, 노래자비 2인. ⑥소경무(小京舞):연대 미상. 감 3인, 금자비 1인, 춤자비 1인, 노래자비 3인. ⑦미지무(美知舞):법흥왕 때 6세기 작. 감 4인, 금자비 1인, 춤자비 2인, 노래자비 없음.

이상 정명왕 9년조의 연주 기록은 비록 통일신라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그 음악은 통일 이전의 것을 담고 있어서 신라 음악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신라에서는 거의 금(琴) 하나로 편성된 연향악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금이란 바로 6세기경에 신라의 대악으로 채용된 가야금이다.

단, 위에 열거한 〈신열악〉·〈사내악〉·〈미지악〉 등은 그 곡명에 있어서 가야금 수용 이전이나 이후에 달라진 것이 없지만, 그 음악의 내용에 있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가야금 수용 이전의 고악(古樂)을 새로 수용된 가야금으로 연주하게 되고, 이것이 궁중의 대악으로 채택되는 과정에서 자연히 아정하게 개변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신라의 음악이 일본에 전해졌다. ≪일본후기≫에 의하면 일본 궁중에서의 신라 음악은 809년까지도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소규모의 편성이었다. 오직 금 하나만으로 춤과 노래를 반주하는 연향음악이었는데, 이 금은 일본에서는 신라 금으로, 신라 본국에서는 가야금으로 불렸다.

또한 금 하나로 춤과 노래를 반주하는 음악의 형태는 일본 궁중에서 연주되던 신라악과 본국의 음악이 서로 같았고, 중국 쪽에서는 신라 음악의 존재가 극히 미미하여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 까닭은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하여 중국과의 교류관계에서 뒤처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혜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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