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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1-20 (목) 09:48
분 류 사전3
ㆍ조회: 1161      
[남북국] 통일신라시대의 음악 (민족)
음악(통일신라시대)

세부항목

음악
음악(상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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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통일신라시대)
음악(고려시대)
음악(조선시대)
음악(1900년대 이후의 한국음악)
음악(참고문헌)

통일신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의 수용을 그 특징으로 한다. 신라의 당악 수용은 전래음악과 외래음악을 구분하여 향악(鄕樂)과 당악이라는 개념을 정착시키는 음악사상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즉, 새로이 당악을 받아들인 신라는 신라 및 삼국 전래의 음악과 당악 수용 이전에 수용된 서역계 음악을 한데 아울러 향악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비롯된 향악과 당악의 개념은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당악]

당악은 문자 그대로 당나라의 음악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당나라 현종(742) 이후의 속악을 가리킨다. 문헌기록에는 신라의 당악 수용에 관한 사실이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증자료에 의하여 신라에서의 당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삼국사기≫ 악지에 신라의 악기로 소개되고 있는 향비파는 그에 대비되는 당비파의 실재를 암시하여 주는 것이며, 또한 비파라는 이름으로 해서 당비파의 존재를 밝히고 있다.

둘째,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에서와 같이 ‘향악’이라는 명칭은 그 대칭으로서의 ‘당악’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셋째, 신라에 당악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려시대에 송나라의 음악이 당악이라고 지칭되지 않았을 것이다.

넷째, 신라의 향악에는 박(拍)과 대고(大鼓)가 사용되었는데, 이 두 가지 악기는 수(隋)나라의 9부기와 당나라의 10부기에도 없는 것으로 그 이후에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신라에 당악이 수용된 것이 아니라면, 박과 대고가 향악에 함께 편성된 사실이 설명되기 어렵다.

향악에 북과 대고가 채용된 예는 ≪악학궤범≫ 정전예연악공배립(正殿禮宴樂工排立)에도 보이는데, 이때 북과 대고는 좌우의 당악과 향악 사이에 놓여 좌우의 음악에 겸용하도록 되어 있다. 신라에서도 역시 북과 대고가 향악·당악에 겸용되었기 때문에 향악에 포함된 것 같다.

다섯째, 신라의 향악기인 대금(大魁)·중금·소금에는 중국의 악조인 ‘황종조(黃鍾調)’·‘반섭조(盤涉調)’·‘월조(越調)’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악조명은 당나라 천보(天寶) 13년(754) 당시의 조 이름으로서 이 무렵의 음악이 신라에 수용되었음을 반증하여 준다.

여섯째, 신라와 당나라 양국의 조정 사이에는 빈번한 사신왕래가 있었는데, 진덕왕 때부터는 조하(朝賀)의 예를, 혜공왕 때부터는 종묘(宗廟)와 오묘(五廟)의 예를 갖추게 되었다. 선덕왕 때는 사직단(社稷壇)을 건립하여 여러 가지 중국의 의식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때마다 중국사신을 위한 사신연(使臣宴)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중국사신을 위한 연회가 있었다면 중국어 통역과 함께 당악 연주는 필수불가결의 것이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신라에서의 당악이 방향과 공후를 함께 편성하고 있었는지 확인하여 볼 수는 없지만, 계유명 아미타불삼존 사면석상(癸酉銘阿彌陀三尊佛四面石像)·지증대사적조탑신(智證大師寂照塔身) 및 ≪고려사≫ 악지의 당악조를 종합하면 통일신라의 당악은 일본의 당악같이 방향·비파·쟁·공후·생·소·척팔(尺八)·피리·당적·고(鼓)를 사용하였을 것 같다.

[향악]

향악이란 당악의 대칭어로서 향당(鄕黨) 또는 향토의 음악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라에서의 향악이란 당악 수용 이후, 즉 통일신라 후기의 향악을 말한다. ≪삼국사기≫ 악지에서 언급한 향악은 거문고·가얏고·향비파·대금·중금·소금·박·대고 등 8종의 악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향악편성은 가야금 하나로 노래와 춤을 반주하던 음악에 비하여 매우 확대된 것으로 여기에는 고구려의 악기 거문고와 서역의 악기 향비파, 당나라의 악기 박판과 대고 등이 복합적으로 수용되어 있다. 이처럼 향악의 내용이 확대된 까닭은 그 대비가 되는 당악의 악기편성과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한편, ≪고려사≫ 악지에는 삼국의 음악이라 하여 〈동경 東京〉 등의 신라악 3곡 외에 〈정읍〉 등 백제악 5곡, 〈명주 溟州〉등 고구려악 3곡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삼국의 음악은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로 전승되었을 것이므로 통일신라시대에는 고구려의 거문고 등의 악기뿐만 아니라, 삼국의 여러 가지 음악이 함께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신라의 민간음악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사뇌 詞腦]

사뇌란 ‘시나위’의 옛말이며, 중국 시송(詩頌)의 대칭어인 향가(鄕歌)와 동의어이다. 사뇌는 ‘아야(후세 노래의 ‘아으’에 해당)’라는 차사(嗟辭)를 가진 ‘차사사뇌’와 동요와 풍요(風謠)와 같이 단순한 ‘차사 없는 사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차사사뇌는 전체가 5구(句)로 되어 있는데, 대개 문장의 종지에 의하여 2구, 2구(‘아야’로 끝난다), 후구의 5구로 구분된다.

사뇌의 음악은 기존의 곡조에 새로운 가사를 넣어 부르는 형태로 조선시대의 시조와 유사하다. 이와 같은 예는 ≪삼국유사≫의 〈혜성가 彗星歌〉에서와 같이 즉석에서 새로운 사뇌를 지어 불렀다는 사실에서 확인되며, 기악반주나 춤을 동반하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전부터 있어 온 음악이나 현전하는 사뇌의 수를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것이 더 많고, 고려 초까지 사뇌의 전통은 이어졌다. 890년에는 사뇌 모음집인 ≪삼대목≫이 편찬되어 조선시대 후기에 우리말 시를 모은 ≪청구영언≫을 상기시켜 준다.

[금가 琴歌]

금가란 거문고 반주에 의한 노래, 또는 거문고 독주를 뜻한다. 일종의 방중악(房中樂)에 해당하며 조정교묘(朝廷郊廟)의 음악과는 다르다. 통일신라의 금가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귀족 출신의 음악가 옥보고(玉寶高)와 그가 만들어 후세에 전한 음악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의하면, 옥보고는 8세기 중엽 신라의 음악기관인 음성서(音聲署)로 가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50년 동안이나 거문고를 익혀 30여 곡의 거문고곡을 지은 인물이다.

그의 음악을 보면 〈춘조곡 春朝曲〉·〈추석곡 秋夕曲〉·〈유곡청성곡 幽谷淸聲曲〉 등 한문으로 된 곡명을 가지고 있어, 우륵이 지은 가야금곡이나 우리말 가사를 가진 사뇌와 구분된다.

특히 〈춘조곡〉·〈추석곡〉은 ≪통전 通典≫에 전하는 청악(淸樂)의 곡명과 유사하며 고려시대의 금가인 〈풍입송〉과 비슷하여, 우리말 토를 단 한시(漢詩)를 금가의 가사로 삼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옥보고의 음악은 신라의 선율에 한시를 담은 곡이었음이 분명하다.

옥보고의 거문고 음악은 속명득(續命得)을 거쳐 귀금선생(貴金先生)에 전하여 이후 몇 번의 단절위기를 거쳐 안장(安長)과 그의 아들로 전해진 다음부터는 금으로 업을 삼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다. 귀금과 그의 계승자들 역시 금가를 남겼으며, 이와 같은 통일신라의 금가 유산이 고려시대의 〈풍입송〉류의 음악으로 이어졌다고 하겠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상층 인사들 사이에 수용되었던 금가는 중국의 칠현금에 의한 금가에 상응하여, 거문고가 후세에 다른 악기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범패 梵唄]

범패는 불교의 의식음악이다. 음악적으로는 자유 리듬에 무반주 형태이며, 가사는 한문으로 된 5언 1구 넷으로 이루어진 것〔云何於此經偈〕과 6언 또는 7언으로 된 것〔處世界如虛堂偈〕 등이 있다.

신라의 범패는 흔히 진감선사(眞鑑禪師)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삼국유사≫의 월명사조(月明師條)에 보면, 월명사가 자기는 국선(國仙)이어서 범패를 부르지 못한다는 말이 있어, 범패의 존재가 이미 760년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진감선사는 830년에 당나라에서 돌아와 경상남도 하동의 쌍계사에서 범패를 가르쳐 신라 불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일본 원인자각대사(圓仁慈覺大師)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에는 중국 산동반도 등주(登州)에 있는 신라인의 절 적산원(赤山院)에서 거행된 강경의식을 보고, 여기에서 불린 범패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있는데, 그의 보고에 의하면 ‘운하어차경’은 당풍(唐風)이고 ‘처세계여허당’의 음성(音聲)은 일본의 것과 흡사하다고 하였다.

원인자각대사가 일본의 성음과 비슷하다고 한 범패는 당시에 새롭게 퍼진 당풍의 범패라기보다 당풍 전래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범패를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이 9세기 전반의 신라에는 새로운 당풍의 범패와 그 이전부터 전승된 범패 두 가지가 있었으며, 진감선사는 새로운 당풍의 범패를 신라에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당풍의 범패 수용은 신라에서의 당악 수용을 뒷받침해 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무애(無寐)와 거사(居士)소리]

신라에는 전문 범패승에 의한 불교음악 외에 민간 포교를 위한 불교음악이 있었다. 즉, ‘무애’와 ‘거사소리’이다. 신라시대의 고승 원효(元曉)가 자신을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자칭하며 불가의 말에 우리말이 섞인 노래를 지어부르면서 포교를 위하여 촌락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이때 그가 손에 들고 춤을 춘 호리병을 ‘무애’라고 하였는데 무애란 바로 원효의 춤을 ‘무애’라고 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 무애무는 뒤에 고려왕조의 궁중정재로 채택되어 노래와 관현반주를 곁들인 2인무로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한편,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의 서동생인 차득공(車得公)이 거사의 차림으로 비파를 연주하며 지방의 가가호호를 방문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차득공이 불경 이야기를 비파에 맞추어 노래하며 동냥을 구하였음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후세에 꽹과리를 손에 들고 ≪부모은중경≫의 이야기를 노래로 부르며 동냥을 구한 소리 〈회심곡〉과 한 계통의 서사가라고 할 수 있다.

[향악잡영오수]

〈금환 金丸〉·〈산예 壟猊〉·〈월전 月顚〉·〈속독 束毒〉·〈대면 大面〉등 다섯 수로 되어 있는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는 각각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금환〉은 도칠환(跳七丸)이라하는 공놀이이다. 약 7개의 공을 양손으로 던지고 받는 이 놀이는 백제와 고구려에는 물론 중국의 한나라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산예〉 또는 〈사자기 獅子伎〉는 서량의 춤이며, 〈월전〉은 여러 선비들이 술잔을 다투며 노래하는 우전(于沙, kothan)지방의 놀이이다.

또한 〈대면〉은 일종의 가면무로서 채찍으로 귀신을 몰아내는 북제의 대면(代面)임이 분명하다. 〈속독〉은 일본에서 전승되고 있는 무악(舞樂) 〈슈쿠토꾸 宿德〉에 해당하며, 가면을 쓴 사람들이 주무(走舞)하는 속특(粟特, sogdiana)지방의 춤이다.

이와 같이,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는 모두 외래의 놀이를 주제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향악’이라 지칭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신라에 당악이 수용되면서 전래의 향악은 물론 그 이전에 들어와 있던 외래음악까지를 한데 아울러 향악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는 20세기에 서양음악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뒤 국악과 양악이라는 대칭개념이 생겨나자, 우리 나라 전통음악은 물론, 중국 음악까지를 국악이라고 부른 것과 유사하다.

<이혜구>

출전 : [디지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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