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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창호
작성일 2003-12-30 (화) 20:06
분 류 사전3
ㆍ조회: 867      
[종교] 개신교-개신교의 교의와 영향 (브리)
개신교-개신교의 교의와 영향

세부항목

개신교의 형성 1
개신교의 형성 2
20세기의 개신교
개신교의 교의와 영향
한국의 개신교

교의·예배·조직:종교 개혁자들과 그 후계자들의 공통된 원리와 관행

신앙 의인(信仰義認)

개신교 지도자들은 '사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즉 신앙의인)는 개신교의 가르침이 개신교를 당시 로마 가톨릭과 구별해준다는 데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가르침은 개신교 역사 전반에 걸쳐서 개신교의 핵심이 되어왔다. 교단들마다 약간의 변용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이 공유하는 신앙의 핵심은 쉽게 분간할 수 있다.

개혁자들 눈에 새로운 상황은 자유의 상황이었다. 가톨릭교도들은 스스로 충분한 공로를 쌓고 선행을 하였는지, 또 하느님의 대리인인 교회를 기쁘게 했는지를 두려워한 데 반해, 개혁자들의 견해는 신자들로 하여금 이 귀찮은 질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였다.

그들은 한편으로 죄와 죽음, 악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구원을 성취하였다거나 최소한 자신의 구원을 위해 지대한 노력을 했다는 믿음과 짝을 이루는 교만, 곧 사람을 노예화하는 교만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개혁자들에게 그들의 적인 로마 가톨릭교도들이 항상 지적하는 심각한 문제를 남겨주었다. 즉, 의인(義認)과 자유에 대해 그렇게 가르친다면 선행을 강조하는 성서의 가르침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공관복음서(마태·마가·루가)에 따르면, 예수 자신은 언제나 사람들을 더 선하게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으며 바울로 조차도 이러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운동은 인간 존재를 공로와 선행의 필요성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선행에 대한 관심을 경솔히 취급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개신교 문헌들은 많다. 개혁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선행은 하느님의 위로나 구원의 위로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용서받은 마음에서 나오고 항상 의롭다 인정받는 사람의 삶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법은 인간존재가 걸어가는 구원의 길이나 하느님에게 이르는 일종의 장애물 또는 도로 표시로 이용될 수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법은 인간의 모자람을 재고 그것을 심판한다. 복음을 통해 활동하는 은혜로운 하느님은 인간 존재를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도들은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을 주장하면서 평신도와 성직자가 평등함을 인정했지만, 그들이 평신도의 역할을 명확히 밝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평신도들은 공중 예배에서 설교자가 될 수 없으며, 성사의 집행도 성직자들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

설교자가 성서해석에 전문가가 될 것을 요구함으로써 개신교도들은 평신도들의 완전한 참여를 희생시키고 목회자 안수를 받으려면 일정과목을 반드시 이수하도록 정했다. 그렇지만 개신교도들의 이러한 견해는 중세 가톨릭과 비교해볼 때 평신도들의 신학적인 지위와 실제적인 지위를 크게 드높였다.

말씀의 권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인정받는다는 가르침과 모든 신자가 곧 사제라는 가르침은 권위에 대한 로마 가톨릭의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하는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누구도 은혜의 체계 안에서 위계질서를 독점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권위적인 체계가 무너짐으로써 개신교에는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개신교는 이를 서둘러 채워야 했다.

개신교 운동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는 여기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곧 무정부상태나 훈련부재를 선호했다는 뜻은 아니다. 개혁자들은 즉각 교회와 신자들의 생활에서 행사되어야 할 권위의 범위를 정하는 일과 교회구축을 시작했다.

그들은 최종적인 권위가 하느님의 말씀에 있다고 보았고 이를 성서와 나란히 두는 경향이 있었다. 개신교 운동을 위해 권위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필요는 성서에 관한 이해를 높였으며 성서의 가르침에 대한 재발견은 개신교 운동의 일차적인 동인(動因)으로 간주된다.

교회의 계속적인 개혁

개신교 교회는 교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규범이 되는 성서에 의해 심판받고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에 근거하며 교회 교부들과 공의회들을 비판적으로 긍정하고 전통적인 교회법의 법전들을 거부한다는 점, 그리고 계속 개혁의 원리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로마 가톨릭주의와는 크게 달랐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일단 종교개혁을 완수한 다음에는 그들의 지위와 규정을 위태롭게 하는 종교개혁의 확산을 거부하였지만, 거의 모든 개신교도들은, 교회는 언제나 개혁되고 언제나 계속적인 개혁을 필요로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생각을 강조해왔다.

개신교가 근대세계에 미친 영향

민족주의에 미친 영향

마침내 개신교는 북서 유럽과 영국, 아메리카 대륙 영어권에서 주류가 되는 신조가 되었다. 19세기의 거대한 개신교 선교운동을 통하여 개신교는 이 지역들로부터 세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개신교는 소수파로 존재했던 로마 가톨릭과 만났으며 이와 동시에 가톨릭이 주류인 남아메리카에도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개신교를 북대서양 국가들의 역사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국가들에서는 '독립'교회들이나 '교회와 국가의 분리' 이후의 개신교 자유교회들이 수세기 동안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가 근대 민족주의에 공헌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개신교는 이미 종교개혁 시대에 해체되고 있다가 1806년에 최종적으로 붕괴된 신성 로마 제국의 종식을 주도함으로써 민족주의 세력을 형성하는 데 참여하였다.

낡은 그리스도교 세계(corpus Christianum)는 생존할 수 없었고 개신교의 존재는 하나의 수장(首長) 아래 있는 국제적이고 초지역적인 통합된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문맹을 퇴치하고 각국어에 대한 존중을 확산시키고자 했던 개신교는 라틴어를 매개로 한 낡은 그리스도교의 언어적 유대를 없애고 나라마다 그들의 모국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 색인 : 문자해독률).

급진파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현존하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개신교도들은 자기의식에 도달한 각각의 새로운 국가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제공할 때가 많았는데, 프로이센과 미국의 경우가 그 예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의 관심

20세기에는 지난 3세기 반의 세월에서보다 합의를 이루어내려는 노력이 많았다. 오늘날 에큐매니컬 운동은 철저하게 개신교와 동방정교회, 가톨릭을 망라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처음에는 교회의 선교가 경쟁과 분열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개신교 토대 위에서 탄생하였다. 널리 알려진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폭풍우에 휩싸인 양떼처럼 포위당하고 서로 엉켜 있었던 그들은 서로간의 교제를 모색하였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현대의 교통 및 통신 기술은 세계의 거리를 좁혔고 에큐메니컬 운동의 연합을 가능하게 했다. 신학의 재발견은 에큐메니컬 시대에 공동선언과 때로는 공동행동을 위해 개신교의 열정을 창출하여야한다는 새로운 인식과 융합되었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파적인 노선과 초교파적인 노선 모두에서 교파 연합과 공의회적 조직을 결성하게 하였다.

그동안 교황 요한네스 23세(1881~1963)의 경우가 예시하는 바와 같은 로마 가톨릭의 개방은 개신교도들과 가톨릭교도들 사이에 친교와 일치를 가져왔다. 16세기의 적대적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은 채 갈등관계에 있던 두 파는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그들의 경계를 넘어서서 만남을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 가톨릭 성서 주석가들은 개신교가 은혜와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또한 개신교는 교회의 구성요소가 상호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가톨릭의 견해를 새로운 각도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성서가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전통은 성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여 전통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에 새삼스러운 공감을 표하고 있다. 개신교도들과 동방정교회 그리스도교도들은 대체로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세계교회협의회 같은 기구와 조직체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하반기에 이르러 개신교의 상속자들, 특히 철학적 신학자인 파울 틸리히는 '개신교 시대의 종언' 혹은 '개신교 이후' 시대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들 모두가 개신교의 일반적인 증언에 대한 신념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틸리히는 예언자적 비판의 '개신교 원리'가 교회생활을 참되게 표현하는 모든 것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세속의 참된 가치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사상가들은 개신교가 그 역사적 뿌리를 두는 유럽에서 문화를 지배하는 경향은 쇠퇴하고 있다고 믿었다.

개신교 신봉자들은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줄곧, 그리고 계몽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사상 세계가 여러 면에서 도전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공업주의와 도시화가 발흥하였던 19세기에, 급변하는 세계는 전통적인 개신교에 의해 형성되었던 사회와 교회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한편, 개신교의 영토에서 성장한 특정 이데올로기 신봉자들은 개신교의 근본적인 신념들에 도전하였으며, 그중 일부는 스스로 '신을 죽인 사람들'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3명의 예를 들어 본다면, 경제이론가 카를 마르크스, 진화론자 찰스 다윈, 철학적 허무주의자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다. 개신교 경험에 정통했던 이들은 이를 무기로 사용하여 그들의 견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개신교는 탈식민주의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세계에서 '외국 선교'에 근거한 팽창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대해 불확실성에 빠져들었다. 비(非)그리스도교 종교들의 가치에 대한 현대적 평가로 인해 많은 개신교도들은 팽창 위주의 개신교로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을 멸절시키거나 배제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이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전체주의 세력들 특히 나치 독일은 개신교가 강조하는 내용 일부를 흡수하여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이를 변화시켰거나 억압에 대해 철저하게 반대하였던 개신교도들을 박해하였다.

현대생활의 매력, 세속화, 신앙의 위기는 개신교를 전반적으로 쇠퇴하게 만들었고 교인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현상은 19세기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에는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영국에서 나타났다.

그결과 스칸디나비아와 영국에서처럼 인구의 절대 다수가 개신교 공교회의 세례 교인이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 극소수가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회의 계율과 명령에 응답을 보일 뿐이었다. 교회 출석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지지를 개신교의 재산으로 보는 사람들도 개신교의 교의가 더이상 신앙을 규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과 연합하고 있다. 개신교의 분열은 더이상 서구 사람들을 흥분시키지 않으며, 개신교시대의 종언을 공표할 뿐이다.

한편 개신교는 서구 문화의 많은 요소들과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개신교의 영향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다. 개신교는 주기적으로 밀물과 썰물, 재생과 쇠퇴를 경험해왔으며 지금은 보다 오랜 기간의 쇠퇴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도 서구적인 지방주의를 무심코 드러내 전반적인 흐름을 잘못 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예견하게 하는 모든 현상에도 불구하고 다음 2가지 긍정적인 세력이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형태의 개신교 세력이다. 오순절운동·복음주의·근본주의가 그것이다. 이 운동들의 선조들은 세상을 부정하고 종파적이며 은둔적이었지만,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주변문화를 나름대로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전혀 예견하지 못했던 형태로 일을 하고 있고 또 일을 시작하고 있다.

개신교의 쇠퇴를 보완하는 또 하나의 세력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신교의 성장이다. 이 새로운 개신교 교회들의 일부는 주로 선교사들이 소개한 형태와 거의 무관한 토착적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였으며, 개신교의 판에 박힌 서구적 토대를 훨씬 뛰어넘는 증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개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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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신학과 교회 : 이근삼,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개신교사회론입문 : H. H. 슈라이, 손규태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5
미국 역사와 프로테스탄트 : F. H. 리델, 이성혜 역, 심지, 1983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M. Weber, 권세원·강명구 공역, 일조각,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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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개신교신학사상사 : 윌리엄 스콧, 김쾌상 역,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 폴틸리이, 송기득 역, 한국신학연구소, 1986
기독교사 : Kenneth S. Latourette, 윤두혁 역, 생명의 말씀사, 1985
The History of the Church:A Select Bibliography, 3rd ed. : Owen Chadwick, 1973
Histoire geénérale du protestantisme, 3 vol. : Emile G. Léonard, 1961-64

J. C. Godbey 글 | 강원돈(姜元敦) 참조집필

출전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한국브리태니커,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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